2권의 핵심이라고 생각하는 대목이다.
자니우프와 자포드 그리고 트릴리언은 고대하던 통치자와의 만남을 이루었다.
우주의 통치자라는 존재에 대해 궁금해했던 자니우프...
자니우프와 통치자의 대화가 시작된다.
p.260~
"이 일을 얼마나 하셨죠?"
"아아, 이건 과거에 대한 질문이로군요, 그렇죠?" 그 사람이 말했다.
자니우프는 어리둥절해서 그 사람을 바라보았다. 이것은 정말이지 그가 기대했던 것이 아니었다.
"그렇습니다."
"내가 어찌 알겠어요? 과거란 현재의 나의 육체적 감각과 마음 상태 사이의 괴리를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낸 허구일지도 모르는데."
그 사람이 말했다.
자니우프는 그를 노려보았다. 푹 젖은 그의 옷에서 수증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언제나 이런 식으로 질문에 답을 하나요?" 그가 말했다.
"사람들이 말하는 소리가 들린다고 생각될 때 말해야겠다고 떠오르는 생각을 말할 뿐이에요. 그 이상은 모릅니다."
"아니, 이것 보세요, 사람들이 당신에게 오죠, 네? 우주선을 타고......" 자니우프가 말했다.
"그런 것 같아요." 그 사람이 말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당신한테, 자기들 대신 결정을 해달라고 부탁하죠? 사람들의 인생, 세상, 경제, 전쟁, 저 바깥 우주에서 벌어지는
모든 문제들에 대해서 말이에요." 자니우프가 말했다.
"저 바깥이라고요? 어디요?" 그사람이 말했다.
"저 바깥 우주 말입니다!" 자니우프가 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바깥에 뭐가 있는지 어떻게 알겠어요?" 그 사람이 예의 \바르게 말했다. "저 문은 닫혀 있는데."
"하지만 저 바깥에 우주 전체가 있다는 걸 당신도 알잖아요! 그게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로 당신의 책임을 회피할 수는 없다고요!"
자니우프가 소리쳤다. 우주의 통치자는 오랫동안 생각에 잠겼고, 그동안 자니우프는 분노로 몸을 떨었다.
"당신은 당신이 알고 있는 사실들에 대해 대단히 확신하는군요."
그 사람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난 우주를-그런 게 정말 있다면 말입니다-그렇게 당연히 받아들이는 사람의 생각을 믿을 수가 없어요."
자니우프는 여전히 몸을 떨면서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난 나의 우주에 대해서만 결정을 내리죠." 그 사람이 조용히 말을 이었다. "내 우주는 나의 눈이고 귀예요. 그 외의 것들은 소문에
불과하죠." "그럼 당신은 아무것도 믿지 않는단 말입니까?" 그 사람은 어깨를 으쓱하더니 고양이를 안아 올렸다.
"당신이 말하는 걸 이해 못하겠군요." 그가 말했다.
"당신이 이 오두막 안에서 결정하는 일들이 수백만 사람들의 생명과 운명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이해 못한단 말이에요? 이건 정말
어마어마하게 잘못된 일이라고요!"
"모르겠군요. 당신이 말하는 그 모든 사람들을 만나본 일도 없는걸요. 그리고 내 생각에 당신도 안 만나봤을 거예요. 그 사람들은 우리가
듣는 말 속에서만 존재하죠.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당신이 안다고 말한다면 그건 잘못이에요. 그 사람들만이 알죠.
그 사람들이 정말 존재한다면 말이에요. 그 사람들도 눈과 귀라는 자신들만의 우주를 가지고 있으니까요."
"다른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믿습니까?" 자니우프가 물고 늘어졌다.
"모릅니다. 내가 뭐라고 말할 수 있겠어요?"
"당신 말 한마디에 사람들이 죽기도 하고 살기도 한다는 사실을 이해 못해요?"
우주의 통치자는 가능한 한 오래 기다렸다. 우주선에 시동이 걸리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오자, 그는 그 소리를 감추기 위해 말을 시작했다.
"나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어요. 나는 사람들하고 상관이 없어요. 내가 잔인한 사람이 아니라는 건 주님도 알아요."
"아하! 당신 '주님' 이라고 하셨죠! 당신 뭔가를 믿기는 하는군요!" 자니우프가 소리를 질렀다.
"내 고양이죠." 그 사람이 인자한 목소리로 말하더니 고양이를 안아 올려 쓰다듬었다.
"난 이 녀석을 주님이라 부르죠. 난 이 녀석에게 정말 잘해준답니다."

엄마를 부탁해, 바이올렛, 종소리 이후 읽는 신경숙의 4번째 소설이다. 소설의 제목을 읽은 순서대로 나열한 것인데, 신기하게도 시대를 거꾸로 거스르는 흐름의 소설읽기였다. 세월이라는 시간의 강을 몇번 건넌 탓일까...뒤로갈수록 신경숙의 소설들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문학감상이라는 것에 이성의 영역이 얼마나 차지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갈수록 더해가는 난해함에 책을 덮어버린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누렇게 빛이바랜 종이와 오래된 책 특유의 냄새와 같은 단순 감각적 경험이 신경숙의 소설이 남긴 유일한 것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앞표지에 있는 작가소개부터 시작해서 가장 뒷장의 펴낸 날짜까지 한 글자도 빼놓지 않고 모두 읽는 결벽증 덕분에 대학교수님들이 써놓은 신경숙의 소설에 대한 비평을 읽을 수 있었다. 비평을 읽으면서도 이게 무슨말인가 싶었지만 읽지 않은 것보다는 신경숙이라는 작가가 나타내고자 한 것에 대해 조금이나마 더 알게 되었다. 종소리와 풍금이 있던 자리를 읽으면서 시종일관 받은 느낌은 '답답함'과 '안타까움' 이었다. 세상과 혹은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타인들과의 소통불능, 그리고 과거의 추억을 답답한 현실로 끌어와 현실의 고통을 극복해보려는 안타까운 시도들은 풍금이 있던 자리라는 소설집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동일한 특징이다. 인간은 보편적이면서도 특수하며 독립적인 존재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적이 있다. 보편과 특수라는 인간성의 이중주의 화음이 잘 어우러질 때 인간은 가장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신경숙의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이 빚어내는 화음에는 항상 자연스러운 '조화로움'이 빠져있다. 이런 부조화의 원인에는 '보편'의 결여가 있다고 생각한다. 친구와 가족, 그리고 사랑이라는 인간의 보편적이면서도 특수한 문제들앞에 맞서는 인물들의 태도에는 회피를 통한 도망침과 추억을 통한 현실의 망각이 나타난다. 보편적이면서도 특수한 인간사의 많은 문제들을 보편이 결여된 채 해결하려 했기때문에 그들은 늘 좌절하고 고통받는다. 이런 인물들의 모습 때문에 답답하면서도 안타까움을 느꼈던 것이다. 소설을 다 읽고도 답답함과 안타까움은 쉬이 가시질 않았다. 어쩌면 나도 신경숙 소설속의 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모습들을 가지고 있기에 이번 독서를 통해 그런 내 모습을 직시했기에 답답함과 안타까움이 쉬이 가시지 않은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부조화의 화음을 내는 보편적이고도 특수한 존재이기에...
'군중 속의 고독'이라는 말이 있다. 크게는 사람들이 북적대는 졸업식장, 버스나 지하철 그리고 작게는 지기들과 함께하는 술자리까지...우리는 문득 '참 외롭다'라는 느낌을 받는다. 그 외로움은 단순히 타인과의 교류의 부재로 인한 것과는 조금 다른 외로움, 즉 고독이다. 그 고독은 내면의 힘으로 어루만져야 하기에 극복하기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현대인들은 보편적으로 고독한 존재이면서도 그 고독을 다스리지 못하는 불치병자이다. 신경숙이 바라본 것 역시 현대인들의 존재의 고독이 아닌가 싶다. 신경숙은 현대인들의 고독을 날카롭지만 연민이 섞인 시선으로 바라보지만 그 고독을 어루만질 방법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고독은 현대인들의 보편적인 문제이면서도 특수한 문제이기에...
하지만 '바이올렛'이라는 소설에서 작가후기를 통해 넌지시 힌트를 주고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깊은 밤중에 읽는 몇 줄의 아름다운 문장에 마음이 흔들리듯이 누군가 내 소설 속의 하찮은 존재로 인해 이 고독한 현실 속의 인간의 심연을 들여다보게 되고 바스러진 과거를 껴안게 되고 타인에게 한 발짝 다가가고 싶은 충동으로 마음이 흔들린다면 작가로서 그보다 소망스러운 일은 없겠다'
내면에  고독이라는 다스리기 힘든 녀석을 품고 살아가는 인간들이 서로에게 한 발짝 다가서면서 그 고독을 함께 나누는 것...그것이 그녀가 제시한 힌트인 것이다.
현대인들이 가진 보편적인 고독을  보편을 결핍한 인물들의 모습을 통해 제시하고 있는 풍금이 있던 자리는 오늘을 살아가는 나의 모습, 우리들의 모습을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인간의 조건은 1927년 상하이에서 국민당과 공산당의 제1차 국공합작이 국민당의 장개석의 구데타에 의해 결렬되는 과정을 그린 르포르타주, 즉 기록문학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기록문학이라는 것에 대해 처음 알게되었다^^;) 기록문학은 사실적이고 단편적인 보도문이 아니라 보도자의 식견을 바탕으로 사건이나 현상을 해석하여 전달하는 것이다. 앙드레 말로는 공산당의 당원으로 상하이 혁명이 참여하였다가 장개석의 구데타로 무참히 숙청당한 테러리스트와 코뮤니스트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이야기를 전개했다. 대부분의 세계 명작이 그렇듯 인간의 조건 역시 흡인력있는 서사의 전개와 인물들의 내면에 대한 치밀한 묘사가 돋보였다. 말로는 여러명의 인물이 상하이 혁명이라는 동일한 시대상황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역사의 광풍속을 헤쳐나가는 것을 보여준다. 

p.265~266
"빨갱이건 파랭이건," 하고 페랄은 말했다.
"쿨리는 어디까지나 쿨립니다. 죽지 않는 한 말이지요. 인간이 단 하나밖에 안 가진 목숨을 어떤 사상을 위해서 버린다는 것은 인류의 독특한 어리석음이라고 생각지 않으십니까?"
"인간이, 글쎄요. 어떻게 말하면 좋을까요? 인간으로서의 조건을 견디어 낸다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이겠지요······"
지조르는 기요의 사상을 생각했다. 인간이 이해를 초월하여 기꺼이 목숨을 내던지려고 하는 모든 사상은 이 조건의 바탕을 인간의 존엄이라는 것 위에 놓고, 그 올바름의 증명을 막연하게나마 지향하고 있다. 
이를테면 옛날의 노예에게는 그리스도교가, 시민에게는 국가가, 그리고 노동자 계급에게는 코뮤니즘이 그것이다. 

앙드레 말로는 인간이 존재하는 조건의 바탕은 바로 인간의 존엄이라고 말한다. 생김새, 직업, 소득, 복장 등과 같은 외부적 요인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인간의 존재 자체를 소중히 여기는 것, 그것이 인간의 존엄이 아닐까?

하지만 많은 이들은 이러한 인간의 조건의 바탕을 다양한 방식으로 회피하고 벗어나며 살아간다.

p.265~266
"아무튼 인간이라는 것은 줄곧 중독에 걸려 있을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 이 나라에는 아편이 있습니다. 마호메트 교도의 나라에는 마약이 있고, 서양에는 여자가 있습니다 ······ 서양 사람들의 경우에는 아마도 연애가 인간의 조건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용되는 수단인지도 모르겠군요 ······"
그의 이런 말의 밑바탕에서 몇몇 인간상이 은밀하고 막연한 흐름이 되어 역류해왔다. 첸과 살인, 클라피크와 광기, 카토프와 혁명, 메이와 연애, 그 자신과 아편 ······ 그가 보는 바로는 다만 기요만이 이런 영역에 들어가지 않았다.

코뮤니스트 기요가 공산주의라는 사상을 받아들이고 혁명에 참여하는 까닭은 오로지 가난한 농민과 노동자들이 인간답게 인간의 존엄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이다. 혁명이라는 거창한 이름도 기요에게는 인간의 존엄이라는 인간조건의 바탕을 위한 하나의 과정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평등, 복지, 존재, 존엄, 인권······스무살 이후로 더욱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단어들이다. 인간의 조건은 무엇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로써 한 번쯤은 해보아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