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아홉살의 잡지사 기자 효정은 편집장과의 불화로 인해 사표를 내고 백수생활에 들어간다. 하지만 엄마가 아버지와 다투고 집을 나간 상태라 집안은 어수선하기만 하다. 설상가상으로 아버지는 효정의 실직상태를 알아내고는 선보기와 결혼을 강요한다. 위기에 봉착한 효정은 때마침 손에쥐게 된 전단지 한 장으로 변화를 모색해본다. ’당신의 첫사랑을 찾아드립니다’라는 전단지의 주소대로 찾아간 효정은 성재라는 남자와 함께 자신의 첫사랑 김종욱을 찾아나서게 된다.

 

이 소설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동명의 뮤지컬을 소설화 한 것이다. ’김종욱 찾기’는 뮤지컬의 흥행을 등에 업고 영화화와 소설화를 동시 진행했고 영화는 임수정 공유를 내세워 완성했고, 소설화는 젊은 여류 작가 전아리를 내세웠다. 전아리는 주로 젊은이들이 등장하는 청춘, 로맨스 소설을 써온 작가이다. 그런 작가의 이력 때문인지 이번에는 아예 로맨스 뮤지컬의 소설화 작업을 맡게 된 것이다. 전아리 소설의 특징아라고 하면 아직 젊은 작가다운 유쾌함과 가벼움, 그리고 현대적 감각을 들 수 있다. 그런 특징들이 소설 ’김종욱 찾기’에도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때문에 미디어 문화에 빠져 책읽기를 꺼려하는 요즘 젊은 세대들이라 해도 ’김종욱 찾기’는 꽤 쉽게 읽혀질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문장이 간결하고 스토리가 캐릭터 중심의 짤막한 에피소드 위주로 빠르게 전개되기 때문이다. 소설을 읽어가다보면 저절로 극중 캐릭터들의 활극들이 머릿속에 영상으로 그려질 정도다. 더구나 때를 같이 해서 개봉한 임수정 공유 주연의 영화와 비교해서 감상한다면 보다 더 입체적인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누구라도 첫사랑은 존재할 것이다. 첫사랑이란 이미 지나간 것이기에 추억이 될 수 있고, 추억으로 포장되어 있기에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하루하루 삶이 팍팍하고 힘들 수록 우리는 첫사랑이라는 추억의 각설탕을 현실이라는 쓴커피 속에 떨어뜨려 그 달콤한 기분에 빠져들고 싶어한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면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된다. 사실 첫사랑은 환상에 불과하다. 우리를 달콤하게 해주는 것은 우리들 마음이다. 우리가 첫사랑을 생각할 때마다 기분이 달콤해지는 이유는 우리들 가슴 속에 달콤한 마법이 흐르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우리들 가슴 속 깊은 곳에는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존재하는 ’달콤한 사랑에 대한 열망’. 삶이 팍팍하고 현실이 힘들수록 우리는 그 열망을 채워줄 누군가를 그리워하게 된다. 그것이 ’첫사랑에 대한 추억’이 될 수도 있고 바로 옆에서 어깨를 빌려주는 누군가가 될 수도 있다. 기왕이면 추억이라는 환상보다는 바로 옆의 누군가가 더 좋지 않을까...! 소설 ’김종욱 찾기’는 이런 것들에 대한 로맨스다.

’밀실살인게임’은 제8회 본격미스터리 대상 후보작에 오른 우타노 쇼고의 작품이다. 물론 우타노 쇼고 하면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가 떠오를 것이다. 명실공히 작가의 최고작이자, 일본 미스터리 역사를 통털어도 손에 꼽을 명작임이 분명하다. 그런 탓에 언제나 우타노 쇼고는 벚꽃의 그늘에 가려진 듯한 느낌이 든다. 뭘 해도 ’벚꽃만큼은 아니네’하는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는 가혹한 운명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그런 만큼 또 언제나 ’벚꽃같은’ 이라는 기대를 하게 만드는 작가이기도 하다. 이 작품 ’밀실살인게임’역시 그런 기대를 안고 읽게 되었다. 사실 일본내 평가에서도 ’벚꽃’ 못지 않은 찬사 일색이어서 그 기대치는 더욱 컸다. 

이 소설은 사건제시, 단서제시, 추리와 논증- 이런 식의 구조가 끊임없이 반복된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5명의 '살인마'들이 자신이 저지른 살인에 대한 문제를 제시하면 나머지 4명이 그것을 알아맞혀야 한다. 그 사건이 종결되면 돌아가면서 다른 사람이 문제를 내고 또 나머지가 답을 맞힌다. 굉장히 신선한 설정임에 분명하지만 읽어가다보니 어느순간 조금씩 흥미가 식어갔다. 왜냐하면 초반의 신선한 출발에도 불구하고 똑같은 패턴이 끊임없이 반복되다보니 감각이 무뎌지는 것이었다. 마치 소설 속 극중 인물들이 처한 딜레마처럼... 소설 속 그들은 '보는 것' 정도의 자극에 만족을 느끼지 못해 '직접 참여하는' 살인게임을 즐기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시작한 그들의 게임은 같은 패턴이 반복되면 반복될수록 애초의 자극은 사라지고 결국엔 그들이 만들어놓은 룰 속에 갇혀버려 한계점에 부딛히고 만다. 그들이 그런 한계점에 부딛히며 조금씩 그들의 '게임'에 루즈함을 느끼기 시작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독자 역시 이 반복되는 '게임'에 루즈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더구나 그 각각의 사건들에 사용되는 트릭들이 뭐하나 그리 특별나게 '환상적인' 것은 없었다. 마법같은 트릭은 나오지 않았고 그저 궁리하고 연구하다보면 도출될 수 있는 건조한 수사기록 같은 결과들만 있을 뿐이었다.(물론 에도가와 란포의 어느 단편을 연상케하는 에피소드는 조금 매력적이었다) 총 8개의 에피소드 중에서 무려 6개가 진행되는 동안 계속 그런 패턴이었다. 뭔가 뒤통수를 때리는 듯한 짜릿함이 부족했다. 정말 이대로 계속 끝까지 갈 것인가. 하고 실망하려는 찰나! 마침내 폭발하고야 말았다. 마지막 두 개의 에피소드에서 작가는 독자들의 뒤통수를 제대로 후려쳤다. 

사실 이 작품은 출간 전부터 기대를 어느정도 했던 것이 이 작품의 후속편이라할 수 있는 ’밀실살인게임2.0’은 제10회 미스터리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벚꽃’이후 우타노 쇼고 최고의 작품이라는 화려한 찬사를 받은 작품이었다. 더구나 ’밀실살인게임2.0’은 반드시 1편을 봐야만 하는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때문에 그 대단한 ’밀실살인게임2.0’의 전초전이라 할 수 있는 ’밀실살인게임’은 필견의 가치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앞서도 말했듯, 도대체 뭐가 이 작품이 그리 대단하다는 것인지 중반부까지 잘 몰랐던 것이다. 작가가 라스트의 한방을 위해 차곡차곡 복선의 벽돌을 쌓아갔던 것을 나중에 가서야 알게 되었고, 그 한방으로 이 작품의 가치는 별셋 정도에서 갑자기 별 다섯으로 상승해버린다. 그와 동시에 2편에 대한 기대치가 끝간데 없이 치솟게 된다. 과연 작가는 2편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설 정도인데- 실상 작가는 2편을 1편보다 훨씬 더 뛰어나게 만들었기에 ’미스터리 대상’까지 수상하게 된 것이다. 

이쯤되면 이 작품에 대해 재정리가 필요하다. 기본적으로 이 작품은 옴니버스 식으로 계속 진행되는 추리게임이다. 추리게임이 계속 진행되는 동안에는 과연 그래서 작가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게 대체 뭘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왜냐하면 옴니버스식 추리게임이라면 긴 장편으로 쓸게 아니라 애초에 연작단편집의 형식을 취했으면 더 어울렸을 테니까. 하지만 작가는 처음부터 그런 옴니버스의 나열 정도를 원했던 게 아니라는 게 라스트에서 밝혀진다. 그리고 그 라스트의 충격적인 반전은 반드시 이러한 ’병렬식 옴니버스’를 취해야만 그 강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는 ’독특한 성질’을 지니고 있었다. 모든 것이 작가의 계략이었다. 작가는 극중 등장인물들은 물론이고 독자까지도 처음부터 ’게임’에 참여시켜 함께 놀래켜버릴 작정이었던 것이다. 이제 독자들에게 남은 것은 차분히 2편을 기다리는 것 뿐이다. 극악무도함의 끝을 내달린 이 1편의 라스트가 과연 2편에서 또 어떤 이야기로 전개될지 도무지 예상을 할 수 없다. 1편을 능가할 2편의 극악무도함이란...! 그저 2편의 출간일을 기다릴 뿐이다.

왕을위한팬클럽은없다 - 이사카 고타로

 

이사카 고타로의 신작. '골든슬럼버'와 '모던타임스'로 정점을 찍은 듯한 이 작가는 이후부터 조금씩 매너리즘에 빠져들고 있는 듯하다. 사실 이사카 고타로의 팬이 된 결정적 작품들은 최초로 읽은 세 작품 '러시 라이프', '중력 삐에로', '칠드런'이었다. 이 세 작품에서 강렬하게 느껴지는 최고의 매력이라면 역시 '퍼즐식 전개'다. 이사카 고타로를 좋아하게 된 이유는 바로 이 퍼즐식 전개 때문이었다. 한편의 정통미스터리를 능가할 정도로 치밀하게 짜여진 복선과 복선, 반전과 반전은 소설 보는 재미를 몇 단계나 높이 끌어올려 주었다. 개인적으로 작가의 최고작이라 꼽는 '오듀본의 기도'나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 같은 작품에도 역시 퍼즐식 미스터리는 보석같은 빛을 발휘한다. 이 퍼즐식 전개와 함께 이사카 고타로 특유의 유쾌한 휴머니즘도 내가 그의 매니아가 된 이유 중 하나다. 물론 촌철살인의 유머와 위트가 넘치는 명대사들의 향연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장점 중 하나였다. 

하지만 요 근래 들어 그의 작품들을 보면 이러한 그의 장점들이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SOS원숭이' 때도 그랬고, 이 작품 '왕을 위한 팬클럽은 없다'에서도 그랬다. 미묘하게 이사카 고타로스럽지 않은 느낌이다. 이를테면 이 작품 '왕을 위한 팬클럽은 없다'는 야구를 소재로 한 한 인간의 성장기를 그리고 있다. 이 작품을 읽으며 내내 머릿속에 그려지는 작품이 있었다. 이사카 고타로가 쓴 단편소설 '강철의 킥복서'가 겹쳐졌다. 구체적인 스토리라인은 다르겠지만 전체적 분위기나 소설의 주제가 굉장히 엇비슷했다. 물론 임팩트나 감동, 재미면에서는 '강철의 킥복서'가 훨씬 강렬한 편이었다. 말하자면 '왕을 위한 팬클럽은 없다'는 겨우 단편으로 쓸만한 이야깃거리를 장편으로 꾸역꾸역 늘인 듯한 인상이다. 읽어가다 보면 과연 이게 이렇게 길게 쓸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의구심이 드는 이유는 무엇보다 이 작품의 작가가 이사카 고타로이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이사카 고타로는 언제나 한 편의 소설 속에 서사와 미스터리를 폭발할 듯 응축시키는 작가였다. 말 그대로 문을 열고 들어서면 어마어마한 이야기의 성찬과 미스터리의 지뢰들로 넘쳐났던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런 것들에 비하면 너무나 앙상한 느낌이다. 작품 자체가 졸작이라는 말은 결코 아니다. 인간은 어차피 누구나 혼자일 수밖에 없다는 고독에 대한 성찰을 천재야구소년이라는 설정을 빌려와 이런 정도로 써내려 갔다는 것은 사실 굉장히 훌륭하다고 볼 수도 있다. 문제는 전혀 이사카 고타로스럽지 않다는 데에 있다. 어째서 이 작가는 이 작가만이 가질 수있는 어마어마한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않는 것일까? '골든슬럼버'에서 모두 다 소진해버린 것인가? 'SOS원숭이'도 그렇고 '왕을 위한 팬클럽은 없다'도 그렇고 이 두 작품은 마치 이사카 고타로가 습작처럼 써내려간 느낌이다. 작가 특유의 정교한 퍼즐식 구조가 증발해버리고 나니 그정도로 공허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작가에게 있어 과도기인가? 아무튼 그럼에두 불구하고 이 작가에 대한 기대는 여전하다. 과도기라고 한다면 부디 잘 헤쳐나가 더욱 진화된 이사카 고타로 세계관으로 무장해서 컴백해주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