된통 한방 먹었다. 이게 무슨 짓인가. 시험일까. 여기서 무슨 능력을 시험해보겠다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혼자 힘으로 이 공간을 빠져나가는 능력이 있는지 보려고. 그럼 당연히 떨어지게 돼있다. 코양이가 문을 여는건 불가능하다. 손잡이가 잠긴 문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아니. 이건 장난이 아니다. 시험도 아니었다. 처벌이었다. 에코는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보려고 의자 밑에서 살며시 밖을 내다봤다. 검은 독수리는 벽난로 장식대에 미동도 않고 근엄하게 앉아 있었다. 쥐는 여전히 벽 아래서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거대한 뱀은 건너편 벽에서 메트로놈처럼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하고 있었다. 누르넨은 기다린 다리를 뻣뻣이 세운 채 흔들 흔들 했다.에코는 그제야 좀 마음이 가라앉아 머리를 굴렸다. 아이스핀이 돌아오지 않는 한 문을 나가는건 어림없다. 다른 길도 없다. 벽이나 바닥에 비집고 나갈 구멍도 없다. 창문도 없다. 잠깐, 벽난로는 어떨까. 연동이 뚫려 있다면 필시 굴뚝을 통해 밖으로 나갈수 있을 것이다. 연통 벽이 발을 못 디딜 만큼 미끄럽지만 않다면 말이다. 일단 지붕 위로 올라가기만 하면 다시 가죽쥐들의 무덤으로 내려가면 된다. 위험이 아주 없지 않은 가시밭길이었다. 벽난로 속에 처박혀 숨이 막혀 죽거나 아니면 올라가다가 뚝 떨어져 온몸이 박살이 날수도 있는 일이다. 좀더 안전한 방법은 그냥 의자 밑에 엎드려 소름마법사가 돌아올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눈앞에 바다가 펼쳐져 있다. 지구 전체의 멋진 피부. 진자 표면, 존은 라우스 도서관에서 지구본을 본적이 있다. 육지느 까끌까끌하고 들쭉날쭉했으며 서로 엉켜 있었다. 최대한 공의 많은 부분을 뒤덮기 위해 정말로 납작하게 엎드려 있었다. 헐 항에서는 바다에 대한 육지의 지배권을 입증하기 위해 물속에 각목 피라미드를 짓고 있는 광경을 목격했다. 돌고래라는 이름이 혼란을 부채질했다. 네덜란드 선원이 저건 돌고래가 아니라 계선주야. 라고 말했다. 히죽거리지도, 눈을 깜박이지도 않고 평소처럼 침만 뱉으며 말했으니 분명 참말일것이다. 존은 다시 한번 말해달라고 부탁하고, 그 말을 배웠다. 프랑스 사람들이 해상에서 영향력을 행세하려 든다는 것과 혁명 이후 등대의 오목거울이 순은으로 바뀌었다는 사실도 배웠다. 존은 기분이 좋았다. 이미 완벽한 자유를 맛본 듯했다. 헐에서 음식을 사 먹으며 그는 자유에 대해 생각했다. 자신의 계획을 사전에 타인에게 말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자유다. 혹은 계획에 대해 침묵할수 있는것. 자기 계획을 누군가에게 미리 알려야 한다면 그것은 절반의 자유를 누리느너데 불과하다. 반대로 내가 할일을 다른 사람이 미리 말해준다는 것은 자신이 노예와 다름없다는 뜻이다. 어떻게 생각하든 결론은 그냥 떠날게 아니라 아버지와 이야기를 해보는 것으로 매듭지었다. 해군사관학교 생도가 되려면 연줄이있어야 한다.

 

통풍이 심해진 천문학자가 캅슈타트로 이송된후 포울러 소위와 존은 첨성대를 설치했다. 그들은 망원경으로 하늘을 훑다가 정박지 여픙로 시몬스타운에서 컴퍼니스가든까지 이어진 길을 지나고 잇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곳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저마다 멈춰 서서 뭔가 특별한 것을 발견했는지 물었다. 말을 타고 아침 산책길에 나선 신사나 장작을 진 노예 혹은 배를 타고 폴스 만을 지나가는 선원까지도 세러드가 곁에 잇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그는 말뚝과 노끈으로 울타리를 치면서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그러고 나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이제껏 겪은 신기한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그가 말을 마치자 신사들은 말을 타고, 노예는 등짐을 지고 가던 길을 재촉했다. 존은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원주민들 입장에서는 멀리서 온 백인이 신기한 종족일것이다. 그들은 비로 말 한마디 못알아듣는다 해도 백인의 말에 오래도록 귀를 기울일것이다. 그곳에 가면 정말 주변 바다를 살펴보려고 나무에 오르는 물고기와 게가 있을까. 존은 몹시 궁금했다, 믿음이 가는 모크리지의 말이었지만. 테라 아우스트라리스는 처음 가는 곳이었으므로 미심쩍었다. 존의 새로운 고민거리는 레이시였다. 레이시는 배안에서 가장 신속하게 일을 처리했다. 존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이 사실을 과시했다. 워낙 빠르다 보니 다른 사람이 하고 있는 일마저 빼앗아가기 일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