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읽는 내내 많이 부끄러웠고, 아이한테 가장 미안했다. 내가 그동안 아이에게 부르짖던 "사랑한다"는 말이 다 가식적으로 보였고, 아이를 위한다고 했던 모든 행동들도 내 행복을 얻기 위한 행위였다는걸 깨닫게 되었다. 자녀사랑이란 바로 이렇게 하는 것이란걸 이 책을 통해 배우게 되었다.
회색빛 건물사이에서 유치원, 학교, 학원을 맴돌고, 컴퓨터 게임과 플라스틱 장난감 속에서 자라난 아이들은 회색빛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지구 반바퀴를 돌고 자연속에서 자라는 중빈이를 바라보니 초록, 빨강, 노랑, 하얀, 분홍..온갖 천연색들로 세상을 바라본다. 그렇기에 쏟아내는 말들도 온갖 색채들이 다 모여 있다.
아이가 아기일 때부터 나는 절친한 친구에게 그러하듯 동등하고도 허물없는 대화를 나누곤 했다. 아이가 알고 싶은 지점과 내가 알고 있는 지점이 만날 때까지, 진솔하게 설명하고 묘사하고 느낌을 주고받았다. 쉽게 이야기해주기는 했으나, 대충 에둘러 이야기한 적은 없었다. 그리고 아이는 지금껏 딱 그 성실성만큼만 사물을 진지하게 대하는 것 같았다.
얼마나 난 아이의 호기심과 궁금증에 내 사랑을 다 담아 대답해주고 아이의 눈높이와 함게 하며 뒹굴고 놀아주었는지. 꼬리 물고 이어지는 질문에 엄마와 아이가 대화나누듯 아이가 만족할때까지 대답을 해 준적이 몇번이나 있었을까?..아이의 눈을 들여다보고 아이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것만으로도 부모의 사랑이 그대로 전달되는 모습이 그려지며 오소희 작가와 중빈이의 대화를 통해서 "경청"의 참된 뜻이 바로 이거구나 느낄 수 있다.
엄마! 산다는 건 참 행복한 일이예요..중빈이의 이 말에 깜짝 놀랐다..하늘높이 치솟은 나무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을 바라보며 자신이 죽으면 이 곳에 묻어달라는 아이의 말에 너무 어른스런 아이의 언행에 약간은 거부감도 잠깐 들긴 했지만 자연이 주는 풍요로움을 소중히 여기고 행복해 하는 아이의 모습에서 어떻게 사는게 행복인지를 중빈이는 제대로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엄마와 이이가 서로 마주보며 대화를 나누다보면 저절로 웃음이 터져 나오기도 하고, 중빈이의 심오한 철학의 세계로 들어가다 보면 나 또한 인생에 대한 생각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어른의 눈에 비친 세상은 탐욕과 시기와 질투, 경쟁심만이 가득한데 중빈이의 눈에 비친 세상은 나눔과 배려와 아름다움과 이해만이 가득 들어 있었다.
특히 몇년간 모은 큰 돈을 남을 돕겠다는 마음 하나로 덜컥 기부하는 중빈이의 모습과 그 곁에서 요리조리 잣대를 재어대는 오소희 작가의 모습에서 바로 내모습이 비쳐줬다. 그래도 오소희 작가는 중빈이의 마음을 이해하고 중빈이의 의사를 존중해 주는데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아마도 끝까지 아이를 말렸을거란 생각이다. 중빈이의 마음에서 내가 아닌 우리를, 더불어 사는 지혜를 배워보는 시간이었다.
아이들을 꾸짖을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어른들은 자신이 확신에 차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크고, 힘이 세고, 지적 경제적 우위에 있으니 너는 나를 믿고 따라오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네게 올바름에 대해 아려주고, 너를 교정해 보겠다'라는 의도하에 움직인다. 조바심에 쫓겨 아이를 꾸짖는다.
부모의 조바심때문에 아이가 많은 상처를 입은 것은 사실이다. 기다려 주는 느긋함 없이 답답하면 내가 먼저 해결해 주고, 아이를 야단치는 일을 반복하다 보니 아이는 점점 의기소침해지고 매사에 엄마에게 의견을 물어보고 행동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함께 도와주면서 기다려주는 느림보의 미덕을 아이를 통해 배워보는 소중한 시간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