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천국도 아닌 ‘당신들’의 천국이라는 제목이 흥미를 끌었다. 왜 하필 제목이 당신들의 천국일까하는 나의 의문은 책장을 덮고 나서야 풀렸다.

 소설에서는 소록도에 새 원장으로 부임하게 된 조백현 대령을 주인공으로 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조백현 원장은 원생들에게 생기를 불어넣고자 축구를 시키고, 주민들의 의견을 듣고자 장로회를 설치한다. 처음에는 조정수를 비롯한 전임 원장들에 대한 불신이 쌓여있던 원생들은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하지만 결국 원생들은 차차 변화되어 가고 섬은 안정을 찾는다. 그러나, 조원장이 부임한 후 줄어들던 환자들의 탈출이 또 늘어나기 시작한다. 원장이 만들어 놓은 자유에 물신을 품은 원생들이 늘어나게 된 것이다. 탈출한 환자들은 일방적인 지배와 통제에 의한 문둥이들의 자유에서 벗어나 변화와 개선이 가능한 인간으로서의 자유를 꿈꿨다. 문둥이의 자유는 원장이 근본적으로 원생들과 같은 처지가 아니기 때문에 설치된 높디 높은 울타리이다. 즉, 섬 밖에 대한 반목 감정을 조장함으로써 섬만이 가장 행복한 곳이라는 감정을 심어 주는 것이 그의 통제에 의한 자유였던 것이다. 이로 인해 섬 안에 불신이 싹 트고 살인이 일어나자 장로회의 대표인 황장로는 사랑과 믿음으로 원생들을 대하라고 말한다. 원생들과 공동 운명을 지니고 그들과 상호 신뢰를 가지는 것만이 진정한 자유의 실현이라고 말이다. 이 말에 따라 조 원장은 원장 직위를 버리고 주인으로서 섬으로 돌아온다.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당신들’의 천국은 속박하고 억압하는 자유를 말한다. 변화의 가능성을 배제시켜버리는 지배자의 자유 말이다. 결국, ‘당신들’의 천국은 불신과 싸움을 조장한다. 나는 우리들 역시 당신들의 천국을 꿈꾸고 있지 않나 생각해본다. 남을 속박하고 지배함으로써 이룩하는 천국은 진정한 천국이 아니다. 소설에서 황장로가 말하듯 신뢰와 사랑으로 공동 운명을 살아갈 때 비로소 진정한 우리들의 천국은 이룩되는 것이다. 작가는 지배와 통제를 버리고 사랑과 믿음을 가지라는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인간은 개인과 사회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살아가는 존재다. 지나치게 개인만 강조되면 퇴페적인 느낌에 환명을 느끼고, 지나치게 사회만 강조되면 억압받는 느낌에 답답해한다.

 명준 역시 개인과 사회의 조화를 추구하는 인간이다. 그는 남한의 퇴락한 자본주의에도, 북한의 위선적이고 말뿐인 사회주의에도 만족을 느끼지 못한다.

 그는 남한의 개인적 공간인 밀실밖에 없는 모습과 자신을 빨갱이로 모는 현실에 환멸을 느끼고 진정한 광장을 찾아 월북한다. 그러나 북한에는 진정한 광장은 존재하지 않았고 당 수뇌부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텅 빈 광장만 존재할 뿐이었다. 이상적 공간을 찾아 남북을 오갔음에도 만족을 느끼지 못한 명준은 결국 전쟁 후 중립국으로 향하는 배 안에서 자살을 하고 만다.

 조화를 이루지 못한 채 양극화된 두 이데올로기는 결국 한 인간을 파멸로 몰아넣었다. 하지만 나는 극단적 이데올로기보다도 명준의 자실의 원인은 그 자신의 나약함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밀실과 광장이 공존하는 이상적 사회를 꿈꿨던 명준은 남북을 오갔지만 어느 곳에서도 만족을 얻지 못했고 결국 중립국이라는 도피행을 택했다.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사회를 비판하고 고칠 점을 찾는 데에서 그는 매우 뛰어났다. 하지만 그에게는 의지가 부족했다. 사회에 대해 실망하고 굴복하여 좋은 곳을 찾아 떠나려 하는 그의 모습은 기회주의적이기까지 했다. 한 사회의 지식인으로서 그는 자신의 의무를 자가했어야만 했다. 좀 더 자신의 신념을 확고히하여 사회를 개혁 새 보려는 적극적인 의지로 나아갔어야 했다. 적극적으로 광장을 만들려고 하지는 않고 막연한 바람만 가진 채 주저앉아 버린 그는 초라했다.

 누구나 자신이 사는 삶에 대해, 사회에 대해 불만을 가진다. 그리고 보다 더 나은 이상을 꿈꾼다. 명준은 지식인 계층으로서 먹고 입을 것이 풍부하고 지식도 갖춘 인간이었다. 이런 지식인이 자신의 나약함 때문에 자신의 뜻을 펼치려고는 못하고 사회에 굴복해 버리는 모습은 한심스러웠다.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으로 무마하기에는 명준은 선택권을 너무도 많이 가졌었다. 나는 지식인은 사회를 보다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야 하는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모순을 깨닫고 있는 정도가 아니라, 사회에 나아가 실천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철학’이라고 하면 대개 골방 안에 틀어박혀 세계와의 소통을 거부하고 괴상한 논리로 상대방을 당황시키는 철학자가 연상된다. 하지만 철학이라는 학문은 어떤 다른 학문보다도 현실적인 학문이다. 철학은 현실세계를 치밀하게 탐구하여 문제를 지적하고 극복 방안을 제시한다. 이렇게 적극적인 철학을 역사와 유리시켜 생각하면 섭하다.

 이 책에서는 시대별, 나라별로 등장한 철학자들의 사상을 역사와 연관시켜 설명한다. 현실에 바탕을 둔 철학이니만큼 배경을 이해하고 접하면 재미있다. 또 왜 그 철학자가 그런 사상을 주장했는지도 명확해진다. 본래 철학을 좋아하고 많은 흥미를 가지고 있던 나에게 그런 철학들의 배경이 되는 역사를 아는 것은 재미있었다. 철학자의 사상이 이해도 더 잘 되었고 철학과 역사를 동시에 아는 뿌듯함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이 책 중에서 내 마음을 끈 철학자는 니체였다. 평소에 ‘니체’라는 이름과 그가 말한 ‘신은 죽었다’라는 말 밖에 접해 보지 않은 나였지만 그의 사상은 친숙하게 다가왔다. 19세기 자본주의가 급격하게 발전해가고 있는 시대 상황 속에서 니체는 사람들의 허무감을 지적했다. 문명의 혜택이 높아지고 사회가 발전할수록 자살 발생률은 높아지고 사람들은 작아진다. 또 원대한 꿈과 이상은 퇴락해 가고 문화는 말초적인 쾌락만 추구하는 방향으로 타락한다. 니체는 이런 허무주의의 원인을 기독교의 낡은 가치관에서 찾는다. 겸손과 순종을 강조하는 낡은 가치관을 비판한 니체는 사회를 이끌어갈 현명한 초인 중심의 새로운 도덕을 강조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진정한 나 찾기’ 운동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니체의 사상이 나에게 매력적이었던 이유는 그가 현실사회를 너무도 정확히 지적했기 때문이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사람들이 불행해지는 이유는 그들이 자아를 잃어버리기 때문이라는 그의 사상은 나에게 큰 깨달음을 주었다. 문명과 사회의 큰 흐름에 휩쓸리느라고 나 자신의 꿈을 잃고 있던 나에게 그는 나를 찾으라고 말했다. 현실을 누구보다 정확히 보는 철학자의 사상이니만큼 니체는 나에게 실질적인 교훈을 주었다. 그리고 나 자신을 바꾸는 방법을 제시했다. 우리가 철학과 역사를 함께 공부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현실을 직시하고 올바른 대안으로 이끌어주는 지혜가 철학자에겐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