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비딕으로 잘 알려진 허먼 멜빌의 필경사 바틀비, 에드거 앨런 포우의 검은 고양이, 호손의 젊은 굿맨 브라운 등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단편소설 11편을 엮어 펴낸 책이다.

그 중에서도 한 때 영문학을 공부하고 싶었던 나에게 가장 매력적으로 다가온 작가는 윌리엄 포크너 였고 그 다음은 “위대한 개츠비”의 물질적 욕망 없이 한 여인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을 만든 피츠제럴드였다. 그래서 책을 읽은 순서가 뒷부분 “겨울 꿈”과 “에밀리에게 장미를” 부터였다.   

“겨울 꿈”은 “위대한 개츠비”를 그대로 떠오르게 하는 소설이다. 남자 주인공 덱스터에게 유일한 꿈이었던 주디 존스가 자신을 떠나 결혼하여 세상에 시들어 버린 이야기를 들었을 때 덱스터의 꿈은 사라졌다. 한 때 이 세상에 존재했던 빛나는 것들이 이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문들은 굳게 닫혔고 해는 졌으며 모든 시간을 견뎌내는 회색 강철의 아름다움 말고는 이제 어떤 아름다움도 없었다. 심지어 그가 감내할 수 있었던 비애 조차도 그의 겨울 꿈이 만발했던 환상의 나라, 청춘의 나라, 풍요로운 삶의 나라에 남겨진 것이었다”

1949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에밀리에게 장미를”은 읽고 난 후에 여운이 오래 남는 책이었다.

아마도 나의 20대때에 읽었던 것 같다.

남부 명문가의 후예 에밀리는 과거의 전통속에 홀로 남겨져 명문가의 자존심과 명예를 지키는 인물로 형상화 되었다. 그러나 에밀리가 바라는 것은 오로지 진실한 사랑뿐이었으나 배런은 에밀리를 배신하고 떠난다. 남부의 전통이 사라지고 에밀리가 죽은 후 그 집에서 발견한 것은 살이 없어진 한 남자의 해골이었다. 약국에서 비소를 달라고 하고 집안 주변에 냄새가 났던 것은 배런을 그녀의 옆에 영원히 머무르게 하고자 했던, 아무것도 필요치 않고 진실한 사랑만을 바랐던 에밀리의 삶이었다.

짧은 이 단편 속에서 작가는 곳곳에 많은 의미를 숨겨 놓았다.

과거에 갇혀 현재로 향하는 문을 스스로 걸어 잠근 채 외로이 생을 마감한 에밀리의 애절한 사랑과 삶에 대한 화자의 심경이 제목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이 두 편 외에 9편의 단편들도 수작이다.

미국 단편 문학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TV에서 이 영화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보았다.

그리고 책을 읽었다. 50대 남자와 20대 여자와의 풋풋한 사랑이 시작된다.

나이 차이 때문에 불륜 또는 그 이상의 괴상 망측한 생각이 떠오를 수 있겠지만 내용은 아주 순수하다.

카메라는 만지는 직업을 가진 형만과 형만의 친구 딸 남은이.

한 동네에서 살고 있는 그들은 남은이 아빠의 죽음으로 존재를 알게 된다.

형만은 자신에게 자꾸 다가오는 남은이를 나이 지긋한 어른으로서 다독이며 “세상이란 이런 것이다”하며 가르치지만 남은이는 자기를 밀어내는 형만이 야속하기만 하다.

그러나 50대 남자가 시작하게 되는 사랑은 그를 익숙한 곳에서부터 익숙하지 않은 공간으로 나올 것을 주문한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한 가지야. 그 한가지 일을 통해서 나머지 세상, 나머지 사람들을 다 이해해야 되는 거라고. 그러니까 뭘 하건 마찬가지야”

형만은 어렸을 때 우연히 큰 아버지의 트랜지스터라디오를 고친 것이 계기가 되어 지금의 자리에 와 있다고 생각을 한다. 형만은 카메라 수리공이 되었다.

친구 기혁이 죽으면서 부탁한 남은이는 형만의 빨래를 핑계로 왕래를 하며 사랑을 고백한다.

쉰 한살 남자의 순수함과 주변 인물들의 평범하면서도 재미난 일상에 읽으면서도 피식 피식 웃음이 나온다.

나이 오십에, 사랑을 하면 유치해 진다고 하는데 십대들처럼 그런 데이트를 하리라 어찌 생각할 수 있었으랴.

영화화 된 이 작품은 배우 안성기씨 만큼 형만의 변함없으면서도 맑은 모습을 연기할 배우는 없을 것 같다. 책 표지에 있는 영화의 한 장면 속 안성기씨의 웃음이 너무 좋다.

첫 페이지 “모든것의 시작은 우연이었다”부터 순식간에 책을 읽었다.

이 책을 생각하면 그냥 웃음이 나온다.

원작과 영화가 고스란히 하나가 되는 작품이지 않을까.

아직 영화를 보지 못했지만 영화속에서도 때묻지 않은 어른의 첫사랑은 많은 관객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데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서 익숙하지 않은 일들을 해야 하는 건 언제나 곤혹스러운 일이다. 평생 익숙한 일만 할 수야 없는 노릇이지만, 본의 아니게 평생 익숙한 일만 하며 살아온 나 같은 사람은 이런 일을 감당해 내기가 더 어렵다. 더구나 이건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서울대 미대에 재직 중인 김병종 교수의 그림과 신앙의 묵상 이야기이다.

이 책을 통하여 저자를 처음 알게 되었는데 책 표지의 색상이 참 곱고 예쁘다.

이 책은 신이 창조한 자연물에서 발견하게 되는 아름다움과 거룩함, 그리고 숭고함 등 여행과 묵상을 통해 저자가 느낀 감상을 그림에 담아 전하고 있다.

창조주의 그리신 아름다운 세상, 내가 그린 당신의 얼굴, 당신과 함께이기에 평강 누리리라, 당신이 빚으신 사랑의 선물 총 4장으로 구성하여 작가가 여행한 지역에서 받은 색채의 화려함과 자연의 경이로움, 그리고 신앙인으로서의 예수님의 깊은 사랑과 희생에 감사하며 자신을 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을 갖게 한다.

화선지와 골판지, 캔버스 등 다양한 재료들을 사용한 작품에는 산뜻하면서도 투박한 질감이 느껴진다.

그림마다 따스함과 편안함을 느끼게 하고, 예수님을 그린 그림은 기존의 잘 생긴 서양인의 모습이 아니라 목수로서 가난과 노동 속에 서민들과 함께 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말하고 있다.

성서에 나오는 나사로와 예수님의 이야기, 죽은 예수를 부둥켜 안고 울고 있는 성모님, 바보 예수의 그림들은 낮은 데로 임하시며 가난한 자의 위로자 이신 겸허하고 사랑이신 신의 모습을 고스란히 그려내었다.

라틴아메리카와 네팔, 키르기스스탄 등 여행하면서 느낀 자연과 색채의 신비로움, 특히 카뮈의 “이방인” 공간적 배경이 되었던 알제리의 수도 알제 해변의 햇빛은 강력하고 공격적이면서도 자연과 결합하여 발하는 독특하고 현란한 원색들로 황홀하기만 하다.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가 그 햇빛에 취해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르게 될 만큼 강렬한 햇빛이었다고 해석하면 그 빛이 어느 정도 인지 가늠할 수 있지 않을까. 또한 세상에서 달빛이 가장 아름다운 곳 쿠바의 가난한 불빛과 정열의 대륙 라틴아메리카는 작가가 늘 꿈꾸던 여행지였다.

가난한 나라이지만 다른 선진국보다 더욱 사람 사는 느낌이 전해오는 곳, 시인 파블로 네루다와 화가 프리다 칼로가 살았던 라틴아메리카는 예술혼이 불타는 곳으로 질곡의 역사 속에 아픔과 슬픔을 안고 사는 곳이었다. 그래서 예술가들의 훌륭한 작품이 나오지 않았을까 싶다.

하느님의 존재로 인해 의미가 더하게 되는 물과 햇빛 등 자연의 아름다움은 하느님 없이는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인간을 창조한 목적대로 사랑을 베풀고, 또한 사랑을 받으며 살아야 한다. 참으로 아름다운 세상살이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