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하는 삶을 살기를 꿈꾸었고 그 길을 실천하며 묵묵히 걸어가고 있는 의사 곽병은의 일기입니다. 이 책은 위대한 위인의 이야기를 읽는 느낌이 아닙니다.  한 개인의 지극히 주관적인 일기를 통해 그 사람의 불완전한 일상이 그대로 드러나는, 그래서 더 감동적으로 다가옵니다.

어려서는 가난했고 말을 더듬기도 하는 소심한 성격이었답니다. 그래서 가난하고 낮은 사람들의 처지와 마음을 잘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돈을 벌어 나만 잘 살고자 하는 보통의 의사가 아니라 너무 가난하게도 너무 지나치게 욕심내서 살지 말고, 남는 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쓰자는 것이 이 부부의사의 연애시절 합의 내용이었습니다.

욕심 내지 않는 것... 그러다보니 그가 돕고 봉사할 일들이 하나둘 보였고...
갈거리사랑촌이라는 가난하고 소외된 벗들의 아름다운 마을을 만들었습니다...
또 그러다보니 원주 시내에 굶고 노숙하는 사람들을 위해 십시일반, 노숙인쉼터를 만들게 되었지요. 그가 운영한 부부의원은 가난한 사람들을 무료로 진료해주는 병원이었고 시골마을 사람들이 편하게 다녀가는 동네병원이 되었습니다. 원주에 정착하고 22년동안 한결같은 마음으로 걸어온 길임을 일기를 읽으면 알 수 있었습니다.
 
봉사란 크게 마음을 내어 어렵게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내게 부담스럽지 않은 선에서 자연스러운 마음이 일어나는 것을 단순하게 과감하게 실천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책을 보며 늘 어렵게 느낀던 남을 돕는 마음이 아주 쉽고 간단할 수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렇게 봉사하면 쉽겠다...  그런 걸 느꼈습니다. 내게 주어진 많은 것들 중 아주 작은 것을 내어놓는 것입니다. 단순한 마음으로요. 지하철에서 지나가는 맹인에게 측은지심으로 주머니에서 꺼내주는 천원... 그런 행동이 반복되다 보면 봉사가 자연스러워지겠지요.  
 
저자의 병원이야기, 환자이야기, 아내이야기, 취미 생활 등을 보면 너무 담백하고 소탈합니다. 곽원장님이 아내에 대한 불평을 읽다보면... 제가 아내분의 입장에서 막 반박하고 싶어집니다.

그래서 더 재밌었습니다.

김기철 선생은 도예가다.
우연히 가회동 이도갤러리에서 열린 그의 전시회를 보게 되었다.
그의 그릇들이 참 좋았다.
자연스런 갈색빛이 도는 약상한 그릇, 안은 백색이다.
이런 그릇에 차 한잔 마셔보고 싶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책을 보니...그의 가마에서 도자기 굽는 과정은 전체가 다 옛날 그대로다.
그릇 바깥쪽은 유약을 바르지 않아 자연스런 갈색빛이 투박하게 난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현대적인 세련미가 느껴진다.
법정스님도 그가 만든 찻잔을 좋아하셨다고 한다.
더 놀라운 것은 그의 삶이다. 도예뿐만 아니라 그의 삶에는 농사 짓기, 마당 가꾸기가 평생 삶의 중심에 있다.
손님이 오면 정성들여 농사 지은 것은 옛날식 그대로 차려주신다고 한다.
마당은 잔디가 아닌 흙마당이다. 비가 오면 흙내음을 아련하게 맡을 수 있다.
무엇보다 내가 곤지암 보원요 가게 되면 그의 재래식 뒷간엘 가고 싶다.
뒷간 가는 길은 먼저 꽃길이다. 재래식 화장실로 들어가면 쾌적하고 여름에는 싱그러운 풀들이, 가을에는 들국화가, 겨울에는 가랑잎으로 덮인다니...
 
"누가 뭐래도 변소 사용은 해가 막 떠올라 그 첫 햇살이 공작새 날개처럼 펼쳐지기 직전이 가장 좋다. 더욱 좋은 것은 누가 선수를 치기 전이다."
 
김기철의 흙장난을 보면서 .... 그의 삶과 추억, 옛생활방식의 행적을 따라가다 보면....
도자기 굽는 과정을 전혀 모르는 나지만, 가마 앞에 앉아 불을 쬐는 상상을 한다.
너무나 따뜻하고 평화로운 느낌이다.

 내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작가 황대권 선생의 책이 나왔다.

<고맙다 잡초야>다.

 우연히 이 책을 발견하기 한달 전 우연히 한 칠판년 전에 읽었던 <야생초 편지>를 다시 펼쳤었는데... 야생초 편지 두번째 이야기인 이 책이 눈에 띈 것이다.

 야생초 편지를 다시 뒤적이면서~ 황대권선생이 감옥에서 정말 크나큰 깨달음을 얻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야생초편지에는 온몸이 묶인채로 60일간 징벌방에 갇여 개처럼 방바닥에 엎드려 밥을 먹었다는 얘기가 나온다. 얼마나 억울함에 몸무림쳤을까마는... 야생초를 키우면서 차츰차츰 배우고 깨달음을 얻는다. 

"남과 나를 비교하여 나만이 옳고 잘났다며 뻐기는 인간들은 크건 작건 못생겼건 잘생겼건 타고난 제모습의 꽃만 피워내는 야생초로부터 배워야 할 것이 많다. ~ 내가 야생초를 좋아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내 속의 교만을 다스리고자 하는 뜻도 숨어 있다."

 그리고... 출소 후 그의 삶은 일관되어 흘러왔음을 <고맙다 잡초야>를 읽으면 알 수 있다. 이 책은 출소후 10년의 이야기다. 이제는 야생초를 다시 잡초라 부른다. 잡초야 라고 부르든 야생초야 라고 부르든 그에게는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란다.

이 책에는 출소 후 10년의 삶의 체험을 주옥과 같은 글과 뇌리를 치는 깨달음들을 들려준다.

 트라우마에 대해 그가 쓴 글이 다시 한번 내 가슴을 울린다.

트라우마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신체적 손상과 생명의 위협을 받은 사고에서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으 뒤에 나타나는 질환이다. 작가 역시 그랬다. 이미 20여년이 흘렀는데도... 고문증언대회의 강연자로 섰을 때 자신도 모르게 목이메로 눈물이 앞을 가려 말을 이어갈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트라우마를 완전히 치유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한다. 다면 상처를 안고 어떻게 자기만의 삶을 완성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상처에 얽매여 제자리를 맴돌며 살 것인지, 아니며 새로운 나를 찾아 노력할 것인지...

작가는 그 후자를 위해 부단히 노력하면서 성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관심은 야생초에서 더 크게 확대되어 생태와 영성이다. 자연과 하나가 되기 위한 그의 노력을 보면 여전히 그는 청춘이다. 자연속에서 나체로 일하다가 벌에 쏘이는 이야기, 한밤 중에 안광이 시퍼런 동물을 만나 눈싸움을 하면서 자연과 동화되지 못하는 이유를 발견한다. 또 생태적소라 하여 자신의 있어야 할 바로 그 자리를 찾아가는 길을 알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