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익문사(대한제국의 IRIS), 국적(國賊)에 맞서다.

경술국치 100년. 1900년대 역사를 훑는 내 눈길은 아직 낯설다. 근현대사는 항상 어려운 존재였다. 더군다나 치욕의 역사, 굴종의 역사이니만큼 외면하고픈 건 당연했다. 하지만 올해는 그 백년을 기리는(?)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어 내 눈을 붙잡아 두었다.

이 책의 나오게 된 계기는 이러하다. 저자 강동수 씨는 사학과 조교수로 있는 대학 동창에게 갔다가 낡은 책 한 권을 발견한다. 관동 정보국에서 쓴 ‘조선인 비도 이인경의 오쿠마 시게노부 백작 암살 미수 취조에 관한 신문관 비망록’ 인데 거기엔 엄청난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 책은 테러리스트이자 첩보 요원으로 활동한 ‘이인경’이란 인물의 족적을 좇아 찾아낸 제국익문사(帝國益聞社)에 대한 역사 기록이다.

제국익문사! 내가 배운 국사를 통틀어 이런 기관은 처음 들어봤다. 무엇을 하는 기관인가.

제국익문사(帝國益聞社)는 1902년 6월 고종이 설립한 근대적인 국가정보기관의 시초이다.

정부고관과 서울 주재 외국 공관원의 동정, 국사범과 외국인의 간첩행위를 탐지하는 것이 주요 임무였다.

제국익문사비보장정에 비밀활동지침을 규정하였다.

제국익문사는 최초 근대적 형태의 정보기관이며 요원은 61명이었다.

표면적으로는 '매일 사보를 발간해 국민들이 보도록 하고 국가에 긴요한 서적도 인쇄하는 현대판 통신사 기능을 담당했다.

  -위키백과 中

이 소설은 저자가 미리 밝혔듯이 사초와 비망록 등의 자료를 가감없이 담고 있다. 주된 등장인물은 ‘이인경’이다. 그는 역적의 아들로 힘겨운 유년시절을 보내다 부친과 거사를 주도한 인물 중 하나인 장동화로 인해 제국익문사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그러다 제물포 객주에서 총살 난 시체가 발견되고 사망자 옷에서 대한천일은행이 발행한 2만 환짜리 수표를 보게 된다.

그런데 그 돈은 엄청난 비밀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건 바로 을미년에 일본의 칼에 숨진 명성황후의 비자금이었고 그 거금은 국적들이 대한제국의 시국을 격변케 하는데 쓸 군자금이었다는 것! 그 사건에서 단초를 얻은 그는 두 가지 임무를 띠고 일본으로 건너가게 된다. 없어진 나머지 돈의 행방을 찾고 제물포 객주 시체의 살해자를 찾기 위해 이인경은 니혼바시 근처에서 활동을 시작한다. 그는 ‘흑금성 공작’이란 미명 아래 제국 익문사 요원 김창근, 유석하와 함께 박영효과 최경후의 자취 추적에 박차를 가한다.

조선-일본-중국을 넘나드는 스펙터클 속에서 이야기는 점점 긴박하게 전개된다. 이 책은 액션만 취하는 첩보 소설은 아니다. 그 속엔 국적 우범선의 딸과의 로맨스와 되돌이킬 수 없는 시대의 운명을 함께 그리고 있다. 보는 내내 슬프고 암울한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국적을 생포하기 위해 시종일관 순검의 날카로운 눈빛을 번뜩이게 된다.

하지만 이인경 외 다른 첩보원들 모두 완벽한 테러리스트는 아니었다. 어수룩하고 허점이 좀 보이는 인간적인 첩보원들이다. 특히 이인경은 자신의 잘못으로 곤경에 처한 첩보원에 대한 후회와 미안함, 인간적 감정을 숨길 수 없어 사랑하는 마음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렇지만 그들은 ‘일’만큼은 신중을 기했다. 제국익문사의 체계는 점조직이지만 탄탄한 연락망을 갖고 있었다. 무엇보다 감탄한 대목은 난수표로 교신하는 장면이었다.

가령 로마자 O는 열다섯 번째 알파벳이니 평문 수열은 15이다. O의 제 5일 난수로 18이 부여돼 있으니 15와 18을 더하면 33이다. 이것을 26으로 나누면 나머지 7이 되는 것이다. 알파벳 순서 7번째는 G이니 암호문에서 O는 G가 되는 것이다. (1권-p208)

이러한 난수표 덕분에 적에게 들키지 않고 정보를 전달할 수 있었다. 얼마나 기발한 아이디어인가.

책장은 점점 빨리 넘어간다. 그러다 마침내 서서히 드러나는 전모(혹은 반전)에 나는 경악을 감출 수 없었다. 당연시 하고 넘어간 국적의 역습! 이인경도 나도 놀라 뒤로 자빠지고 만다. 이제 남은 건 그 역습을 제지하는 것. 과연 제국익문사는 국적(國賊)을 처단할 수 있을 것인가.

작가가 말하려는 국적은 누굴까. 비단 을미사변의 주동자 우범선이나 갑신정변의 박영효에만 국한되는 것인가. 아니면 그들과 맞닿은 이해관계자 조선의 활빈당을 비롯한 각종 사회단체자들인가. 이는 궁극적으로 일본 제국주의와 그 당시 국제 정세와도 관련있을 것이다.

 박영효

  *우범선과 박영효. 그들은 일본으로 건너가 거사 진행 음모를 계속 진행하게 된다.

언제나 바람 앞의 등불일 수밖에 없었던 조선. 그리고 조선을 이끌던 외롭고 나약했던 군주 고종. 하지만 난 그(고종)가 결코 약한 존재가 아니었다고 말하고 싶다. 그는 한일합방이라는 교묘한 거짓말로 얼룩진 문서에 결코 옥새 따위 찍지 않으려 했으며 총, 칼을 휘두르는 일본 헌병들에 짓눌리지 않으려고 제국 익문사를 비롯, 대한 제국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국가 쇄신에 노력을 기울였다. 변화하는 세계정세의 흐름을 붙잡을 수 없었던 그였지만 그는 ‘이인경’과 같은 수십명의 첩보요원들을 두고 조선을 위협하는 국적 처단에 힘을 쏟았다.

바꿀 수 없는 아픈 역사의 발자취이지만 ‘제국익문사’의 존재를 확인한 나로서는 가슴 속으로 안도감이 번져간다. 그 속에서 저항하는 조선민을 발견했으며 현재의 우리보다 더 높은 민족자존감으로 고취된 수많은 애국주의자들을 보았다. 제국익문사는 이제야 내 눈에 띄었지만 그 존재는 100년 전부터 굳건히 조선을 지켜온 반석이 되어 현대까지 굳건한 대한민국을 이끈 원동력이 아닐까 생각되는 바다. 대한제국을 지키기 위해 희생된 수많은 애국자들에게 경의와 애도를 표한다.

경술국치 100주년을 맞아 대한제국을 지키려 애쓴 자들의 자취를 보고 싶다면 일독할 것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