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러도 못다 할 소중한 이름, ‘가족’을 뒤돌아보다

 

 

내가 중학생이었을 때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 2권을 만났다. 책 속의 이야기들은 너무나도 따스해 겨울철 따뜻한 닭고기 수프 한 모금처럼 내 마음을 훈훈히 적셨었다. <가족, 사랑할 수 있을 때 사랑하라>는 닭고기 수프 때의 동일 저자가 쓴 것이다. 이 책엔 수천 통의 가족 이야기를 수집해 그 중 알짜배기 38편이 실려 있다.

 

가정이야말로 고달픈 인생의 안식처요, 모든 싸움이 자취를 감추고 사랑이 싹트는 곳이요, 큰 자가 작아지고 작은 자가 커지는 곳이다. 가정은 안심하고 모든 것을 맡길 수 있으며 서로 의지하고 사랑하며 사랑을 받는 곳이다. -H.G. 웰즈 (p212)

 

여기엔 여러 가족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전쟁 후유증으로 총을 겨눠 가족을 위협하던 오빠, 삼십 년만에 만난 딸과 아버지의 포옹, 장난을 너무도 좋아하시는 시아버지, 10달러를 숨겨 자신을 추억하게끔 만드는 할머니 등등. 자신의 목숨을 위협해도 때론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가족들을 희로애락의 세계로 이끌어도 ‘가족’ 아래 따스한 교감이 이루어지는 그들의 이야기는 맘 한 구석까지 따스하게 만든다.

 

<가족 사랑할 수 있을 때 사랑하라>는 그런 잔잔한 생각들이 알알이 박혀있는 휴먼 드라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한국적 정서를 지닌 이야기가 아니라 외국 가족들이 그려나가는 이야기들이다보니 정서 상 맞지 않는 부분도 존재한다. 시도 때도 없이 총을 겨누는 오빠를 이해 못할 것이고 그들의 부활절 정서를 모를 것이다. 그렇지만 그 문화적 차이와 정서를 포용하고 읽는다면 책을 읽는데 별 지장은 없다.

 

한 여자와 한 남자가 각각의 다른 가정에서 자라 결합을 한다. 그리고 그들은 여러 자녀들을 낳고 세대-세대 간의 대물림을 한다. 우린 그들을 ‘가족’이라고 부른다. 누군가의 말처럼 지지고 볶고 살을 맞대는 사람들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가족의 수장들은 바뀌어간다. 즉 우리의 부모님들이다. 어렸을 적 얼굴을 맞대던 형제들과 친족들도 시간이 흐를수록 내 주변 세상에서 사라진다.

 

어찌보면 우리는 ‘가족’이라는 이름을 충분히 불러도 모자랄 시간에 서로에 대한 필요없는 감정 소모로 시간을 허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때론 오해로, 때론 싸움으로, 때론 그저 짜증으로 인해 가족을 멀리하게 될지도 모른다는거다.

 

세상에서 없어지고 나서야 우리는 때늦은 후회를 한다. ‘좀 더 잘해줄 걸. 좀 더 이해해줄걸. 좀 더... 좀 더...’ 잭 캔필드의 이번 책은 그러한 후회의 시간을 앞당겨 주는 듯하다. 그저 평소와 같은 얼굴을 한 가족들에 대해 다시 한 번 더 생각할 시간을 준다. ‘가족’. 그 얼마나 소중한 이름인가. 우린 너무도 소중한 이름을 너무도 가볍게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 다시 한 번 더 돌아보자. 점점 뒷모습이 쓸쓸해지시는 아버지, 예전에 비해 부쩍 나를 의지하시는 어머니, 마냥 어리게만 보였지만 이제 든든한 뒷받침이 되려는 동생들, 그리고 항상 인자한 웃음을 지니신 조부모님들. 그분들이 있기에 우리네 삶은 풍성해지지 않을까.책을 덮기 전 나는 한 번 더 곤히 잠들어 있는 가족들을 돌아다본다.

 

가족 모두들, 사랑합니다.♡

가족사랑할수있을때사랑하라, 잭캔필드, 이상

운명과 가족을 벗어나 진정한 ‘청사진’을 찾는 한 남자를 좇다 : ‘빅 픽처’

 

 

나는 엄청난 실수를 저질렀어. 나는 이 통근 열차를 타고 있을 사람이 아니야. (p35)

네가 알던 삶은 이제 다시는 돌아오지 않아. (p136)

이제부터 내 이름은 게리 서머스다. 나는 사진가다. (p264)

 

벤은 월가의 변호사로 남부럽지 않게 산다. 두 아들을 둔 가장으로 본래 사진가를 꿈꾸었다. 하지만 그는 안정적 생계를 위해 직업으로서의 사진찍기 보다는 취미로서 즐긴다. 그렇지만 자신의 삶은 늘상 2% 부족하다. 어느 날 필연적 동기로 인한 우발적인 살인을 하게 되고, 그는 자신이 죽인 사진사 게리로 변신, 몬태나 주로 도망가 새 삶을 산다. 어느 날 자신의 사진이 지역 신문에 실리게 되고 그는 일약 스타덤에 오르지만 숨겨온 과거가 들통날 위기에 처한다. 과연 그의 선택은 어떻게 될까?

 

인생은 항상 선택의 연속이다. 어릴 땐 자신만의 청사진을 가진 채 달려가지만 점점 나이가 들수록 우리 주위에 도사리는 많은 조건들이 우리를 제약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세상 속 렌즈로 우리만을 비추고 있던 자아의 눈은 타인을 향해 초점을 맞추게 되고 우리는 어느덧 하나씩 자신의 가치를 포기한다. 그 중에 가장 큰 제약은-아이러니하게도-우리를 지지하는 동지인 '가족'일 것이다.

 

어쩌면 가족뿐만 아니라 자신을 옭아매는 근원적인 욕구일지도 모른다. 그 욕구는 크게 두 가지일 것이다. 하나는 안정을 추구하는 기저의 마음 속에서 샘솟는 욕구일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선택에 대한 후회를 회피하는, ‘운명의 결과’라고 치부하려는 욕구일 것이다. 무수한 사람들은 그 속에서 용기를 잃지 않으려는 자기방어기제와 차선책 길을 선택한 심리에서 비롯되는 자기연민을 끌어안고 살고 있다.

 

벤은 그 두 가지를 다 끌어안은 중증환자였다. 겉으로 보기엔 멀쩡해 보이나 속에선 언제 용광로가 끓어오를지 모르는 불안감을 지닌 사람, 그것이 월가의 변호사로 살던 벤이었다. 사실상 무너져가는 ‘가족’이란 굴레 속에서 자아를 바라보려던 렌즈(=눈)를 덮개로 교묘히 덮고 살아가려다 마침내 덮개는 벗겨지고 만다. 그리고 그만의 렌즈로 청사진을 찍기 시작한다. 그는 이제 완전히 눈(=렌즈)을 뜨게 된다.

 

이 소설은 어찌보면 음습하다. 어둡다고 할까. 한편으로는 참으로 서글프다. 어쩌면 게리로서의 제2의 삶을 사려는 수많은 사람들의 시도를 잘라버리려는 가위일지도 모르겠다. 게리로서의 그의 삶은 처음엔 위태롭지만 유쾌했다. 하지만 책장이 끝으로 달려갈수록 위기에 봉착한다. 벤은 게리로 변했고 게리는 또다시 제3자로 변하게 만든다. 카메라 속 세상은 그에게 유리알처럼 반짝이는 플래시 같은 삶을 주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난 그가 패배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시도는 좋았다.

“‘사진가는 수동적인 관객이 될 수 없다. 사진가는 사건에 사로잡혀 있을 때에만 진정으로 빛날 수 있다.’” (p132)

그는 진정으로 자신의 사건(=삶)에 적극적으로 뛰어든 사람이었다. 자신만이 만들 수 있는 청사진을 제작하기 위해 사진가 게리는 사방팔방 뛰어다녔다. 나에게도 제일 좋았던 캐릭터는 월가의 벤보다는 사진가 게리였다. 그는 돈이라는 유형적 가치를 떠나서 진정 자신의 삶을 만들어나가는 이 시대의 Winner였다.

 

실상 지금의 ‘나’에게도 언제나 꿈이 있다. 나도 주변 사람들(이를테면 가족, 친척, 친구 등)의 레이더 망에서 벗어나지 못해 전전긍긍한다. 일탈을 꿈꾸지만 족쇄를 차고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나만의 청사진은 항상 자아의 카메라 속 필름으로 찍어나가고 있다. 사람들은 말한다. “꿈이 있는 한 늙지 않는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말한다. “이렇게 사는 것도 운명이야. 우린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해.” 이것은 과연 핑계로 치부할 수 있을까.

 

사람들의 말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그리고 자신이 선택한, 미리 찍어둔 청사진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것을 너무나도 두려워한다. 무언가가 잘못되었다고 느끼는 수많은 ‘벤’들이 이 땅에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안드로메다 이상을 가지지 않고 웬만한 지구별적인 꿈들을 지닌 욕망이라면 한번쯤 자신의 인생 카메라로 자아의 청사진을 찍어보는 건 어떨까. 누가 아는가. 일정 기간 동안 꾸준히 자신만의 사진을 만들어나간다면 언젠간 온전한 모습을 갖춘 청사진을 완성할 수 있을 지 말이다. 그건 자신의 의지만이 알 것이다!

빅픽처, 더글라스케네디, 밝은세상

눈으로 떠나는 뉴욕 미술관 탐방: 당대를 알려주는 시대의 거울 100점

 

 

몇 년 전 맨해튼을 거닐던 때였다. 지나가다 우연히 발견한 기나긴 줄에 호기심이 든 나도 그 대열에 합세했다. 근 30분이 지났을까. 드디어 입장을 시작했는데 알고보니 그날은 MOMA 무료 입장일이었다. 덕분에 2시간 여 걸친 미술 감상을 즐겁게 했던 기억이 있다.

 

뉴욕 맨해튼에는 수많은 미술관들이 곳곳에 포진해있다. 발길 닿는대로 미술관들을 두루 돌아다니면 하루해가 지는 줄 모른다. <뉴욕에서 꼭 봐야 할 100점의 명화>는 그때의 추억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이 책엔 브룩클린 미술관, 클로이스터스, 프릭 컬렉션, 구겐하임 미술관, 미국 히스패닉 소사이어티,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MoMa, 노이에 갤러리 뉴욕, 휘트니 미술관 등의 명화들을 소개한다. 각각의 미술관에 들어가기 앞서, 개관시간 및 입장료, 가는 길, 편의시설, 숍에 대한 상세한 안내가 기재되어 있다. 작품들은 연도순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두 페이지에 걸친 설명들이 적혀 있다. 컬러 도판 아래로 화가, 주제, 양식, 역사적 맥락을 논하고 있는데 무엇보다 같이 보면 좋은 것은 두 번째 페이지 밑에 적힌 동시대 작품이었다. 각 작품과 비교해서 보면 당대 미술풍을 알 수 있다.

 

책의 뒷 부분에는 본문 순서에 따른 화가 연표가 수록되어 있어 해당 작가에 대해 좀 더 알고 싶다면 연표부터 보길 바란다. 특정 화가의 작품과 소장처를 알고 싶을 때는 연표 바로 뒤에 수록된 목록을 훑어보면 쉽게 찾을 수 있다. 어느 미술관이든 주제에 따라 걸리는 그림도 다를 것이다. 따라서 명화 100점을 수록할 때 항상 전시가 되어있을 법한 그림들을 기준으로 엮었다고 한다. 미술관을 곧 만나게 될 독자에겐 좋은 배려다.

 

그림은 보여줄 순 있으되 말하지 못한다. 그래서 한편으로 그림은 우리에게 수많은 나래를 펼칠 상상력의 세계로 인도한다. 처음에 그림을 보면서 내가 발견한 것과 설명하는 글을 비교해보면 숨겨진 또다른 이야기를 알 수 있다. 가령 프릭 컬렉션에 전시된 조반니 벨리니 작품 <광야의 성 프란치스코>는 프란치스코가 그리스도의 환상적 빛을 받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그림에선 거룩한 부르심을 표현하고자 산 속 은거지로 표현했지만 실제 그의 거처는 산 속 은거지가 아닌 준도시 지역이었다는 것이다.

 

 

  <광야의 성 프란치스코> (1480년)

 

 

내가 뽑은 괜찮은 그림들은 로베르트 캄핀의 <수태고지 삼면화>(클로이스터스), 존 컨스터블의 <주교의 정원에서 본 솔즈베리 대성당>(프릭 컬렉션), 프레드릭 에드윈 처치의 <안데스의 심장>(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파블로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뉴욕 현대 미술관) 등이었다. 더 많은 그림들을 보고 싶다면 읽어볼 것을 권한다.

 

 

  <수태고지> (1425년 경)

 

 

<수태고지 삼면화>는 왠지 전시그림 크기가 굉장히 클 것 같다. 삼면으로 나뉘어진 이 그림은 내가 본 것보다 설명하는 글이 상상을 초월한다. 약간 내려보는 각도에서 그렸고 무엇보다 이 그림의 매력은 ‘숨은 그림(혹은 의미) 찾기’ 였다. 백합과 막 꺼진 촛대, 쥐덫과 카펜터. 하지만 나는 아기 천사는 아직도 찾지 못했다. 그들이 상징하는 바는 성스러운 성모 마리아와 예수다. (당대 사회는 종교가 큰 비중을 차지했다.

 

당시 여행을 꿈꾸던 수많은 사람들에게 신선하고도 꿈에 사로잡히게 만든 그림은 <안데스의 심장>이었다고 한다. 자연에 대한 매혹적인 감정과 풍경화 주류인 당시의 화풍을 반영한 그림이다. 무엇보다 하루 종일 앉아 있으면 새소리가 들리고 안락함이 느껴질만한 처치의 그림에 마음이 안정되는 느낌이었다. 왼쪽엔 십자가 앞에 무릎 꿇은 에콰도르인 커플이 보이는데 처치는 이를 통해 자연, 종교, 구원을 나타내려했다고 한다. 이 그림은 너무도 세세하면서 야생성마저 철저히 반영하여 당시 사람들은 오페라용 망원경을 지참하고 보러갔다는 후문이다.

 

 

  <아비뇽의 처녀들> (1907년)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은 해석이 흥미롭다. 하지만 이 책의 설명은 내가 들은 바와는 약간 달랐다. 입체주의의 탄생을 예고한 피카소의 작품은 당시 사람들에게도 충격적이었다. 오른쪽의 두 여인은 위협적이며 이들은 매음으로 인한 매독의 만연, 성적인 욕구를 충족하려는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을 나타낸다고 한다. 정작 피카소, 그는 수많은 여인들과 염문을 퍼뜨리고 다녔으면서 이러한 그림을 그렸다고 하니 속웃음이 먼저 나온다.

 

종이 질감도 뛰어나도 설명도 좋아 비전공자, 그리고 곧 그 미술관으로 달려갈 예정인 독자들에게 좋은 책이다. 하지만 그 거대한 캔버스를 책에 넣으려고 하다보니 크기가 작아져 잘 살펴보지 못한 그림들도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실제 미술관에 가서 눈으로 보는 그림과 책으로 보는 그림의 질감엔 확연한 차이가 느껴진다. 그렇지만 여행경비를 차치하고 책을 통해 만나는 거장들의 그림을 본다는 데 의미를 둔다면 큰 수확일 것이다.

 

그림은 화가의 개인 생각과 지위 등을 담고 있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시대상을 반영한다. 해석하는 글을 따라 읽다보면, 수많은 역사적 정수들이 그림 소품 속에 녹아들어 우릴 향해 비추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모든 사람마다 꼽는 최고의 그림, 최고의 화가는 다르다. 하지만 그 속에서 자신이 추구하는 삶의 가치와 그림을 통해 얻는 감성과 상상력을 현실 속 자아상과 잘 혼합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책의 역할로는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한번쯤은 뉴욕의 대표적인 그림들을 보고 싶은 분들께 적극 추천한다.

뉴욕에서봐야할100점명화, 마로니에북스, 디나맥도널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