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 한국인의 분신이자 욕망의 본색!

 

 

우리가 어릴 때부터 TV로도 많이 보고들은 몬스터 '도깨비'. 그들의 신상명세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는가. 묵을 좋아하고 그와 원수지고 싶으면 팥죽을 마당에 놓으면 된다는 것?! 그 뿐만이 아니다. 고인돌 옷에 뿔을 하나 혹은 두 개를 달고 있고, 방망이를 휘두른다. 그리고 무엇보다 심보가 고약하고 홍길동만큼 신출귀몰한다. 이토록 괴상한 상상의 동물이건만 친밀하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저자 김열규 씨는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 그들의 성격을 파헤친다. 이 책은 총 다섯 마당으로 되어 있다.

첫째 마당_ 도깨비의 신원 증명과 이력서

둘째 마당_ 도깨비와 한국인의 촌수

셋째 마당_ 도깨비 장난질

넷째 마당_ 고약한 사내 근성과 도깨비불의 유혹

다섯째 마당_ 도깨비와 한국인은 쌍둥이

 

겉보기엔 ‘한국인의 성격 심리학’과 같이 무겁게 흐르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첫째 마당부터 너무나 신명나는 도깨비 놀이에 장단을 맞추게 된다. 자칫 따분할 수 있는 얘기를 도깨비 전래동화와 그에 나타난 한국인의 본색 탐구를 1:1 연장선상에 놓아두어 눈을 즐겁게 한다.

 

도깨비는 한자로 풀이해보면 귀(鬼), 귀물(鬼物), 귀매(鬼魅)다.(p29참고) 우리에게도 시조가 있듯이 도깨비의 시초는 한국에서는 ‘비형’으로 본다. 비형의 등장은 이러하다.

「비형은 15세에 이미 진평왕에게서 집사 벼슬을 받을 정도로 매우 영특했다. ...비형은 하룻밤 사이에 큰 다리를 놓았고, ...」(p33)

웃긴 것은, 비형의 ‘형’자는 몽둥이 형(荊)이라는 거다. 고로, 시조도깨비는 나무공이나 나무 방망이라고 볼 수 있다. 비형을 ‘두두리’, 곧 도깨비의 비조로도 보는데 두두리를 발음해보면 우리말의 ‘두드린다’는 의미와도 상통한다. 그래서 도깨비는 정말로 허공에서 움직이는 방망이인걸까.

 

우리가 보는 도깨비는 언제나 의문투성이다. 화학물질 ‘인’의 작용으로 보이는 불덩어리의 움직임을 포착했다고 느끼는 순간, 사람들은 환시나 환각일거라고 생각한다. 그렇듯이 도깨비는 언제나 경계에 걸친 대상이다. 어스름 새벽에 나타나는 시간이나 숲과 마을의 경계에 나타나는 장소나 사람도 귀신도 아닌 중간체! 그들은 생과 사가 맞물려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경계자아(alter ego)로서 또 다른 한국인을 나타내기도 한다.

 

언제부터인가 투명 감투를 쓰고 요리조리 사람들을 요리하는 도깨비가 나타났다. 도깨비 감투만 쓰면 무엇이든 훔칠 수 있었다는 한 영감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감투는 조선시대부터 나왔단다. 우리는 대화 중 ‘감투 맡았다.’는 말을 잘 쓰는데 그 ‘감투’의 의미와 도깨비 감투는 일맥상통한다. 그것은 권력의지! 도깨비의 감투엔 조선시대부터 신분 상승의 욕구를 담은 한국인의 본색이 투영되어 있다.

 

그들은 익살맞고 때론 심술궂게 변덕을 부리며 사람들을 골탕먹이지만 언제나 악인은 아니었다. 그들은 효자를 도와줄 줄 알았고 가족을 나몰라라하는 대감의 코를 납작하게 눌러주었다. 이러한 도깨비 이야기를 듣는 아이들은 어떨까. 아주 통쾌하지 않았을까.

그러한 이야기들엔 조상들의 ‘권선징악’적 개념과 풍자가 숨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억눌린 욕구를 시원하게 해결해주는 욕구의 해소체였다. 그러므로 도깨비는 진정한 한국인의 이드(id)였던 것이다.

 

도깨비의 난데없는 씨름판은 한국인의 꿈의 공간이었고 그 속에서 도깨비와 한판승은 꿈의 성취욕구를 구체적으로 드러낸다. 도깨비와 인간의 ‘뺑뺑이 돌기’는 제정신을 잃을 때까지 도는 놀이를 통한 중독, 즉 쾌락의 추구(이는 ‘에피큐리언’이라고 한다)였으며 사람들은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시름을 잊었다.

 

한국인을 지칭할 때 많은 사람들은 ‘한의 결정체’라고 한다. 문학도 그러했고 각종 전통 영화들의 코드도 그러했다. 하지만 그들의 한은 내용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도깨비’라는 상상의 동물을 통해 해소할 줄 알았고, 한을 승화시켜 그들의 이상을 실현시켜 나갔다.

 

고약한 도깨비의 장난질, 착한 도깨비의 선행, 원한 품은 도깨비의 엉뚱한 복수들도 모두 한국인의 문화였고 우리네만의 정서였다. 도깨비를 통해 이루고자 했던 서민들의 욕망이기도 했다. 아직도 도깨비를 생각하면 그 본질에 대해선 미스터리지만 책을 통해 도깨비의 숨겨진 특색들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정신과 연계한 도깨비 분석은 흥미로웠다.

 

하지만 앞서 설명한 내용이 중간 중간 반복되어 집중도가 약간 떨어졌으며 전래동화-분석내용의 구성이 계속 이어지다보니 어떠한 주제로 읽고 있는지 헤맨 부분도 있었다. 그렇지만 학교 교양 수업 때 듣지 못한 또다른 흥미진진한 교양을 책으로 만나본다는 면에서는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갑자기 밤에 뛰쳐나가 소리지르고 싶고 삶에 불만이 많으신 수많은 한국인들이여! 자신이 특이한거라고 자책하지 마시길 바란다. 이는 곧 도깨비불의 장난이거나 자신이 곧 도깨비이니. 그 본질은 너무나 미스터리하므로 지금부터 자신의 무의식 뿔이 외치는 소리를 잘 귀담아 들으시길 바란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손에 쥐어진 투명 방망이가 자신의 꿈들을 두드려보일 날이 반드시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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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티에게물어봐, 베티, 시공사

AFRICA 세렝게티 "야생 HOLIC" : 동물들의 샹그릴라

 

 

참고) 샹그릴라(Shangri-La)는 영국 소설가 제임스 힐튼(James Hilton)의 《잃어버린 지평선》(Lost Horizon, 1933)에 나오는 지명이다. 지상에 존재하는 평화롭고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유토피아로 묘사되었다. (네이버 백과사전 中)

 

 

내가 있는 지역의 동물원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체제운영비가 많이 들어서일까. 그래서인지 동물애호가인 나로서는 동물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지는 것이 안타깝다. 어찌보면 동물원에 있는 동물들은 진정한 의미의 야생성을 상실당한 생명체들이다. 고유의 태생을 점점 잃고 우리 속에 갇힌 그들을 바라보는 내 마음도 그다지 기쁘지 않았다.

 

이 책 <아프리카 야생중독>은 그들의 (거세당한) 자유를 고스란히 담아낸 동물도감이었다. 보기만 봐도 책장에서 갑자기 툭 튀어나올 것만 같은 생생함이 전달된다. 저자의 혼이 담긴 예술품이어서 그런 것일까.

 

저자는 야생다큐멘터리 연출가 겸 야생사진가로 활동 중이신 이종렬 씨다. 그는 1996년 MBC 다큐스페셜 80일간의 아프리카 여행을 연출하면서 아프리카와 처음 인연을 맺었단다. 그리고 지금은 그 야생에 흠뻑 빠져 가족들과 함께 아예 아프리카에 거주 중이다. 무엇보다 한번 촬영에 100불을 지불해야하는 입장에서 벗어나, 그가 진정 원하는 아프리카만의 색깔을 담을 수 있도록 10년간 무상 출입권을 얻은 것이 인상깊었다.

 

-“‘사진가는 수동적인 관객이 될 수 없다. 사진가는 사건에 사로잡혀 있을 때에만 진정으로 빛날 수 있다.’” (p132)

-사진가는 늘 상황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확실한 영상 하나를 원한다 ... (p405)

더글라스 케네디의 책 <빅 픽처>에서 말하는 대목이다. 그는 사진가의 역할에 맞게 동물들이 만들어내는 대자연속 일상들을 적극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읽고 있다보면 나 자신도 아프리카 세렝게티 한복판에 놓여져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카메라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동물 배우들의 주 무대는 탄자니아 속 세렝게티 국립공원과 응고롱고로 보호구역, 그리고 킬리만자로 일대다. 탄자니아는 아프리카를 상하 절반으로 나누는 적도 바로 밑에 위치한 나라이다. 세렝게티 국립공원은 말 그대로 동물의 왕국이다. 전체 면적이 무려 1만 4763㎢로, 우리나라 경상북도 넓이와 비슷하다. (1장 이전 페이지 참고)

 

사진은 여러 얼굴을 띠고 있다. 사슴과 표범의 쫒고 쫒기는 추격전을 지켜볼 땐 박진감으로 가득차게 되고, 하품하는 동물들에게선 여유가 묻어난다. 하이에나에게 새끼를 잃지 않으려는 사자를 볼 땐 눈물겨운 모성애에 탐복한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책은 소리없이 끝장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세렝게티 속 야생 샹그릴라의 개체수를 조절하는 동물은 누구일까? 동물의 제왕 사자일까, 빛의 속도만큼 빠른 치타일까, 아니면 표범일까. 그 누구도 아니다. 의외로 그들은 하이에나와 들개다.(p56참고) 그들은 무리지어 다니면서 닥치는 대로 먹어치운다. 심지어 표범까지도. 이 동물들은 진정 시체 청소부에 잡식동물들이다.

 

세렝게티는 우리의 생각보다 평온한 곳은 아니다. 세렝게티 초원에서는 어미가 있고 없음이 삶과 죽음으로 이어진다. (p70) 지금 이 순간에도 그들은 냉엄한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치고 있을 것이다.

 

얼마 전 ‘아마존의 눈물’ 이라는 다큐멘터리 방영이 큰 인기를 끌었다. 지속 가능한 개발을 위해 문명인들은 자연을 파괴하고, 남은 원주민들은 부득이하게 문명과 타협을 맺기 시작한다. 자연또한 예외가 아니다. 세렝게티 공원 관리국은 매년마다 특정 시기에 초목의 생장을 위해 불을 놓기도 하고, 개체수가 급격히 는 동물들에 대해선 사냥도 서슴지 않는다. 그들은 더 이상 야생(즉 wild life)가 아닌 삶을 살아가고 있다.

 

야생을 보호하기 위한 관리가 과연 그들만의 샹그릴라를 위한 최선의 조치일까. 점점 도시인심으로 변해가버리는 아프리카인들에 대해 이종렬 씨의 씁쓸함 또한 묻어났다. 어느 것이든 모든 생명체와 현상에는 자연정화능력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위기가 발생해도 그들 고유의 자연정화능력으로 자연을 헤쳐나가리라고 난 믿는다. 우리가 야생동물들에 좀 더 중독되고 싶다면 그들만의 천국(샹그릴라)을 훼손하기 보단 대자연의 일부로 그들을 그저 바라보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아프리카야생중독, 이종렬, 글로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