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밥상 : 정치, 문화, 취향의 어우름

중학교 때 ‘가정’과목 시험 공부를 하면서 열심히 외웠던 것이 있었다.왕의 수라는 12첩 반상, 기본 정찬으로는 밥(=수라), 탕, 조치, 찜 등등. 양반의 상차림은 어땠고 평민의 상은 또 어떠했다고 외웠던 기억들. 하지만 어느새 그 많은 정보들을 깡그리 잊어버리고 또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책을 들여다보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변한 것이라고는 시험을 치르기 위한 것이 아닌 교양으로 본다는 것이라고나 할까.

작년 조선일보 논픽션 수상작에 대한 가슴아픈 여운이 컸던 관계로 이번엔 어떤 내용을 담은 책이 수상을 하게 될까 기대를 하고 있었다. 올해는 특히나 치열했다고 하니 책에 담긴 내용은 그만큼 더 알차지 않을까란 거품 낀 눈길로 따끈한 수상작 '시식'에 들어갔다.

총 5장으로 구성된 이 책에 왕의 수라에 관한 것만 들어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1장은 왕의 식사 시간에 오가는 이야기, 식사 예절, 음양오행 식사에 관한 간보기가 펼쳐진다. 2장은 역대 왕들의 밥상 문화와 그들의 취향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3장은 수라의 12첩 반상에 담긴 종류와 밥상에 올라간 음식들의 본격적인 진연이 시작된다. 4장은 앞서 말한 음양오행을 철저히 실천한, 자연과 더불어 취하는 밥상의 우주관에 관한 철학적 이야기가 곁들여진다. 마지막5장에선 왕의 식사시간마저 개인적 시간이 아니었음을 나타내는 정치적인 왕들의 치세와 백성들의 고충이 들어간 음식들의 관계를 보여주며 상을 접는다.

개인적으로 제일 흥미진진했던 곳은 2장이었다. 무인답게 식사취향마저도 무신다웠던 태조는 자식들의 연이은 참사에 그만 고기를 끊는다. 그에 이어 비정한 삼촌이지만 정치만큼은 성격만큼이나 호걸이었던 세조. 그에게선 의외의 떡밥이 발견된다.
“이른바 8의가 있으니, 첫째가 심의요, 둘째가 식의요, 셋째가 약의요, 넷째가 혼의요, 다섯째가 광의요, 여섯째가 망의, 일곱째가 사의, 여덟째가 살의이다.” 『의약론』 (p63)
세조는 익히 들어왔듯이 술을 즐겨마신 왕이다. 신하와 함께 내기술 마시듯 들이켰던 모습과 조카를 매정하게 죽이던 모습을 생각하면, ‘의약론’을 반포한 그 모습이 어울리지 않아보이지만 그는 잘못된 식습관에서 비롯된 역대 왕들(특히 세종, 문종)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식에 관한 한 자기관리를 철저히 한 호걸이었다.

그 외에도 야식을 즐겨 드셨다는 숙종(그로 인해 오히려 건강을 해쳤다.) 조선 후기 기호식품으로 담배가 들어오면서 끽연을 하셨다는 정조, 냉면과 커피를 즐겨 드셨다는 고종, 잇따른 조선의 악재에 마음 앓이를 하는 바람에 몸이 약해져 말년에 죽과 황볶기탕을 먹었다던 순종까지 정말 흥미진진하게 이야기가 흘러간다.

임금은 언제나 목석처럼, 때로는 기계처럼 모든 일을 순탄히 처리한 것만은 아니었다. 왕들도 자신의 불만과 정치적 소견을 감선, 철선, 각선 등을 행함으로써 그들의 목적을 달성한 적도 있었으며, 그들의 해묵은 고민을 밥상머리까지 이고와 밥과 함께 소화한 적도 많았다.

그러고 보면 한 사람의 지위와 두뇌 속에서 한 나라가 돌아가기 위해 뒤에서 땀을 흘린 모든 궁녀와 내시, 숙수, 일반 관료들까지 어느 하나 소홀히 취급할 존재가 아니란 생각이 든다. 그냥 먹는 것 같은 밥상에는 언제나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절제의 도가 숨어 있었고 그러한 왕도의 실천을 위해서 그들은 밥상에 올라갈 반찬의 위치까지 회의를 통해 고려할만큼 지극했다. 이는 마침내 왕의 통치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사소한 축들 하나하나가 모여 큰 톱니바퀴를 돌아가게 하듯이 자그마한(?) 왕의 밥상에는 커다란 조선의 궤도가 펼쳐져 있었던 것이다.

한 예로, 며칠 간 계속 시들시들한 배추가 들어온다고 하면 왕은 그 배추를 씹고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곤 신하와 (때론 대신들과 정찬을 들면서) 그 지역의 가뭄과 흉년 유무를 파악한다. 왕은 침수 들기 전까지 모조리 백성을 위한 위민 정치가였던 것이다.
‘나는 나 개인이기에 앞서 만백성을 바르게 다스려야 할 사람이다’ (p314)
용상의 권좌라는 위치에서 모든 이들의 근원적인 욕구의 표출체인 밥상에서조차 이러한 시각을 견지한 덕분에 조선은 하루하루 유지할 수 있지 않았을까.

중간중간 들어간 삽화와 그림, 그리고 표들은 그 당시 조선의 왕의 일상과 그 당시 문화를 파악하기에 손색이 없다. 아울러 표에 그려진 왕들의 유효 반찬들을 보고 있으면 역대 왕들의 음식 취향까지 알 수 있다. 잘하면 취향에 비추어 성격까지 유추해낼 수도 있다.

처음엔 그저 왕들의 식성만 파악해보자는 생각에 가볍게 읽기 시작한 책이었으나 한번 진지하게 읽으니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는 책이다. 하지만 하나하나 솜솜이 뜯어보며 그 당시 왕들의 하루를 상상해보면 그 시대의 문화상과 역사, 왕들의 흥밋거리를 발견할 수 있는 유익한 책이다. 따라서 이 책은 단순한 ‘왕의 밥상’을 그린 것이 아니라 조선의 정치, 문화, 역사 그리고 왕 개개인의 취향까지 담은 전반적인 ‘생활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감선-나라에 변고가 있을 때 임금이 근신한다는 뜻으로 반찬의 가짓수나 식사 횟수를 줄였다!

철선-백성들이 오랜 가뭄과 홍수에 시달리는데, 고기반찬을 먹을 수 없다!

각선-신하들의 당파 싸움을 다스리기 위해 아예 수라를 들지 않았다. 국왕의 단식 투쟁!   (뒤 커버 中)

열정과 도전, 그 이름으로 우뚝 서다

여자 나이 20대는 바라만 보아도 꿈이 넘치고 사랑이 넘친다. 생기 발랄하고 풋풋하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20대 여성들은 대학을 졸업하고도 갈 곳이 없어, 꿈을 펼치기도 전에 인생의 쓴맛을 먼저 본다. (p4)

쓴 맛, 쓴 맛이라. 이제는 하도 먹어서 그것이 밍밍한 맛인지, 달달한 맛인지, 아니면 말 그대로 쓴 맛인지 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다. 사회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치열한 열기 속에서 증류가 된 우리들에게 사회 시스템은 더욱더 열기를 내뿜어라고 종용한다.

오래 전, IMF가 터지기 전 이야기다. 옆 집에 살고 있던 분이 수학교사였는데, 하루가 멀다하고 교직에 대한 불평을 털어놓으면서 관두고 싶다고 하소연 하시던 분이 있었다. 하지만 웬 걸. IMF가 터지고 난 뒤 현재까지 경제가 어려워지자 요새는 그저 교편을 잡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하신다. 현재의 젊은이들이 정말 과거의 우리보다도 불쌍하다는 말씀을 덧붙이면서 말이다.

우리는 성공에 너무도 목이 말라있다. 사회의 열기가 다 앗아가버린 줄 알았던 악과 깡은 여전히 마음 속 밑바닥에서부터 치고 올라온다. 젊은이들에겐 매일매일이 도전이고 열정의 기록들이다. 하루 같이 자기계발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청년들을 보고 있으면 속이 울렁거린다.(그 이유는 왜인지 나도 모르겠다)

이 책엔 열정과 인내로, 때론 롤러코스터와 같이 굴곡진 인생에서 성공한 유명인사에 대한 인생이 적혀있다. 총 2부로 되어 있는 책은 1부엔 세계적 명사가 2부엔 우리나라의 성공 여성들에 관해 다루고 있는데, 모두 여성들이다.

인종과 성별의 장벽을 뛰어넘은 오프라 윈프리, 남성 못지 않게 냉철한 사고로 외교를 주물렀던 콘돌리자 라이스, 하루에도 수많은 책들이 쏟아져 나오는 책의 홍수에서도 상상력을 무한대로 발휘했던 조앤 K. 롤링을 보고 있으면 포기를 모르는 그네들의 강인한 활력이 느껴진다.

난 사실 국내편(2부)를 먼저 봤는데 역시 여긴 아는 사람이 대부분이라 읽기도 편했다. 천상의 목소리 조수미, 피겨계 어나더 레벨(another level) 김연아, 세상을 들어올린 장미란 등등. 나이의 고하를 막론하고 그 사람들은 때론 금녀, 때론 정치적 한계를 뒤엎고 당당히 세상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낭중지추(囊中之錐)라는 말은 바로 이 사람들을 말하는 건 아닐까.

그 사람들은 열정은 물론 도전 정신, 창의력과 결단력을 가지고 있다. 저자의 서문에서는 괴테의 한 마디가 눈에 띈다.
“인생에서 가장 큰 고난은 얻고자 노력하지 않는 것이다. 당신의 희망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큰 것이 아니라 당신의 희망을 실현하려는 의지가 약한 것이다. 약한 의지력, 이것이 가장 큰 장애물이다.” (p7)

누군가가 니 까짓게 할 수 있겠어? 라고 말한다면 그 사소한 한 마디의 말에 원대한 자신의 포부를 접을 셈인가. 그건 아니다. 각자에겐 각자의 길에 세운 이정표가 있다. 사회의 뜨거운 열기 속에서 이정표를 뭉게는 짓은 하지 않길 나도 간절히 바라는 바다.

하지만 그 전에 어느 자잘한 풍랑에도 흔들리지 않는 굳센 의지와 더불어 자기 확신이 필요하지 않나 싶다. 이렇게 말하는 나에게도 진심으로 그렇게 조언해주고 싶다. 열정과 도전, 끈기로 마침내 자신의 이름 석자를 세상에 새길 때까지 응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