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아이들이 심판한 나라’라는 제목으로 1989년에 먼저 출간되었는데 약 3년 뒤 ‘앵무새 죽이기’로 다시 출간된 이후로 책의 인지도는 훨씬 그리고 꾸준히 높아졌다. 심지어 ‘아이들이 심판한 나라’를 꼭 읽어보라는 나의 적극 추천에도 알았다고만 하던 친구가 ‘앵무새 죽이기’를 구입해서 읽는 것을 보았다. 광고와 매체의 마케팅 효과와 분위기를 주도하는 힘에 놀라움을 느끼기도 했지만, 그만큼 이 작품이 갖고 있는 가치와 감동에 비례하여 상승효과를 내었다는 사실은 틀림없을 것이다.
‘아이들이 심판한 나라’는 직역에 가까운 번역이었고 ‘앵무새 죽이기’는 좀 더 자연스럽게 번역이 되어 나왔지만, 이상하게 먼저 나왔던 책에 더욱 손이 가곤 했다. 'To kill a mocking bird'라는 원제를 하필 ‘앵무새 죽이기’라는 제목으로 정했는지 불만스러웠던 독자들도 많았지만 책을 읽다보면 자연스레 알게 될 비유적인 제목의 의미를 괜히 풀어서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눈은 호기심으로 자세히 관찰하면서도, 상황을 판단하는 데 있어서 만큼은 매우 단순하다. 아이들은 공평한 것을 추구하고, 해서는 안 될 행동에 대한 정의감이 어른들보다 확고하다.
젬과 스카웃, 그들의 친구 딜.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엉뚱한 생각과 놀이, 행동들이 독자들에게 끊임없는 웃음을 선사하는 것이 이 책의 큰 매력이다. 아이들의 순수함은 그들을 지켜보며 바깥 세상에 관심을 갖게 된 부의 마음을 치유해 주었을 것이다.
떠도는 소문으로 부 래들리에 대해 악마나 괴물처럼 생각했지만 나무 둥지에 있던 물건들이 자신들을 위한 선물이었음을 알게 되고, 편견으로 사람을 섣불리 판단해선 안된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배웠을 것이다. 이상한 소문들은 사실 사람들이 왜곡시켰거나 지어낸 이야기들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은 뉴스 기사들을 통해서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부를 차마 흑인들과 함께 감옥에 넣을 수는 없어 법원 지하실에 감금했다던가, 캘퍼니아 아줌마가 흑인 중에서는 그래도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이라던가, 흑인을 하위계급으로 여기며 흑인에 대한 차별이 당연한 듯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로 자리 잡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반세기 동안 사랑받는 책이라는 수식어를 보면서 문득 흑인과 은둔자 등 사회적 약자들을 오해하고 쉽게 무시하는 모습이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현실을 보며 씁쓸한 생각이 든다.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범인으로 몰린 톰. 흑인을 변호한다는 이유만으로 미움을 당하는 애티커스. 아무도 도와주려 하지 않는 약자를 돕는 용기와 억울한 사람의 결백을 주장하며 사람들의 곱지 않은 시선에도 굽히지 않는 신념을 보여주고 있다. 아이들의 생각과 의견을 존중해주는 훌륭한 아버지 상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사춘기 시절에 이 책을 읽었기에 그런 멋진 아버지를 가진 주인공 아이들이 몹시 부럽기도 했다.
애티커스를 위협하던 사람들이 상황도 모르고 재잘대는 스카웃 앞에서 침묵하며 문득 정신을 차리고 돌아가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은둔자로 살던 부. 그저 흑인일 뿐인 톰. 사람들의 편견으로 인한 피해자였을 뿐 두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의 착한 이웃이었을 뿐이다.
(열린책들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 받아 작성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