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신할머니께 비나이다. 그림에선 한 여인이 정화수를 떠 놓고 손을 모으고 빌고 있다.

아이는 똑같은 포즈로 따라하면서 내 눈치를 살핀다.

유누가 같고 싶은 것이 있으면 맘속으로 생각나지..그리고 엄마 아빠가 사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 처럼 이 아줌마도 아기를 갖고 싶어서 삼신 할머니께 비는 거야.

아이는 그림속 여인처럼 그릇을 가져와 내 앞에 놓고 내게 말한다.

'엄마 변신 로봇 사주세요. 빨간색으로요.'

난 어린 아들녀석이 소원을 두손모아 빌면서 바란다는 것이 웃기기도 했지만 선조들의 옛 모습을 그대로 이해해서 무척 기뻤다.

 둘째 테마는 돌이다.

아이의 건강과 장수를 비는 돌잔치는 아들녀석들에게도 익숙하다.
올해 2월달에 동생 우형이가 할머니댁에서 돌잔치를 해서 그러지 첫째 윤우는 엄마 우리도 한복입고 이렇게 했었지..하고 질문 공세를 해온다.

아이들이 곱게 차려 입은 한복은 어른이 보기에도 인형처럼 사랑스러운데 아이들 눈에도 곱고 이쁜지 아들녀석은 한복을 한번 입어 본 이후로 한복이란 말을 입에서 바로 했다.

4살 자신의 돌 사진에서 본 모습과 본인이 동생 돌잔치를 직접 경험하면서 아이에게 돌은 낯설게 다가온 우리의 전통이 아닌 생활속 즐거운 경험으로 다가온 추억이었다

이렇게 우리의 전통을 아이들에게 전해줄 수 만 있다면 전통이 그리 고지식하고 불필요하게 느껴지진 않을 것 같다.

선조들의 정신과 그 생활속의 깃든 지혜와 염원을 우리도 느끼면서 때때로 살아가는 것도 내 자신의 또 다른 미래와 과거를 동시에 볼 수 있는 즐거운 경험일 것이다.

세째 테마는 성인식이다.(양반의 성인식인 관례와 계레, 농민의 성인식인 들돌 들기)

 우리도 대학에 들어가면 선배들로부터 성인식을 혹독하게 치룬다.
옛 선조들도 이러한 성인식을 열다섯살에서  스무 살 사이에 했다니 지금보다 그때의 정신연령이 훨씬 높았다는 생각이 든다.

 양반의 이름을 받는다고 했는데 자신의 새로운 인생의 시점으로서 새로운 이름으로 다시 살아가는것도 참 의미있는 것 같다.

나도 내 아이들의 성인식날에 새로운 이름을 하나씩 만들어 줄까 한다. 그 이름으로 내 아이가 자신의 과거와 미래를 의미있게 살아갈 수 만 있다면 ..
내겐 더없이 기쁜 전통으로 남을 것이다.

양반 여인에겐 쪽을 찌고 비녀 꽂고 배자와 삼자를 입는단다. 어른인 내게도 낯설고 어려운 전통복식의 명칭이 다시금 과거와 현재의 벽을 느끼게 한다.

우리 아이들에겐 이런 벽을 느끼지 않게 할 의무가 지금 내게 있지 않은가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우렁찬 소리와 함께 하는 농민들의 들도 들고 영차 성년례는 서로 어울림을 강조하듯 우리 선조들의 흥과 멋이 그대로 느껴진다.
소박하지만 서로 어울리며 이야기를 나누고, 먹거리를 나누고 ,흥을 나누는 이 그림속 풍경은 그대로 우리의 삶속 전통이 살아 숨쉰다.

아들녀석들도 베개를 들면서 자신만의 성인식을 내 곁에서 치루고 있었다.

 

네째 테마는 혼례이다.

서로 다른 가정에서 살아온 남녀가 부부라는 인연으로 새로운 가정을 꾸리도록 밑바탕을 만들어주는 양가의 혼례는  두 집안의 혼례이기도 했다.

그처럼 옛날이나 지금이나 혼례는 집안에서 무척 중요한 행사인것 같다.

아들을 상징하는 밥과 딸을 상징하는 대추를 던져주는 시부모님과 이것을 받는 신랑신부가 낯설지 않다.

예전의 남편과 나의 모습처럼..

지금의 결혼식에서도 간소하된 전통혼례중 몇가지가 치뤄진다. 다들 형식처럼 해오지만 그 속엔 가정의 행복과 건강을 기원하는 조상들의 지혜가 엿보인다.

다섯째 테마는 환갑잔치이다.

옛날에는 오늘날처럼 오래 살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에 환갑잔치는 무척 기쁘고도 큰 잔치였다고 한다.
하지만 요즘같이 의학이 발달되고 평균수명이 길어진 시대에선 환갑잔치는 살아온 나이에 대한 자신의 거울을 보는 자아성찰의 의미가 더 주어진다.

나의 환갑은 어떨지 무척 궁금해진다. 그때 내 맘속 거울의 내 자아는 웃고 있을지...지금의 나에 달려있기에 더 많은 희망에 노력을 기울인다.

 여섯째 테마는 상가풍경이다.

슬픈 일도 함께 나누고 서로에게 힘이되어주는 그림속 상가 풍경은 조상들의 혼을 기리고 선조들과 후손들이 서로 영을 나누는 성스러움이 느껴진다.

내가 첫째 아이를 임신하고 막달이 다가올때 증조할아버님의 상을 보게 되었다. 아이를 갖고 있는 내게 그 순간은 또 다른 경험이고 숭고한 순간이었다.

새 생명이 꿈틀거리는 순간에 한 생명이 꺼져가는 이 느낌은 뭐라 표현 할 수 없을 만큼 눈물 없는 공허함이 느껴졌다.

 
일곱째 테마는 제사이다.

 돌아가신 조상님이 오랜만에 오셔서 후손들이 인사를 드리고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는 것이다.

해마다 고인이 돌아가신 날 밤에 지내고 설이나 추석같은 명절에는 아침에 차례를 지낸다.

시집을 오고 시댁에서 드리는 제사를 지내면서 여자들의 고통이 더 느껴지는 순간들이 더 많았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내 자식이 생기고 나서는 조상들의 제사가 또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나와 내 아들??이는 끈처럼 멀리 길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관계에 대해서 생각하니 내가 겪는 지금 한 순간의 불편함이 사치스런 핑계라 생각되었다.

이렇게 이 책에선 한 사람의 인생과 연관된 옛 선조들의 전통이 쉽고 재미나게 보여지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 독자를 책속의 주인공인 듯 느껴지게 만든다. 나의 탄생...돌상...성인식...혼례..환갑처럼..과거를 기억하고 미래를 상상하게 만드는재미난 책이다.

 아이와 미래를 상상하면서 이야기 하기에도 좋은 책이었다. 그리고 선조들의 생활과 그 속에 깃든 정성과 혼을 느끼게 해주는 교육적인 책이었다.

감칠맛 나는 도깨비라는 화자와 상황에 맞는 그림 그리고 글은 삼박자를 모두 갖춘 학습동화로 제격이었다.

내 아이도 이 책을 통해 얻은 지식으로 또 다른 경험에 대한 질문 공세를 내게 앞으로 해올 것이다.

얼마나 많은 것을 이 책을 통해 얻어가는지 폭넓어지는 내 아이의 삶이 무척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