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서점 인터파크도서

그때가 언제였을까요?
벌써 까마득한 10년도 더 된 이야기를 지금부터 하게 되겠네요.

그 날은 여름방학이 다 되어가는 무렵인거 같아요..
귀 밑까지 바짝자른 단발머리의 여학생이 서점 앞을 서성거리고 있네요.
"저 사람의 이름은 뭘까?"
"어느 학교, 몇 학년 일까?"
서점 안 당신의 모습을 보러온 많은 여학생들 사이에 있지못하고 밖에 서서 그 단발머리 여학생은 혼자
중얼거리고 있네요..
당신은 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고2 학생이었고, 그 단발머리 여학생은 이제 갓 중학생이 된 소녀였죠..
"저 사람,, 인기가 너무 많아.."

소녀가 다니던 학교 주변에는 소녀의 학교 이외에도 초등학교가 하나, 남자 중학교가 두개, 남자 고등학교가 하나가
더 있었고 학교 주변에는 당신이 아르바이트를 하던 서점을 포함해서 하나의 서점이 더 있었죠.
하지만 항상 당신이 일하던 서점만 북적였고, 그런 모습을 지켜보며 흐뭇해하는 서점 주인 아저씨의 모습도 보이네요.

별로 크지 않은 키에 똑똑해 보이는 눈, 야무진 입가에 헐은 듯한 상처..
항상 친절하고 밝은 당신의 모습을 보면서 처음으로 설레임을 느꼈다죠..
수업시간에도 밥을 먹는 시간에도 혼자 살며시 미소 짓고 수업을 마치면 당신을 볼수 있다는 생각에 단숨에
서점으로 뛰어가곤 했었죠.
여름 방학에도 매일같이 서점 앞을 서성이고, 참고서를 사야한다고 엄마에게 돈을 받아 필요하지도 않은 책들을
사고 있네요.
당신의 손길이 머문 책은 항상 봐뒀다가 다시 꺼내 보기도 하고 당신이 읽고 있는 책은 어떤 내용일지 몹시 궁금해
하면서 그 여름을 그렇게 지내왔죠.

어느새 여름방학이 지나고, 추워지는 가을 끝 무렵의 어느날..
한참 김성재의 "말하자면"이라는 노래가 흘러나오던 어느날..
그 날도 어김없이 서점 안 창가에 진열되어 있는 잡지를 뒤적거리며 당신의 모습을 훔쳐보고 있었는데,
그 잡지에 김성재의 죽음에 관한 기사가 실려져 있군요..
<김성재 의문의 죽음>
어린 소녀도 유명가수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았는지 한참동안 잡지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네요.
’너의 뒤에선 항상 너를 쳐다봐..너의 앞에선 항상 땅을 쳐다봐.. 넌 알지 못했니..어색하게 애써 외면을 했던것... ...’
그 소녀는 그 기사에 눈물이 났던 모양이예요.
그 모습을 지켜보던 당신은 갑자기 눈물을 흘리던 소녀를 이상하게 쳐다보고 그 소녀는 그 잡지를 사고는 얼른
서점을 나와버리네요..

그 해에도 어김없이 크리스마스는 찾아왔어요.
기대하던 흰 눈은 내리지않았지만, 빨간색 목도리를 하고 있는 당신의 모습이 너무 웃겨서 즐거워하는 소녀의
모습이 보이네요.
하지만 그 겨울방학동안은 내내 당신의 모습을 한번도 볼수 없었나봐요..
그만뒀는지.. 아니면 다른 곳으로 갔는지..
혼자 또 중얼거리며 소녀는 무거운 발길을 돌리고 있네요.
그 날 집에 돌아와서 책장에 책 한권을 꺼내보네요..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그 책을 읽으며 소녀는 정확하게 다섯번을 울더군요,,
그리고 뽀르뚜가 아저씨의 죽음에서는 꺼이꺼이 소리까지 내며 통곡을 하고 베개에 얼굴을 묻어버리네요..

하루는 친구에게 빌린 점프트리A+라는 만화책에 겨울방학 내내 빠져들었었죠..
그 만화책 여주인공 이름이 그 소녀이름과 같았고, 그 만화책에 승주라는 인물이 당신과 너무나도 닮았기에
그렇게 한없이 보고 또 보고 그렇게 당신을 그리워하고 있었다네요.

그리고는 당신을 젤 마지막으로 본게 언제더라??
개학하고 얼마 뒤 육교 밑에 서서 친구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소녀 뒤로 누군가가 휙~하고
달려가더군요..
순간 어떻게 알았을까요??
뒤에 눈이 달린것도 아닐텐데..
돌아보니 역시나 당신이 어디론가 달려가고 있군요..
순간, 마지막이란걸 예감했는지 그 소녀 눈가에 눈물이 맺히고 마는군요..

그게 당신을 본 마지막이었고, 그렇게 십년이 넘는 세월이 흘러가버렸다더군요..

대학을 다른 지방으로 가게되고 그렇게 한 동안 그 곳을 가 볼수가 없었는데,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인이 되고 난
뒤에야 비로소 당신이 있었던 곳을 한번 가볼수 있었습니다.
지금 그 곳은 서점이 아닌 어느 식당으로 바뀌고 없어서 당신의 흔적이라고는 변하지 않은 그 길이 전부네요.
당시엔 컴퓨터가 이렇게 활발하게 사용되던 시절이 아니라서 그 당시 읽었던 책들과 만화책,음악 Tape들을 다시
구할수 있게 되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었는데..
최근엔 제가 젤 좋아하던 만화책도 비록 중고였지만 구할수 있었고, 다시 읽어볼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당시 당신의 나이도 되어봤고, 또 지금은 이렇게 추억 속에서 당신을 볼수 있군요.
첫사랑의 정의가 뭘까요?
누구는 처음한 사랑이 첫사랑이라고 하고. 어느 누구는 둘이 같이 사랑한것이 첫사랑이라고 하고..
저는 비록 짝사랑이라고는 하지만 가장 순수할때 만났던 당신을 첫사랑이라 부릅니다.
나이가 들어 다른 사람도 만나봤고, 많이 좋아도 해봤습니다.
하지만 그 때 가장 순수하게 사랑하고 좋아했던 마음으로는 다시는 돌아갈수가 없네요.
나이가 들었던 탓인지, 아니면 세상의 때가 너무 많이 묻어버린 탓인지..
지금도 서점에 들어가면 당시 생각이 많이 납니다.
그때만큼 서점을 짧은 기간 내에 많이 드나들었던 때도 없었을테니까요.
이제는 그 곳도 참 많이 변해서 어디를 가도 그 때 그 마음을 찾을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와 <점프트리A+>등과 같이 그 당시에 즐겨 읽었던 책들을 보고 있노라면 열네살의
중학교 1학년 소녀로 다시 돌아가네요.
가장 순수한 당신은 평생 잊지 못할 나만의 추억을 만들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책이라는 공간은 유일하게 그때 당신을 만날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주더군요.
아마도 책과 당신은 추억을 만드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나봅니다.
가장 순수했던 그 시절..
이제는 돌아가고 싶어도 다시는 돌아갈수 없는 내 소중한 10대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