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곧 선이며 세계의 평화를 선도하고 있으며 악이 있는 곳에는 총과 칼로 응징한다. 수많은 나라의 인권에 목소리 높여 개선을 요구하기도 하고 보복성 짙은 무역으로 경제적인 압박을 가하지만 그렇게 잘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인권유린, 또는 인권 말살의 사각지대라 비난하며 목소리를 높이는 그들. [나의 관타나모 다이어리]를 접하는 순간 미국에 대한 내 생각이 굳어지는 순간이었다. 인권유린은 미국에 있다.

’관타나모’ 쿠바의 해안 도시이자 미군의 외국기지 중 가장 오래된 해군기지로 쿠바와의 국교가 단절되었음에도 관타나모 기지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2001년 9.11사태 이후 ’테러와의 전쟁’ 당시에 아프가니스탄의 포로들을 이곳 관타나모 기지에 설치한 수용소에 억류하면서 세계의 이목이 쏠렸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억류되어 있는 이들의 애절한 사연들이 담긴 [나의 관타나모 다이어리]미국에서 태어난 아프가니스탄계 이민 2세인 저자. 여느 이민 2세와 같이 아프가니스탄의 문화보다는 미국 문화에 더 익숙했던 그녀지만 그 역시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겪기도 한다. 로스쿨에 다니며 처음으로 마주하게 된 관타나모 수용소의 불법적인 미국에 적개심마저 드러내는 저자. 수감자들의 통역을 위해 자원봉사를 지원하며 변호업무에 필요한 증거 수집을 위해 홀연 단신으로 관타나모의 수감자들과 만나게 된다. 이 책에는 자원 봉사자가 되기까지의 내용도 서술되어 있는데 그녀의 신원조회가 FBI에 의해 6개월이 돼서야 검토되었다고 한다.

요원들은 내 친구나 이웃 아무나 붙잡고 내가 미국 정부를 전복하려는 음모에 관여한 적이 있는지 질문했다. 참 재미있는 얘기였다. 집에서 기르는 애완용 족제비와 치와와에게 먹이 주는 것조차 잊어먹기 일쑤인 내가 정부를 전복할 음모를 꾸미다니.... p.15

수용소를 드나들며 고향 사람을 만나는 알 수 없는 동질감과 그들의 순박한 모습, 그리고 왜 수용소에 끌려왔는지조차 모르는 그들에겐 미국에 대한 공포와 오로지 적개심으로 가슴 깊은 상처로 남아있다는 것을 저자는 직접 확인하게 된다. 우리와 똑같은 보통 시민들이 폭행과 고문으로 얼룩진 참상을 그들의 증언을 통해 낱낱이 파헤쳐지고 있다. 여든 살의 중풍환자, 염소 치는 사람, 폭탄으로 오인해 카시오 시계를 차고 있었다는 이유로 끌려온 사람. 도대체 왜 이들이 이렇게 끌려온 것일까. 바로 미군이 내건 현상금 때문이란다. 그들에겐 적지않은 돈이었기에..., 참 씁쓸하다.

평범한 검정색 플라스틱 시계를 차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자신이 테러리스트가 될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항변했다. 관타나모에 있는 많은 미군 경비병들도 카시오 시계를 차고 있었다.... p.76

더 이상 그들에겐 미국사람과 미국 정부를 다르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직 미국인에 대한 증오만 있을 뿐. 이 책에 표현된 내용에 그들이 자행한 만행들을 모두 볼 수가 있다. 면도날 고문 등 생각만 해도 그 끔찍한 참상이다. 특히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진 방사능 전투로 말미암은 기형아의 사진..., 그들은 그렇게 미국에 의한 전쟁 희생양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에필로그 역시 매우 감동적이다. 억류되었던 자들이 석방되어 그들의 조국과 부모와 딸과 아들 그리고 형제들과의 재회가 왜 이리 눈물겨울까. 아들의 얼굴도 못 알아보는 의사 무소비..., 수감되어 있던 당시 그들의 참상을 들으며 분노하고 침통하고 안타깝게 느꼈던 심정이어서 그런지 마치 내 가족이 석방된 것 같아 대단히 기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인간에 대한 존엄성과 인권유린을 생각하니 마음이 그렇게 착잡할 수가 없더라 

"여기 앉아있는 모든 이들과 여전히 쿠바에 남아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관타나모에서 고통을 받을 만한 어떤 잘못도 한 적이 없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테러와는 아무 상관이 없었습니다....중략....미군은 아무 조사도 하지 않고 사람들을 체포하여 감옥에 넣었던 것입니다."...p.295 (고향집으로 돌아온 소아과의사 알리 샤 무소비)

내가 떠나야만 했을 때, 그의 어머니는 나를 꼭 껴안았고 무소비는 바닥에 무릎을 대고 앉아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윽고 그가 말했다. "우리 마음은 당신이 떠나지 않기를 바라고 있어요. 이곳은 당신 집입니다."....p.301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취임식 다음 날 처음으로 서명한 공식문서는 관타나모 수용소를 1년 내에 폐쇄하라는 행정명령이었다고 한다. 얼마 전 이집트 카이로에서 이슬람에 대해 화해를 신청하고 친구라고까지 했던 오바마. 하지만, 이 조치는 공화당의 강력한 반대가 있다고 한다.

이라크 포로에 대한 인권유린, 관타나모 수용소에서의 인권유린. 똑같은 인간이지만 권력을 가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인간의 기본적인 인권을 침해할 수 있을까? [나의 관타나모 다이어리]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사연이 있다. 이 수용소에는 일부 무자비한 테러분자도 있겠지만, 법의 테두리에서조차 밀려 말살되어가는 이들의 인권과 관련한 전반적인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선은 곧 미국이라고 생각하는 이들, 그리고 다른 나라에 인권개선을 요구하는 이중적인 태도..., 이것이 그들이 안고 있는 딜레마다.

영웅주의에 빠져 있는 미국은 전세계를 날아다닌다. 평화라는 명분을 내세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