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봉에서 킬리만자로까지 인류의 발자취를 따라 걸으며 만난 아프리카와 아프리카 사람들.
[아프리카 트렉] 역시 나를 실망시키지 않은 책이다. 두꺼운 책 두께와 촘촘히 박힌 글자가 다소 부담이 되긴 했지만, 아프리카 사람들의 따뜻하고 풋풋한 정을 느꼈다.
"우리를 초대해서 따뜻하게 맞아주고, 재워주고, 먹여주고, 도와주고, 아프리카 대륙의 경이로운 면면들과 인간적 풍요로움을 보여준 모든 아프리카 사람들께 이 책을 바친다. 그분들이 안 계셨다면 우리의 여정은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3년여에 걸친 여정을 오로지 걷기만을 일관되게 관철해 온 푸생 부부의 길고도 험난한 여정 속에서 아프리카의 현실을 읽을 수 있다. 또한, 이 걷기에는 시간과 장소에 구속되지 않는 아프리카 사람들과의 만남이 있었고 계층과 종족을 막론하고 두 팔을 벌려 프랑스인인 두 부부를 기꺼이 반갑게 맞이해 준 것도 아프리카 사람들이었다.
푸생 부부는 자연 그대로의 아프리카를 체험하고 세계에 알리고자 오직 걷기만을 고집하고 최초 인류 기원의 발자취를 따라 동아프리카대지구대를 걷는 것에 그 의미를 부여한다. 아프리카 최남단 희망봉에서 시작하여 이스라엘의 티베리아 호수까지 장장 약 14,000킬로미터를 하루에 40킬로미터씩 걸어 대장정 완수했으며 그 절반인 약 7,000킬로미터, 즉 희망봉에서 킬리만자로 정상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이 담긴 [아프리카 트렉], 나머지 7,000킬로미터의 후속편을 기대하게 한다.
[아프리카 트렉]에는 3년여 동안 1,200명의 아프리카 가족들을 만나며 때로는 기쁨과, 때로는 분노가, 때로는 슬픔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매일 30킬로미터를 걸어서 통학하는 아이들, 에이즈가 남긴 상처, 문화적 환경에서 오는 아직도 자행되는 강간과 살인들, 끝없는 인종차별, 종족 간에 얽혀 있는 증오와 권력에 대한 소리없는 부르짖음이 남아있는 아프리카는 과연 신이 내린 축복받은 땅인가. 오로지 자연만이 축복받은 느낌이 드는 것은 무엇인가.
첫 장을 읽어 내려가며 큰 실망을 했던 것이 사실이다. 오로지 사람들을 만나 먹고 자고 또 여정을 떠나고. 왜 이런 책을 출간했을까. 차라리 여행 보고서 형식으로 지인들에게 선물이나 하고 개인적으로 기념하기 위해 간직하고만 있지. 하지만, 이 실망도 아주 잠깐이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빈터베르크 산맥을 하산하던 중 휴대폰으로 받은 이메일 한 통. 여행 중 그들 부부를 따뜻하게 맞이해 주었던, 암으로 살 날이 며칠 남지않은 만델라의 절친한 친구이자 반군과 정부 사이의 중재를 맡았던 '하베이'의 임종 소식이 푸생부부와 나를 또 한 번 울리는 순간이었다.
"그이의 바램대로 산에 가지고 다니던 침낭위에 시신을 눕혔고, 두 분을 배웅하면서 마지막으로 걸었을 때 입은 옷을 입혔지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뛰어오르기 위해 단단히 끈을 맺던 그 신발을 신겼습니다....중략.... 4킬로미터 이상을 두 분과 그토록 함께 걷고 싶어했던 제 남편을 위해서라도 도보여행을 계속해주세요." 우리는 초원 한가운데에서 하늘을 바라보고 흐느껴 울었다.... p . 95, 96
자연과 문화, 음식 그리고 기아가 공존하는 나라. 고도성장으로 현대화된 도시에도 눈이 시리게 푸르른 하늘이 있고, 광활한 대지 위로 금세 쏟아져 내릴듯한 수많은 별이 있다. 아프리카는 자연과 공존하며 사는 방법을 가장 잘 터득한 곳. 봉고 하나로 영혼의 맑은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음악이 있으며 그들의 순박함에서 영혼의 고향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살기 어렵고 풀 한 포기조차 자라기 어려운 척박한 땅투성이지만, 때로는 푸름이 넘치다 못해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소중한 곳. 강렬한 햇빛 때문에 유전적으로 타고난 곱슬머리, 아동에 대한 노동력 착취와 기아라는 세계적인 관심사가 존재하지만..., 남아프리카 희망봉에서 이스라엘의 티베리아 호수까지 모든 지역이 문화이며 새로운 문명들이 잉태되어 전 세계로 퍼뜨렸던 문명의 나라.
하얀 이를 드러내며 해맑게 웃는 아프리카 사람들을 보며 아직 그들에게도 희망이 남아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이들은 또다시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푸생 부부와 동참한 기나긴 여행길, 이것이 진정한 여행이다.
아프리카트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