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들의 세계란 이렇게 치졸하고 더러운 것인가? 

 

구소련의 붕괴와 독일통일로 말미암아 세계의 냉전시대가 사라졌지만, 영웅주의와 패권주의의 미국은 아직도 커다란 착각에 빠진 듯하다. 부시의 이라크 전쟁에서 수많은 민간인의 학살과 눈앞에서 벌어지는 부모의 총살은 장면의 목격은 이슬람사회에 큰 충격으로 비쳤음에 자명한 사실이다. 결국,  9.11 테러로 '대테러와의 전쟁'을 선포, 또다시 냉전 아닌 냉전의 시대는 전 세계를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으며 수많은 살인을 저지르고 있다. 

스파이들은 무고한 한 사람을 영웅으로 만들 수 있고, 테러의 주체로 둔갑시키는 그들만의 규정이 있지만, 그러한 이중적인 예는 우리나라의 경우에서도 볼 수 있듯이 역사가 지나면 밝혀지는 진실만이 증명해주고 있다고 하겠다. 

온몸에 멍 자국과 코트 한 벌 그리고 가방 하나만을 메고 국경을 넘어 함부르크에 도착한 '이산' 그를 둘러싼 은행장, 여변호사, 미, 영, 독의 스파이들의 이야기가 사실과도 같이 묘사되어 있다. 60년대 구소련의 붉은 군대 소속이었고 살인자 강간범이었던 아버지 '카르포프' 대령과 체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이사'는 아버지의 거대하고 더러운 유산을 찾고 짚밞힌 체첸인들을 위해 의사 공부를 위해 비밀계좌에 관한 유서와 열쇠를 지니고 홀연 나타난다. 민권단체 변호사 '아나벨'은 그의 인권을 위해 거대 스파이조직과 사이에서 갈등을 겪는다.  

전 세계 모든 모슬렘의 공동체를 운영하며 각종 기금으로 학교, 병원, 보육원 등에 자선 활동을 하는 '압둘라'와 그 누구보다 무고한 주인공 '이사'는 결국 테러단체의 주요인물로 조작되고 비밀계좌의 또 하나 열쇠를 지니고 있는 은행장 '브뤼', 법을 가난한 자에게 돌려놓고자 하는 변호사 '아나벨'은 독일과 영국의 정보원들로부터 '이사'에게 도움을 주겠다는 약속을 받아내고 일정대로 작전에 돌입하지만, 미국 정보원의 배신으로 모두 허사로 끝나버린다.  

 

"그의 마음 중 95퍼센튼 그런 일을 하지 않습니다. 그 95퍼센트는 움마의 가난하고 병든사람들을 돕는 일을 합니다. 하지만 나머지 5퍼센트는 테러에 자금을 댑니다. 의식적으로, 독창적으로 따라서 그는 사악한 사람입니다. 그것이 그의 비극이죠." ....p. 327 

이 책에 쓰인 이야기에서 허구라는 것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를 저자의 약력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는 영국 대사관 제2 서기관, 함부르크 정치영사, 그리고 영국 정보부인 MI6에서 일하며 냉전 시대 실제로 첩보 활동을 하기도 했으며 요원으로 재직 당시 [죽은 자에게서 걸려온 전화], 실제 경험인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를 통해 스릴러 작가로서 최고의 명성을 얻기도 했다. 

국가 정보부 내에서도 존재하는 진보와 보수의 갈등적인 평행선은 [원티트 맨]에서도 작전과 실패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패권주의와 영웅주의에 빠진 미국은 인권이라는 것을 무시한 채 군수업체의 부흥을 위해 전쟁을 도발하는 이중적인 인격과 위험한 도발로 지금은 세계 각국의 손가락질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스스로 이슬람과의 전쟁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죄 없는 모슬렘들을 관타나모에 수용시켜 온갖 고문과 조작된 정보를 만들어 내는 그들의 만행에 분노가 치솟는다. 

이 책을 읽으면서 독자 누구나가 해피엔딩으로 끝날 줄 예감했으리라. 하지만, 미국 정보요원들의 배신으로 허무하게 끝나는 장면을 보며 주인공 인생의 끝이 결국 보기 좋게 조작되어 테러의 배후자나 핵심인물로 전세계에 발표될 것이라는 악랄하기 그지없는 작태를 생각해 보니 같은 인간으로서 환멸감마저 느끼게 됨을. 지금 이시간에도 세계 곳곳에 퍼진 스파이 활동으로 무고한 한 생명체가 테러의 핵심인물로 조작되고 있다. 정의는 과연 무엇인가. 

원티드맨

대한민국의 가시고기 아버지 

 

무능력한 정부라는 말을 들으면서까지 제자리를 찾아놓기 위해 노력했던 권력기관들은 다시 국민 위에 군림하고 있었고, 민주주의는 후퇴하고 있었다. 결과적으로는 실패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분노와 슬픔이 밀려왔고, 한동안 깊은 상실감이 그를 덮쳤다..., p. 223 

노무현 그는 대한민국의 가시고기 아버지였다. 제 자식이 알에서 부화하여 치어가 될 때까지 그리고 자식들을 위해 돌 틈에 머리를 박고 자신의 살점까지 내어놓는 가시고기의 사랑 말이다.  

이미 여섯 살 때부터 천자문을 떼고 신동이라 불렸던 '돌콩(어린 시절 별명)'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를 거치며 항상 열등감이라는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그가 고시공부를 위한 책값을 마련하기 위해 막노동을 해가며 세 차례의 낙방 끝에 고시에 합격, 판사에서 변호사로 다시 인권 변호사로 민주화 투쟁을 기치로 정치계에 입문하며 일약 청문회 스타로 거듭나고 지역주의라는 높은 벽에 방황하기도 하지만, 그의 소신은 자신을 대통령으로 이끈 최대의 정치적 자산이 된다. 

재임 시절, 검찰과 경찰, 국정원, 국세청 이른바 빅4라는 권력기관을 무장해체시키고 제왕적 대통령 권위에서 탈피하고자 했던 노무현. 대선 자금 공개와 헌정 사상 최초의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지만, 국민은 아이와 함께, 학생, 손녀, 손자 손을 잡고 나온 할아버지, 넥타이 부대 등 여러 주류의 사람들이 손에 촛불을 들고 '대통령 탄핵 무효'를 외치며 일주일이 넘게 지속한 촛불집회를 통해 국회의원들에 대한 국민의 힘을 보여주는 이른바 국민의 힘은 또다시 노무현의 손을 들어준다. 마치 국민 위에 군림하는 국회의원들을 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더군다나 외국에서 근무하고 있던 터라 촛불집회의 참여는커녕 티브이만 지켜보며 또 국내의 지인들과 통화를 하며 분을 삭였던 기억이 있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 성숙된 시민의 참여자세와 국민을 믿는 대통령의 노력이 절대 헛되지 않았음을 시사해주는 대목이다. 

 

무능한 참여정부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반대세력과 수구보수 언론들, 심지어는 이라크 파병 결정, 한미 자유무역협정으로 그를 지지했던 시민까지 외면하며 쓸쓸한 퇴임을 맞이했지만 이제 와서 참여정부 시절의 민주주의가 그리워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촛불집회는 원천봉쇄되고 아버지의 어깨 위에서 촛불을 들고 가는 아이의 통행마저 제지하며 무고한 시민이 용산참사의 희생양으로 그리고 시민의 집회가 모두 가로막혀 있는 이 현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퇴임 이후 평범한 농사꾼으로서, 또 손녀의 할아버지로서의 생활까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끝없이 도전하는 바보 대통령. 국민들과의 의사소통을 위해 인터넷으로 교감을 주고받으며 늘 우리와 함께하려 했던 그였지만 이제 그를 다시는 볼 수도 없다. 

그는 함께 꾸는 꿈을 믿었다. 그리고 그 꿈을 공유할 때 참다운 사람 사는 세상, 민주주의의 새로운 역사가 쓰여진다고 철석같이 믿었다고 한다.  함께 꿈을 꾸는 동지, 국민을 믿었기 때문에. 그러나 이 시각 그가 꿈꾸던 또 우리가 꿈꾸던 꿈은 완성되지 못한 채 작은 묘비와 함께 사라졌다. 그는 항상 국민을 믿었고 자신의 몸을 내던져 민주주의 가치를 다시 한번 우리에게 각인시켜줬다. 당신은 몸을 내던져 얻고 싶은 가치가 무엇인가, 또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무엇인가...,

가시고기, 노무현

1,300년 전 여왕의 신비로운 사랑 이야기 

 

신라 제27대왕(재위 632∼647) 성은 김씨(金氏). 이름은 덕만(德曼)이다. 진평왕과 어머니 마야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덕만, 천명, 선화, 세 공주중 맏이로 어려서부터 진평과 사냥을 다니며 남자로 태어났다면 나라를 위해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을 한탄도 해보지만, 왕위를 덕만(선덕여왕)에 승계할 것을 약속하며 부처님이 주신 영력과 지혜로 무릇 남자들을 다스려 그 힘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라는 진평은 선덕을 후계자로 내정한다. 

[선덕여왕]은 개인에 대한 기록이 부족한 만큼 참고문헌도 삼국사기, 삼국유사, 일본서기로 한정될 만큼 역사서이기보다는 작가의 상상력이 크게 작용한 소설이라는 느낌이다. 고증되지 않은 부분을 글로 옮긴다는 것이 다소는 왜곡된 역사라는 반향을 가져오기도 하겠지만, 그 시대의 제도, 조세, 전투, 생활, 문화 등 기록과 유래를 통해 어느 정도 추인해 보는 시각도 필요하리라 생각된다. 

학창시절 선덕에 대해 배울 땐 결혼하지 않은 독신라고 배운 기억이 어렴풋 한데 기록에 의하면 신라의 그 당시 규정에 따라 세 명의 남편을 두었다고 하며 이 책에선 화랑 출신의 '운랑'과 한 번의 결혼을, 선대 진지왕의 혼이 낳은 아들이자 '운랑'의 친구인 '비형'이라는 화랑 출신과 동시에 정을 주는 것으로 나온다.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얘기이지만 연대가 올라갈수록 여성의 지휘가 상승하고 남녀 간의 연애 또한 자유로웠다고 하니 불교를 장려한 신라를 생각한다면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서동요로 잘 알려진 백제 서동은 선화와 결혼한 이후 무왕으로 등극한다. 선대 진흥왕의 영토 확장으로 말미암아 빼앗긴 땅을 회복하고자 장인의 나라인 신라에 대한 백제 무왕의 끊임없는 공격과 고구려의 공격으로 평생을 전쟁 속에 살아가는 진평과 선덕. 당나라에 조공을 바치며 외교전략을 모색하지만, 여자가 왕이라는 이유로 당에서 파견한 사람을 왕좌에 앉히라는 모욕적인 여왕통치의 문제점이 신라 정계에 파문을 일으켜 647년 상대등 비담(毗曇)과 염종(廉宗) 등이 이를 구실로 반란을 일으켰다. 결국, 그의 공신인 김춘추와 김유신의 반란군 제압과 더불어 선덕여왕의 생도 마감한다. 

원시 종교의 한 형태인 샤머니즘적인 요소가 많이 가미되어 흥미로운 내용도 많았지만, 영적인 예감을 하는 선덕 여왕에서 주술사와도 같은 향을 느낄 수 있다. 또한, 일찌기 천문에 밝아 첨성대를 건립하여 농사에 일조하였고 영묘사, 분황사 등의 건립과 불경의 연구로 불교의 부흥기를 가져오기도 한다. 이 책에서 삼국통일의 발판을 마련했던 선덕 여왕은 한 나라의 통치권자로, 때로는 사랑에 애타는 여인으로 그려지며 남편인 '운랑' 보다 '비형'을 그리워하는 드라마적 요소가 가미되어 방송작가인 저자의 스토리 전개가 독자들로 하여금 호응을 이끌어낼 만 하다. 하지만 이게 허구인가, 진실인가의 논쟁은 초반부터 내내 그려지는 선덕의 사랑에 대한 그리움과 번민의 심리묘사가 그러하다.  

재위 16년만에 내란 속에 죽음을 맞이하는 비운의 선덕여왕. 신라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고구려와 백제는 모두 적으로 특히 백제의 마지막 왕인 의자왕은 선덕여왕의 조카이기도 하다. 그들이 치열하게 영토를 위해 싸운 것도 그 시대가 요구하는 사명이었으리라. 같은 친가와 민족이라는 개념은 전혀 보여주지 못한 역사의 한 자락과 당에 조공을 바치고 왕위계승의 승낙 등 그 당시 당나라에 대한 의존이 내심 불편하기도 했으나 이도 우리의 지나간 역사라 생각한다면 십분 이해가 가기도 한다. 

선덕의 역사적 사료가 부족하기에 저자의 상상력 또한 매우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녀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그 외의 역사는 충분한 사료의 근거로 집필된 것으로 다소는 공감 가는 부분이 있지만 이에 대한 판단은 오로지 독자의 몫으로 본다. 나라의 어머니인 선덕여왕, 한 여인으로서 군사를 이끌기도 하며, 백성을 위해 규휼정책을 추진, 문화와 역사의 통치이념을 새롭게 세운 1,300여년 전 신라 여왕의 사랑과 꿈의 대서사시를 만나보자. 

선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