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과 가정의 덫에 빠진 그녀들.
인간은 누구나 욕망을 지니고 있으며 이 욕망은 공허함을 달래기 위한 선천적인 본능과 같다. 마치 식욕, 성욕 그리고 도피 등과 같은. [퍼즐]에서 보여준 욕망은 현실과의 타협점을 찾지 못한 채, 죽음과 떠남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통해 사회적 관계를 끊어가는, 그래서 자신의 존재에 대한 불완전한 삶을 거부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로 총 7편의 단편 소설이다.
이상문학상, 동인문학상 수상작가, 권지예. [퍼즐]에서 보여준 그녀의 담담한 스토리텔링 기법과 커다란 외침과 호소를 자제하는 독특한 문체에서 7개의 작품 모두가 긴 여운을 남긴다. 비록 외도와 낙태, 재혼 등 민감한 여성문제를 화두로 삼고 있지만, 고뇌하고 갈등하며 아픔이라는 고통을 간직한 채 꿈마저 빼앗긴 여성들의 마지막 선택은 인간의 절망을 극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전처가 나은 딸아이와 좀처럼 간극을 좁히지 못하는 주인공. 그녀의 기구한 팔자는 혹여 지금도 발생하고 있을지 모를, 생각조차 하기 싫은 삶이다. 아들을 낳으라는 시어머니의 끝없는 요구에 세 아이를 강제로 유산시키고 그로 인해 불임이라는 운명으로 살아가는 주인공, 남편과 시어머니의 구타와 협박으로 정신적인 피폐함으로 살아가는 삶마저도 그녀는 도피, 즉 자살로서 이 사회와 연결고리를 끊는다. 이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퍼즐’은 그녀의 유일한 기쁨이다.
남편은 퍼즐 조각 몇 개씩을 감추고 아내는 열심히 퍼즐을 맞춰가는 모습에서 저자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다. 가정의 덫과 굴레는 남편으로, 욕망이라는 해방구를 찾는 아내는 삶을 포기하는 숙명으로 대변된다. 저자는 우리들 삶과 세상을 퍼즐판에 비유한다. 그가 말하는 퍼즐판은 모든 조각들을 다 맞춰서 완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몇 조각이 빠진 불완전한 퍼즐판말이다. 삶의 잃어버린 한 조각을 찾지 못한 채 자신이 그 한 조각의 퍼즐이 되어 생을 마감하는 퍼즐 놀이처럼.
사물에 의미를 부여하고 주제를 관철하는 저자의 능력은 매우 뛰어나다. 섬세한 문체 역시 뛰어나다.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뱀장어 스튜'와 동인문학상 수상작인 ’꽃게무덤’은 그녀만의 매력인 상징과 은유가 모자이크처럼 정교하게 짜인 작품으로 '뱀장어 스튜'는 대학에서 문학창작론을 강의하는 교수들이 가장 즐겨 쓰는 교본으로 꼽힌다고 한다. [퍼즐] 역시 고양이와 죽은 주검의 새, 감 등을 통해 이러한 매력을 엿볼 수 있으며, 특히 인물 간의 갈등과 심리묘사, 그리고 구성과 소설의 소재가 조화를 이루며 그녀만의 풍부한 상상력을 무한으로 발산하고 있다.
그 이후로 내게는 더 이상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그 이후로 나는 과육이 무른 과일은 입에 대지 않는다. 나는 아이의 깨진 살덩어리 같은 분노와 증오와 슬픔을 복숭아 캔처럼 진공 속에 갈무리해 두었다. 그리고 나는 진공 속의 세상에 나를 가두기 시작했다. p. 57
일 중독자 남편이 아닌 또다른 애인을 사랑하는 유부녀의 이야기를 담은 [BED]와 남편과 딸을 버리고 애인을 찾아 떠나는 [바람의 말], 자신이 쓴 소설의 주인공에게서 전화를 받는 [여주인공 오영실], 중국 장춘의 배경이 된 [네비야 청산 가자] 등 총 7편의 주인공은 현실의 결핍으로 말미암은 욕망의 탈출구를 찾아보지만 결국 죽음과 떠남으로 마무리한다. [퍼즐]에서 보여준 인상은 시종일관 어둡고 쓰라린 아픔을 안고 살아온 인간의 내면을 드러내고 있지만, 죽음으로 지속된 결핍을 끝내려는 그들의 모습에서 왠지 모를 우울함마저 느끼게 된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에게 욕망의 의미는 무엇인가.
퍼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