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히티의 순수함과도 같은 두 남녀의 사랑? 

 

자연 속의 치유와 남녀 간의 사랑이라는 미명하에 교묘히 포장된 불륜, 요시모토 바나나의 장편소설 [무지개]가 바로 그것이다. 근자에 들어 막장 드라마로 주가를 올리는 불륜이라는 소재는 가족시간대임에도 버젓이 안방과 거실을 점령했고 스스로 불감증을 유발할 정도로 주변과 사회 속에 급속히 퍼져 있다. 마치 한 시대의 조류와도 같이 퍼져가는 불륜도 이제는 터부시 될 만한 것으로 취급되지 못하며 문학과 예술을 넘나들며 사랑과 자유로 빗대어지곤 하니 실로 유감스러울 따름이다. 

[무지개]는 저자가 남태평양 화산섬 타히티의 취재여행을 통해 만든 소설로서 주인공 '에이코'가 자신의 상처를 자연과 더불어 치유하고 행복과 자아, 그리고 새로운 삶을 발견하는 동시에 과거의 회상을 소설로 교차시키는 일종의 여행과 소설이 결합한 새로운 장르의 소설이다. 형태와 구성을 살펴보면, 내용 중간마다 삽입된 타히티 여인의 삽화와 책 마무리에 실린 몇 컷의 타히티 풍경 사진, 저자의 취재여행 일정 등에서 자칫 여행에 관련된 서적으로 오해할 소지가 다소 있지만, 내용을 갈무리하다 보면 타히티안 레스토랑에서 사장과 직원으로 인연이 된 두 남녀의 사랑을 회상한 소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왜 이들의 사랑이 애틋한 사랑인가. 10년 동안 타히티안 레스토랑 '무지개'에서 일해왔던 '에이코'에게 할머니와 어머니의 죽음은 커다란 실의에 빠지게 한다. 쉽게 사그라지지 않는 마음의 상처는 결국 몸을 가누지 못하는 상태로 옥죄어 오며 우연치 않은 사장 '다카타'의 제안으로 잠시 자신의 가정부 일을 맏게되며 돌보지 않는 화초와 개, 고양이로 말미암아 심리적인 안정을 되찾아가는 주인공 에이코. 오너 부인의 외도와 배 안에 타인의 자식을 품고 있는 부인의 모습을 보며 힘든 나날을 살아가는 다카타의 모습에서 애틋한 감정을 느낀 주인공의 사랑은 진실한 사랑인가 되묻고 싶다.  

 

다카타의 고백과 하룻밤의 정사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 '내가 하면 사랑이고 남이 하면 불륜이다.'라는 말도 있지만, 이는 엄연한 불륜으로 저자는 사회적으로 비난받을 수 있는 불륜을 타히티에서의 여정과 여성 특유의 섬세한 글 표현력으로 극복하고 있다. [무지개]는 소위 '막장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복수와 비난은 없으며 불륜에 초점이 두었다기보다는 처음과 끝 모두가 담담하고 차분하게 전개되어 독자들의 판단에 따라 문학과 외설의 향배를 구분 짓도록 유도한다. 

다카타의 권유로 타히티에 머물며 과거를 회상하는 이야기를 그린 소설이지만 미완의 작품과도 같이 여겨진다. 다카타 가정의 불화 속에 주인공 에이코와 사랑을 시작하지만 실상 다카타 가정의 결말의 내용이 누락되었다는 점이 끝내 아쉬움으로 남는 부분으로 현재 그려지는 이야기에서 클라이맥스를 찾기보다는 이들의 사랑이 시작하여 정점을 찍는 순간까지의 주변 이야기에서 찾는것이 옳다고 본다. 

저자 요시모토 바나나의 책을 처음 접하며 그가 발표했던 작품 세계를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을 것도 같다. [무지개]와 같은 장르의 여행소설 시리즈가 계속 이어진다고 한다. 이제 막 그녀의 소설에 미묘한 감정을 맛보았기에 후속작 한 권을 더 접해본다면 그녀의 문학관을 완전히 꿰뚫어 볼 수도 있을 것도 같은 생각이다. 개인적으로 약간은 지루하고 진부한 소재의 소설로 예측 가능한 부분이 많이 등장하며, 여행과 소설이라는 이중적 잣대로 말미암아 집중적인 몰입이 흩어지는 순간도 조끔씩 드러난다. 작가의 소개를 잠시 들여다보면,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에 빈번히 등장하는 대중적 소재는 시대적 동질감을 환기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장치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전적 교양과 일본 순수문학의 엄숙주의에서 자유롭게 탈피한 그녀의 대중적인 문학관에 한 표를 던진다. 그녀의 차기작을 기다리며..., 

"아, 무지개다!" 배에 탄 사람들이 일제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에 조그만 반원 모양의 무지재가 걸려 있었다. 짙푸른 산 위에 일곱 색깔이 고루 선명하게 떠 있었다. 돌아가면 일본은 포근한 봄이리라. 나는 곧바로 가게로 돌아가고, 집에는 고양이가 있고, 오래도록 이어질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리라. 모든 것이 놀라울 정도로 그렇게 한꺼번에 변화했다. 그리고 지금 내 눈앞에는 무지개가 있다. p. 183 

무지개

나에게 부치는 아름답고 슬픈 우리들의 이야기 

 

하늘은 높아 가고 마음은 깊어 가네 꽃이 진 자리마다 열매를 키워 행복한 나무여, 바람이여, 슬프지 않아도 안으로 고여 오는 눈물은 그리움 때문인가. 이해인님의 시 가을 노래 중 일부이다. 그리움이 없는 이는 존재가 무의미하며 깨어 있는 자에겐 늘 그리움이 함께한다는 말과 같이 우리네 일상 다반사가 그리움과 함께한다. 문명의 발달로 말미암아 편지와 우표를 대신해 전자우편이 그 자리를 메워가고 있지만, 인간의 정마저 빼앗겨 버렸다는 생각은 지울 수가 없다.  

[그리움]은 MBC 라디오 '여성시대'에서 2009년 올해의 편지 쇼에 응모한 작품 중 당선작만을 선정해 한 권의 책으로 엮은 '편지'라는 주제의 글 42편을 오롯이 담아낸다. 한낮 종잇장에 불과한 편지, 내용을 켜켜이 채워가면 설렘과 그리움, 그리고 삶의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담긴 나와 우리의 추억이 간직된 소중한 기록이 된다. 분명 현대 기술 문명으로 만들어진 편리한 생활 수단, 즉 문명의 이기 중 하나인 전자 우편은 빛과 같이 빠름을 요구하는 현대에 있어 가히 가공할만한 위력임엔 틀림없으나 '정'과 '그리움'이 사라지고 있는 현실과 그 궤적을 달리한다. 

몇 달 전 역시 여성시대의 사연을 모아 펴낸 [가족]이라는 책을 통해 가슴 저린 이야기들로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고, 책 속에서 나를 발견하곤 미소 짓던 기억이 있다. 첫 장부터 눈물겨운 [그리움], 생선장수 아버지를 늘 창피하게 생각하던 철부지 딸과 글조차 깨치지 못해 도형으로 편지를 보내신 아버지의 모습에서, 이미 5년 전 하늘나라로 떠나버린 며느리에게 사연을 띄운 시아버지의 모습, 산동네 마을 앞, 웅크리고 앉아 하염없이 편지를 기다리던 아이 등 이 편지들 속에는 부모님, 아내, 아이들, 그리고 내가 있었다. 

  

그러나 이젠 그림문자로 편지를 보내주실 내 아버지는 이 세상에 계시지 않는다. 그리고 아버지에게서 나던 그 정겨운 생선비린내도 이제 맡을 수가 없다. p.20 (생선장수 아버지의 동그라미 그림편지 중.) 

그때 그 어린 딸이 어느새 대학교를 졸업했고, 아들은 군 복무를 무사히 잘 마치고 건장한 청년이 되어주었다. 그 뒤로도 몇 번의 병원 치료와 수술을 했지만, 암을 잘 이겨내고 지금은 강한 엄마로 돌아와 있다. p.173 (유언으로 남겼던 편지들 중.) 

가슴 먹먹해지는 이야기 속에서 한동안 말이 없어졌다. 그것은 그리움이다. 나또한 그들과 같이 누군가에게 그리움을 줄 수도 있고 타인으로 말미암아 그리움을 받을 수 있다. 청춘은 청춘에서 오는 그리움이 있고 시간이 지나면 세월의 흐름 속에 또 다른 그리움이 있다. 손에 잡힐듯한, 가슴속 한켠에 꼬깃꼬깃 접어놓았던 아련한 그리움이 때로는 늪이 되어 서서히 목을 조여오기도 하지만, 그리움이란 순환의 고리는 인간의 말단에서 가슴까지 파고드는 양태로 귀결된다. 

물끄러미 바라 본 하늘, 어느새 가을이 마주하고 있다. 그 어느 계절보다 그리움이 생각나는 가을에 아름답고 슬픈 이야기 [그리움]을 맞이하는 감동은 감동 그 이상이다. 행복과 슬픔, 사랑, 희망이 모두 담겨 있는 편지를 통해 그들의 그리움을 속삭이는 이야기는 그 여느 책과는 사뭇 다른, 감동을 음미하기에 충분하다. 

예쁜 편지지 위에 그리움을 담아 누군가에게 편지를 쓴 기억이 있으신가요? 한 자 한 자 정성을 담아 써내려간 편지, 겉봉에 쓰인 글씨만으로도 그 사람을 만난 양 설레던 마음을 기억하시나요? 

그리움편지

21세기 인디아나 존스? 

 

역사적 배경과 실존인물들을 재현해낸 팩션 소설의 한 장르인 [아즈텍의 비밀]은 웅장하고 화려했던 문화와 온갖 보물들이 넘쳐났던 고대 아즈텍 문명을 배경으로 사라진 보물을 찾아 떠나는 모험담이다. 여타 소설들과 마찬가지로 내용 역시 선과 악의 대결구도의 묘미는 팽팽한 긴장의 끈을 쉽게 놓기가 어렵다는 것이 장점인데 반해 본서에서 보여준 액션과 재미는 다소 긴장감이 떨어진다. 기타 팩션 역사 소설의 성공 비결은 예리한 분석과 반전에 이은 반전, 그리고 작가의 풍부한 상상력이 주된 원인으로 요지의 핵심을 몰입으로 이끌어가는 구성도 그 한몫을 한다고 생각한다. 

팩션 소설이 봇물처럼 터져 나온 주된 계기는 [다빈치 코드], [로마인 이야기] 등으로 비교적 성공적인 팩션 소설의 출현은 급물살을 타고 독자에게 큰 관심과 흥미를 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즈택의 비밀]은 [램브란트의 유령]을 집필한 작가 '폴 크리스토퍼의 작품으로 전작에 견주어볼 때 그다지 큰 감흥은 없다. 16세기에 난파된 배에서 사라진 보물과 이야기의 주제인 '코르테스'가 남긴 '코덱스'(코르테스가 마야인으로부터 빼앗은 보물의 정보)의 행방을 추적하는 주인공 '핀'과 '빌리'의 모험담으로 21세기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왜 매체에서는 21세기의 인디아나 존스라고 극찬하며 뉴욕타임스의 베스트셀러로 등극했는지 석연치않은 구석도 있지만, 이유를 막론하고 큰 기대를 했던 한 독자의 입장에서 냉철히 판단하자면 그저 평범하고 많이 다루었던 진부한 소재로 말미암아 재미가 반감되는 임계치에 달했다고 본다. 1521년 과거의 이야기는 긴장감이 팽팽하다. 중반부로 넘어가면 수많은 낚싯바늘에 죽음을 당할 뻔 했던 주인공의 장면을 제외하면 손에 땀을 쥘 일이 거의 전무하다. 

 

갑자기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신부는 아직 걸치고 있는 옷가지 속을 더듬거리며 방수포로 감싼 물건을 찾으려 했다. 그것은 아주 귀한 물건이어서 그는 배에 오르기 전 허리춤에 그것을 단단히 묶어 두었었다. 울부짖는 바람 속에서 그는 절망감에 싸여 길게 비명을 내질렀다. 하나님의 적이자 잔인무도한 이단자, 에르난 코르테스(1485~1547, 멕시코를 정복한 스페인의 정복자)가 남긴 가장 큰 비밀과 코덱스가 그만 사라져버린 것이다. p.16 

사실 21세기의 인디아나 존스라는 문구에 매료되어 접한 책이긴 하지만 액션과 어드벤쳐를 표방하는 인디아나 존스와 비교한다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에 가깝다. 등장인물을 살펴보면 억만장자이자 제약회사 사장과 그의 아들, 비밀 종교단체 까발로 네로, 그리고 마약왕 등 수많은 인물을 등장시킴으로써 실타래 처럼 얽힌 사건이라는 점을 의도적으로 내포하고자 한다. 이와 같은 수많은 인물의 등장은 소설의 필수 요소로 독자들로 하여금 사건에 호기심을 유발케 한다는 면에서 반길 만 한 점이다. 

인물 묘사나 주변 환경의 묘사 또한 매우 세밀하여 마치 눈으로 직접 목도하는 착각에 빠진다. 그러나 이와 같은 상황 묘사와 인물에 대한 장황한 설명이 자칫 이야기의 핵심에서 이탈하게 된다는 이중성을 내포하고 있어 읽는 독자에 따라 바라보는 관점이 다를 수도 있겠다. 마야 유민들이 세운 웅장하고 화려했던 아즈텍 문명, 유카탄 반도에서 벌어지는 아즈텍의 보물에 얽힌 의문점을 작가의 넘치는 필력을 통해 파헤쳐보자. 

아즈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