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의 순간에 우리는 자주 나의 부정적인 이미지와 함께 대면하게 된다. 남들에게서 버림받았다고 생각하거나 남들과 다르다고 느끼는 것이다. 무력감, 제 삶을 통제하지 못한다는 생각, 상황에 끌려가고 있다는 느낌, 때로는 죄책감, 후회, 수치심, 자신감 상실에도 시달리기도 한다. 이처럼 고독의 경험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고통을 가져다준다. 보통 고독의 순간은 우리가 혼자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감당하기 힘든 상황에 직면했을 때 찾아오기 때문이다. p.63

책에서도 언급했지만, 고독으로 고통받고 외롭다고 불평하는 사람은 많고 즐긴다는 사람은 쉽게 찾아보기가 어렵다. 살면서 고독과 싸워본 일이, 즐겨본 일이 있는가. 융은 프로이트와 학문적으로 결별한 후 자신에 대해 끝없는 몰입과 침잠을 통해 ’심리적 원형’이라는 자신만의 독창적인 학설을 정립하였고 스티븐 호킹은 루게릭병으로 말미암은 신체적 유폐가 자신에 대한 몰입을 가능케 했으며 궁극적으로 그의 이론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어줬다. 고독이라는 시간이 천재적인 강렬한 성과를 이뤄낸 것이다. 이런 사실을 나열했을 때, 우리는 보통 사람이 감당하기 어려운 엄청난 희생과 고통을 치러야 이뤄낼 수 있다는 생각이 지배적일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인간이 반사적으로 느끼는 회피와 고통의 의식으로 고독을 모면하려는 의식이기도 하다.

우리는 인생에서 겪게 되는 온갖 일들을 별 무리 없이 받아들이고 그것을 내면화하려면 고독의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고독은 피해 갈 수 없는 것이며 오히려 고독을 회피하는 것은 나 자신을 회피하는 것임을 [고독의 심리학]에서는 강조하고 있다. 고독을 통해 현실과 대면하고 삶에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내적인 성찰과 성숙한 삶을 살아가는 길, 어쩌면 고독이라는 일련의 과정들이 사색과 성찰로 귀결되는 것은 아닐까.

 

책 소개에서도 표현되어 있듯이 [고독의 심리학]은 심리적 고독감을 극복하는 실천 지침서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기존 허상을 쫓는 심리학 치유의 책과는 다르게 현실적이고 실용적이며 구체적이다. 논문과 같이 이론 위주의 책을 접하는 독자들이 흔히 느낄 수 있는 지루하고 상투적인 논의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며 고독에 대한 필수불가결한 심리학 차원의 간단하고 필수적인 이론들이 오히려 생소함과 무지함을 일깨운다. 특히 제3장 [나를 발견하고 나 자신으로 살아가는 즐거움]의 현실과 실용과 구체적인 대안 제시가 단연 돋보이는 부분이다.

 

고독과 외로움, 그리고 죽음은 그 어느 하나 나락으로 떨어질 때 모든 것이 극단으로 치닫는 위태로운 외줄타기의 일직선 상에 존재하는 요소로만 알았다. ’가장’이란 이유로 힘들어도 말을 하지 못하고 혼자서 앓는 ’가면 우울증’을 지닌 현대인, 외로움 탓에 고통 받고 감당하기 어려운 시기에 늘상 찾아오는 고독. 결국 우리는 혼자 있는 방법, 고독과 함께하는 방법을 몰랐을 뿐이다.

한 여자와 만나 44일 동안 사랑하고, 339일 동안 그녀를 찾아 헤맸으며, 2864일 동안 그녀를 바라본 한 남자의 30년에 걸친 처절하고 지독한 사랑과 집착. 그녀와 관련된 모든것을 수집하고 심지어는 그녀가 피웠던 담배꽁초 하나하나에 대한 의미까지 주인공의 머리속에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기억되어 있는 편집증이 주인공[케말]의 성격이며 그 자체로서 사랑이라는 이름의 종신보험이다. 한 여자[퓌순]에 대한 강박관념이 이토록 강할 수가 있을까.

오르한 파묵의 [순수 박물관]은 오래동안 여운을 남기는 소설이다. 1970년대와 80년대 이스타불을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은 터키 상류사회의 사랑과 결혼, 성에 대한 정체성이 관습과 개방 사이에서 혼돈의 시기를 맞이하고 정치, 경제 사회적 불안으로 과도기를 겪고 있는 지극히 혼란한 시기에서 재력있는 가문의 2세들의 사랑관, 결혼관 등의 피력속에 주인공[케말]의 홀로 사랑은 애처롭고 안쓰럽기까지 하다. 사랑하는 [케말]의 연인 [시벨]과의 약혼식을 앞두고 먼 친척이자 부띠크 여점원인 [퓌순]에게 또 하나의 사랑에 끌려 밀애를 나누는 주인공을 보고 있자니 도무지 용납을 할 수가 없다. 사랑하는 순간 아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성스러운 사랑이 불륜으로 폄하되었다는 말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 한다.

[시벨]에게 [퓌순]의 존재를 속이고 결혼 후에도 두 여자와의 관계를 유지하고자 했던 주인공 [케말]의 행동은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사랑이다. 이 소설의 내용을 통해선 정신적인 사랑이니, 육체적인 사랑이니, 그도 아니면 오직 성적 쾌락을 탐한다거나 하는 확실한 선은 긋지 않았으며 한가지, 주인공의 우유부단하며 내성적인 성격으로 길들여져가는 면은 오히려 이 소설을 끝까지 완독하게 만드는 수단으로 보인다. 사랑, 거짓, 배신, 집착, 질투 등 독자에게 어필할 수 있는 요소는 모두 갖추었다. 이 작품이 일반 로멘스 소설과 차별되는 이유는 오르한 파묵이라는 작가의 걸출한 명성도 있겠지만 책장을 넘기며 간간히 볼 수 있는 이념간의 대립과 정치와 사회의 부조리, 상류사회에 대한 회의감, 서민계층에 대한 주인공의 인식 변화를 통해 작가의 생각을 투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반길만한 작품이다.

약혼녀와의 파혼을 뒤로한 채 8년간 기혼자가 되어버린 [퓌순]의 집에서 저녁마다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는 주인공 [케말]의 모습에서, 그리고 그 집에서 [퓌순]과 관련한 사물을 하나둘씩 훔쳐내는 기이한 편집증까지 가히 그녀에 대한 집착은 소스라치게 놀랄 정도이다. 작가는 전문적인 수집가를 빌어 망상장애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지만 의학적, 학술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이는 전문가가 아닌 이상 독자이 스스로 판단해야 할 일이다. [케말] 1인칭 시점으로 서술된 작품이라 전적으로 [케말]의 생각과 상상, 추측 등 상대자의 진심과 생각을 배제한채 화자의 견지에서만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은 무척이나 답답하다. 이것도 소설의 내용에 대해 궁금증을 자아내는 또 하나의 요소라고 생각한다.

[케말]의 초기 불륜에 가까운 내용을 제외하고 본다면 집착에 가까운 주인공의 심정을 일말 이해한다. 그녀를 그토록 사랑하고 그녀의 영혼이 깃든 사물까지 사랑하는 주인공의 심정에서 왠지 쓸쓸하고 애처로움이 포개진다. 사랑하는 사람을 철저하게 자신의 새장속에 가두려고만 했던 주인공과 어린시절 정신적인 상처를 안고 성인이 되어서도 남자들의 굴레와 속박에서 지내왔던 주인공 [케말]의 연인 [시벨]. 질투와 시기속에 처참하게 희생당한 그녀의 짧은 일생은 과연 누구의 책임인가. 성과 순결에 대한 진부하거나 관대한 상념들속에 철처하게 실험의 대상으로, 옳고 그름을 가늠하기 위해 재판대에 오른 소설속의 인물들을 보며 깊은 생각에 빠진다.

비행기를 타고 가면서, 퓌순과 나의 이야기는 이스탄불 밖에서 좀 더 깊이 생각할 수 있을 것임을 알게 되었다. 이스탄불에서는 그녀가 나의 강박관념 안에서만 보였다. 그러나 비행기를 닸을 때 나의 강박관념과 퓌순을 밖에서 볼 수 있었다...p.351(2부)

사랑, 질투, 배신, 집착, 강박 뒤에 남은 것은 단하나 [순수 박물관]뿐이다. 퓌순의 립스틱, 담배꽁초, 숟가락, 성냥, 컵, 귀걸이, 재떨이 등 그녀의 집에서 훔쳐온 그녀의 모든것이 전시 될 [순수 박물관]은 2010년 이스탄불에서 개관할 예정이며 실제 책 내용 중 디자인이 조악한 입장권이 인쇄되어 있다. 이 책의 집필을 위해 실제 전 세계 박물관 5,723군데를 다녔다는 오르한 파묵의 소설 [순수 박물관]이 일부 독자들에게는 거부감이 일기도 하겠지만 소설이라는 장르의 순수 관점에선 결코 가볍거나 천박하지 않은 [케말]의 심리와 집착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하는 마법같은 소설임에는 틀림없다.

한 여자와 만나 44일 동안 사랑하고, 339일 동안 그녀를 찾아 헤맸으며, 2864일 동안 그녀를 바라본 한 남자의 30년에 걸친 처절하고 지독한 사랑과 집착. 난 주인공 [케말]이 싫다.

. 별 10개 모두 주고 싶지만 내용 중 맞춤법이 틀린 곳과 인물을 지칭하는 대목에서 타인의 이름이 잘 못 기재되어 있는 곳이 몇 군데 보인다. 그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