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관통하는 고전의 힘은 상대적으로 뒤처져 있는 문학에 힘을 실어준다.
1. 책 뜯어 먹기
내가 고전을 좋아하는 이유는 시대를 관통하고 미지의 허상에서 역사를 만나 인간 삶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주는 수많은 사유와 편린들을 면밀하게 관찰할 수 있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현대 문학의 장르도 세월이 지나 후대에 불멸의 고전으로 남겠지만, 당시의 사회상과 인간의 고뇌, 비루함, 그리고 다면적인 존재로서의 인간 군상의 모습과 이데올로기의 대립이라는 칼끝이 폐부속을 관통하며 망각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는 모습을 작가 정신이라는 시대적 요구의 견지에서 볼 때 고전 속 인간의 모습은 현시대의 인간 자화상과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고전을 위시해 소설은 마침표와 쉼표 하나로만으로 예술성을 지니는 시와는 달리, 고정화되고 관념화된 철학과는 달리 마음대로 해석하고 사색하는 길을 오롯이 독자의 영역으로 되돌려 준다는 의미에서 그 자체만으로도 매력이다.
책을 왜 읽는가? 책을 읽는 주체가 자아 정체성에 빠져 극복하기 어려운 슬럼프를 경험하고 사색을 통해 그 물음에 답할 수 있을 때까지 좀처럼 마주하기 힘든 게 독서다. 독서란 단지 수준 높은 교양인이 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책 읽는 사회 만들기 국민운동 대표이신 도정일 교수님의 말씀처럼 깨어 있는 시민, 성찰하는 인간, 생각하는 사회가 되기 위한 것이 진정한 독서의 목표이며 이것이 바로 인문학적 정신과도 결부된다.
에피소드와 함께 읽는 [세계명작 다이제스트]는 무려 55편의 고전을 수록하고 있는 예술과 지성의 집합체다. 거대한 작가와 작품의 군락이 드넓은 대양을 헤치고 먼바다로 출항을 준비하는 모습만으로도 가슴 떨림은 쉽게 진정되지 않는다. 2차 세계대전 시 스탈린 그라드에서 벌어진 독일과 소련의 전쟁, 조지오웰의 동물농장. 스탈린의 독재와 전체주의, 공산주의 이념의 타락에 커다란 실망을 느끼고 집필한 이 풍자소설은 전 세계에 이목과 관심을 집중시키며 급속도로 퍼져갔으며 오늘날 러시아 공산혁명부터 스탈린 독재에 대한 비판에 이르기까지 당시의 시대적 배경에 대한 교과서와도 같은 작품으로 평가된다.
나폴레옹의 독재가 동물들을 억압과 학살로 몰아가고, 인간과 거래를 하여 돈을 모으기 시작하며, 심지어 두 발로 걸어 다니며 인간의 흉내까지 내는 모습에서 조지오웰은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결국, 돼지들을 인간의 모습으로 그려냈지만 변질된 사회주의의 타락, 스탈린의 전체주의와 독재에 조지오웰은 안타까움과 실망을 토로한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모두 부패와 자본화라는 명목하에 권력자들의 배만 불리고 있다.
1774년 25세의 나이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으로 일약 독일의 대문호라는 칭호까지 받은 괴테. 발표 이후 독일 청년들은 베르테르를 따라 연이어 자살하는 사태를 빚어내며 금서로 지정되기도 했던 편지체 형식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세월이 지나도 명작으로 손꼽히는 이유는 [파우스트]에서도 알 수 있듯이 문호 괴테의 여성스럽고 감수성 있는 주인공에 대한 심리묘사가 아닐까 한다. 200여 년을 거슬러 올라 당시의 귀족 신분 사회의 관습적 제도에 대한 타파와 연쇄 자살로 이어지는 사회적인 파장은 오늘날 자신의 우상이었던 사람의 자살로 말미암은 모방자살 즉, '베르테르 효과'라는 또 하나의 파장을 잉태했지만, 섬세하고 유려한 문체, 사랑에 대한 애착과 진실이라는 시대적 정서는 괴테의 남성적 이치와 심리의 여성적 이치가 결합한 완벽한 문학의 정수임이 틀림없다.
고전주의,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사랑으로 번뇌하고 아름다운 죽음으로 승화한 한 청년의 낭만과 유려한 심리 묘사에 이끌려 작품 저변에 스며 있는 주제를 묵과한다면 일반 로맨스 소설과도 다를 바 없다. 유럽 문학사에 등장한 최초의 비극 소설로 평가되는 이 고전은 각 주인공의 심리묘사가 압권으로 괴테의 사랑관, 삶과 죽음 등에 대한 사상을 내포하고 있으며 이는 곧 괴테 스스로에 대한 삶의 참회이자 고백이기도 하다.
"지금 내가 하려는 행동은 지금까지 내가 해온 행동 중에서 가장 훌륭한 행동이며, 지금 내가 가려는 길은 지금까지 내가 걸어 온 길 중 가장 훌륭한 길이 될 것이다."....P. 107(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 중)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개별 작품에 대한 스토리가 약간 빈약하다. 물론 대부분 작품을 접했기에 연상되는 측면이 있으나, 처음 대하는 독자들에겐 그리 큰 감흥을 호소하기 어렵다. 작품 하나하나의 기저에 흐르는 감수성 있는 문맥과 작가의 정신, 시대정신에 완벽한 혼연일체가 되길 기대한다면 정본을 완독하길 추천한다.
2. 끄트머리
이 책은 청소년들에게도 읽기에도 부담 없는 책이다. 아쉽게도 입시에 논술이라는 항목이 강제적으로 편성되어 있다는 사실이 슬프게도 하지만, 분명한 것은 최소한의 자기주장 내지 논증과 논리에 대한 변별력을 높이는 방법이 독서에 있다는 사실은 이미 방증 된 결과이다.
[세계명작 다이제스트], 역시 시대를 관통하는 고전의 힘은 상대적으로 뒤처져 있는 문학에 힘을 실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