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예술의 대서사시

1. 책 뜯어 먹기

막연한 동경은 금물. 어떻게 보면 건축가라는 직업이 부와 명성을 가져다  준다는 사실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난 대학에서 건축과를 졸업하고 치열한 사회의 경쟁 속으로 뛰어들었다. 사실 그때만 하더라도 신도시 개발로 말미암아 건축가는 변호사와 같은 고소득 계층으로 분류되었고 수익 대다수를 세금으로 토해내던 시절이었다. 그렇다고 속물처럼 부를 위해 거창한 목표를 세운 것은 아니다. 다 쓰러져가는 도심 재개발 현장을 보며 내가 사는 대한민국에서 땅 한 평 갖고 있질 못한 사람들의 애환과 고뇌 속에서 함께 고민하고 대안을 찾고자 했던 경험은 아직도 작은 떨림으로 남아 있다.

기능, 구조, 미를 추구하며 순수하게 시작했던 건축인으로서의 생활은 1991년 20대 초반에 시작되었고 그 속에서 적잖은 실망과 분노를 접할 수 있었으며 과연 이 나라의 진정한 의식은 사라져가고 있는가의 의문은 더욱 커져만 갔다. 공무원과 설계사무실의 끊임없는 유착관계, 그 안에 깊게 뿌리내린 불신과 불행의 덫은 발목이 아니라 목을 옥죄어 있었고 무분별한 자연파괴와 주거환경 개선 지구라는 명목하에 자행되는 행태, 주거환경 개선은커녕 악화의 길로 접어 섰다. 결국, 15년간의 설계장이를 거두고 외국에 설계사무실을 차렸다. 하지만 현실과 이상의 차이를 답보한 채 속물로 전락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소스라치게 놀란 기억도 빈번하게 많았다.

그때마다 초심을 위해 대학 때 꾸준히 사 모았던 건축계 거장들의 작품을 스케치하고 재독 하며 마음을 다잡기도 했으며 혼신을 기울여 만들어낸 건축물들의 포트폴리오를 보며 정신을 가다듬기도 했다. 우리는 건축가들의 일상을 예술이라고 말하곤 한다. 그것도 종합예술. 인간의 척도를 파악하여 최적의 동선으로 삶의 질을 개선하는 작업, 게다가 미적 요소와 디자인의 첨가는 한 건축물의 얼굴을 대표하는 작업이기도 하기에 그만큼 얕잡아 볼 직종이 아니라는 것이다. 프랭크 게리는 천재 건축가로 정평이 나 있는 인물이다. 일본의 건축가 안도 다다오는 세계적으로도 인정받는 건축가로 그의 실제 직업은 미술가였으나 카메라 하나를 들고 세계 여행을 하면서 건축물에 매료되어 건축가로 변신한 인물이다. 프랭크 게리의 미친년 널뛰는 듯한 스케치 한 장의 가치는 과연 얼마일까. 값으로 평가할 순 없겠지만, 미술이라는 예술의 한 부분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직업이 건축이라는 이야길 하고 싶은 것이다.

[프랭크 게리와의 대화]를 읽고 있으면 그의 건축에 대한 광적인 집착이 아름답다. 그에게는 섬광처럼 내리 꽂는 직관과 콘크리트가 가진 차가움에 정서적인 생기를 불어넣는 인술은 가히 거장다운 향을 건축물 곳곳에 흠뻑 베어낸다. 그의 디자인과 구조를 보라. 때론 물과 같은 유연함과 때론 위태롭지만 강직하게 살아 있는 충실한 작품이 그를 대변하는 증거이다. 전 세계에 퍼져 있는 그의 발자취는 건축계의 기념비적인 일이 아니던가. 얼마 전 일이다. 건축가 이종호 교수는 이순신 기념관 설계자다. 회화나무를 심어 건물과 조경이 하나로 조화를 이루는 공간을 설계했으나 실제 조경에는 반영되지 않았다. 당국의 일방적인 설계변경은 건축가에겐 모독이다. 건축은 불도저식 토목공사와는 다른 문화란 이야기다.

2. 끄트머리

오늘날 우리는 둥근 지구에서 네모난 집을 짓고 네모난 방과 네모난 사무실에서 잠을 자고 일을 한다. 둥글다. 네모나다. 틀림 아니라 다름이지만 이 작은 공간에 인간을 위한 배려를 숨겨놓은 인물이 바로 건축가라고 감히 얘기 하고 싶다. 하나의 프로젝트를 완성하기 위해 건축가는 수많은 상상과 현실을 마주하며 자신만의 실타래를 풀어낸다. 그들의 무한의 상상력에 갈채를 보내며.

나폴레옹 3세 시기 파리에서 인상주의 작가들을 만나다.

1. 책 뜯어 먹기

전시회에서 열리는 인상주의 작가들의 특별전 등을 통해 근래에 들어 부쩍 우리 곁에 가까워졌다는 생각을 해본다. 자주 전시회에 자주 가진 못해도 아주 가끔 가족과 주말에 즐기는 작품 관람은 우리의 미적 양식을 흥건히 적셔주는 역할을 하며 이젠 그들의 생에 대한 관심은 더욱 궁금하게 만들어만 간다. 지난주에 읽었던 세계 명작 다이제스트에서의 90% 부족함을 아쉽게만 받아들였던 차에 인상파 화가들의 진솔한 기록이라는 부재의 [마네와 모네 그들이 만난 순간]은 허기진 아쉬움을 채우기에 모자람이 없다. 왜 그들의 삶이 궁금한가. 고전 미술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들이긴 하나 그들도 우리네 보통 사람과 똑같은 삶과 열정과 욕망을 지닌 인간이며 그 이하 이상도 아니다.

마네, 모네, 드가, 모리조, 르누아르, 활자만으로도 이 얼마나 가슴 벅찬 이름이던가. 오페라 극장에서 혹은 처형장에서, 드넓은 들판 위에 한가롭게 돌아가는 풍차, 오베르쉬르우아즈의 교회에서 꽃핀 나무가 있는 퐁투아즈까지 역사를 넘어 그들과 몽마르뜨 언덕 위에서 예술과 삶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받는 상상은 술이 없어도 취기가 그득하게만 느껴진다. 작품 하나하나에 대한 감정이입도 매력이거니와 이들의 삶 또한 마법의 독주와 같이 매력이 넘쳐 흐른다. 마치 내가 그 시대를 살아가며 정식 화가가 아닌 모사화가로 그들과 마추치기를 간절하게 기원하는 것처럼.

[마네와 모네 그들이 만난 순간]은 인상주의의 탄생과 형성, 그리고 분열과 마지막 기간의 한 시대를 풍미한 작가들 삶과 당시의 역사를 담고 있는 책으로 얼핏 따분하고 무료한 내용이겠거니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거장들의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자니 절제하지 못하는 감동과 흥분이 쉽게 가라앉질 않는다. 저자 수 로우가 이 책을 집필하기까지 조사한 방대한 참고 문헌과 방문한 미술관만 보더라도 대단하게 생각되지만, 전체적인 줄거리의 흐름을 흐르는 강처럼 유유하게 표현했다는 것이 더욱 놀랍다. 당시 역사의 문맥과 줄기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녀가 뿌린 양념과 글 쓰는 손맛 때문인지 아니면 거장들의 삶이어서 그런지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2. 끄트머리

사회의 예술적 편견에 타는 목마름에도 굳건히 걸어온 그들이었기에 오늘날 우리가 그들을 거장이라 부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다 읽고도 다시 책 끝 부분을 장식한 그들의 작품을 매만지며 행복함을 느낀다. 비록 간접적인 만남이라 할지라도 이 행복은 여운이 길다. 작가 태오는 이렇게 말했지. "눈뜨고 창밖을 살펴보세요. 하루 분량의 행복이 별처럼 반짝이며 당신의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릴 겁니다." 오늘 내게로 쏟아져 내리는 행복은 이들과 함께해 더욱 특별한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