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자연과 함께 초록을 꿈꾸며 살아갈 것이다.

1. 책 뜯어 먹기

소박한 여행이란. 여행은 현대인들의 필수 요소로 자리 잡은 지 오래되었다. 방전된 삶을 재충전하기 위해 쉼을 필요로 했던 시기가 있었다면 이제는 늘 가까이 생의 여유로움을 맞이하기 위해 인근의 편안한 공간을 곁에 두고 기꺼이 함께한다. 이제 아이들의 방학이다. 아이와 어른을 불문해 회사에서도 휴가 일정을 잡기 위해 신청서를 접수한다. 언제부터인지 휴가라는 것은 여름휴가로 인식되기 시작했고 천편일률적인 사회의 수레바퀴에 희생양이 된 듯 원치 않는 놀음으로 유혹받기도 한다. 돈이 결부된 무의미한 여행이 저어할 무렵 둘레길이라는 놈이 바짝 곁에 서 있지만, 시간의 노예가 된 사회인들은 이마저 외면하기 일쑤다,

비타북스에서 펴낸 [서울 사계절 걷고 싶은 길]을 보면 참 요상한 야릇함을 느낀다. 사실 이 여행서는 여행서라기보다는 차라리 산보 차원과도 같은 뉘앙스가 풍긴다. 이유인즉, 사람은 나이에 따라서 여행의 느낌과 향기가 다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단 한 명의 벗과 함께한 동해안 일주와 대학 시절 자전거 전국 일주, 아내와의 여행, 딸아이가 출생하고 함께했던 여행길의 느낌이 모두 다르다는 점이다. 시대가 변하고 저마다의 생각이 무르익을수록 여행에 대한 가치관이 이렇게 변하는 것을 보면 연륜이라는 것을 무시하지 못하겠다는 생각이다.

먹고 즐기고 했던 여행이 2~30대였다면 나를 발견하고 성숙한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이 어찌 보면 불혹을 넘긴 나이가 아닐까 한다. 때론 고된 삶에 펴지지도 않는 커다란 날갯짓에 힘겹지만, 여유를 바라는 고니의 긴 여정의 끝을 느끼듯 퍼덕이는 바람결에 마음을 맏길 수만 있다면 여한이 없으니 세월이 무섭기도 하다. [서울 사계절 걷고 싶은 길]을 받아 들고 내가 살던 백사실과 인왕산 줄기 등을 보니 옛 추억이 아른하다 못해 눈물이 핑 돈다.

[서울 사계절 걷고 싶은 길]을 통한 여행은 경제적인 부담은 고사하고라도 역사와 자연을 한껏 마음에 모금을 수 있는 안내서다. 요즘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홍보차원에서 발간하는 책들과는 차원이 달라 가족과 함께 소박한 여행을 꿈꾸는 사람들에겐 의미가 큰 책으로 생각된다. 110개 코스와 총 길이 720km, 초심자를 위해 난이도를 정리하고 테마별로 다듬어 서울의 숨겨진 걷기 여행을 소개하는 이 책은 누가 봐도 홀라당 반 할만 한 책이다. 이 책에 소개된 ’웰빙 걷기 여행을 만드는 네 가지 걷기 수칙’이 눈길을 끈다. 출발 전 스트레칭, 천천히 걸어야 하며, 걸을 때는 가슴을 펴고 발은 11자로 곧게 펴고, 여행을 마친 후 스트레칭은 필수라는 점. 

집 인근에 도심에서 보기 어려운 작은 산이 하나 있다. 도서관 옆 길을 따라 올라가면 작은 언덕 봉우리를 마주하게 된다. 인생과 대비하자면 양희은 씨의 노래와 같이 그저 작은 봉우리일 뿐이다. 더 큰 봉우리가 우리의 앞에 있고 상념과 쇄력이 다하는 날까지 몇 개의 봉우리를 넘어야 할 지 모른다. 이 책에 소개된 산보 길과 함께 하는 여정이라면 난 720km의 여정도 행복하게 받아들이겠다.

2. 끄트머리

먼 길 나설 필요 뭐가 있더냐. 가까운 언덕, 개울가가 흐르는 곳이 있다면 그저 오르고, 발 담가 보자. 혹여 개발에 밀려 이와 같은 곳이 드물다면 이 세태를 원망하자. 그게 인간사는 역사이고 자연이 파괴되는 모습 그대로가 역사이다. 나는 확신한다. 인공으로 만들어진 자연은 재앙이라는 것과 미래의 아들과 딸들은 현명하기에 그들은 자연과 함께 초록을 꿈꾸며 살아갈 것이다.

젊은 날의 초상

1. 책 뜯어 먹기

인간의 본능은 한걸음 내딛는 것으로 시작된다. 직립보행이 가능한 인간, 내가 태어나 걸음마로 세상 처음 땅을 밟아본 것을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저 부모님의 지난 추억으로 어린 새끼의 한 걸음에 자연의 위대함으로만 기억될 뿐. 내가 부모가 되고 아이를 낳아 키워 몸소 체험해보니 책을 통해서나 느낄 수 있었던 자연의 경외감을 느꼈다. 갓 낳은 아이가 몸을 뒤집를 수차례, 발라당 자빠져 앙앙 울어대지만 이내 몸을 뒤집고 엉거주춤한 모습으로 기어 다닌다. 때론 보행기에 의지하며 날쌘 걸음으로 횡간을 질주하는 모습은 '바람 돌이 소닉'을 연상케 한다. 그 무엇보다 감동을 자아내는 첫 걸음마. 두려움에 한 걸음 한걸음 걷다가 넘어지고 또 넘어져 무릎과 몸이 멍투성이는 걸음에 성공한 훈장과도 진배없다. 그렇게 그들은 인간으로 살아가는 첫 경험을 한 것이다.

모든 일의 시작에는 두려움이 존재하며 용기라는 것을 필요로 한다. 인간의 삶에서 이 두 놈은 필요충분 요건으로 존재하며 때로는 반비례와 정비례의 그래프를 그리며 평생을 함께한다. 용기가 없으면 두려움조차 존재치 않을 것이고, 두려움이 없다면 용기가 샘솟을 것이며, 한 번이 아니면 두 번이고 도전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 아닐까. '칼의 노래'의 작가 김 훈 씨는 "희망이 없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비참한 일이던가"라고. 하지만 더욱 비참한 일은 두려움에 시도조차 하지 않는 삶이다. 노련과 능숙이란 말은 하늘에서 '툭'하고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실패를 거듭한다는 것은 역설적인 표현을 빌자면 방앗간의 쇠뭉치가 담금질로 강해지는 것과 돈 주고 배울 수 없는 인생의 멘토이자 조력자다.

문예출판사에서 펴낸 [한 걸음 내딛는 용기]는 사회라는 또 다른 세상에 첫 발걸음을 내딛는 이들에게 추천할만한 책으로 작가의 집념이 대견스럽다. 어리면 어리다고 봐야 할 나이지만 그 나이가 무슨 대수던가. 암 투병으로 유명을 달리한 어머니의 마지막 한 마디 '고마워...' 그는 임계치에 다다른 삶의 방황에서 목표와 희망이라는 깨우침과 더불어 3년 만에 6대륙 최고봉 단독 등정에 성공한다. 저자 구리키는 히말라야 8,000m 3개 봉을 무산소 단독으로 등정하고 마나슬루 산정에서 스키 활강에 성공하며 2009년 가을, 일본인 최초로 에베레스트 무산소 등정을 시도한다.

우리는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인생을 마라톤에 곧잘 비유한다. 목표와 이상이 있다면 빠름 보다는 느림의 미학이 필요하다. 누가 더 일찍 도착하느냐는 중요치 않다. 그 과정에서 삶의 애환과 고락을 함께하며, 인간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행복하게 느끼고, 체험하고, 연륜이라는 주름을 이마에 새기며, 여유로움을 유지한 채 끝까지 완주했다면 그것이 더욱 빛나는 길이 아니던가. 언제부터인가 우리에겐 장거리보단 단거리 달음박질에 익숙해져 왔다. 시대적 환경이라지만 이는 우리가 모두 느끼는 감정과 과정이 아니다. 개개인의 다름은 우리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예의이다.

2. 끄트머리

아이가 두려움이 있음에도 첫걸음을 걷고 이내 뛰기 시작한다. 속이 찬 어른이라면 지나친 채근보다는 격려와 사랑으로 입지를 위해 일어서고자 하는 이들에게 격려와 칭찬이 필요하지 않을까. 시도하자. 젊은 날의 두려움은 한낱 사치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