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패배자라.

 참 아이러니한 말이 아닐 수 없다. 위대하다면 적어도 패배자보다는 승리자가 더 어울리는 말이 아닐까.

 이 책은 위대하지만 다만 승리의 기쁨을 맛보지 못한 채 어둠 속으로 비껴간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작가는 역사 속의 패배자들을 주제에 따라 10가지 목록으로 분류하고, 각각의 항목에 맞게 적절한 인물들을 그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다. 비참한 패배자의 이야기부터, 영광스러운 패배자까지 다양한 패배자들을 작가는 그려내었다. 비참한 패배자로 ‘골리앗’과 멕시코의 ‘막시밀리안 황제’를 예로 들었고, 영광스러운 패배자로는 ‘체 게바라’, ‘고르바초프’ 등을 작가는 꼽고 있다.

 꼭 자기만의 잘못이 아니라, 배신으로 승리를 빼앗긴 사람이나, 승리를 사기당한 패배자들의 이야기까지도 다루고 있다. 여기에는 ‘루이 16세’나 ‘빌헬름 2세’도 포함되어 있다.

 마지막 항목으로는 쓰디쓴 패배로 쓰러졌지만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섰던 패배자들의 이야기로 끝을 맺고 있는데, ‘윈스터 처칠’과 ‘덩 샤오핑’ 등이 그 ‘영광’의 자리를 차지했다. 

 승리를 거머쥔 사람을 빼고 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두 패배자가 된다. 패배의 쓴 맛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패배’라는 단어가 얼마나 괴로운 말인지, 또 얼마나 무서운 힘을 갖고 있는 말인지 짐작할 것이다. 그러나 말처럼 무서운 이‘패배’를 맛보고서 그대로 나가떨어진다면, 더 이상의 발전은 고사하고 나락으로 한없이 떨어지는 것만을 반복하겠지.

 이 책, 위인들의 패배를 거울삼아 독자를 패배로부터 승리로 이끌어주려는 작가의 의도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평범한 사람들이 평생을 살면서도 겪을 리 만무한 일들만을 겪은 위인들의 이야기가 내게, 혹은 이 책을 읽은 독자들에게 실질적으로 큰 도움이 되리라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또 실패했나? 그럼 또 딛고 일어서라’라는 등등의 메시지는 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누구든지, 자신이 패배자로 기억되고 싶은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을 통해 일어서는 법을 배우는 것도 간접적인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실패는 새롭게 출발할 기회를 준다.

 그것도 좀 더 영리하게 출발할 기회를.

                   - 이사크 바벨 -

 승리자로 가득찬 세상보다 나쁜 것은 없다.

 그나마 삶을 참을 만하게 만드는 것은 패배자들이다.

 

 이제야 이 책을 읽었다는 사실에 솔직히 부끄럽다. <위대한 개츠비>라고 하면, 누구나 한번쯤은 읽어봤음직한 책이었는데 말이다. 몇 번 대화의 화제로 <위대한 개츠비>가 올라온 적이 있었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는 말을 그 때 비로소 제대로 실감했었던 것 같다. 나는 가만히 읽은 척 잠자코 있었다. 그리고 ‘돌아가면 이 책, 꼭 사서 읽어야지!’ 하고 마음먹었던 것이 한참 전으로 기억되는데 이제야 행동으로 옮기게 되었다.

 내가 읽은 <위대한 개츠비>는 ‘보성 출판사’에서 번역되어 나온 소설이었다. 다 읽고 나서 ‘민음사’의 <위대한 개츠비>를 다시 읽었다. 처음에 보성 출판사의 책을 고른 이유를 묻는다면, 가장 눈에 먼저 띄어서다. 서점에 들렀다 우연히 <위대한 게츠비>의 제목을 보게 되었고, 책에 관한 정보가 부족하여 읽으려고 벼르고 있었다는 사실만 떠올라 집어든 것뿐이었다.

 번역된 소설을 읽을 때는, 특히 고전처럼 출판사가 여럿인 경우에는 그 출판사도 고려대상에 집어넣어야 한다는 사실을 이미 <오만과 편견>을 통해 충분히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또 이런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위대한 개츠비>는 두 출판사의 책을 읽어본 내 경험상 출판사에 따라 독자에게 적어도 조금씩은 다르게 전달될 것이 분명했다.

 번역하는 사람은 작가의 의도와 생각을 아주 정확하게 표현해낼 수는 없다. 그나마 불평하지 않으려면 결국은 내가 원서를 읽을 만한 실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은 없는 것 같다. 여기서 또 다시 한번 외국어 공부의 필요성을 느낀다.  

 전쟁 직후의 미국 사회, 물질관이 팽배한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는 위대한 개츠비, 부끄럽게도 나는 그런 시대상까지 꼬집어낼 만큼의 넓은 시각을 갖고 있지 못해서, 그저 개츠비만을 그것도 겨우 바라볼 수 있었다.

 ‘야망으로 뭉친 개츠비의 인생을 그린 소설인가보다’ 하는 생각, 그리고 신비롭게 그려지던 초반에서부터 점점 소설 속으로 빠져들 때쯤에 개츠비의 아름다운, 또 동시에 가슴 아픈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고전 작품을 읽는 것은 신간을 읽는 것과는 또 다른 즐거움을 준다. 단어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힘을 가지고 있는 ‘고전’작품을 읽었다는 뿌듯함과 함께 신간에서는 느껴지지 않는 고전만의 아름다움이 있는 것 같다.

 달라진 물질관과, 달라진 인간관계 속에서 살아야 했던 개츠비를 내세워 나또한 많은 것을 생각하고 배울 수 있었던 점이 좋았다.

 지금 내 앞으로도 읽어야할 책이 그야말로 산더미같이 쌓여 있지만, 시간이 된다면, 아니 시간을 내어서라도 <위대한 개츠비>를 또 한 번 읽어보고 싶다.

   

 사랑이 부르거든 그를 따르라.

 그 길이 힘들고 가파를지라도

 사랑의 날개가 감싸 안거든

 그에게 온몸을 내맡겨라.

 날개 안에 숨은 칼이

 그대를 상처 입힐지라도

 사랑이 말할 때는 그 말을 믿어라.

 폭풍이 정원을 폐허로 만들듯

 사랑의 목소리가 그대의 꿈을

 뒤흔들어 놓을지라도

            - 칼릴 지브란 『예언자』-

 

 첫 번째, 표지에 끌려서.

 두 번째, 띠지 속 작가의 얼굴에 끌려서.

 단지 이 두 가지 이유로 서점에서 이 책을 집어 들었다. 클레르 카스티용이라는 작가가 누군지 몰랐고, 제목과 표지그림을 미루어 사랑과 관심이 필요한 아이를 소재로 한 성장소설이라고, 혹은 떠나버린 연인을 향한 질문이라고 내 맘대로 지레짐작을 해버렸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느낀 바라면, 이렇게 독자가 제멋대로 상상하게 만들어놓은 뒤, 그 상상을 깨뜨려 자신의 세계로 독자를 빨아들이는 것이 진정한 작가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우선 이 작가. 참 매력적이다. 매년 한 편씩의 소설을 써서 내어 놓는다고 하니 글쓰기에 대한 천재성을 타고난 걸까, 아니면 그만큼 글을 쉽고 가볍게 쓰는 걸까. 둘 다 부럽긴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했다.

 분명 어린아이로 등장하는 주인공이자 서술자 ‘나’는, 인생고를 다 겪고 황혼 속을 살고 있는 사람처럼 그려진다. 묘사할 수 있는 한에서 최악의 상황을 그려내라면 바로 이 책이 아닐까. 사랑이라는 것을 받지 못한 ‘나’는 사랑을 주고받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채 그대로 성장한다.

 나는 나의 혼수상태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못된 별명을 붙여주면 마음이 상해

 더 악화될까

 슬픔이라 부르기로 했다.

 슬픔아, 내 눈 앞에서 사라져줘.

 이제 날 내버려둬.

 정말로 이 책 속의 ‘나’가 존재한다면, 좀 더해서 하나가 아닌 여럿의 ‘나’가 존재한다면, 이 세상은 어떨까. 생각만으로도 순간 오싹함이 느껴진다.

 ‘나’는 가장 사악한 사람으로 등장하고 있지만, 실은 가장 여린 사람이 아니었을까? 사랑받지 못해 사랑받는 방법을 몰랐다. 사랑받는 방법을 몰라 사랑을 주려는 사람에게 도리어 상처를 주었다. 이게 어떻게 ‘나’만의 잘못이란 말인가?

 사랑받지 못해 어떻게 사랑을 주어야 하는지도 몰랐다. 사랑을 주는 방법이 잘못되어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준 것이 또 어떻게 ‘나’만의 잘못이냐 말이다.

 어떤 말이 타인에게 상처가 되는지, 반대로 다른 이의 어떤 말이 자신에게 상처로 남는지조차 ‘나’는 알지 못한다.

 

 한 마디로 <왜 날 사랑하지 않아?>에는 사랑의 소통이 부재중이다. 그래서인지, 끊임없이 사악하고 악독한 ‘나’가 쉴 틈 없이 타인에게 고통을 주는데도 오히려 동정은 ‘나’에게로 향한다. 제대로 사랑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어쩌면 이게 이 책을 읽고 있는 나의 모습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무슨 생각해?”

 “아무것도,”

 “누구 생각?”

 “어쨌든 당신 생각은 아냐,”

 이 책을 읽지 않고서는 상상조차 불가능한 것들로 가득 차있다. 말 그래도 책 속은 엉망진창이다. 그 엉망진창 속에서 가슴 한구석이 아파오는 것을 느꼈고, 바르게 사랑해야겠다고, 바르게 소통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누구를 위해서도 아닌 바로 나를 위해서 말이다.    

 꼼짝도 않고 있으면,

 아무도 없는 빈 침대 위를 지나치듯

 공기가 내 위를 스쳐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