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은, 나를 주인공으로 해서 펼쳐지는 이야기다. 당신의 삶 역시 당신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한 편의 이야기가 되겠지. 그렇다면, 서로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나와 당신이 친분을 만든다면, 내가 당신 이야기의 등장인물이 되는 걸까, 반대로 당신이 내 이야기로 흡수되는 걸까. 그것도 아니라면, 나라는 세계와, 당신이라는 세계가 만나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거라고 할 수 있을까?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 이 책의 제목에서 나는 어떠한 줄거리도 추측해낼 수 없었다. 창피하게도 코인로커가 뭔지도 몰랐으니까.
이야기는 정말 독특하게 진행된다. 이사카 코타로가 과거와 현재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바람에, 이 이야기에 적응이 될 때까지는 읽는 데 어려움을 느꼈다. 그리고 과거와 현재 속에서 이야기는 두 명의 “나”가 서술해나간다. 과거에는 가와사키와 부탄사람인 도르지, 그리고 그의 연인 고토미의 이야기가, 그리고 현재에는 새로운 가와사키와 이웃집에 이사 온 대학생 나, 그리고 펫숍을 운영하는 레이코 씨의 이야기가 있다.
처음 이사 가면 누구나 그렇듯, 이웃이 누굴까 하는 궁금증과 동시에 설렘이 생기는 것 같다. “나”역시 그런 설렘을 가진 것을 발단으로 해서 원치 않게 이웃인 “가와사키”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가와사키는 첫 만남에서 현재의 ‘나’에게 서점을 습격하자는 제안을 한다. 서점을 습격해서 대사전을 강탈하자고. 나는 역시 또 원치 않았지만, 가담하게 된다. 그리고 점점 그의 이야기 속으로 깊숙이 빠져든다. 현재는 현재대로, 과거는 또 나름의 과거대로 이야기가 절정으로 흘러간다.
과거에 애완동물 납치사건이 있다면, 현재에는 대사전 강탈사건이 있고, 과거에 가와사키와 도르지, 고토미가 있었다면, 현재에는 나와 가와사키, 그리고 레이코 씨가 있다. 이렇게 과거와 현재는 시간이 다르다는 것만 빼면 놀랍도록 아주 많이 닮아 있었다. 그리고 그 연결을 코인로커가 해주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의 놀라운 기지였는지, 번역가의 센스였는지는 나는 알 수 없지만, 쉼표의 힘이 참 대단하다는 것을 느꼈다. 반점으로 표현한 쉼표는 문장 안에서 짧은 휴지를 나타낼 때 쓰는데, 여기서의 반점은 휴지라기보다는, 부탄 사람인 도르지가 일본어에 서툴다는 것을 직접 설명해주는 것보다 더 큰 효과를 보여주었다. 반점을 이렇게도 활용할 수 있다니, 이런 작은 생각과 배려에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고맙고 놀라웠다.
마무리 부분을 남겨놓고 나도 모르게 큰 숨을 들이마셨다. 끝으로 갈수록 그들의 이야기는 흥미진진해졌고, 점점 추리 소설적인 성격을 띠었다. 이렇게 이야기 속으로 빠질 수 있었던 일본 소설이 있었나 하고 잠깐 생각해보았다. 처음인 것 같다.
밥 딜런의 노래와 집오리와 들오리의 만남과 코인로커의 역할.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이야기의 전개에 이야기의 끝에 가서는 작가의 힘에 다시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책을 다 읽고서 이야기를 곱씹어보니, 나쁜 일을 꾸미면서도 엉뚱하면서도 순수하고, 어린아이 같은 가와사키가 참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는 이야기를 마치면서 그 뒤의 이야기에 대해 독자에게 단서를 제공하는 동시에, 상상력을 발휘해볼 기회까지도 주었다.
밤은 인간을
잔혹하게도 만들고,
정직하게도 만들고,
센티멘탈하게도 만들어.
결국 경솔하게 만드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