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만나러 갑니다]의 작가 이치카와 다쿠지의 소설이

이 영화의 원작이라고 한다.

과연 감동 포인트가 [지금 만나러 갑니다]와 비슷한 면이 있었다.

건강상의 문제로 사람들을 피하게 된 외로운 남자주인공과,

시간을 거슬러서라도 그런 남자주인공을 사랑하려고 하는

신비로운 여자주인공이 등장하는 점이 비슷하다.

 

 

피부병에 걸려 바르게 된 약 냄새가 남들에게 불편을 끼칠까 염려하여

사람들을 피하게 된 주인공 마코토(타마키 히로시)는

대학에서 유난히 남들보다 신체 성장 속도가 더딘

시즈루(미야자키 아오이)라는 신비한 소녀를 만나게 된다.

시즈루와 함께 지내면서 마코토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고,

시즈루와 사진을 찍는 취미를 공유하면서

사진작가가 되는 꿈도 품게 된다.

그러나 시즈루는 알고보니 성장하면 죽는 병에 걸렸다는데...

 

 

영화 속 마코토의 대사처럼,

사랑은 반드시 '연인'의 모습이어야만 하는 건 아니다.

연인의 모습이 아니기에 알아보지 못하는 사랑도 있는 것이다.

성장한 '여성'의 모습만 아니었을 뿐

어린시절 첫사랑처럼 다가와

때로는 여동생처럼, 때로는 엄마처럼...

모든 사랑의 모습으로 존재했던

마코토의 수호요정 같은 존재, 시즈루.

[지금 만나러 갑니다]를 이미 본 사람이라면

감동이 조금 덜할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만나러 갑니다]를 감명깊게 본 사람이라면

이 영화 역시 마음에 들어할 거라 장담할 수 있다.

 

책을 단순한 이야기가 아닌

작가가 시공을 초월하여 내게 보내온 편지,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재밌게 읽을 수 있다.

1인칭 화자나 전지적 작가의 시점이 아닌,

아는 사람들의 소식이 담긴 편지를 읽는 듯한 기분으로

가볍고 유쾌하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면서도

그 안에는 무거운 내용을 담고 있다.

2차대전 당시 독일군에게 점령당하여

비참하고 궁핍한 생활을 했던 건지 섬의 사람들.

전쟁 에세이스트인 주인공 '줄리엣'은

그런 암울한 시기에도 책을 읽으며 친목을 쌓았던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의 존재를 알게 되고,

에세이 집필을 위해 건지 섬의 사람들과 편지를 나누면서

점점 건지 섬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마치 동경했던 책 속의 사람들을 만나 친구가 되듯,

줄리엣은 건지 섬에 가서 북클럽 회원들과 함께 생활하며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이 소설을 보면 작가는 따로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주인공인 줄리엣이 유일한 작가로 설정되어 있지만,

실제 이 책을 만들어낸 건 줄리엣의 주변 사람들이 보낸 편지이다.

줄리엣은 단지 '궁금증'을 느끼고 '관심'을 가지게 된 최초의 사람일 뿐,

그런 줄리엣에게 자신의 사연을 알려주고자 하는

건지 섬의 사람들이 쓴 편지글이 그대로 소설이 된 것이다.

누구나 사연은 있다.

단지 전해야 할 사람을 알지 못할 뿐.

이야기를 전해야 할 사람과, 전하고 싶은 내용이 있다면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다.

줄리엣에게 편지를 보낸 건지 섬의 사람들처럼.

그것이 이 소설이 오로지 편지글로만 엮인 의미가 아닐까?

 

[채링크로스 84번지], [빨간머리 앤],

[키다리 아저씨], [오만과 편견]

이 소설들을 재밌게 읽은 사람이라면

당연히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도 마음에 들어할 것이다.

[창작 면허 프로젝트]와 [모든 날이 소중하다]를 통해

국내에도 잘 알려진 드로잉 저널 계의 권위자, 대니 그레고리.

대니 그레고리는 '일상 드로잉'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사람들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일 것이다.

 

드로잉을 예술로 정의하느냐 마느냐는

사람의 미의 기준에 따라 다르겠지만,

숙련된 예술가의 노트일수록

습작이라는 이유로 버리기는 아까운 그림들이 수두룩하다는 건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일 것이다.

 

결코 완성된 그림이라 할 수는 없지만,

미완성이라기엔 또 너무나도 잘 그린 그림.

많은 아름다운 그림들이 습작이라는 이유로, 미완성이라는 이유로

누구에게도 공개되지 않고 예술로서의 생을 마감한다는 걸

대니 그레고리는 잘 알고 있었고, 그런 그림들을 살려내고 싶어했다.

 

그래서 많은 예술가들의 작업노트에서

빛나는 부분만을 뽑아 책을 내게 되었으니,

그게 바로 이 책, [예술가의 작업노트]이다.

 

자신만의 드로잉북을 가득 채운다는 것은

일상을 새로운 발견으로 가득 채우게 된다는 것과 같다.

그냥 바라보는 것보다는 그림을 통해 느끼고 표현함으로써

새로이 발견하게 되는 것이 더 많다.

평소 그림을 그리고 연습장을 채우는 게 취미인 사람들은

이 책을 보고 공감을 느낄 것이고,

평소 그림을 그리던 사람이 아니더라도 이 책을 보면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던 어린시절 감성을 되찾고 싶어질 것이다.

대니그레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