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서점을 찾은 크리스마스날, 언제가는 꼭 한번 만나보고 싶었던 작가에 대한 어렴풋한 기억과 함께 빨강색의 강렬함이 나를 사로 잡았다. 이천원을 주고 업어온 이 책, 매우 만족 득템이다. 머리도 식힐겸 확 끌리는 소설책에 목말라있던 찰나 자연스럽게 손이 갔는데 아멜리 노통브의 첫 만남, 굿이다.

 

적의 화장법에는 두 주인공이 등장한다. 제롬 앙귀스트라는 인물과 텍스토르 텍셀. 공항에서 비행기가 연착되어 제롬 앙퀴스트는 책을 보고 있다. 그리고 그의 옆에 텍스토르 텍셀이란 인물이 어느순간 등장하여 끈질기고 끈질기게 질문을 하고, 제롬 앙퀴스트에게 대답을 갈구하는 것으로 진행이 된다. 텍스토르 텍셀은 원하는대로 대화가 진해되지 않으니 그럼 자기 이야기를 들어라는 식으로 과거의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하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이 둘의 던지고 받고, 받고 던지는 대화로 구성된 내용은 속도감도 있고 흥미진진하다.

 

처음은 궁금증과 함께 대화를 따라가게 되다가 어느순간 텍셀이 던지는 과거에 담긴 의문에 사로잡히게 한다. 어느순간 정체가 완전히 들어난 것 같으면서 긴장을 놓으려 할 때쯤, 머리를 쾅 치고 나오는 반전에 반전은 이 책의 묘미이다. 표지도 그렇지만 적의 화장법이라는 제목은 끝까지 의구심을 떨치지 못하게 한다. 의문으로 등장한 한 남자와 대화를 거부하는 한 남자 사이에 대체 무슨일이 일어난 걸까. 줄거리를 알고 보면 결코 재미없을 이 책. 아무것도 모른 채 봐야하는 책이라고 생각된다.

 

이 책에서 뭣보다 읽는내내 나를 사로잡은 인물은 제롬 앙퀴스트보다 텍스트로 텍셀이란 인물이다. 그가 주장하는 사랑에 대한 논리가 미친광기라고 말하기에는 어딘지 모르게 공감이 가기도 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찾아가 죽음을 갈구한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드러나지 않은 미친 광기가 존재할지 모르겠다. 다만 그것이 밖으로 드러날 때 광기가 될 뿐, 어쩌면 우리 자신은 알고 있을지도... 그러한 미친 광기를 만들어 내는 또 하나의 내가, 곧 적이 아닐까. 그리고 그런 적을 죽이고 싶어 하는 것 또한 내 안의 또 다른 적일지도..

적의화장법, 아멜리노통브

일년의 절반 이상 여행을 다니며 수련을 하는 틱낫한 스님이 우리에게 전하는 365일 마음 명상법. 가벼운 마음으로 책장을 펴고 편안하게 한장 한장씩 넘겨보았다. 아름다운 풍경과 사람, 사진 속에서 느껴지는 잔잔함과 삶의 그림들. 그 안에서 퍼져오는  여백과 시간. 틱낫한 스님의 가르침대로 이 책을 읽는다면 적어도 일년이란 시간을 두고 일주일에 한장씩 넘겨가며 수련을 해야 할 것만 같다.

머리를 쾅 하고 울림을 받거나, 가슴을 찡하게 감동을 받거나 하진 않았지만 마음의 평화로움을 찾는 명상법을 찾는데에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살아 있음을 느끼는 가장 기본이 되는 숨 쉬는 것, 참으로 감사한 일일진데 그냥 하나의 대사에 불과하다. 몸과 마음을 하나로 만드는 가장 근본적인 수련 방법으로 깨어나 숨 쉬는 것과 걷는 두 가지 방법을 권한다. 지금도 숨을 쉬고 있고 또 매일을 걷지만, 아무 생각없이 그냥 자연적인 반사 능력으로 걷고 숨을 쉬며 살아가고 있음을 느꼈다. 알고 숨을 들이 쉬고 내 쉬어보니 편안함이 잔잔히 퍼지기도 한다.

 

고통 없는 행복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라는 구절. 아픔과 고통을 겪은 후 행복의 가치가 더 절실하게 다가온다는 의미이겠지. 인간은 누구나 관념이라는 것에 지배당하며 살고 있지 않나 싶다. 책을 넘기며 떨치지 못하고 곱씹어 보게 만들었던 단어가 관념이다. 행복에는 늘 성공이라는 관념이 따라다니는 것 같다. 그런데 정작 행복한 순간을 떠올려 보면, 물론 무언가를 성취해서 행복감을 얻기도 하지만 아주 사소한 것에 웃고 감동하고 그러지 않았나 싶다. 사랑 또한 마찬가지 인 듯.

 

참된 사랑을 하면 속마음이 가득 차 넘쳐흐르게 됩니다. 사랑은 넘쳐서 베풀 것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대 마음에 넘쳐서 베풀 다정한 호의와 공감과 기쁨과 평온이 있습니까? 그대 자신의 고통을 깨닫고 있습니까? 어느 때, 어느 곳이든 그대의 존재가 행복이 됩니다. 당신이 있어 이 세상 모두가 행복합니다. 그대 스스로를 사랑합니까? 사랑하면 우리의 마음이 충만해집니다.

받을때보다 베풀 때 더 충만해지는 그 이름. 참 많이 받아와서 그런지 넉넉하진 않아도 베풀 것이 있어 자꾸 주고 싶어지고 또 자꾸 주는 그 마음을 볼 때면 감사함을 느낀다. 사랑이라는 게 자꾸만 받고 싶기도 하지만 사랑하면 아까운 것이 없어지는 같다. 따뜻한 존재 하나 하나가 전염이 되어 퍼져 그 존재 자체 하나만으로도 행복이 된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온기가 전해져 오는 것 같다. 조금만 멈추고 들여다보면 감사할 것도, 행복할 것도 참 많은데 바쁘고 각박하게 삶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은 어쩌면 현실이 아니라 우리안에 깊이 뿌리박혀 자라나고 있는 관념일지도 모르겠다.

 

특별하게 좋아하는 스포츠는 없지만 매년 야구시즌 그리고 월드컵 때의 축구에 열광한다. 스포츠에 관련한 스토리는 늘 열정을 느끼게 해 주었고, 하나가 되는 느낌이 너무나 좋았다. 2002년 월드컵 때의 그 열기를 느낄 수 있었던 것 하나만으로도 축복이라고 느껴질 만큼 축구는 뜨거운 감동의 소재가 아닌가 싶다. 순전히 축구이야기 라는 책의 제목에 끌려 이 책을 선택했다. 몇몇 스포츠 관련 성장소설의 좋은 느낌을 잊을 수 없어 기대를 좀 많이 하고 책을 펼쳤다.

 

이 책은 전형준이라는 이십대의 한 청년이 스페인으로 배낭여행을 떠나고, 그곳에서 비라는 여자를 꼬시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비하고 연결되는 과정까지가 몇페이지인지 인내심이 슬슬 바닥이 나려고 할 무렵 서서히 축구이야기가 등장할 조짐이 보였다. 평소 축구를 좋아하지도 않고 관심도 없던 준은 비로 하여 우연히 유소년 축구센터의 방문을 시작으로 이에 관련하여 바르셀로나 구단 코치에게까지 눈에 들어 스카우트가 되는데 이런 여정(?)이 일권의 전반적인 내용이다.

 

사실 이런 느낌의 책은 처음이다. 뭐라고 표현해야할지...중간에 덮을지 말지를 엄청 고민하게 만든 책이었다. 뭔가 이야기 자체도 굉장히 늘어지는 느낌이고, 강력하게 끌어당기는 흡입력도 없고, 스토리 또한 정말이지 소설답다. 다 읽고나서 이 책에 관련한 서평을 읽어보니, e- book에서 꽤 오랫동안 사랑을 받아온 인터넷 소설이라고 한다.

준이라는 인물이 여자를 꼬시기 위해 고군분투 하는 과정이나 그 이후의 행동들을 보면서 참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픽픽 나오기도 했다. 문체가 딱 그 느낌이라고 하면 이해할라나.... 앞으로 2권, 3권, 몇권까지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1권으로 감동과 재미를 느끼기에는 많이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권수를 늘리기 보다 빼버릴 내용은 확 빼버려서 군더더기 없이 만드는 게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축구이야기, 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