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에리 코엔의 살았더라면...

 

책을 열고 마지막장까지 쉴 새 없이 읽어 내려갔다.
이 소설을 모두 읽고 내가 첫 번째로 할 수 있었던 건
생각이었다. 생각이 필요했다. 생각을 하여야만 하는 소설이였다.
이 소설을 읽은 사람이라면 대부분은 어떤 여유없이 끝까지 손을 놓지 못하고,
읽어 내려갔으리라 짐작을 해 본다.

 

작년부터 이곳저곳 잔병치레에 육체적으로 지쳐 있었던 나는
정신적으로도 지쳐 삐딱한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떠나지를 않았다.

이정도 잔병치레의 아픔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되뇌어 보기도 하였지만,

다른 한 쪽의 나는
내가 무슨 잘못을 했기에.... 내가 어떤 죄를 지었다고
주님께서 나를 벌하려 하시는건가
왜이렇게 나를 괴롭히시나 하며 마음속으로 따져 물었었다.

 

현재 나는 잠시나마 가졌던 이런 몹쓸 생각들을 내려놓고,
네가 건강을 지키기 위해, 건강해지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했었느냐고
네가 건강을 악화 시키는데는 어떤 행동을 했었지 하면서
되묻게 되었다.

 

삶을 살아오면서 내일은 어떻게 살아야 하겠다고 다짐하는 이들보다
그렇게 할 것을, 그렇게 했어야 했는데, 그렇게 했더라면.... 하고

어제를 후회하는 이들이 더 많으리라 생각되고,

간혹 이런 후회들로 자신을 가득 채워 삶을 비관하며 끝내 생명의 끈을 놓아버리는

‘자살’이라는 선택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이런 후회들이 결코 우리에게 음지로 몰아 넣는 것만은 아니며

또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이다.
후회가 있기에 우리는 뉘우칠 수 도 있지 않은가
하여,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다짐할 수 도 있지 않은가

 

이 소설 속 주인공인 제레미와 제2의제레미
그 둘은 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전혀다른 성향의 인간이다.
제레미가 삶을 저버리려 했던 그 순간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어 버린

제2의 제레미는 탄생한 것이다.

미치도록 제레미로 돌아가고 싶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빅토리아를 위해 스스로 감옥으로 들어가는 일 밖에는....

 

살았더라면......

 

제2의 제레미에게 삶을 내어주지 않았더라면......

 
이건 나답지 않은데 이건 내가 아닌데...라는
생각과 함께 자신과의 싸움을 할 때가 종종 있다.

그런 나는 내가 올바른 선택을 하지 못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나다운 나를 점점 좀먹으려는 내가 아닌 또 다른 나이기에
그런 나에게는 나를 내어 줄 수 없다. 기필코....

 

작가는 우리에게 말한다.

 

사랑에 좌절해 죽을 결심이라면, 살아남아서 죽도록 사랑하라!

 

삶은 우리네 인간으로서는 그 가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풍요로운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각기 다른 세상이 우리 앞에 펼쳐지지요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우리는 새로운 세상을 보는 셈입니다.
얼마나 많은 길이 우리 앞에 놓여 있는지!
우리가 얼마나 많은 선택을 할 수 있는지! 그러하기에

스스로를 행복으로 이끄는 길이 무엇인지 알아낼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최악의 선택은......우리네 인간은 그 길로 빠져들기 쉽지요.....
선택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앞으로 나아가려 하지 않는 것,
살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티에리코엔의 살았더라면中』

 

 

삶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었던 소설
지금 뿐만이 아니라 이 책은 책상위에 올려두고 하루에 한번씩 책 표지라도 볼 것이다.
아무런 생각없이 지나쳐 버리는 소소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놓치고 싶지 않으니까

살았더라면, 티에리코엔, 밝은세상

오쿠다 히데오

그의 책에는 그만의 독특한 느낌이 있어

평범하지 않은 캐릭터들

그리고 빵빵 터지는 재미

소신있는 패기(??) ㅋ

젊음

독특함

교훈

 

책이 주는 기쁨에는 재미도 있고 교훈도 있고 감동도 있고 등등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오쿠다 히데오의 한밤중에 행진에서는 유쾌함이 가장 크게 느껴졌던거 같다

 

지루한 책이 싫을 때, 술술 넘어가는 유쾌하고 통쾌한 소설이 땡길 때

오쿠다 히데오의 저서들을 권하고 싶소

 

한밤중의 행진은 히데오와 네번째 만남인데 만날때마다 웃음을 주네

10억원을 목표로 한 겐지, 미타,치에의 합동공작(?) ㅋㅋ

미타물산의 미타땜시 풉풉하면서 웃었던거 밖에 기억 안난다

 

치에의 아빠는 뛰는놈 위에 나는놈이라고 해야하나

우리가 흔히 ‘나쁜넘’이라고 말하는 넘들은 뭐가 달라도 달라 ㅋㅋㅋ

 

젊음이 좋긴 좋다. 물론 소설이었지만......

 

 

 

"세 사람은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야쿠자들을 스쳤지만 눈길만 한번 던졌을 뿐이었다.
젊어서 다행이다. 청춘은 정말 아름답다. 이렇게 길거리를 달려도 너무 자연스러우니까..."

 

    『오쿠다히데오의 한밤중에 행진中』

숨을 죽이고 앞으로 나아갔다. 들킬지도 모른다는 공포심보다 호기심이 더 컸다. 야쿠자 후루야가 이런 밤중에 누구랑 뭘 하고 있는 것일까.
문에 귀를 대고 온 신경을 집중했다.
희미하게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아니, 남자들의 목소리였다. 여러 사람이다.
눈을 감고 귀에다 온 신경을 집중했다. 열 명은 됨직했다. 그 이상인지도 모른다.
다만,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목소리의 질이 어딘지 모르게 예리했다.
"홀수에 걸 사람, 홀수에 걸 사람."
그런 소리 같았다. 무슨 주문인가? 아니, 그럴 리가 없어. 그렇다! 눈이 번쩍 띄었다. '홀수에 걸 사람, 홀수에 걸 사람.' 그 안에서 홀짝 도박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심장이 고동치기 시작했다. 후루야 놈, 이런 짓을 하려고? 도심의 일급지에 도박장을 열고 싶어 다른 사람 명의로 고급 아파트를 빌린 것이다.
장소가 환락가도 아닌 아오야마라면 경찰의 단속도 별로 없을 테고, 무엇보다 손님의 질이 좋을 것이다. 의류점이나 레스토랑을 경영하는 한량들이겠지. 거금이 오가고 있음이 분명하다.
대화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때로 환성인지 노호인지 분간하기 힘든 목소리가 새어나오는 정도였다.
주사위를 흔드는 남자의 목소리만 알아들을 수 있었다.
"홀짝이 맞았습니다!"
저런 위세를 부릴 처지가 아닐 텐데.
문득 자신이 오른 손에 키를 빼들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뭔가를 생각하려 애써 보았다. 좋은 아이디어가 번적 떠오르지도 않는데 묘한 흥분이 밀려왔다. 이 집안에서 거금이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자신은 그 안에 들어갈 수단을 가지고 있다. - 본문 중에서 

오쿠다히데오, 한밤중의행진

북구의 모나리자라 불리는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그림 진주 귀고리 소녀

네덜란드 정부가 세계적인 화가인 렘브란트의 작품 보다도 더 아낀다는 베르메르의 진주 귀고리 소녀
17세기 네덜란드 도시 델프트의 일상이 손에 잡힐 듯 꼼꼼하게 복원되어 있음은 물론,
작품 속 소녀를 햇살 아래 불러내는 작가적 상상력과 수완 또한 돋보인다.

그림 속 소녀의 매혹하는 동시에 매혹당한 듯한 눈길
보일 듯 말 듯한 불가사의한 미소는 순수함인가 유혹하는 것인가?
왜 소녀의 귀에는 진주 귀고리가 달려 있는가?

주인과 하녀, 화가와 모델, 스승과 제자, 그리고 남자와 여자로 마주선 베르메르와 소녀

 

 

나는 고개를 돌려 왼쪽 너머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가 나의 눈과 얽혔다.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오직 그의 잿빛 눈동자가 굴 껍질의

속처럼 참 아름답다는 생각 외에는.
그는 뭔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원하는 걸 주지 못하고 있다는 두려움으로 내 얼굴은 긴장하기 시작했다.
"그리트."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그러나 그가 한 말은 그게 다였다. 내 눈에 눈물이 고였다.
이제 나는 알 수 있었다.
"그래, 움직이지 마라."
그는 나를 그리려 하고 있었다.

 

 

"주인님이 귀고리를 달아주셨으면 해요." 내가 이렇게 대담해질 수 있으리라고는 정말 생각도 못했다.

그도 그랬던 모양이다. 눈썹을 치켜들고 뭔가 말하려고 입을 벌렸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 의자로 그가 걸어왔다. 턱 선이 죄어들어 오면서 나는 가까스로 머리를 꼿꼿이 세우고 있었다.

그가 손을 뻗어 부드럽게 내 귓불을 어루만졌다.
숨이 막혔다. 마치 물 속에서 숨을 멈추고 있는 것 같았다.
엄지와 검지로 부풀어오른 내 귀를 문지르던 그가 귓불을 팽팽하게 당겼다.
다른 한 손으로는 귀고리의 고리를 잡고 구멍 안으로 밀어 넣었다.
불에 덴 것 같은 아픔이 지나가고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는 손을 거두지 않았다. 그의 손가락이 턱과 목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그의 손가락이 얼굴선을 따라 뺨으로 왔을 때 눈물이 넘쳐흘러 그의 엄지손가락을 타고 넘어갔다.
그는 엄지로 내 아래쪽 입술을 만졌다.
나는 그의 손가락을 핥았다. 소금 맛이 났다.
두 눈을 감자 그의 손가락들은 나를 떠났다.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는 이젤 앞의 자기 자리로 돌아가 팔레트를 들고 있었다.
어깨 너머로 그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귓불에 매달린 진주의 무게 때문에 귀가 타는 듯했다.
목에 닿았던 그의 손가락들과 입술 위에 놓였던 그의 엄지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는 나를 보고 있었지만 일을 시작하지는 않았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다른 한쪽 귀고리도 달도록 해라." 그는 다른 쪽 귀고리를 집어 내게 내밀었다.
 순간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가 그림이 아니라 나를 생각해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양쪽 모두 달도록 해. 한쪽만 하는 것은 웃기는 연극이야."
 손을 뻗어 귀고리를 잡았다. 그를 위해서 하는 것이다. 
 정향유와 바늘을 가져와 다른 쪽 귀를 마저 뚫었다. 
 나는 울지도, 기절하지도, 소리를 내지도 않았다.
 우리는 문을 닫고 마주보고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는 그림을 그렸다.
 "다 됐다." 그의 목소리는 가라앉아 있었다.
 "귀고리를 빼서 아래층 큰 마님께 갖다 드려라." 그가 덧붙였다. 
 나는 조용히 울기 시작했다.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진주 귀고리 소녀 中』

 

예술작품에는 문외한인 나......

미술작품에 관련 된 영화나 소설들을 조금 접하기는 했지만, 이런 느낌은 처음이다.

그리트는 베르메르의 집안의 하녀로 베르메르를 제외한 모든이들에게는 적절한 호칭을 쓴다. 큰마님, 작은마님

하지만 그리트는 베르메르를 그라 한다. 베르메르는 아내도있고 자식도 있는 남자이며  그 집의 주인어른임에도

그는, 그가, 그도....그 그 그 .....라고 한다.

소설  초입에는 뭔지 모를 거북함과 이상 야릇한 느낌이 없지 않아 있었다.

하지만 소설을 다 읽은 후 그런 느낌은 사라지고, 처음에는 어떤 감흥도 없이

단지 궁금한 그림이었던 진주 귀걸이 소녀가  생명을 불어넣어 나에게  살아있는 그림이 되었다.

작가 슈발리에가 상상력으로 그려낸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실화이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아름답고 절제 된 그 무엇, 맑고 숭고함.

그림에 문외한인 사람도 느낄 수 있다. 그냥 보이는 대로 느껴지는 대로 느끼면 된다.

소설 중간 중간에 삽입된 베르메르의 작품들을 볼 수 있으며, 작품들에 대한 설명 또한 자연스럽게 이어나가는 것이

이책의 또다른 묘미이기도 하다.  읽다가 그림을 다시 보기 위해 앞장으로 넘겨보고, 또 읽다가 그림 한번 보고 또 읽고.....

무엇보다도 이소설의 마무리에 조금 놀라기도 했고, 여운이 남기도 했다.

 

 

 "이십길더." 주인이 말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주인은 동전을 내밀었고,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떴다.

이제 내게는 설명할 수 없는 오 길더가 더 있는 셈이었다.

나는 동전 다섯개를 빼내 손바닥 안에 꽉 쥐었다.

피터와 아이들이 볼 수 없는 곳에 숨겨두리라. 오직 나만이 아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는 그런 장소에.

나는 이 다섯 개의 동전을 결코 쓰지 못할 것이다.

 피터는 나머지 돈을 보면 기뻐하겠지. 빚이 깨끗이 청산되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나 역시 피터에게 더는 치를 것이 없었다.
한 하녀가 비로소 자유를 얻은 것이다.

 

오직 자신만이 아는 곳에 오길더를 숨겨두리라는 그녀. 그에 대한 마음이 그러하지 않았을까

소설을 읽는동안 나도 모르게 그리트가 되어 있을 때가 있었다. 그리트의 눈에 눈물이 고였을 때 나 또한 그러했고,

그림이 모두 완성 되어 그가 "다 됐다"라고 말했을 때 감정이 복 받쳐 올라왔다.

이 소설에 대한 감흥이 조금은 오래도록 남을 것 같구나...

 

 

진주귀고리소녀, 트레이시슈발리에, 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