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만나보는 아기자기한 예쁜 이야기들 속에서 나는 사람이 아닌 동물이 되기도 하고, 곤충이 되기도 하고, 식물과 바람, 별과 바위가 되기도 한다. 그들의 마음으로 그들의 눈으로 세상과 사람을 바라본다. 그러니 평소에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주변의 것들이 살아나 우리가 이랬다는거 너는 몰랐었지, 하고 속삭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들의 삶 속에서 작가는 사랑이라는 첫 번째 물음을 던진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지금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당신은 지금 누군가를 사랑하고 계신지요", 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지금 나는 행복한 사람임에 틀림이 없겠다. 부모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고 친구들을 사랑하고 또 자연을 사랑한다.

 

그런데 그들의 삶을 한장 한장 넘김에 있어,  "네" 라고 당당히 대답했던 사랑이 조금씩 오그라들기 시작한다. 사랑이라는 이름에는 내가 감히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을 만큼, 겉모양이 다른 이음동의어가 존재함을 느낀다. 사랑은 곧 인내요. 희생이요. 기다림이요. 고통의 감내다. 물론 상콤달콤한 또 다른 사랑의 이름이 존재하겠지만, 이 안에서 느낀 사랑은 이랬다. 그래서 참 무거워진다. 누군가를 사랑해서 인내하고 희생하고 기다릴 만큼의 순수한 마음을 지금의 내가 가지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스친다.

 

급속도로 변화하는 초고속의 세기, 빠르게 흘러 간다. 그 소용돌이 속에서 나 또한 흘러간다. 점점 더 무언가를 기다려야하는 것에 지쳐가고, 고통스러운 일이 올라치면 가두리를 쳐버리는 나에게 희생은 참으로 힘든 일이다. 조금 손해보더라도 베풀면서 살자 하면서도  온전히 순수한 마음으로 그 순간을 베풀면서 살고 있는건지도 묻게된다.

 

다람이를 사랑해 몸에 피가 줄줄 흐르지만 자신의 가시를 다 뽑아버린 고슴이, 각자 자신들의 보이는 세계만을 주장하는 별과 해, 열개의 다리를 다 잘라 서로를 살리려 했지만 둘다 서로의 다리를 먹지 못하고 죽어버린 문어,  맹인의 삶의 일부인 악기를 훔치고 먼 훗날  속죄하러 맹인을 다시 찾은 청년의 모습과 그런 청년을 가슴으로 안아주는 맹인, 더 넓은 세상을 자신의 부모와 형제에게 알리기 위해 끝내 목숨을 바치는 개구리의 이야기. 짧막한 동화 속의 이야기는 쉽게 읽힌다. 그러나 그 안에서 던져지는 질문의 무게는 꽤나 무겁다.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분다. 새벽녘에는 옥탑방에 찬기운이 감돌아 잠에서 깨고는 한다. 이제 곧 겨울이 오겠지. 혹독한 겨울의 눈보라를 견디게 하며 자라게 해야 봄에 열매를 맺는 가을보리나 나면서부터 부모를 잃어도 결코 환경을 탓하지 않고 고통을 견뎌내며 삶을 찾는 댓잎뱀장어처럼 굳건한 사람이 되고 싶다. 오랜만에 만나보는 동화 속 이야기가 참 좋았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각자 지니고 있는 향기가 있을거다. 그런 향기는 따뜻한 마음에서 나오는 거라고 믿는다. 먼훗날 할머니가 되었을 때, 나는 어떤 향기를 가지고 있게될까... 

 

 

울지말고꽃을보라, 정호승

 

이십대에 무수히 많았던 고민들이 삼십대가 되면 사라지겠지 했다. 그런데 삼십대가 되고 보니 또 삼십대 나름의 답답한 고민들이 실타래처럼 엉켜 풀리지가 않고 있다. 이런 답답함을 해결해줄 내인생에 길라잡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마음속으로 바래보는 요즘이다. 인생성공 단십백이란 말에 뭣보다 나에게는 그 한명의 스승을 만나기가 참으로 어려울 것만 같다. 길이 보이지 않을 때 결국 도움을 얻고자 찾게 되는것이 책이다.  명쾌하게 길을 열어주는 것은 아닐지라도 두갈레의 길에서 어떤 길로 향해야겠다는 나침반이 되어주는, 아프니까 청춘이다 같은 참 괜찮은 책을 종종 만나기도 한다.

 

제목에서 느껴지듯 청춘은 참 아픈것일 수도 있고, 또 아파봐야만 진정한 청춘이라 할 수도 있는 것 같다. 데이고 맞고 피터지고 곪고 곪도록 아픔을 겪고 난 후에 오는 것이 있다. 아픈만큼 성숙한다라는 말처럼 아픔은 곧 질료가 된다. 그래서 청춘의 열병이, 열정이 아픔이 시련이 나는 좋다. 이 책이 청춘을 향한 전반적인 내용일 수도 있겠지만, 누구나 봐도 좋을 책으로 생각된다. 숫자에 비례하여 진정한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가끔씩은 스스로에게 채찍을 줄 필요성도 있지 않을까.

 

이 책은 천천히 넘겨지는 책이었다. 아니, 다시 말하면 일부러 천천히 넘겨 보았다. 가독성에 빨리 넘기게 되는 책도 있지만, 의식적으로 천천히 넘겨야지 하는 책을 종종 만나고는 한다. 무엇하나 버릴 내용이 없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과거의 나의 모습, 그리고 현재의 나의 모습이 교차하며 무엇이 변해가고 있는지, 얼마나 성장했는지, 바로 가고 있는 것인지 생각하고 보게 된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과 인생의 진정한 즐거움과 성공의 의미가 무엇인지, 또한 가슴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심도있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된다.

 

고등학교 때 입시를 앞둔 수험생의 마음과 대학에 입학했을 때 대학생의 마음, 또 대학 졸업을 앞두고 갈 길에 대한 막연함에 혼자 끙끙 고민했던 날들, 취업 후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방황했던 시절.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면서 어느하나 공감가지 않는것이 없다. 그래서 이 책은 10대, 20대가 보면 더욱 좋을 책인 듯 싶다. 우리에게 주어진 단 한번뿐인 청춘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매 순간 선택의 문에서 또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라 믿는다.

 

책의 중반부에 가 보면 이런 문구가 나온다. "그대, 부대껴야 한다", 라고... 점점 더 혼자가 편해지는 나에게 하는 말 같아 쿡쿡 찔린다. 그렇다. 청춘이란 그런것이 아닐까, 부대껴야 하는 것. 치고 받고 공유하고 부대끼고, 사람이 되었든 일이 되었든 무엇이 되었던 간에 부대껴 보는거. 문득 조르바 아저씨의 말이 생각난다. 산다는건 곧, 허리띠를 풀고 말썽거리를 만드는거라고..말썽거리 가득한 청춘을 만들어보자고..

 

 

아프니까청춘이다, 김난도

 

현빈의 자원입대소식을 비롯하여 총기난사 사건까지 요즘 꽤나 이슈가 되고 있는것이 해병대다. 귀신잡는 해병대,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등 해병대를 지칭하는 말이 참으로 많다. 과거나 현재나 뉴스에 종종 등장하는 메뉴중 하나가 사회지도층의 자제분들이나 공인들의 병역 비리이다. 이처럼 국방의 의무를 거스르려고 힘을 쏟는 자들이 있는가하면  진정한 사나이가 되고자 자원입대를 하여 고생(?)을 자초하는 해병대원들도 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같은 사내여도 해병대원들에게서 느껴지는 포스는 남다르다. 

농담반 진담반으로 나도 군대생활이란게 하고 싶다고, 남자로 태어나면 해병대에 자원입대 하겠다고 하면, 주위에선 네가 군대라는 곳을 안가봐서 그런다고 한마디씩 하고는 한다. 남자들이 모이면 빠지지 않는 군대이야기, 보통은 다들 지루하다고 하는데 어깨에 벽돌 몇개쯤은 올려놓고 쉴새없이 쏟아져 나오는 그 군대이야기가 나는 참 좋다. 사내냄새 풀풀나는 그 빡센 공간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들이 살아있는 날것을 느끼게 해주는것만 같기 때문이다.

 

해병대를 부탁해. 제목만 보고 구미가 당기기 시작한다. 내가 선택할 수 없었고, 경험하지 못한 세계를 이렇게 책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접해 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낀다. 해병대를 부탁해는 이미 오래전, 2000년도에 출간 된 <해병대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의 개정판이다. 이 책의 저자인 신호진님은 해병대 730기이다. 이 책은 해병대에 자원입대 전부터 시작하여 훈련병 시절, 이병, 일병, 상병, 병장, 전역 후 까지 해병대원들의 날 것 그대로의 이야기가 담겨있는 에세이집이다. 책 후반부에 가 보면 이래저래해서 좀 자제한 부분이 있다고 하는데 문체도 그렇고 그냥 남자 몇명이 모여서 발가벗고 실감나게 대화하는 내용을 훔쳐본 듯 하다.

 

같은 경험이 있는 군인들이라면 그 때 그 시절을 회상하며 감동의 눈물을 흘렸을지도 모르겠다. 뭣보다 진급해 가면서 변화되는 각종 에피소드들이 눈에띈다. 오늘이 며칠인지는 우유 유통기간을 보고 알 수 있는 훈령병 시절, 선임이 슬픈 사연을 이야기할 때 자신도 모르게 떡을 짱박고 있는 모습에선 그 배고픔이 절실히 다가온다. 그러한 훈령병을 거쳐 좀 각이 잡힌 이병 시절은 잘 땐 드라큘라처럼 바로 누워 죽은 듯이 자고, 일어날 땐 형광등 초크가 3번 터지기 전에 강시처럼 일어난다는 표현에 어찌나 웃음이 나던지. 그리고 일병 상병을 거쳐 모든 냄새를 다 피해갈 수 있는 가장자리의 좋은 자리로 배치 될 즈음이면 말년이라고.

 

구수한 사투리와 함께 오랜만에 끊임없이 휘양찬란하게 펼쳐지는 육두문자들이 도심에서 벗어나 시골 어느 해변가 막썰어 횟집에 앉아 소주한잔 하며 회포를 풀고 있는 느낌이었다. 재미있는 책이 읽고 싶었는데 이 책은 충분히 그 욕구를 충족해 줬다. 출퇴근 길 지하철에서 실감나게 그려지는 이야기에 즐거웠다. 군대란 곳의 아무 경험이 없는 독자임에도 흥미로운데 군인님들은 참으로 많은 공감대가 형성될 것 같다. 뭐 좀 수위가 높은 내용들도 좀 있긴 하지만, 여자들에게서 여자들의 세계가 있듯 남자들도 그들의 세계가 있는 법. 그냥 남자들의 세계라고 생각하면서 웃어버렸다.

 

 

해병대를부탁해, 신호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