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인가 선물로 받은 이 책, 제목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어떤게 과연 괜찮은 결말인지에 대한 호기심으로 책을 펼쳐 들었다가 접고, 두번 째 시도 끝에 읽기는 다 읽었다. 책을 좋아하긴 하지만, 가끔씩  이건 내 취향이 정말 아니구나 하는 책을 종종 만날때가 있는데, 이 책이 바로 그랬다. 읽는이에 따라 느끼는 바가 다르겠지만, 뭔가 잔잔한 감동과 교훈이 느껴지는 것도 아니었고, 빵빵 터지는 유쾌함이 느껴지지도 않았다. 다만, 상상력 하나는 충만했던 책인 듯. 그 괜찮은 결말이 어떤 것인지 궁금해서 끝장(?)을 보긴 봤다.

 

소설의 주 배경이 되는 곳은 조용함이 느껴지는 바닷가 근처의 파인 코브 마을이다. 잔잔했던 코브 마을, 한 여인의 자살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그리고 오랜시간 마을에서 한건의 사건도 맡지 못했던 순경의 등장부터, 마을 사람들 대부분의 정신과 치료를 담당하는 의사와 특색이 다양한 여러명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코브 마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신과 치료를 받고, 항우울제 약물을 복용한다. 순경조차도 대마에 중독되어 있다. 자살한 여인이 약물 부작용으로 자살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자책감을 갖게 된 정신과 의사는 항우울제 약물을 복용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가짜 약을 처방하기 시작한다. 또 다른 한편 어느날 갑자기 사람을 잡아먹는 거대한 바다괴물이 등장하고, 동시 다발적으로 마을 사람들은 성적으로 이상한 행동을 보이기 시작한다.

 

등장 인물별로 돌아가면서 내용이 진행되는데 그래서였는지 몰입도가 좀 떨어졌던 것 같다. 만약에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을 수 있는 영상매체였다면 오히려 효과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딱히 어떤 장르라고 표현 할 수 없는 책인데, 이런 류의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이 소설이 참 재미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여러가지 장르가 조합된 듯한 느낌으로 어찌 이런 생각까지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그 상상력이 기상천외하긴 하다. 사람을 잡아먹는 바다괴물임에도, 여친 곁에 등장하는 순경에게 질투를 하는 장면에서는 생각할수록 어이없게 웃음이 나왔다. 이런 면이 이 소설에서 매력을 찾으라고 한다면 매력인 듯.

 

책을 덮고 생각에 잠겨본다. 모두 괜찮은 결말, 과연 무엇일까. 소설의 처음 과 끝을 비교해 보면, 차이점은 분명이 있었다. 몇명의 사람들이 바다괴물에게 잡아 먹혔고, 여러 커플이 생겼고, 우울했던 코브마을이 조금은 활력을 찾았다는 것. 로맨스 소설은 아니지만, 저자가 전하려고 하는 메세지를 굳이 찾는다면 '세로토닌의 부족에서 오는 우울증은 사랑으로'가 아닐까 싶다. 바다괴물의 등장이 활력을 찾는 하나의 매개체가 됐듯, 그 어떤 매개체라도 찾아 나서야 할 듯한.. ㅋ

우울한코브마을의모두괜찮은결말, 크리스토퍼무어, 푸른숲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 산도르 마라이님의 책을 찾았다. 가끔씩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해야만 하는 것인지 모를 때, 산도르 마라이님을 만나면 스스로를 옥죄고 있는 쇠고랑이 서서히 풀리는 것만 같다. 그리고 조금씩 무언가를 받아들이는 것부터 시작으로 마음에 평안이 찾아오기 시작한다. 이번 소설 <성깔 있는 개>에서는 한 신사가 등장한다. 부유하지 않은 소시민이며 글을 쓰는 작가이기도 하다. 그래서 독자는 마라이님의 자전적인 소설이 아닐까 생각한다.

소설은 신사가 어려운 형편에도 불구하고 부인을 위해 크리스 마스 선물을 고르는 것에서 부터 시작된다. 가지고 있는 쩐은 풍족하지 못하나  뭔가 특별한 선물을 하고 싶고, 부인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 신사는 고심하고 또 고심하여 추토라라는 이름의 반 풀리종인 개를 선물로 결정한다. 제목에서도 보면 눈치챘겠지만, 추토라는 호락호락 온순한 개가 아니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추토라가 신사의 가족과 함께하기 시작하면서 부터 마지막까지 벌어지는 광경에 대한 묘사는 단순한 상황이 아닌,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이 이번 작품에서도 진하게 느껴진다. 

 

추토라와의 만남을 신사는 이렇게 표현한다. 같이 지내고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개가 자신을 받아들이고 뒤를 쫄쫄 따라다니는 게 어이없으면서도 그야말로 사람을 무방비 상태로 만든다는 생각이 든다. 56p 사람은 누구나 자유롭게 살아가나 그 자유속에서 자신이 만들어 낸 어떤 규율의 틀 안에 갇혀 있거나, 그 규율을 지키려 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느낄때가 많다. 신사 또한 마찬가지이다. 오랜시간 지켜오던 규율이 있고, 그것을 깨는 것은 쉽지 않다. 허나 이렇게 사람을 무방비 상태로 만드는 추토라라는 존재로 인해 신사의 규율은 깨지고 만다. 어쩌면 규율에 얽매이지 않는 추토라의 모습에 자극을 받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신사는 추토라를 위한 노력의 시간에 서서히 한계가 오기 시작한다. 추토라는 사람을 무는것을 시작으로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본색이라는 표현이 적절한지는 모르겠으나 그렇게 표현해야 할 듯. 신사는 추토라의 입장이 되어 이해해보려 노력했고 받아들여 보려했지만, 종국에는 사생결단을 내려야 하는 선택의 시간까지 가게 된다. 초반의 넘김은 매끄럽게 넘어가지가 않는다. 헌데 사건의 발단이 시작되고 클라이막스 부분으로 가면서 감정이 고조되고, 아린 감정이 폭발하게 된다. 그래서 한동안 어린시절부터 함께하고 있는 우리집 강아지 앞에 앉아 아무말 없이 눈을 쳐다보고는 했다.

 

서로 다른 개체가 만나 서로 융화되는 과정에서 결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결코 그것이 서로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서로를 향한 마음이 크기게 더 서로를 강렬하게 물어 뜯으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서로를 물어 뜯고 피 흘리는 과정에서 오버랩되는 일들. 피를 흘리며 울고 있는 추토라와 피를 흘리며 그것을 바라보는 신사를 볼 때, 어쩐지 내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살아가면서 서서히 경험을 쌓고, 발을 헛디뎌 비틀거리고, 때로는 넘어지고, 실망을 대가로 배우면서, 우리가 보통 아름답고 선하고 고결한 것만이 아니라 억눌리고 완전하지 못하고 분노에 차 이를 갈며 싸우는 것, 풍습과 화의가 아니라 오점과 항의를 뜻하는 것도 사랑하는 걸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것은 대단한 교훈은 아니다. 그러나 친애하는 독자여, 예술에서도 삶에서도 이것을 피할 수는 없다. 그리고 이것을 위해서 여하튼 개에게 한번쯤 물려볼 만한 가치는 충분하다. 278p

 

소설의 끝자락에 나오는 구절이다. 읽은지 좀 지났는데도 여운이 남는 책. 어떠한 삶을 살아가고 있던, 살아간다는 것에 위로가 되었던...

 

성깔있는개, 산도르마라이, 솔

 

 

사후 세계가 있을까? 가끔씩 죽음을 생각 해 보기도 한다. 죽고나면 어떤 세상이 있을지... 이 책은 어느날 불시에 죽어버린 사람들이 중유라는 사후 세계로 떨어지게 되고, 억울해서 도저히 죽을 수 없는 경우에 한해서만 현세로 되돌아갈 수 있는 4일간의 시간이 주어진다. 

 

백화점 과장인 중년의 쓰바키야마는 바겐세일 시작을 앞두고 돌연사한다. 아무런 준비도 못했고, 이별도 고하지 못한 채 어느날갑자기 죽고만 것이다. 그런데 사후 세계의 공무원은 스바키야마에게 음행의 죄가 있다고 한다. 인정만 하면 극랑왕생을 할 수 있지만, 쓰바키야마는 도저히 그것을 인정할 수 없다. 스바키야마 과장 외에도 사후 세계 스케쥴에 함께하게 된 두명의 주인공이 더 등장한다.

 

그리고 이들은 미처 정리하지 못했던 일을 정리하기 위해 현세에서의 4일간의 시간 속으로 되돌아 가게 된다. 그 4일이라는 시간동안 각각 저마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 동안에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된다. 이들은 전혀 다른 새로운 육체를 얻어, 살아있을 때삶의 일부인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알게되는 새로운 사실들은 충격적이기도 하고  짠하기도 하다. 다소 무거운 내용일수도 있는데 무겁지 않게, 때론 웃음이 나오게 하며 책장을 넘기게 하는 게 이 작가의 매력인 것 같기도 하다.

 

책을 읽는 중간 도모코라는 캐릭터에게 미친 엑스라고 욕지거리를 퍼붓기도 하고, 쓰바키야마에게는 병신이라고 하기도 했다. 글쎄, 어떤 부분에서는 본인의 성정과 닮은 바보같은 면이 투영된 것 같아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들의 이야기가 끝날 즈음에는, 그들이 보여주는 사랑이 참 뭣(?)같아도 인정하고 싶어진다. 물론 소설이지만, 인스턴트 냄새가 갈수록 진해져만 가는 이 세상이 조금은 부드러워 질 것만 같기 때문이다. 죽음 앞에서 어쩌면 모든것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되는지도..

 

눈여겨 봐야하는 캐릭터가 또 하나 있다면 어린 꼬마 렌 짱이다. 현세에서 주어진 시간안에는 규칙이 있고, 그 규칙을 어겼을 때에는 감당하기 힘든 처벌이 주어진다고 했는데도 이 아이는 그보다 더 소중한 것을 위해 용기를 내고 규칙을 위반한다. 어른도 하지 못하는 이 아이의 용기를 보면서 아침에 가끔 지하철 기사님의 멘트가 생각이 났다. 용기란 두려움이 없는것이 아니라, 그보다 더 소중함이 있는 것을 아는것이다, 라는...

 

얼마전 시간을 쪼개서 49일이라는 드라마를 꼬박 꼬박 챙겨 보았었다. 내용도 참 신선했거니와 죽음이라는 것은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것이지만, 우리는 늘 이것을 배제하고 살아간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다시한번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본 시간을 갖게 됐다. 그리고 뭣보다 이 책에서 주목해야 할 것이 음행의 정의이다. 스바키야마가 음행의 죄를 인정 해 가는 과정에서 전해져 오는 것은, 마음깊이 새겨둬야 할 교훈이라 생각한다. 본인이 의도하지 않았어도 죄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시간이었다.  

 

 

쓰바키야마과장의7일간, 아사다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