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솔직히 작가에 대해 알고 싶어 선택하게 된 책이다. 물론 내가 이 작품을 읽는다고 해서 작가에 대해 '알게됐다'라고 말한다면 그건 오만일 것이다. 허나 에밀 아자르라는 작가는 「자기앞의 생」이라는 소설을 통해 우리앞에 놓여진 사람과 사랑에 질문을 던진 듯 하다. 소설의 마지막 장, 끝 문장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고여있다. '사랑해야 한다', 몇번이고 가슴속으로 이 말을 되새김질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소설의 내용은 열살 된 모모라는 소년의 시점에서 서술된다. 얼마전 새의 선물을 통해 만났던 겉모습을 냉소로 똘똘 무장한 진희라는 아이와 어딘가 모르게 닮은 듯 하면서도 다른듯한 느낌이다. 실제로 열네살인 모모라는 아이는, 창녀들에게서 버려지거나 맡겨진 아이를 돌보는 일을 하고 있는 로자 아줌마를 통해 길러진다. 그녀 또한 과거에 창녀일을 했고, 유태인으로 정신적인 고통을 안고 살아간다. 그녀가 그런 아이들을 돌보는 것이 단지 밥벌이가 아닌, 그녀의 삶을 사랑하는 하나의 방식이라는 것이 느껴진다. 시간이 흐르고 어느세 로자 아줌마는 할머니가 되고 병이들게 되자, 이젠 모모가 로자 아줌마를 돌보게 되는 상황이 오게된다. 병이들어 서서히 죽어가는 로자 아줌마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들앞에 놓인 삶은, 처연하고 아릿하다.

 

모모는 살아가면서 로자 아줌마가 전부였다. 그의 생의 유일한 이라고 할만큼 소중한 존재이다. 그런 그녀를 잃는것은 상상할 수도 없으나 열네살의 모모는 조금더 생을 연명하기 위해 식물인간처럼 병원에 누워 치료를 받게 하는것은, 그녀를 더욱 고통스런 생으로 내모는 것임을 안다. 그녀 없는 생은 생이 아니나 그녀를 자연의 순리대로 고통스런 삶에서 조금더 일찍 끝내주려, 그녀가 무서움을 느낄때면 찾았던-그녀와 모모 밖에 아무도 모르는- 창고 같은 곳으로 그녀와 함께한다. 그리고 결국 그녀는 그곳에서 생을 마감하게 된다.

 

고통이 극에 다다르면 사람은 건조해진다고 한다. 이 둘을 보면 어딘가 모르게 건조하면서도, 대책없이 엉엉 울때면 그런 건조함이 촉촉히 젖고는 한다. 그런 모모는 세상에 질문을 던진다. 사람은 사랑없이 살 수 있느냐고?, 또한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는 살 수 있느냐고? , 글쎄 나는 모르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더 살아보면 알게 될런지. 허나 로자아줌마와 모모의 생에서 내가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사람과 사랑이 그들을 살게 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모모는 행복이란 것은 고약한 요물이며 그 놈에게 오히려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세상의 모든일을 다 겪은 후에나 행복이란 것을 겪어보겠다고 한다. 가엾다. 그런 모모가 우연히 보게 된 영화 테잎의 앞으로 되감기, 거꾸로 되돌아 가는 영상을 보고 빌어먹을 행복감을 느낀다. 그렇게 모모는 자기 앞의 생을 받아들이면서도 다른 한편, 비디오 테잎이 거꾸로 되감기 듯 자기 앞에 놓인 생을 그 언젠가로 되돌리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자기앞의생, 에밀아자르

점점 더 자신만의 라이프스타일을 찾으며 혼자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어만 가는 것 같다. 이 책에서 말하는 혼자사는 즐거움은 독신으로 홀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개념의 즐거움이 아니라 미혼이던 기혼이던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자신을 좀 더 사랑하면서 갖게 되는 홀로 서는 즐거움을 말하고자 함이다. 저자 또한 한 가정의 와이프이자 부모이다. 현대인들은 참으로 바쁘다. 유아기 때를 비롯해 청소년기 또 직장인이 되고, 한 가정을 꾸리게 되면서까지 혼자 있는 시간, 온전히 자아와 함께 있게 되는 시간을 생각해 보면 자는 시간을 제외 하고는 하루 24시간 중 얼마나 될까.

 

사람의 성격에 따라 다르겠지만, 언제부터인가 자신과 홀로 보내는 시간이 즐거워졌다.  배부른 투정일지는 모르겠으나 누군가와 함께 웃고 나누고 즐기고 먹고 하는 시간, 소통의 부재에서 오는 풍요속 빈곤함에 허기가 더해질 때가 있었다. 그때 서서히 자신에게 내어 주는 시간을 늘려가며 자신을 들여다 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는데, 그때 전해져 오는 풍요로움은 인간관계에서 오는 그것과는 또 다른 소중함이 있었다. 그러한 느낌을 경험 해 본 사람이라면 이 책에서 저자가 무엇을 전하고자 함인지를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책이 전하고자 하는 목적까지는 참 좋았는데, 그것을 풀어내는 과정에서 넘김이 좋지 않았다. 목차를 보면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상당히 많다. 뭐뭐하기로 끝나는 각 장의 주제들은 타인을 위함이 아닌 자아를 위해 되도록 많은것을 해보라고 권한다. 또한 물질적 풍요로움에서 오는 가치보다 마음의 풍요로움에서 오는 가치를 전하고자 하는 내용이 많았고, 그것에는 상당히 공감이 된다.

 

헌데 문화적인 차이인건지 모르겠으나 가끔씩 타국의 자기계발서를 읽다보면 뭔지모를 갭이 느껴지고는 한다. 이 책도 그런 갭이 컷던 책중 하나이다. 중간에 몇번을 덮어버릴까 고민을 하기도 했던 이유중 하나가 각장마자 인용문이 등장하고, 그에따라 이야기를 쉼없이 쭉 풀어내는데 이런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일지도 모르겠다. 

 

평소 베스트셀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 책의 저자는 오랜시간 기자로 활동하면서 쌓았던 명성과 성공적인 삶을 접고, 어느날 갑자기 어느 작은 마을로 들어간다.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함이다. 바로 이 책에 담긴 내용과 책을 집필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입소문이 나 오프라 원프리 쇼에 초대 되면서 더욱 이슈를 받았다고 하는데, 이런 유명세가 가끔은 화려한 포장지가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어쩌면 소통의 문제일지도 모르겠지만, 이러한 여파가 한국의 독자에게까지 전해져 오는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물론 선택권은 독자에게 있지만 말이다.

 

혼자사는즐거움

보통 책 사이즈 보다 조금 큰 꽃필날의 표지는 밝은 동화책 같은 느낌이기도 하다.  이 책의 부제 「오늘은 나의 꽃을 위해 당신의 가슴이 필요한 날입니다」를 가만히 들여다보니, 그 꽃을 피우기 위해 우리의 가슴이 필요 하다고 한다. 나는 어떤 가슴을 가지고 있을까, 나는 어떤 꽃일까, 하는 물음으로 책장을 넘겨본다.

 

페이지별로 대부분 짧막한 내용이 담겨있다. 시 같기도 하고 산문 같기도 한 이야기 속에는 내가 꽃이 되던, 꽃을 피우기 위한 땅이 되던, 먼저 우리의 가슴에 여백의 시간을 주는 느낌이다. 전체적인 글에서 따뜻함이 묻어나는데 저자는 참 비옥한 땅을 만들면서 살아가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를 보듬어 줄 수 있다는 건, 행복함이던 때론 불행함이던 어찌보면 서로가 공유하고 공감할 수 있는 경험으로 오는 것이 아닐까 싶다. 가끔씩 나도 저자처럼 짤막한 글을 쓰고는 한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글을 쓰는 행위가 스스로를 달래고 위로하기 위함일 때가 많다. 그런데 저자의 글에서는 스스로를 위한 글이라기 보다는 누군가의 마음을 어루만져주기 위해 글을 썼다는 느낌이 배어난다.

 

물론 이백페이지가 넘는 모든 글에서 그런 느낌을 받은것은 아니었다. 어떤 글에서는 아무런 감흥이 없이 그저 활자가 되기도 했지만, 처음보다는 뒤로 갈수록 내용이 좋았고, 빨리 읽는 것 보다는 천천히 내용을 음미해 가면서 읽는 때가 더 좋았다. 거의 끝자락에 가서야 제대로 보이기 시작한 것이 하나 있다면 중간 중간에 삽입된 동화같은 그림이다. 남녀가 각각 우산을 쓰고 어떤 건물을 향하는 그림이었다. 그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렇게 여유가 없이 보고 싶은 것만 보면서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읽는 행위를 멈추고, 다시 앞장부터 놓친 그림들을 넘겨보기 시작하니 포근함이 몰려온다.  후다닥 넘겨 보기보단 글과 그림을 음미해 가면서 보는것이 좋을 듯 싶다.

 

가족과 친구, 직장등 여러 인간관계가 때론 굴레같고 족쇄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래서 가끔은 관계라는것을 내동댕이 쳐 버리고 싶은 갈망에 휩싸이고는 하는데, 저자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그래도 관계의 소중함을 느껴보는 게 더 낫지 않겠느냐고 하는것만 같다. 꽃이 피어나기 위해 땅이 있어야 하듯, 혼자 보다는 누군가와 함께 더불어 살 때 우리는 울고 웃고 아프고 행복한 게 아닐까 싶다. 

 

중간 중간에 작가의 이야기에 공감이 되었던 내용중에 하나를 소개하자면 가슴이 무너져 내릴 때, 그러한 일이 내 앞으로 닥쳐 왔을 때, 그것을 세우려 애쓰지 말고 그냥 두라고 말한다. 무너져 내리라고 한다. 또한 뭘 하든, 어딜 가든 꼭 무엇을 느끼고 깨달아야 하는 것인지 묻는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자신에게 학대라는 것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타인에게 가능한 그 관대함이 자신에게는 참 가혹할때가 많다. 어떤 행위를 통해 무언가를 끊임없이 얻으려 하는데서 더욱 빈곤함을 느끼기도 한다. 이 책안에 공감이 되는 글을 통해, 여백이란 벌판을 잠시나마 내어주었던 시간이 되었다.

꽃필날, 손명찬, 좋은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