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도 친숙한 요시모토 바나나의 신작인 왕국을 이제야 읽었다. 딱히 이 작가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책 표지에 선인장 그림 하나 덜렁 그려져있는 것에 끌렸다. 왕국이라는 제목에 선인장 그림을 보고서 뭔가 사막과 관련한 역사랄까. 시대물이랄까 그런 느낌의 내용인건가 하는 생각으로 처음엔 내용에 대한 두려움으로 멈칫했지만,  그래도 표지가 마음에 드니까라는 엉뚱한 이유를 붙여가며 읽기 시작했다.

책의 내용을 간단하게 말하자면 산 속에서 할머니와 함께 약초차를 만들어 팔던 시즈쿠이시가 산을 내려오면서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점술가 가에데와 만나면서 생겨난 일들 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시즈쿠이시는 산에서 내려와서 여러가지 것들을 경험한다. 신이치로씨, 가에데, 가타오카 등 많은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신이치로씨와의 사랑과 이별, 다카하시 씨의 정원, 입욕제 만들기 등등 여러 경험을 하면서 조금씩 성숙해져간다.

한 마디로 하자면, 시즈쿠이시의 세계가 넓어져가는 이야기 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총 3권의 책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각 권마다 다루는 주제랄까. 내용이랄까. 이런 것은 다르지만, 하나의 이야기이다.

뭐 결국, 말하고자 했던 것은 인연이라는 것에 대한 것일까. 서로 다른 세계에 속해 있던 사람이 만나면서 인연을 맺고, 각자의 세계를 넓혀가면서 조금씩 어른이 되어가는 것에 대한 이야기 라는 생각이 든다. 제목의 왕국이라는 것도 이집트 왕국같은 왕국이 아니라 자기 세계 라는 것을 말한게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책을 읽는 내내 시즈쿠이시가 생각하고, 느낀 것들에 많은 공감이 가고, 정확하게 말 할 수는 없어도 뭔가 깨달은 듯한 느낌을 주는 소설이었다. 과거의 일이나 실수 같은것에 얽매여서 사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소설이었다.

 <책 속 좋은 글귀>

<2권>

잃어버린 것을 아쉬워만 하느라 얻은 것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새 문이 바로 코 앞에 있는 것을 모르고 닫힌 문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슬퍼한 꼴이었다. 무언가가 끝나면 반드시 무언가가 시작된다. 보든 안 보든 그것만이 나의 자유다.-p.106

사람은 역시 사람을 보러 온다. 하루에 한 번은 사람들이 평화롭게 사는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이다. 번화가는 평화롭지 않을 수도 있지만, 시장은 대체로 평화롭다. 그곳은 어머니들이 모이는 곳, 생명을 관장하는 부엌과 직결된 곳이기 때문이다. -p.131

그렇게 나라는 파문을 우주의 기록 속에 하나 둘 새겨 간다. -p.131

<3권>

난 많은 경험을 한 후에 한 바퀴 돌아서 언젠가 원래의 나로 돌아갈 거예요. 산으로 돌아간다는 의미는 아니에요. 마음속 공간의 문제죠. 하지만 지금은 도중이니까, 열심히 흡수할 거예요. 해피 엔드를 지향하지도 않아요. 나 자신은 내가 평생 책임질 거예요. 할머니의 자손이니까 -p.172

슬픔이 언제 나를 덮칠지 알 수 없다. 긴장을 풀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야 한다. -p.175

어느 책이든 저자를 소개하는 부분이 있고, 그 곳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내용은 작가의 대표작을 늘어놓는 것일 것이다. 내 기억이 맞다면 내가 이 책의 제목을 봤던 것은 바로 이 저자소개란이었을 것이다. 그 곳에서 본 <슬픈 예감>이라는 제목에 끌려 읽고싶은 책 리스트에 올려두었다가 이제서야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야요이는 부모님, 남동생과 함께 행복하게 생활하고 있다. 하지만 야요이는 이 행복 속에서 자꾸 겉도는 듯한 느낌이 든다. 내 행복은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들어, 뭔가 생각을 정리하고 싶을 때에는 자주 가출을 일삼는 날들을 보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야요이는 자기의 비밀을 알게 된다. 여태 이모로 알았던 유키노이모가 사실은 자기의 친언니였고, 지금의 부모님과 남동생과는 피가 한 방울도 섞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동안 느끼고 있었던걸까. 야요이는 이모와 동생을 잃은 것이 아니라 언니와 애인을 발굴해낸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사실 내용을 읽어보면 남동생인 데츠오와는 이복남매이고, 데츠오에 대해 느끼던 감정이 사랑이었다. 그리고 이모는 이모가 아닌 친언니였다 라는 단순한 내용이다. 내용이 단순하고, 소재도 흔하다보니 뻔히 예상이 되는 스토리인데도 책을 덮을 수 없게 하는 뭔가가 있다. 거기다가 이 흔한소재의 뻔한 결말까지도 가지 않은채 끝난 열린 결말도 마음에 들었다. 이복남매의 사랑이 주가 아닌, 잃어버렸던 기억을 찾게 되면서 자신의 감정에 대해 알게 된다라는게 주라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그런가 좋은 느낌을 주는 소설이었다.

 <책 속 좋은 글귀>

나는 고민하느니 차라리 손을 움직이는 데츠오가 늘 부러웠다. - p.28

나는 운명이란 것을 내 두 눈으로 보고 말았다. 하지만 아무것도 줄어들지는 않았다. 늘어날 뿐이다. -p.1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