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지국 막내공주전을 처음 접한건 학교 도서관에서였는데 책 뒷머리에 써 있는 글을 보고서

바리공주를 재해석한 일반 소설인가보다 하는 생각을 막연히 하다가 다시 꽂았더랬습니다.

 바리공주라고 하면

 저는 대학의 신화를 가르치는 교양강좌에서야 처음 접한 여성 영웅이고

 (원래 교과서에 실려있는데 나중에 살펴보니 선생님께서 그 부분을 과감히 생략하셨더군요 -_-...)

요즘이야 동화책이 많이 좋아져 아이들이 바리공주의 이야기를 들을 경로가 많아졌지만

예전에는 무속에 관심이 없고서야 알 길이 없을 정도로 일반적인 신화와는 동떨어져

취급되는 무조신화의 신인데,

 강의에서 처음 바리를 접했을 때는 우리나라의 수많았던 여성신들 중 하나인데다

무려 스스로 오구신이라는 저승의 영혼을 위해 빌어주고 위로해주는 신이 된 서양의

성모에 비견될 정도의 신이라는 점 때문에 놀랍고 놀랍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신화 원전을 배운 영향이 남아있는 상황에선 그 원전을 어떻게 바꿔놓았는지

두꺼운 두께에 두 권이나 되는 책을 보고 볼 생각이 달아나 얌전히 꽂았던 것 같아요.

 최근에야 도서관에서 다시 목지국 막내공주전을 발견하고 집어들었는데

알고보니 이 책이 로맨스소설이고, 신순옥이라는 분은 진주라는 필명의 (연 연두님이셨습니다. 헷갈렸어요;;;)

제가 그리 높이 평가한 적은 없는 작가님의 본명이시더라구요.

 무려 태어나자마자 버려져서 바리데기라는 이름인 바리공주가

아버지 죽을 병 걸린걸 살리겠다고 저승으로 온갖 고생을 하며 찾아갔더니

산적같은 무장승이 아들 일곱 낳아주면 죽은이도 살릴 약이 어딨나 알려주마 하하하하하하

 라고했던 원전의 충격이 되살아나면서

이게 어떻게 로맨스소설로 변할수가 있을까 하는 불안이 앞섰습니다.

 그래도 여지껏 읽은 시대물이나 설화 변형 로맨스에서 제가 실망한 일이 거의 없기도 하고

특히나 고대를 배경으로 하는 로맨스에서 실망한적이 없어서 일단 대출했는데요

 간단히 줄여서 목지국이야기에선 초반부터 나오는 쌍은 정작 바리와 무장승이 아니라

해월공주(여섯째)와 남해용왕이더군요.

 원전에선 존재감도 없는데다 여지껏 예쁨받고도 아버지 살리는 일엔 나몰라라 했던

여섯째 공주님께서 그야말로 환골탈태해 원전에선 눈을 씼고 찾아봐도 없는

용왕님과 함께 성 하나를 작살내며 등장하시는데

 목지국이야기에선 이렇듯 바리공주와 무장승(여기에선 그냥 무장)에 대한 이야기만

하는게 아니라 해월공주와 남해용왕 적한, 그리고 동해용왕의 아들 청목같은

새로운 인물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있는데 이런 인물들의 이야기와 사연이 곁다리로

끼어들어 어색하고 껄끄럽고 지면낭비로 보이질 않습니다.

 해월과 적한의 이야기는 1권에선 눈을 씼고 찾아봐도 나오질 않는 무장과 바리의 로맨스 결핍의

문제를 대신하고 있는지라 사실상 1권의 제목은 목지국 엿째공주전이라고 해도 무방하고,

청목의 경우에도 모든 로맨스에 등장하기 마련인 남조로서

남주의 카리스마에 치여 허무하게 사라지는게 아니라 왜 바리가 오구신이 되는지,

어떻게 한 인간이 신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이는지를 너무 선명하게 보여주는 없어서는 안될 남조예요.

 평소 여주와 남주의 사이를 미진하게 방해하고 사라지거나 어줍잖게 도와주는

남조에 대한 애정이 있어본 적이 드문데 청목은 바리가 저승에 들어가면서부터

그저 그렇고 평범한 남조가 아니게 되었어요.

 무장이나 적한같은 신적인 존재이지만 어린만큼 순수하고 무장과 바리가 얽히는 걸 봤다면

내가 먼저 만났다고 악다구니를 썼을 수도 있을 법 하지만 2권 후반부로 갈수록

여주인공인 바리가 왜 저승의 영혼들에게 연민을 가지게 되었을 지가 청목으로서 이해가 됩니다.

 이 외에 기존의 설화로는 부족했던 바리가 저승에 왜 가게 되었는지,

저승에 어떤 과정을 거쳐서 갔는지, 그 동안 어떤 인물들이 어떻게 도왔는지가

어느 하나 빼놓지 않고 딱딱 맞아떨어진다는 점으로만 봐도

별 다섯개는 먹고 들어갈 책이예요.

 비록 제가 반점을 깎긴 했는데

그건 무장과 바리의 이야기가 2권 전반부에서라도 시작됐었다면 좋겠다는 땡깡이 담긴 반점이구요.

1권 첫 장 부터 '무장승!!! 무장승!!!'하고 기다렸던 걸 생각하면 너무 짧습니다..

 좋게 봐 줘야 할 다른 점이라면

무장이 바리에게 일곱 아들을 요구하지 않았다는 점.....

여기서는 세 자식을 요구하게 되는데 아무래도 현대인이 읽는 책인데. 그것도 여성독자가 많을텐데

일곱아들이라고 하면 무장이 얼마나 잘나고 정감있는 캐릭터든간에 정떨어질 독자가 많겠죠.

원전의 연년생으로 7년 연속 임신출산을 반복하는 바리(게다가 모두 아들)를 여기서 썼다간 그건 순식간에

호러소설이 될 뿐이고;;;;

 첫 아이를 낳은 뒤에 대체 앞으로 둘은 어떻게 할까 싶었는데

그 뒤의 무장의 행보를 보니 또 다시 드는 생각은 정말 잘 쓴 책이구나 하는 것 뿐이었어요.

 무장 자체를 놓고 봐도 더 말이 되는 남주라는 것 외에 원전보다 신분상승한 남주라는 점도 좋은데

이 점에선 싫어하실 분도 계실것도 같기는... 의외로 왕내지는 황제남주 싫어하시는 분 많으시더군요.

그래도 바리나 해월 모두 전혀 약하거나 의지만하는 여주과가 아니라는 점에서

여러 분들이 충분히 좋아하고 즐기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 읽고나니 목지국 막내공주전 외에 다른 시리즈로

한국 무조신화를 현대판 로맨스로 바꿔내도 좋을것같다는 생각이 많이 드네요.

일단 무조신화 주인공은 모두 여자에 신이 된 사람들이라 그런지

뭔가 강한 여주 시리즈가 될 것 같긴 한데;;;

 남장여인네의 한국판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세경본풀이(자청비)도

이 책을 보면 로맨스화 했을 때 대박칠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는데 말이죠

어떤 분이 안 써 주시려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