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의사도 피해갈 수 없었던 불화의 고리 2
우리 부부에게 변화의 계기는 아버지학교였다. 억지로 참석했던 아버지학교에서 나는 충격을 받았다. 명색이 정신과 전문의인데 뭐 더 얻을 게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반신반의하며 들렀던 그곳에서 나는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나한테는 가부장적인 사고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나도 예외가 아니었다. 아내가 나를 괴롭힌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아내의 몸과 마음을 힘들게 하고 있었다.
정신과 전문의로서 나는 새로운 결단을 했다. 이전까지는 정신분열증, 우울증, 알코올 중독 등 정신과 질환을 치료하는 것이 내 길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학교를 마친 후 가족/부부치료를 공부하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정신 질환의 치료만큼 부부 관계의 회복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많은 사람이 부부 관계를 개선하기를 원하지만 체계적인 과정이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아버지학교 이전에는 내가 정신과 전문의라 가정에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버지학교를 수료한 후에는 오히려 정신과 전문의라 가족을 전문적으로 괴롭히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는 나랑 살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남편이 정신과 전문의라 좋겠다."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고 한다. 그때마다 아내는 웃으면서도 속으로는 '당신이 한번 살아보시오.' 하는 심정이었단다. 아는 게 아무리 많아도 그 지식을 자신에게 적용하지 못하면 오히려 독으로 작용할 수 있다. 게다가 제아무리 똑똑한 학자에 천재라도 부부끼리는 몰라서, 모르고 주는 상처가 많다. 몰라서 주는 상처는 상대방에게 더 심각한 상처를 입힌다.
아내가 옆에서 아무리 우울하다고 말해도 나는 속으로 '배부르고 할 일 없으니 우울하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기곤 했다. 위로는커녕 아물지도 않은 상처 위에 더 깊은 상처를 내고 있었다.
아내는 단지 나와 함께하고 싶었던 것이다. 나에게 인정받고 싶고,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 바로 자신이길 바랐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아내가 열심히 사는 내 모습을 존중해주고, 가장으로서 애쓰는 모습에 만족하며 살아주기를 바랐다. 우리는 서로에게 원하는 것이 많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서로를 자극하고 상처를 주었다.
부부치료를 공부해야겠다고 결심한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나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내 일에 충실하고, 가장으로서의 도리를 다해서 행복한 가정을 꾸리겠다는 마음을 가진 평범한 남편, 평범한 남자일 뿐이다. 그런데 내가 직접 불화를 겪고 나니 부부 불화는 대부분의 가정이 겪는 현실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결혼하면 행복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랬기 때문에 아내와 갈등을 겪을 때면 '내가 불행한 결혼을 한 것은 아닌가?' 하는 고민을 하며 밤을 새웠다. 누구에게도 들어본 적은 없지만, 지나고 보니 부부 간의 불화는 결혼생활의 필수 과정이었다. 불화를 겪지 않고 부부가 행복해지는 경우는 드물다. 아니,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사실을 진작 알았더라면 부부 관계회복이 더 쉬웠을 것이다.
여러 부부들을 만나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을 하다 보니, 결혼식 주례를 서달라는 부탁을 왕왕 받는다. 아직 주례를 서기엔 이르다는 생각에 정중히 사양하고 있지만, 훗날 먼저 살아본 사람으로서, 그리고 수많은 부부들을 만나본 사람으로서 주례를 서게 된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두 분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안타깝게도 신혼의 단꿈에 젖어 있을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행복이 아닐 겁니다. 결혼은 행복이 아니라 성숙의 과정입니다. 부부가 함께 그 성숙을 향해 나아갈 때 비로소 행복이 찾아옵니다. 결혼하면 행복해지기 전에 갈등과 불화가 먼저 두 분을 기다릴 것입니다.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은 불화가 찾아왔을 때 당황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럴 때 '우린 맞지 않나 보다.' 혹은 '결혼을 잘못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누구를 선택하든 불화는 반드시 겪게 되어 있습니다.
제 말을 기억해두었다가 훗날 부부에게 불화가 찾아오면 갈등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에 초점을 맞추십시오. 두 사람이 해결하려면 힘들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이 노력해서 안 될 것 같으면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면 됩니다. 필요하면 전문가를 찾아가도 좋습니다. 그렇게 노력해서 불화를 극복하는 순간, 두 사람은 성장하게 되고 결국 부부로서 얻을 수 있는 큰 행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결혼을 하면 누구나 불화를 겪게 된다. 남편과 아내가 결함이 있거나 부족한 부분이 있어서가 아니다. 불화는 단지 자연스러운 결혼생활의 과정일 뿐이다. 실제로 불화를 극복한 수많은 부부들이 이전보다 더 행복하게 살아간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어떤 부부들은 평생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불화를 끌어안은 채로 살아가기도 한다. 더러는 이혼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거나 이혼은 하지 않지만 서로에 대한 아무런 기대 없이 투명인간 부부로 살기도 한다. 누구나 겪을 수밖에 없는 부부의 갈등, 불화 앞에서 당신은 어떤 모습으로 살기를 원하는가?
우리 부부도 불화 앞에서 복잡한 생각을 했었다. 만약 내가 부부치료를 공부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살았을까, 하고 아내와 얘기를 나누기도 한다. 생각하고 싶지도 않지만 그랬다면 지금의 행복은 결코 오지 않았을 것이다. 서로의 차이를 좁히지 못한 채 아까운 시간만 흘려보내고 있었을 것이다. 서로를 탓하면서 말이다.
내가 아내와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부부치료 공부를 하면서 부부 관계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부부 불화의 본질을 깨달았기에 가능했다. 부부 싸움의 격한 말과 행동 뒤에 숨겨진 진심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서로에 대한 오해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부부들이 많다. 그런 부부들을 위해 전문적인 지식뿐만 아니라 몸소 부부 갈등을 겪고 극복한 개인적인 경험과 상담을 통해 관계를 회복한 부부들의 사례, 그리고 진심을 이 책에 담으려고 노력했다. 이 책이 본의 아니게 멀어져버린 남편과 아내 사이의 간격을 좁혀주고, 서로에 대한 시야를 넓혀주어 부부 간의 소통을 도와주었으면 좋겠다.
사랑하기 때문에 결혼한 두 사람은 사랑하기 때문에 싸우고, 사랑하기 때문에 화를 내고 도망친다. 만약 세월과 생활의 무게에 눌려 '정말 그럴까?' 하는 의심을 품고 있다면, 이 책을 다 읽고 나서는 '과연 그렇구나!' 하며 남편과 아내가 동시에 무릎을 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오늘도 서로 각자 다른 방식으로 사랑을 말하고 있는 부부들에게, 그리고 배우자의 사랑을 여전히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부부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 우리, 다시 좋아질 수 있을까 9~ 13 page 중에서 -
우리다시좋아질수있을까,
남편이달라졌어요,
박성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