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사람에게도 인생을 되돌아 보면 한 번쯤 '굉장한'일이 있게 마련이다. 가령 어릴적에 엄마 손을 놓쳐 고아가 될 뻔 했다던가, 아니면 큰 사고가 나서 죽을 뻔한 일이 있었다던가, 그것도 아니면 남들에겐 평범해 보여도 영화같은 사랑을 했었다던가, 하는 최소한 나만의 특별했던 경험. 그런데 여기 18세기 말 프랑스 혁명 전후의 프랑스 파리에서 한 평범한 젊은 의사(그것도 아직 공부 중인) 카르팡디에 박사에게 자타가 공인할 수 밖에 없는 일생 일대에 아주 특별한 경험이 시작된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가세가 기울어 하숙집을 운영하고 있는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카르팡디에 박사에게 어느 날, 전설의 비도크가 찾아 온다. 파리의 모든 건달 놈들이 그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떤다는 바로 그 비도크 말이다. 그는 마흔을 넘긴지 겨우 두어 해가 지난 사람인데도 벌써 전설이란 전설은 다 달고 다닌다. 전설에 따르면, 어떤 사건에 대한 실마리를 두세 가지만 알려줘도 비도크는 눈 깜짝하기 전에 범인을 잡아다 줄 것이다. 문서에 따르면 2, 3년 사이 비도크가 감옥으로 보낸 범죄자  수가 수백 명이다. 만약 다 된 강도질이 마지막 순간에 물거품이 된다면 비도크 때문이다. 귀가 얇은 어느 늙은 과부가, 세상에 이럴 수가, 가진 보석을 용케 고스란히 지켜내는 일이 일어났다면 저 불한당 같은 비도크를 탓하라. 커튼 색깔만 알고도 뒤를 밟아 도둑을 체포한 이야기는 어떤가? 튈르리 궁전 연회장으로 곧장 걸어들어가, 국왕에게 인사하던 사기꾼을 그 자리에서 잡아낸 것은 어떻고? 며칠 밤새 바람의 방향이 바뀌고 계단에서 삐걱 소리가 나기만 해도, 나쁜 놈들 목구멍에서는 그 이름이 욕설처럼 터져나온다. 비도크다. 비도크가 떴어.

 

바로 이 비도크가 소심하고 평범한 청년 카르팡디에 박사앞에 불쑥 나타났으니 어찌된 일일까. 이유인즉, 비도크가 맡고 있는 사건의 죽은 피해자 손에 들려있던 종잇조각에 씌여진 문구 때문이었다.

 

 엑토르 카르팡디에 박사

 뇌브-생트- 주느비에브가 18번지

 

자, 이렇게 해서 젊은 카르팡디에 박사는 본의아니게 비도크와 함께 살인 사건의 중심에 끼어들게 되고 사건을 해결해 나갈수록 점점 역사의 거대한 소용돌이에 빠져들게 된다. 우선 그가 한 번 만나본 적도 없는 르블랑이란 죽은 남자의 손에 든 쪽지에는 왜 그의 이름이 씌여 있었을까? 여기서 약간의 스포를 실례해도 된다면 젊은 카르팡디에 박사의 아버지도 한때는 의사였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는 그 의사였던 시절 혁명정부의 지시로 탐 속에 짐승처럼 갇혀 있는 아홉 살짜리 남자아이의 건강을 돌보게 된다. 아이의 이름은 '샤를'! 이제 감이 오시는가?

 

박사의 아버지는 그 뒤로 한동안 '샤를'을 돌보며 그가 처한 끔찍한 상황에 연민을 느끼게 되고 급기야 르블랑과 함께 트로이의 목마를 이용하여 전직 남작 부인의 하녀였던 비르질이라는 세탁부의 죽어가는 아들과 바꿔치기를 하게 되는데...

 

얼마 후, 탑 속의 왕자는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그 뒤로 의사를 그만두고 은둔 생활을 하던 박사의 아버지도 고뇌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샤를과 비슷한 나이였던 박사의 아들은 오늘 이렇게 자라서 아버지의 숨겨졌던 과거를 파헤치게 된다. 카르팡디에 박사의 집에 머물고 있는 아버지의 오랜 친구 '시간 어르신'이 건네준 일기장에는 믿기 어려운 일들이 적혀 있고, 또 다른 살인이 일어나면서 비도크와 카르팡디에 박사는 일기장 속의 그 주인공을 만나게 된다. 박사의 아버지가 목숨을 바치면서까지 지키려 했던 인물, 프랑스 혁명의 비극의 주인공 '루이 샤를'.

 

또다시 샤를은 왕위 계승과 관련해 암살의 위협에 놓이게 되고 이제는 대를 이어 그를 지켜내려는 카르팡디에 박사. 그러나 그는 과연 진짜 '루이 샤를'일까? 책을 내려놓을 수 없는 흥미진진함이 당신의 손에 땀을 쥐게 할 것이다.

 

p.s. 역자는 비도크를 홈즈에 비유하고 카르팡디에 박사를 왓슨 박사에 빗대었지만 내 개인적 의견으로는 카르팡디에 박사가 비도크보다 좀더 매력적인 인물임.

 

 

이 책은 이른바 학교물이다. 처음에 제목과 표지 그림을 보고 초등학생용(그것도 중학년 정도)인가 싶었는데 읽어보니 아이들은 물론 선생님과 학부모를 포함한 어른들이 꼭 읽었으면 싶은 책이다. 아니, 오히려 책 속에 담긴 감동과 아름다움을 느끼려면 어른이 되어서야 제대로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그만큼 어른인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고 다시 한 번 세 아이를 둔 '엄마로서의 나'를 되돌아 보게 만든 작품이다. 선생님들이나 앞으로 선생님이 될 꿈을 가지고 있는 젊은이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역시 많은 생각과 고민을 하게 될 것이다. 일례로, 일본에서 이 책에 대한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다.

 

"나는 이 책이 싫습니다. 이 책을 쓴 작가가 밉습니다." 이 글은 일본의 어느 교육대학에서 이 작품을 읽고 리포트를 제출한 한 여학생의 글이다. '나는 약한 인간이다. 그런 식으로는 살아갈 자신이 없다. 그런데도 나는 선생님이 되고 싶어했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도저히 못할 것 같다. 선생님이 되겠다는 생각을 단념해야 할까? 그러는 편이 아이들을 위해서 좋다.'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작품이 싫다는 글이었다.

이 글을 읽은 교수는, 바로 학생 같은 사람이 선생님이 되어 주었으면 좋겠다고, 마음 약하고 좀처럼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아이들이 수두룩할 테니까 그런 아이들과 발을 맞추어 함께 걸어가 주기를 바란다고 편지를 써 주었다. 도대체 어떤 이야기이길래 여학생은 그런 고민을 했을까?

 

일본의 여학생이 위에서 말한 '그런 식'으로 살아가는 선생님은 이 책의 주인공 중의 한명인 고다니 후미 선생님이다. 고다니 선생님은 대학을 졸업한 지도 얼마 안 되고, 결혼한 지 겨우 열흘밖에 되지 않은 스물 두 살의 여선생님이다(시대적 배경이 1970년대 초반이라 스물 두 살에 벌써 대학을 마치고 선생님이 될 수 있었나 보다). 더구나 평범한 의사네 집 외동딸로 곱게 자란 그야말로 여리고 순수한 분이다. 그런 선생님이 처음으로 부임한 학교가  H공업지대 안에 있는 쓰레기 처리장 옆의 히메마쓰 초등학교이다.

 

1918년에 세워진 뒤로 거의 손을 보지 않은 처리장에서 일용직으로 일을하며 살아가는 집의 아이들이 이 초등학교에 많이 다닌다. 같은 반 친구들은 물론 많은 학부모와 선생님한테도 처리장 아이들은 거칠고 더러운, 그래서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존재다. 처리장 아이들은 선생님들께 존댓말도 쓸 줄 모른다. 저희들끼리 어울리고 똘똘 뭉쳐 있다. 하지만 이 아이들에게도 진심으로 믿고 따르는 선생님이 있다. 바로 괴짜 아다치 선생님이다. 아다치 선생님은 다른 선생님들 앞에서 처리장 아이들을 위해 대변을 하는 데에도 거침이 없고 처리장 아이들과 허물없이 어울리며 돌보아 준다.

 

어느 날, 고다니 선생님네 반에서 사건이 일어났다. 처리장에 사는 데쓰조가 친구의 개구리를 발로 밟아 죽이고 두 달 후, 개미를 관찰하는 시간에는 무심코 한 아이의 병을 집어들고 설명을 시작한 고다니 선생님을 향해 눈 깜짝할 사이에 사냥개처럼 덤벼들어 공격을 한 것이다. 그리고 뒤이어 병 주인인 후미지를 향해 달려들어 피투성이로 만들어 버린 데쓰조.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데쓰조는 왜 그런일을 저질렀을까? 얼마 후에 고다니 선생님은 후미지가 두 달 전에 학교 숙제로 처리장에 가서 잡아온 파리가 바로 데쓰조가 병 속에 키우고 있던 파리였다는 것을 알게 되고 후미지에게 데쓰조한테 사과를 하도록 시키고 자신도 데쓰조에게 마음을 몰라 줘서 미안하다고 사과한다. 그런데 다음 날 후미지의 아버지가 학교에 들이닥쳐 맞은 것도 억울한데 때린놈에게 사과를 시키냐며 한바탕 소동을 부린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고다니 선생님은 학교에서 일하면서도 왠지 마음이 차가워져 있는 자신을 느꼈다. 처음에는 귀엽게만 보이던 아이들도 사소한 오해로 자기한테 피해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하자, 마음이 사려지면서 마냥 귀여워할 수만은 없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학교를 그만 두고 싶었고 날마다 찜찜한 기분으로 학교에 왔다.

 

그러나 고다니 선생님은 차츰 아다치 선생님의 도움으로 처리장 아이들의 참 모습을 보게 된다. 특히 할아버지와 단 둘이 사는 데쓰조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아 가게 된다. 어느 날, 데쓰조의 할아버지는 데쓰조가 더러운 파리를 기르는 것에 대해서 고다니 선생님께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이 녀석은 어미도 없고 아비도 없습니다. 세상에서 귀여워 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죠. 그렇게 생각하니 파리를 키운다고 화를 낼 수가 없었어요. 산으로 데려가면 데쓰조는 곤충을 키울 겁니다. 강으로 데려가면 물고기를 기르겠지요. 하지만 나는 아무 데도 못 데려 갑니다. 이 녀석은 쓰레기가 모이는 여기밖에 모르고, 여기는 구더기나 하루살이, 그리고 기껏해야 파리밖에 없는 뎁니다."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모두 들은 고다니 선생님은 한 마디도 못한채 고개를 숙이고 만다. 데쓰조에게 파리는 마음을 줄 수 있는 유일한 친구였던 것이다.

 

처리장 아이들은 더럽고 싶어서 더러운게 아니다. 거칠고 싶어서 거칠어진게 아니다. 그 아이들이 살아 가고  있는 환경에 의해 그렇게 자라난 것이다. 하지만 그 거친 겉모습 뒤에는 서로를 마음으로부터 걱정해 주고 격려해 주는 따뜻한 모습, 꿈을 잃지 않고 밝고 힘차게 성장해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물론 그 곁에는 깡패 교사로 불리는 아다치 선생님과 초심을 잃지 않고 아이들을 진심으로 대하는 고다니 선생님, 그리고 오다 선생님과 오리하시 선생님처럼 아이들을 마음으로 사랑하는 선생님들이랑  진정한 우정을 나누게 된 친구들과 학부모들이 있다.

 

아다치 선생님의 숨겨진 아픔인 '형의 목숨을 먹고 산 이야기'부분에서는 가슴이 먹먹해지고  제대로 된 말도 글도 모르던 데쓰조가 서서히 닫혔던 마음의 문을 열어 어느 날 작문 시간에 어렵게 쓴 '고다니선생님조아'라는 짧은 글은 그 글을 읽은 고다니 선생님이 흘린 눈물처럼 내 마음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고다니 선생님의 차갑고 냉정한 남편처럼 현실의 세상은  온갖 편견과 불평등, 경쟁으로 인해 살아가기가 더욱 힘들다. 이런 세상 속에서 내 아이를 남과 더불어 살 수 있는 아이로 키우고  싶다. 때묻지 않은 순수함이 남아 있는 아이로 키우고 싶다. 이기는 것만이 제일이 아닌 서로 보듬어 주고 마음이 따뜻한 사람으로 자라나 조금이라도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 나갔으면 한 없이 좋겠다.

 

ps. 개정판의 표지가 마음에 안든다. 개정판에 그려진 데쓰조는 너무나 귀엽고 깨끗하고 밝아 보여서 책을 읽으면서 떠올린 데쓰조의 모습과 어울리지 않는다. 초판에 그려진 데쓰조의 모습에 훨씬 마음이 간다.

 

 

많이 실망스러운 작품이다. 이 작품이 정말로 에드거 상, 매커비티 상, 앤서니 상, 배리 상들의 최우수 신인상을 수상한 작품이란 말인가. 그 해에 제대로 된 작품이 없었나. 그렇다면 최우수 신인상 부문은 선정을 하지 않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나는 이 작품에 별을 겨우 세 개밖에 줄 수 없는 이유로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번역과 인상을 찌푸리게 만드는 영림카디널 편집부의 책임으로 돌릴 수 밖에 없다.

 

물론 이런 장르의 작품에서 독자의 호기심을 잔뜩 자극할 만한 사건(1984년 아일랜드의 노크나리라는 낙후된 지역에 있는 숲 속에서 열 두 살의 세 아이 중 두 아이가 실종되고 피투성이가 된 신발을 신고 남겨진 한 아이는 그 숲 속에서 있었던 부분만 기억을 하지 못한다)을 만들어 던져놓고 흥미를 불러일으켜 책을 집어들게 만들어 놓고는 정작 그 사건을 제대로 된 결말도 없이 미완인 채로 끝내 버리는 어이 없는 스토리 전개 때문에 해외 독자들의 반응도 호불호가 갈린다고 하는 것은 둘째치고 우리나라에서는 제대로 된 출판사를 만나지 못해 호불호로 나뉠만한 관심과 평가조차 받기 힘든 작품이라는 개인적인 생각이다.

 

스토리 전개는 대략 이렇다. 위에서 말한 사건에서 살아남은(?) 남자 아이가 20여년의 시간이 흐른 후 살인사건 전담반의 형사가 되고 노크나리에서 열두 살의 여자 아이가 강간살해당한 사건을 수사하게 된다. 책을 읽어나가면서 중반부에 이미 범인을 예측할 수 있는 상황에서 작가가 자꾸만 억지스럽게 20여년 전의 사건과 지금의 사건을 연결지으려는 느낌이 들어 이건 뭐지, 어떤 결말을 내려는 걸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왜냐하면 내가 예측한 인물이 범인이 맞다면 그 사람은 20년 전의 사건의 범인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20년 전의 사건은 밑도 끝도 없이 그냥 끝내버린다. 살아남은 유일한 목격자이자 주인공인 '나'는 1인칭 시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도 사라진 두 친구가 결국 살았는지 죽었는지, 아니 그가 잃어버린 기억은 무엇이었는지조차도 작가는 끝내 알려주지 않는다. 이런 제길. 내가 정작 궁금한 건 20년 전 사건의 진상인데. 작가는 아마 자신도 어떻게 끝을 맺어야 할지 고민하다가 결국 포기하고 만 걸거다.

 

그리고 번역되는 과정에서 완성도가 떨어져 분명 주인공들은 30살이 넘은 형사들이건만 대화하는 걸 보면 마치 아직도 풋풋한 십대들의 모습이 연상된다(오,이들은 형사들이란 말이다!). 오죽하면 삼십이 넘은 형사들이 열 여덟, 열 아홉의 용의자들을 취조하면서 존대말을 쓰는걸 보고 어이 없는 쓴웃음이 다 나오겠나. 게다가 주석은 또 왜이리 많은건지. 거의 페이지마다 각주가 아래쪽에 딸려 있는 통에(어느 페이지에서는 3개나 된다) 추리 소설의 가장 기본인 흡입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거기에 온갖 오타가 난무하는 편집은 정말이지 두 손 두 발 다 들게 만든다. 나중엔 뒤늦게 독자에게 드러낸 사건의 증거물에 대해서 이게 과연 작가의 의도였을까, 아니면 출판사 편집부의 잘못이었을까,하는 우스운 고민까지 하게 되었으랴.

 

요즘 엄청난 할인률로 판매하고 있길래 블랙캣 시리즈를 세 권이나 더 샀는데 과연 읽어야 할지 고민이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