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범죄와 관련해 흔히 거론되는 말 중에 하나가 '사이코패스'란 단어다. 몇 년 전부터 방송에 등장하기 시작한 몇몇 알려진 프로파일러들의 입을 통해 거론되더니 한때는 스스로 사이코패스의 기질을 체크해볼 수 있는 자가 진단법까지 인터넷을 통해 유행을 해서 우리집 아이들도 장난삼아 키득거리며 묻고 답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희대의 살인마라 불릴 정도로 끔찍한 성폭행과 이어진 살인범들에게 따라붙는 말인데 그럴 때마다 나도 모르게 반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나 자신 성선설과 성악설에 대한 뚜렷한 답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살인자들에게 붙여진 '사이코패스'란 단어가 마치 그들이 저지른 끔찍한 범행들에 대한 일종의 면죄부처럼 느껴져서다. 사이코패스란 진단만 내려지면 그들은 자신의 어떠한 행동에도 인간으로서의 도덕적 책임을 피할 수 있는 것인가?

 

여기 기시 유스케의 <검은 집>은 바로 전형적인 사이코패스와 보험살인의 결합으로 우리 사회의 가장 어둡고 잔인한 면을 들추어 낸다.

 

주인공 와카스키 신지는 쇼와생명 교토 지사의 주임이다. 어느 날, 그는 중년의 여인으로부터 자살하는 경우에도 보험금이 나오느냐는 전화 문의를 응대하게 되고 상대의 자살을 막기 위해 형의 자살로 상처받은 자신의 개인사를 털어놓게 된다. 얼마 후, 신지는 고모다 시게노리라는 고객으로부터 자신을 특별히 지명해 방문해 달라는 요구를 받는다.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찾아간 고모다의 집은 알 수 없는 불쾌감과 꺼림칙한 느낌을 풍기며 거부감을 일으키는데 도망치듯 되돌아가려는 순간 나타난 고모다에 이끌려 검은 집으로 들어가게 된다. 형용할 수 없는 썩은 악취를 풍기는 집 안으로 들어간 신지는 고모다의 어린 아들이 목매달아 죽어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신지는 경찰에게 목격자로서 현장의 정황으로 보아 타살의 의문을 털어놓고 회사에서는 경찰의 수사가 끝날때가지 보험금 지급을 미루게 된다. 그러자 그날부터 고모다 시게노리의 보험금 청구를 위한 무언의 압박을 가하는 매일매일의 방문이 이어지고 한편으로 신지는 자신의 집에서 전화가 울린 후 받으면 말없이 끊어버리는 무언의 협박을 받기 시작하면서 신경줄이 끊어질 정도로 긴장의 나날이 계속된다.

 

타인에게 살아있는 상태에서 사지를 절단하고 살을 저며낼 정도의 고통을 가하고 심지어 자신의 피를 나눈 자식까지도 자기의 이익과 목적을 위해 아무렇지도 않게 제물로 삼는 섬뜩함과 잔인함의 극치를 보면서 작가가 한 편으로 주장하는 사이코패스에 대한 사회적 책임과 영향의 한계를 어디까지 물을것인가에 대한 의문은 독자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십삼년 전에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는 정말 무섭고 끔찍한 '소설', 특히 일본 작가나 쓸 수 있는 굉장히 크로테스크한 소설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요즘 이 책을 다시 한 번 읽으면서 며칠 전 일어난 용인 여고생 살인사건이 떠오르며 씁쓸한 마음이 드는 것은 점점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마치 끔찍한 소설처럼 비인간화되어 가고 있는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듯해서일 것이다.

 

 

작가의 책을 하나 둘씩 모아놓고 애지중지하며 한 권씩 꺼내 읽곤 했는데 아직까지 진짜 소설다운 소설을 읽은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여태까지 읽었던 책들은 모두 수필이나 짧은 중 단편들이었기에 기대에 못 미치면 어쩌나 하는 우려 때문에 읽기 전에 살짝 떨리고 긴장되던 마음이 어느샌가 '아, 박완서 선생께서 이렇게 세속적(?)이고 재미난 소설을 쓰시기도 했구나.'하는 감탄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야기의 화자는 유명 대학병원의 교수인 심영빈이다. 공무원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수뢰사건에 연루되었다가 어머니와 고등학생인 형 영준, 중학생인 영빈, 그리고 유복녀 영묘를 남기고 세상을 떠난다. 법대에 들어간 후 일찍이 가장의 노릇을 하게 된 형은 동생 영빈이 의대에 들어가자 그제까지의 모든 짐을 털어 버리듯 미국으로 유학을 가 버리고 영빈은 홀어머니와 열 여섯살의 터울로 인해 자식같은 애정을 갖게 되는 영묘와 함께 살아가다가 뭔가에 떠밀리듯 연애 반 중매 반으로 만난 아내 수경과 결혼을 하고 딸 아이 둘을 두게 된 사십 대의 가장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병원에서 초등학교 동창 현금을 우연히 만나게 되고 삼십 여년 전 어린 현금의 입에서 나온 당돌한 한 마디에 훗날 의사가 될 정도로 그의 기억 한 귀퉁이에 늘 강렬하게 남아 있던 그녀와 불륜의 관계를 갖게 된다.

 

그와 함께 다른 한 편으로 영빈의 동생 영묘는 재벌집의 맏며느리로 시집을 가게 되는데 선남선녀처럼 행복한 시절은 잠시, 남편 송경호가 암에 걸려 죽게 되고 그의 죽음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송씨 집안의 이해 할 수 없는 돈에 대한 속물근성에 괴로워 하고  영빈은 그런 동생의 고통을 지켜보는 것밖에는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는 자신의 무기력함에 괴로워 하다 몇 십 년동안 소원하게 지내던 형 영준에게 이메일을 보내게 된다.

 

뒤에 벌어지는 일들의 짜릿함. 그 맛에 책을 다 읽고도 전에 없이 몇 번이나 다시 읽고 또 읽었다는 것 아닌가. 재미와 뼈대가 함께 있는 소설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예전에 덴젤 워싱턴이 주연으로 나왔던 영화를 꽤 재미있게 본 적이 있다. 천재 법의학자지만 전신마비 환자인 주인공 링컨 라임의 역을 맡았었는데 제목이 아마 <본 컬렉터>였을거다. 그리고 나중에 <본 컬렉터>의 원작자가 제프리 디버라는 것을 알게 됐고 그가 발표한 많은 작품들을 모두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제서야 처음으로 읽게 된 작품이 바로 <잠자는 인형>이다.

 

여주인공 캐트린 댄스는 제프리 디버가 '링컨 라임'시리즈의 일곱 번째 작품 <콜드 문>에서 거짓말을 간파하는 심문의 달인으로 첫 등장을 하고 이후 새로운 시리즈의 주인공이 되었다. 캐트린 댄스는 말하자면 인간 거짓말 탐지기라고 보면 된다. 범인을 심문하면서 '동작 분석학'을 이용해 상대의 거짓말을 탐지해 내고 진실을 꿰뚫어 사건을 풀어 나가는데, '동작 분석학'이란 이른바 상대의 몸짓과 표정을 분석하는 것이다. 단 한 번의 몸짓, 외마디 단어, 입가의 미세한 떨림과도 같은...

 

이번에 그녀가 맡은 사건은 일가족을 잔인하게 살해하고 교도소에 수감되었다가 탈옥한 컬트 리더인 다니엘 펠이다. 가족과 사회에서 외면당하고 버림받은 이들을 교묘히 이용해 자신을 따르고 추종하게 만들어 스스로 현대판 피리부는 사나이가 되고자 하는 펠은 자신을 뒤쫓는 경찰들을 차례차례 농락하며 살인을 계속하고 댄스는 체포 직전 번번히 놓치고 마는 그를 잡기 위해 '잠자는 인형'이라고 불리는 일가족 살인사건의 유일한 생존자인 소녀와의 접촉을 시도한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긴장을 늦출 수 없게 만드는 몰입도가 뛰어난 작품이다. 요즘 케이블에서 자꾸 틀어줘서 슬쩍 보게 된 <킬빌>의 우마 서먼이 판권을 구입했단다. 우마 서먼의 캐트린 댄스라... 글쎄, 한 번 기대해 보자. 덴젤 워싱턴의 링컨 라임을 능가할 수 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