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막내 딸아이는 스티커광이랍니다. 밖에만 나가면 스티커를 사달라고 조르는데 스티커를 파는 곳이 많아서인지 자꾸만 사주게 됩니다. 물론 스티커북은 아무래도 비싸니까 가끔 사주지요. 게다가 가격도 가격이지만 가까운 서점에서 스티커북을 고르면 종류가 많질 않아서 이미 다 한번씩 샀던 것들 뿐이더라구요.

 

그런데 인터파크에서 아주 멋진 스티커북을 만났습니다. '세계의 소녀들이 열광한 어스본의 공주 스티커 시리즈 국내 출간!'이라고 표지에 씌여 있는데 전 어스본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스티커북은 아주 마음에 들어요. 음, 말하자면 그동안 딸아이에게 사주었던 디즈니 공주 스티커북이나 만화 캐릭터 스티커북과는 차원이 다른 느낌이랄까요? 그림 자체가 아주 예쁘고 각 장면마다 짧은 글들이 함께 있어서 마치 예쁜 그림책같기도 해요.

 

딸아이는 택배 상자를 여는 순간부터 너무 예쁘다고 소리를 지르며 난리가 났어요. 가슴에 꼭 끌어 안고 아끼고 아껴서 하루에 한 장씩만 할거라고 하더니만 어제 세 장을 하고, 오늘 아침에 눈 뜨자마자 또 두 장을 하더니 저녁 나절엔 이미 다 끝내 버렸더라구요. 그런데 지금까지 스티커북은 한 번 붙이고 나면 휙, 던져 버리더니만 이 책은 계속 끌어안고 다니더니 자면서 베개 밑에 넣어두고 잠이 들었네요^^

 

남편도 그런 딸아이를 보고는 커피 한 잔 덜 마시고 우리 OO이 스티커북이나 사줘야겠다, 하더군요. 참, 그런데 책 소개에는 스티커를 떼었다, 붙였다, 할 수 있다고 되어 있는데 실제로는 한 번 붙이고 나면 잘못 붙였을 때 다시 붙일수 있는 정도예요. 하지만 단 돈 4400원에 이정도로 예쁘고 고급스러운 스티커북을 사서 딸아이가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니 참 좋았답니다.  

 

 

헌책방을 둘러보다 우연히 발견한 책 <엘링, 천국을 바라보다>가 너무 좋아서 내 영혼의 친구로 삼아 버린 엘링이 그 후로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 그 다음 시리즈인 <엘링, 내일은 나를 사랑해줘요>를 구입했다.

 

엘링뿐만 아니라 전편에 등장하는 그의 친구들 안부도 무척 궁금했는데 우선 엘링의 절친이자 엘링처럼 사회적 부적응자였던 키엘은 레이둔과의 결혼생활을 알콩달콩 해나가고 있다. 결혼 후 끊기로 다짐했던 포르노 비디오를 들켜서 집에서 쫒겨나 엘링의 집에서 신세를 지기도 하지만 그들에겐 둘을 연결해 주는 사랑스러운 딸 모니카도 있고 해서 걱정이 안된다. 그런데 엘링의 영혼의 친구였던 노시인 알폰스 요르겐센은 안타깝게도 갑자기 찾아온 전신마비로 요양원 신세를 지고 있다.

 

그리고 그런 알폰스를 가끔 찾아가곤 하는 우리의 친구 엘링은...... 다시 혼자가 되어서인지(역시 사람은 혼자 외롭게 지내는 것은 좋지 않다) 또다시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서 바로 윗집에 살고 있는 키엘의 방문도 피하면서 엉망의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키엘과 레이둔의 도움으로 정상의 생활로 돌아온 그는 이제 마흔의 나이에 생애 첫 사랑을 이루기 위해 고군분투를 하고 있다. 여기서 살짝 귀띔을 하자면 엘링은 아직 여자를 한 번도 사귀어 본 적이 없는 순결남이라는 거다. 그런 그가 스낵카에서 소세지를 파는 아가씨 '로네'에게 말 한 번 걸어 보기 위해 긴장하고 식은땀을 흘리는 모습은 역시 엘링답네,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힘들게 첫 만남을 성공하고 그녀의 집에 초대 되었을 때 혹여나 엘링이 무슨 실수나 저지르지 않을까 내 마음이 다 떨린다. 그런데 역시나 엘링은 그녀가 보여준 앨범 속 예전 남자친구들의 사진을 보고는 그만 감정이 폭발해버리고 만다. 아, 엘링 그래가지곤 장가 못가요......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 시절이 좋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건 정말 슬픈 일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러하다.(p199)

 

엘링이 나머지 인생을 더이상 외롭지 않게 행복해졌으면 좋겠는데 안타깝다.하지만 '내일'이란 단어가 희망을 품고 있는 것처럼 나도 엘링의 앞날에 대한 행복을 빌고 싶다.

얼마 전 뉴스에서 중,고등학생들에게 가족의 범위에 대해 묻는 조사를 했던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놀랍게도 학생들 대부분이 할머니, 할아버지는 가족의 범위에 들지 않는다고 했더군요. 이모나 고모, 삼촌까지는 아니더라도 할머니 할아버지조차 나와 한 가족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고 산다는 것이 무척 놀라웠고 아, 이게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시대의 현실이구나, 하는 씁쓸한 생각이 들었지요.

 

이 책은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입니다. 어릴 적 부모님이 다른 일손도 없이 두 분이서만 꾸려나가셨던 작은 중국집에 딸린 살림방에서 천방지축 사남매와 치매에 걸리신 할머니까지 돌보면서도 묵묵히 삶을 살아가셨던 모습을  어린 '나'의 눈으로 본 '우리 가족'이야기입니다(책에선 부모님과 나와 동생, 그리고 할머니, 이렇게 나옵니다).

 

'우리 가족'은 원래 네 식구였지요. 그런데 어느 날, 따로 사시던 할머니께서 함께 사시게 됩니다. 할머니는 아빠가 어릴 때도 함께 사시지 않았었는데 말이죠. 그런데 할머니는 아무래도 이상하십니다. 밖에 나가 주워온 옷을 몸에 걸치시고 밥상에서도 같이 밥을 먹기 싫을만큼 더럽게 드시지요. 게다가 똥 오줌도 못 가리시고 옷장안에 음식을 몰래 넣어둬 구더기가 생기기도 하고요. 급기야 집 밖의 동네 길바닥에서 쓰러져 잠이 드셔서 아빠가 할머니를 업고 오시기도 했어요.

 

처음부터 얼굴을 제대로 보이지 않았던 할머니는 아빠의 등에 업혔을 때는 몸집이 어마어마하게 크게 그려진 것이 그 무게가 바로 아빠가 짊어지고 있는 삶의 무게같아서 제 마음이 다 무거웠습니다.

 

어느 날, '나'는 아빠에게 말합니다.

 

아빠, 할머니 다시 가라고 하면 안 돼요?

안 돼.

왜요? 아빠 어릴 때도 따로 살았다면서요.

그래도 안 돼. ......엄마니까.

할머니는 아빠 엄마거든.

그럼 아빠, 할머니도 우리 엄마처럼

아빠를 사랑했어요?

......

 

아버지는 어릴 적 자신을 버렸던 할머니조차 '가족'이기 때문에 받아들이고 모든 걸 감싸안으셨던 게지요. 억울해하지도 불평하지도 않으시면서 단지 한마디, "부몬데 우짤 끼고." 라는 말과 함께요. 그리고 그런 아버지를, 아버지의 상처를 이해하셨던 어머니. 자식에게 모든 것을 바친 부모도 모시기 싫다고하는 세상에 작가가 삼십 년 넘는 세월 동안 자신의 마음 한 가닥을 잡고 놓아주지 않더라는 이 이야기가 제 마음에도 오랜동안 한 자리를 차지할 것 같습니다.

 

여섯 살 딸아이는 그저 그림과 이야기가 재미있기만 한가 봅니다. 할머니가 웃통을 훌렁 벗어서 젖이 다 드러날 때는 와하하, 웃음을 터트리고 할머니가 똥 오줌을 못 가려 이불과 옷을 더럽혔을 때는 "어, 할머닌 바본가봐. 나도 이젠 화장실에 가서 혼자 똥 눌수 있는데." 하면서 고개를 갸웃하네요.

 

막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양가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셨던 터라 한 번도 할머니의 사랑을 느껴보지 못한 딸아이는 늘 다른 친구들의 할머니를 부러워하곤 했지요. 그래서일까요, 자기는 이런 할머니라도 같이 살고 싶다고 고개를 크게 끄덕이네요.

 

투박해 보이면서도 마음을 끄는 그림과 가슴을 뭉클하게 만드는 이야기가 어우러져 다시금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게 만드는 책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