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만 보는 바보, 이름하야 간서치. 1941년 서자 출신으로 태어나 가난한 환경에서 자랐으나 박학다식하고 시와 문장을 잘하여서 박제가, 유득공, 이서구와 더불어 중극에까지 알려진 사가시인(四家詩人)중의 한사람이기도 하며 1779년에 규장각 초대 검서관으로 임명된 이덕무의 별명이다.
예닐곱 살때부터 또래들과 어울려 놀기보다는 방안에 비쳐든 햇살을 따라 책상을 옮겨 가면서 책을 읽으며 행복해했던 그는 자라면서 아무리 글공부를 하여도 쓰일 곳이 없는 현실의 암담함을 마주하고서도 더욱 책 속에 파묻혔다. 책은 그에게 삶이자 우주였다. 고작 가로 한 뼘 남짓, 세로 두 뼘가량, 두께는 엄지 손가락의 절반쯤이나 될까말까한 낡은 책 한 권이 일단 책장을 펼치고 보면, 그 속에 담긴 세상은 끝도 없이 넓고 아득하다고 하였다. 넘실넘실 바다를 건너고 굽이굽이 산맥을 넘는 기분이라고도 하였다.
오죽하면 "이덕무의 눈을 거치지 않고서야, 어찌 책이 책 구실을 하겠느냐"며 귀한 책을 구해 자신이 보기 앞서 이덕무에게 먼저 보내오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하루 세끼 끼니를 잇기도 힘들 정도로 가난한 형편인데도 서자라는 출신의 굴레는 관직에 등용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장사를 하여 생계를 이어갈수도 없었다. 온전한 양반들의 세계에 끼워 주지도 않으면서, 또 다른 반쪽의 핏줄이 이끄는 대로 살아가는 것도 비웃으며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럴수록 그는 책을 읽고 또 읽었다. 배고플 때만이 아니라 추위에 떨 때, 근심 걱정에 시달려 마음이 복잡할 때, 아플 때도 책을 읽으면 그 모든 괴로움이 덜어지는 듯 하다고 했다. 그래서 책읽기의 이로움을 다음과 같이 적어두고 마음에 새겼다.
첫째, 굶주린 때에 책을 읽으면, 소리가 훨씬 낭랑해져서 글귀가 잘 다가오고 배고픔도 느끼지 못한다.
둘째, 날씨가 추울 때 책을 읽으면, 그 소리의 기운이 스며들어 떨리는 몸이 진정되고 추위를 잊을 수 있다.
셋째, 근심 걱정으로 마음이 괴로울때 책을 읽으면, 눈과 마음이 책에 집중하면서 천만 가지 근심이 모두 사라진다.
넷째, 기침병을 앓을 때 책을 읽으면, 그 소리가 목구멍의 걸림돌을 시원하게 뚫어 괴로운 기침이 갑자기 사라져 버린다.
현대에는 생활 여건이 나아져서 위의 첫째, 둘째, 넷째의 경우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해당이 없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물질은 풍요로워졌으되 옛 시대보다 오히려 마음의 고민과 병들로 인해 더욱 무미건조하고 팍팍한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이덕무가 전해주는 책읽기의 이로움은 그 무엇보다 적절한 처방일수도 있다.
또 하나, 이덕무의 인생에 있어서 책과 더불어 빼놓을 수 없는 소중한 가치가 있다. 바로 이덕무와 함께 '백탑파'로 불렸던 소중한 벗들이다. 위에 언급된 박제가, 유득공, 이서구외에도 그 유명한 연암 박지원, 무사 백동수, 담헌 홍대용 등은 출신과 나이를 초월하여 진정한 마음을 나눈 벗으로서 서로를 격려하고 이끌어주면서 참다운 우정을 나눈다.
SNS를 통해 쉽고 빠르게 이루어졌다가 사라지는 요즘 사람들의 친구관계를 보면서 이덕무와 그의 벗들이 평생을 함께하면서 나눈 소중한 우정이 부러운 건 오로지 나뿐일까.
며칠 전 신문에 각 대학들이 보유하고 있는 책들을 차츰차츰 없애가면서 줄여나가고 있다는 기사를 보았다. 전자책도 등장하였고, 학생당 1년 동안 대출 권수가 점점 줄어 이젠 10권도 안된다고 한다. 많이 안타깝고 속상하다. 난 전자책을 읽어 본 적은 없지만 종이책에는 분명 전자책은 결코 대신할 수 없는 가치와 의미가 있다. 그 무엇보다 책을 사랑했던 이덕무를 떠올리며 오늘도 행복한 책 읽기로 하루를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