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이 책을 읽으려는 예비 독자에게 다음과 같은 경고의 말을 건네고 싶다.

 

'밤을 세우고도 다음 날 아침 일찍 하루를 시작하는데 지장 없을 정도의 체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절대 늦은 밤 잠자리에 들면서 이 책을 펼치지 말 것.'

 

지금과 다른 삶을 살 수 있다면? 누구나 한번쯤 품어본 생각일 것이다...는 옮긴이의 말인데 사실 말 그대로 이런 생각은 그야말로 한번도 안해본 사람이 더 이상할 정도로 자연스러운 것이며 그래서 오래 전부터 많은 이야기꾼들의 소재가 되어왔을 것이다. 그런데 더글라스 케네디가 '지금과 다른 삶'을 주제로 완벽한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주인공 벤은 미국의 성공한 샐러리맨의 상징인 뉴욕 월가의 로펌에서 근무하는 변호사이다. 고액의 연봉에 아름다운 아내와 사랑스러운 아이들과 함께 뉴욕의 중상류층 사람들이 모여 사는 교외의 고급 주택에 사는 모습은 겉으로 보기에 평온하고 남부러울 것 없어 보인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에겐 어릴적부터 일관되게 품고 있던 꿈이 따로 있었다. 우리는 대부분 어릴 때 첫 꿈을 대통령으로 시작해(요즘은 아니지만) 의사, 변호사, 소방관, 경찰관, 선생님, 간호사 등등 각종 분야의 직업을 꿈으로 바꿔가다 나이가 들면서 차츰 학교 성적에 맞는 직업에 꿈이 장착을 하게 되는데 벤은 열 살 때부터 오로지 사진가가 되는 것이 유일한 꿈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사진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아버지로부터 독립을 하려는 그의 시도는 현실의 벽에 막혀 번번히 무산되고 역시 성공한 월가맨이었던 아버지로 인해 변호사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돈이 곧 자유야.'라는 아버지의 말처럼 벤은 안정적인 직업을 가진 후 다시 사진가로서의 꿈을 이루리라 결심하지만 한 번 변호사로의 길에 발을 내밀게 되자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삶을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

 

... 누구나 인생의 비상을 갈망한다. 그러면서도 스스로를 가족이라는 덪에 더 깊이 파묻고 산다. 가볍게 여행하기를 꿈꾸면서도, 무거운 짐을 지고 한 곳에 머무를 수밖에 없을 만큼 많은 걸 축적하고 산다. 다른 사람 탓이 아니다. 순전히 자기 자신 탓이다. 누구나 탈츨을 바라지만 의무를 저버리지 못한다. 경력, 집, 가족, 빚. 그런 것들이 우리가 살아가는 발판이기도 하다.(p117)

 

고가의 카메라 장비를 사들이는데 돈을 아끼지 않는 것으로 사진가로서의 꿈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벤과 자신이 결혼으로 인해 실패한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아내 베스와의 사이에 불화의 골이 생기고 아내는 어느 날, 이혼을 요구한다. 벤은 아내의 이혼 요구 뒤에 한 동네에 사는 사진가 지망생 게리 서머스와의 불륜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 무작정 그의 집으로 찾아갔다가 사람 욱하게 만드는 그의 시간방지고 경멸적인 태도에 그만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르고 만다. 정신을 차린 벤은 자연스럽게 체포, 자수, 자살의 경우를 상상하지만 결국 막다른 곳에서 벤이 선택한 길은 게리 서머스의 삶을 사는 것이다.

 

자, 이제부터 벤의 인생 제 2막이 펼쳐진다.

 

변호사로서의 치밀한 머리를 가진 그는 주변을 정리한 후 게리의 시체를 싣고 친구의 요트를 빌려타고 바다로 나가 폭발 사고로 위장해 벤 브래드포드의 죽음을 만든다. 그리고 일년 중 여덟달 동안 눈이 내린다는 미국 서부의 몬태나 주 마운틴폴스로 흘러들어가 게리 서머스로서의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그런데 그곳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우연히 찍은 인물 사진이 술주정뱅이이자 칼럼니스트인 루디 워렌에 의해 지역신문 <몬태난>지에 실리게 되고 그 뒤로는 그야말로 눈이 핑핑 돌만큼 일사천리로 성공 가도를 달리게 된다. <몬태난>의 사진부장 앤과 사랑에 빠지고 또, 우연히 찍은 산불현장 사진 하나로 인해 벤은(아니, 게리는) 미국은 물론 세계 각국의 신문에 사진이 실리고 마침내 <타임>지에서도 사진 게재를 요청하는 사진가가 된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정말 허무맹랑한 이야기지만 바로 여기서 더글라스 케네디의 진면목이 드러난다. 4살인 아들 애덤과의 함께했던 순간들, 그 아들과의 마지막 이별, 새로운 사랑으로 나타난 앤 앞에서 행복과 불안 속에 떠는 모습, 자신의 오랜 꿈이었던 사진가로서의 성공을 비록 다른 사람으로서지만 이뤄나가는 모습을 솜씨좋은 이야기꾼답게 실감나고 매끄럽게 이어나간다. 그리고 마지막 장이 다가올수록 과연, 이야기를 어떻게 끝맺을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되어 책장을 넘기는 손은 빨라지고 심장은 긴장감으로 고조된다.

 

그리고 드디어 게리의 인물 사진전이 열리게 되고 오프닝 파티에 참석해 술에 취한 벤은 갤러리에 들어서는 자신의 아내 베스를 발견하게 되는데......

 

그 뒤로 그의 인생이 어떻게 되는지는 남은 20여 장의 이야기 속에 들어 있다. 뒷 이야기를 확인하는 즐거움은 곧 이 책을 펼쳐들 당신에게 넘긴다.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 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남긴 말이었다면,

 

이 글은 오직 소설로서 읽혀지기를 바란다......는 작가인 김훈의 말이다.

 

그러나 책을 펼쳐 들고 1인칭의 시점으로 전개되는 이순신의 이야기는 어느새 나를 420여 년 전 한산도 앞바다로 데려다 놓는다.

 

이순신은 선조의 선병질적인 성격 앞에 마치 바람 앞의 등불같은 위태로운 나라의 처지처럼  삶과 죽음의 외줄타기를 한다.

 

...이원길이 돌아간 지 보름 뒤에 임금이 보낸 면사첩을 받았다... '면사' 두 글자뿐이었다... 죄가 없다는 것도 아니고 죄를 사면해 주겠다는 것도 아니고 다만 죽이지는 않겠다는 것이었다. 너를 죽여 마땅하지만 죽이지는 않겠다, 고 임금은 멀리서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면사' 두 글자 속에서, 뒤척이며 돌아눕는 임금의 해소기침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칼을 올려놓은 시렁 아래 면사첩을 걸었다. 저 칼이 나의 칼인가 임금의 칼인가. 면사첩 위 시렁에서 내 환도 두 자루는 나를 베는 임금의 칼처럼 보였다.(p141)

 

그래서 이순신은 늘 바다 위에서 자신이 '잘' 죽을 수 있는 자리를 찾는다. 그리고 결국 마지막 전투를 위해 나서는 그의 모습에서 나는 가슴 시린 처연함을 느낀다.

 

그날 저녁에, 내 숙사 토방에 걸려 있던 면사첩을 끌어내려 불 아궁이에 던졌다. 나는 집중된 중심을 비웠다. 중심은 가볍고 소슬했다. 나는 결국 자연사 이외의 방식으로는 죽을 수 없었다. 적탄에 쓰러져 죽는 나의 죽음까지도 결국은 자연사일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적이 물러가버린 빈 바다에서는 죽을 수 없었다. 나는 갈 것이었다.(p357)

 

힘 없는 나라의 갈 곳 없는 백성들의 비참한 모습과 아군과 적군을 아우러 개별적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연민 앞에서 참담해지는 자신과의 싸움, 셋 째 아들 면의 죽음 앞에 드러내지 못하는 아비로서의 애끓는 부정, 그리고 그의 여인에 대한 그리움 등, 위인 전기를 통해서는 느낄 수 없었던 위인에 대한 진정한 이해를 이 책을 통해서 이룬다.  

 

김훈의 글에는 군더더기가 없다. 미사여구도 없다. 그러나 그의 글은 혼이 들어 있는 듯하다. 마치 혼을 빼앗기듯 읽어내려간 책이다.

저번 파주 북소리 축제 때 이곳 저곳을 둘러 보다가 주니어 김영사엘 들어갔더랬다. 그런데 수 많은 책들 중에서 유독 내 눈길을 사로잡는 책이 하나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집어 보니 가볍고 얇은 문고판처럼 생긴 책이었는데 제목이 <나의 푸른 베이징>이다. 표지에 그려진 그림이 얼마나 고운지 한참을 들여다 보고 망설이다가 내려놓았는데 몇 발자국 가다가 다시 돌아와 또 집어들고 들여다 본다.

 

몇 편 안되지만 그 동안 보았던 중국 영화 때문인지 중국, 하면 떠오르는 색이 있다. 바로 선명한 붉은색과 화려한 금색이다. 그런데 책 표지의 그림이 바로 이 두가지 색조에 제목처럼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그려져 있어서 색의 조화가 기가 막히다. 선 자리에서 대충 넘겨보니 안쪽의 그림들도 서정성이 가득한게 이야기도 무척 아름다울 것 같은 느낌이다. 결국 사전 지식이나 내용도 모른 채 그림에 이끌려 책을 사고야 만다.

 

집에 돌아와 책을 펼치니 주인공인 소약진(小躍進, '작지만 힘차게 더 나아간다'는 뜻)은  그림 속의 모습을 보고 내가 짐작한 것과는 달리 이제 여덟 살밖에 안된 어린 소년이다. 약진이 살고 있는 곳은 베이징에서도 가난한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사는 '후동'에 다른 가구들과 안마당을 함께 쓰는 공동 주택으로 어머니와 형, 그리고 네 명의 누나와 함께 방 두 칸짜리 집에서 살고 있다.

 

처음에 얼마동안은 약진이 단짝인 소소와 함께 강가에서 물고기도 잡고 연도 날리고 하는 모습들을 보고 아, 가난하지만 아름답고 서정정 가득한 잔잔한 이야기로구나, 하고만 생각했는데 읽다 보니 마오쩌둥이란 이름이 나온다. 그런데 나는 우리 나라 역사에도 밝질 못하니 그 이름을 보고도 그냥 그런가 보다, 했는데 알고 보니 시대적 배경이 1960년대로 중국 공산당 지도자인 마오쩌둥에 의해 자유를 억압받고 굶주리고 많은 이들이 죽어간 암울한 시대였다(당시 마오쩌뚱은 중국의 경제적 발전을 위해 기계보다는 농촌의 노동력에 의존하는 '대약진 운동'을 제시했는데 사실상 중국은 '대약진 운동'을 실시하던 3년 동안 삼천만 명의 사람들이 기근과 기아로 죽었다고 한다). 그러나 어린 약진의 눈으로 바라보다 보니 직접적으로 거칠고 잔인하고 비참한 모습을 느낄 수는 없었다.

 

그런데 읽다 보면 당시의 암울했던 상황을 조금씩 엿볼 수 있는 표현이 조금씩 나온다.

 

'돌아가시기 전에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계란이나 신선한 사과를 먹게 해달라고 얼마나 부탁했는지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어느 것도 해줄 수 없었다. 그 당시 중국에는 먹을 것이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었다.'

 

배급받은 쌀로 한 달을 버티며 살아야 했던 시절, 약진과 소소는 늘 배고픔을 느끼지만 아이다운 천진함과 밝음을 잃지 않는다. 어느 날, 소소는 음악을 좋아하는 약진에게 작은 새 한마리를 잡아 새의 노랫소리를 들어보라며 선물하고 약진은 새에게 '작은 구름'이라는 이름을 지어 준다. 그러나 새장안에 갇힌 작은 구름은 아무리 기다려도 노래를 부르지 않고 그러는 와중에 중국은 문화혁명이라는 대 소용돌이를 맞이하게 된다. 어린 약진과 소소에게 문화혁명은 홍위군들이 수많은 거리와 골목을 훑으면서 떼로 몰려와 책을 태우고, 연 날리기와 옛 시를 금지했던 일로 비추어 진다.

 

그러나 돌아가시기 전 약진에게 "기억해 두렴. 음악과 함께 있다면, 그리고 어디든지 갈 수 있는 상상력만 있다면 너는 언제나 자유로울 거라는 걸 말이야."라고 남기신 '이호'(二胡, 중국 바이올린) 연주자셨던 아버지의 말씀처럼 약진은 대나무 피리를 불며 자유를 꿈꾸고 동심을 잃지 않는다. 아직 자유가 무엇이라고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없는 어린 약진과 소소. 그러나 소소는 하늘 높이 날아올라간 연의 줄을 끊어 연에게 자유를 주고 약진은 새장 속에 갇힌 작은 구름을 하늘로 날려 보내 자유롭게 해준다.

 

이야기가 끝나고 뭔가 아련함이 남았을 때 에필로그의 흑백 사진이 눈에 들어온다. 약진의 실제 주인공이자 저자인 구오 유에가 단짝인 소소와 함께 찍은 사진, 누나와 형과 찍은 사진 ,그리고 부유한 집안 출신이기 때문에 '반 혁명적'이라는 이유로 고발당해 시골로 보내져 3년 동안 소위 '재교육'을 받으면서 당한 고통으로 수년 동안 고치 안에 든 누에처럼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기만 하다가 돌아가셨다는 어머니와 찍은 청년이 된 유에의 사진이 실려있다.

 

결국 유에는 자유와 음악을 사랑했던 어린시절의 꿈을 잃지 않고 훌륭한 플루트 연주자가 되어 영화 <마지막 황제The Last Emperor>를 포함한 여러 영화음악 연주에도 참여하고 음반도 녹음하는 등 미술 작가인 아내와 함께 예술가의 길을 걷고 있다.

 

4,5,6학년 국어 교과서에도 실려 있는 이 책은 잔잔하고 담담한 글 속에서 아이들에게 자유의 의미와 소중함을 일깨워줄 수 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