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아이들 그림책은 우리 나라 작가나 주로 영미권 유명 작가들의 책을 많이 접해서 중국 작가의 책은 거의 처음인 것 같아요. 아직까지 중국 작가의 작품들이 국내에 많이 소개되지 않은 이유도 있겠지요. <달 토끼의 길고 긴 여행>은 중국에서 그림 솜씨뿐만 아니라 시적인 문체로도 유명한 시옹량의 작품이에요. 그래서인지 이 책은 그림과 글이 모두 마음에 쏙 드는 작품이네요.

 

아이가 요즘 글밥이 많은 저학년용 문고들을 읽는데 제법 재미를 붙여서인지 처음 책을 펼쳐들었을 때에 하는 소리가 "에이, 글씨가 너무 적다."라는 거였어요. 그래서 제가 아이에게 말해줬지요. "OO아, 음,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는 이야기책을 생각해 봐. 그 책은 이 책보다 더 글씨도 적고 그림도 간단하지만 세상의 거의 모든 어린이들과 어른들이 알고 있는 이야기지. 그건 그 책 속에 들어 있는 의미 때문이야. 그러니까 이 책에서도 그런 깊은 의미를 찾아보자."라고요. 아이가 아직 '의미'라는 단어의 뜻을 제대로 이해했을 지는 몰라도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책을 차근차근 또 읽어 보더라구요.

 

이야기는 간단합니다. 어느 해 추석, 달에 살고 있는 달토끼는 무척 외로움을 느껴요. 지구에 사는 아이들은 명절 떡도 먹고 서로 선물도 나누는데 달에는 오로지 한 그루의 계수나무밖에 없었거든요.어느 날, 지구에 사는 한 소년의 소원이 달 위로 뱅긍뱅글 올라오자, 달 토끼는 그 소년을 찾아가기로 해요. 

 

지구에 도착한 달 토끼는 '헨리에게, 돌사자 거리 7번지'라고 쓰여 있는 빈 상자를 발견해요.헨리는 달 토끼와 친구가 되고 싶어한 그 아이가 분명해요! 상자 속에 들어가 있으면 선물과 함께 배달되어서 헨리를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달 토끼는 상자 안에 자리 잡고 앉아 살포시 눈을 감았답니다. 과연 달 토끼는 헨리를 만나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있을까요?

 

이야기를 읽어 나가다 보니 마지막 부분엔 예상치 못했던 자그마한 반전이 있어서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하고 아이는 달 토끼가 상자 속에서 나오려고 방망이로 '톡'하고 상자의 천장을 뚫는 모습이 무척 귀엽다고 하네요. 제게는 장면장면마다 중국 고유의 아름다움이 느껴져서 참 이쁘더라구요. 앞으로도 더 많은 중국 작가의 책을 접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아이들이 어렸을 때 그림책을 사다보면 어른이 되어서도 두고두고 보면 좋겠다, 싶은 책들이 있어요. <모두 함께 지은 우리집>도 그런 책이지요. 다른 인기 작품들처럼 유명한 작가의 작품도 아니고 특별히 뛰어나게 그림이 이쁜 것도 아닌데 처음에 한번 얼른 보고 그 다음엔 찬찬히 들여다 보고 그리고 며칠 후에 또 보고, 마치 어느 드라마 제목처럼 보고 또 봐도 질리지가 않아요.

 

요즘 아이들에게 집이란 건 어떤 의미일까요. 예전에 우리 세대들에게는 집이란 기억도 안 날때부터 오래도록 늘 살아 오던 곳, 학교가 끝나고 집에 돌아 오면 언제나 엄마와 할머니가 맞이해 주시던 곳, 나이가 들어서도 몇 십년 된 '동네 친구'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오래된 친구들이 함께 자라던 곳이에요. 그런데 지금은 대개들 몇 년에 한 번씩 자주 이사를 하지요. 전세라는 제도가 생긴 이유도 있지만 우리 나라는 자기집을 가진 사람들의 이사 주기도 외국에 비해서 많이 짧다고 하네요. 그래서 이 책이 더 특별하게 느껴지는지도 몰라요.

 

책 속에 등장하는 가족은 도심의 작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 할머니, 아빠, 엄마, 그리고 나와 동생, 이렇게 다섯 식구예요. 할머니는 엘리베이터가 없는 아파트의 계단을 오르내리시느라 늘 "아이고 아이고, 무르팍이야." 하는 말씀을 하시고, 나는 늘 감기를 달고 살아요. 어느 날 아빠가 말했어요. "우리 시골로 가자. 시골 가서, 우리집 짓고 살자." 이렇게 해서 행복한 우리집 짓기의 첫 발이 시작됩니다. 시골에 가서도 3년이라는 시간의 기다림 끝에 드디어 우리에게도 집 지을 터가 생겼어요. 가족들이 저마다 자신들이 꿈꾸는 집을 상상하는 모습을 보니 제 마음이 다 기대감으로 부풀어 오르네요. 어떤 집이 지어질까. 할머니의 바람처럼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따뜻한 집일까, 동생의 상상처럼 과자랑 초콜릿으로 만든 집일까, 엄마가 기대하는 소박하지만 낭만적인 집일까, 내가 꿈꾸는 공주가 사는 예쁜 집일까, 정말 궁금해요.

 

자, 드디어 집짓기가 시작됩니다. 먼저 흙벽돌을 삼천 장이나 찍어서 말리고 굴삭기는 집터 모양대로 땅을 팝니다. 그 다음 기둥을 세운 후 마룻대를 놓아 뼈대를 갖추고 서까래를 놓은 다음 '아스팔트 슁글'로 지붕을 얹어요. 이젠 장맛비가 와도 끄떡 없어요. 비가 그친 후 다시 집짓기는 시작되어요. 벽돌을 쌓고 전기선을 공사하고 보일러도 놓고 비닐 장판 대신 포대 종이를 붙인 바닥엔 콩을 갈아 넣은 자루로 문질러 반들반들하게 콩댐도 해야해요. 이 많은 일들을 우리 가족이 다 했냐구요? 물론 아니지요. 마을 아저씨들과 학교 선생님과 언니 오빠들, 서울 사는 아빠 친구들이랑 목수일을 하는 삼촌, 그리고 건넌 마을 아저씨들까지 모두 이웃분들의 도움으로 함께 만들었어요. 이제 마지막으로 문짝을 달아...... 짜잔ㅡ 드디어 완성이에요.

 

동네 사람들이 모두 모여 맛있게 음식을 나눠 먹고, 집 짓느라 함께 했던 고생과 기쁨을 나누며 축하해 주었어요. 오랜 기다림 끝에 완성된 따뜻하고 포근한 우리집. 가족들이 모두 새 집에서 행복한 하루를 보내고 그 날 밤, 하늘에서는 첫 눈이 내렸답니다.

 

 

 

이 이야기는 크게 두 가지의 주제와 흐름으로 나뉜다. 한 가지는 1980년대 초, 아직 베를린 장벽으로 나뉘어 분단의 아픔을 지니고 있는 독일의 시대적 상황과 또 다른 하나는 그 시대를 배경으로 젊은 두 남녀의 가슴아픈 사랑이야기가 펼쳐지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나라가 어떤 나라인가. 이제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은 분단 국가가 아닌가. 내 나이에는 어려서부터 할머니 할아버지로부터 그리고 학교에서 행해졌던 방공교육으로 인해 생생하게 분단의 아픔을 공산당의 만행을, 공산주의의 끔찍함을 알고 있다. 그러니 작가가 묘사한 동독의 모습과 생활상, 그곳에서 살고 있는 동독 주민들의 삶이 새삼스럽게 놀랍거나 가슴아프진 않다는 것이다. 게다가 주인공인 미국 청년 작가와 동독여인의 사랑이야기는 작가가 의도한 반전이 자꾸만 빤히 읽힌다는 것이 문제다.

 

이쯤 되면 <빅 피처>를 읽었던 독자들은 어쩔 수 없이 두 작품을 비교하게 되고 조금은 실망하지 않을 수 없을 게다. <빅 피처>보다 상대적으로 덜한 재미. 그것이 이 책을 읽고 난 뒤의 가장 솔직한 후기다. 그래서 별이 네 개다. 그리고 작가는 글을 쓰면서 특히, 이 책을 쓰면서 독자에게 '재미'와 '감동'을 줄 수 있길 바랐겠지만 사실 이런 장르의 책을 골라 읽으면서 '진한 감동'같은 걸 얻으려는 독자는 별로 없으리라고 본다. 좀더 직설적으로 독설을 퍼부어 보면 어줍잖은 스릴러에 신파극이 가미된 느낌이랄까. 거기에 작가도 번역자도 자꾸만 '순간'이라는 단어와 그 의미를 이야기의 주제와 엮어서 독자가 뭔가를 깨달아 주길 바라는 의도가 읽혀서 오히려 민망스럽다. 감동이라는 것은 작가가 독자에게 억지로 주입시키는 것이 아니라 독자가 자연스럽게 느껴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처음 리뷰를 쓰려고 생각했을 때와는 다르게 너무 혹평을 한 것 같은데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라는 말처럼 내가 너무 기대를 하고 봤었던 책이라서 그런가 보다. 이 책을 읽으실 분이라면 기대를 조금만 줄이고 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