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이 책의 소개를 접하고 문득 떠오른 작품이 <원미동 사람들>이었다. 제목이 <1F/B1 일층, 지하 일층>, 그리고 그 도시 속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짐작하고는(도시와 사람은 뗄레야 뗄 수가 없는 사이니까 말이다) 내가 지금껏 읽었던 책 중에서 우리 서민들의 삶을 넘치거나 모자람 없이 가장 잘 그려낸 작품 <원미동 사람들>을 떠올리며 한껏 기대를 했던 것 같다. <원미동 사람들>은 87년도에 발표한 작품이라 벌써 25년 전 이야기니까 어디, 요즘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 좀 들여다 보자, 하는 심정으로 책을 펼쳤다.

 

어, 그런데 웬걸 이건 보통 사람들의 진솔한 삶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누구네 아빠나, 누구누구 엄마, 옆집 누구누구도 나오지 않는다. 그럼 뭔가. 조금씩 조금씩 읽어나가다 보니 오호, 이건 7편의 단편 소설이다. 각각의 작품은 저마다의 특성이 있는데 그냥 우리 주변에서도 눈 돌리면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은 이야기도 있고 미래의 세계를 표현한 SF물이나 식인 괴식물이 등장하는 장르소설도 있다. 한편, 한편마다 특색이 있지만 읽다보니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바로 이 이야기들은 도시와 함께하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예전의 도시,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도시, 그리고 미래에 살아남을 도시 이야기. 사람들이 태어나고 나이들고 병들어 죽은 뒤에도 도시는 사람들을 지켜보면서 그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

 

어떻게 보면 사람들이 많이 모여사는 곳이 바로 도시인데 이 책 속의 주인공들은 저마다 외롭고 개인주의적인 성향을 보인다. 특히 작품 <1F/B1>에서 건물관리자들이 자신들의 존재를 층을 표시하는 숫자와 숫자 사이에 있는 슬래시 기호(/)에 비유하면서 이곳도 저곳도 아닌, 그저 언제나 사이에 끼어 있는 사람들이라고 표현한 부분은 도시 속에 살고 있는 개인들의 고독과 외로움을 잘 표현한 부분이다. 그것은 인간들에게 던지는 앞날에 대한 경고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이것이 지금 도시 속에 살고 있는 우리의 참 모습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치듯 지나가면서 미래의 도시 모습도 또 한 번 상상해 본다.

 

그동안 장르소설은 외국 작가의 작품만 읽어왔는데 <1F/B1>은 내게 뜻밖의 반가움과 색다른 즐거움을 준 재미있는 작품이다.

 

제가 쓴 제목을 보면 좀 미스테리한 분위기가 나는데, 한 마디로 그게 제가 이 책을 읽고 나서 든 느낌이었어요. 저기 책 표지에 있는 분홍색의 물컹물컹해 보이는 좀 뚱뚱한 볼링핀처럼 생긴 동물(?)이  바로 이 책의 주인공 바바빠빠인데요, 마치 X파일에 나오는 미지의 생명체 같아요. 물론 X파일에 나오는 것처럼 무섭거나 끔찍한건 당연히 아니고요.하! 하!

 

오히려 바바빠빠는 마음이 착하고 부드럽고 따뜻한 친구예요. 바바빠빠는 미스테리하게도 프랑수아네 집 꽃밭 땅 속에서 어느 날, 그냥! 생겨나서 태어났어요. 어디서 왔는지 어떻게 생겨난건지 어떤 존재인지도 알 수가 없어요. 그런데 처음엔 조그만 진빵만하던 바바빠빠는 점점 커지더니 땅 밖으로 나오자 커다란 집채만해졌지 뭐예요. 그래서 바바빠빠는 프랑수아와 서로 좋은 친구가 되고 싶었지만 너무나 커다란 몸집 때문에 동물원으로 보내지지요.

 

하지만 바바빠빠는 자기 몸의 형태를 마음대로 바꿀 수 있어서 가느다란 철망 사이로 쑤욱~ 빠져나온 후 동물원 안에 있는 여러 동물들과 친구가 되어 보려고 하지만 아무도 바바빠빠와 친구가 되고 싶어하지 않아요. 결국 동물원에서도 내보내진 바바빠빠는 대도시의 여기저기를 찾아가 보지만 어디에도 바바빠빠가 있을 곳은 없군요. 그런데 어, 건물에 불이 났어요! 마침 그 자리에 있던 바바빠빠는 자신의 몸을 계단으로 만들어 사람들을 구해 냈군요. 그리고 사람들은 바바빠빠에게 호감을 가지기 시작하고 또, 동물원에서 도망쳐 나온 사나운 표범을 바바빠빠가 자신의 몸을 우리로 만들어 가두어 버리자 이제, 사람들은 바바빠빠를 환영하고 영웅처럼 대하네요.

 

하지만 바바빠빠는 친구 프랑수아에게 돌아가고 싶었고 이젠 프랑수아의 엄마, 아빠도 바바빠빠를 반겨 줍니다. 그 후로 바바빠빠는 사람들 속에서 사람들과 어울려 즐겁고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책을 덮고 나서 어렴풋이 작가의 의도가 뭔지는 알겠더군요. 마침 뒷쪽에 '이 책을 어린이와 함께 읽는 분을 위한 페이지'에서 다음의 글이 실려 있어서 읽어 보니 음, 역시...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ㅡ<바바빠빠>는 몇 년 전에 국내에서도 개봉된 '가위손'이라는 영화와 비슷한 주제와, 비슷한 줄거리를 갖고 있는 그림책이다. 사람들의 몰이해 때문에 고통받다가 사람들을 구해 주고 나서야 비로소 인정을 받게 되는 이물(異物)읠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 이야기는 어른들도 동화같은 세계로 빨아들이는 신비한 마력을 지니고 있다.ㅡ

 

그런데 문제는 작가의 의도가 독자인 저와 아이에게 그다지 전해지지 않는 건데요. 이유는 아무래도 제가 서두에도 썼듯이 바바빠빠의 정체성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마치 외계 생명체처럼 한번도 보도 듣도 못한 낯설은 존재보다는 차라리 모리스 샌닥의 <괴물들이 사는 나라>의 괴물들처럼 발톱이 삐죽삐죽하고 눈이 뒤룩뒤룩해도 아이들의 상상력이 미치는 존재가 주인공이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작품이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이 책은 읽고 싶지가 않았다. 전작인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가 내 가슴에 남긴 여운은 그냥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게서 이 책을 빌려 읽은 친구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은 그 뒷 이야기가 무척이나 궁금했나 보다. 아니, 궁금한게 아니라 작가가 말했듯이 많은 독자들은 후속작을 통해 에미와 레오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고 있었나 보다.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를 읽은 친구가 묻는다.

"얘, 그 책은 그게 끝이니? 그 뒤로 또 없어?"

"응, 있긴 있어."

"뭐? 있어? 야,그럼 당장 사야지, 왜 안사? 얼른 사라, 응?"

"그게, 뒷 편은 좀 그런가봐. 원래 이런 이야기는 그냥 그대로 끝나는게 좋지 않겠냐?" 는 나의 대답.

 

결국 내가 후속편을 사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는 좀체로 책을 사지 않고 빌려 읽던 친구가 기어이 중국에서 인터넷으로 주문해 책을 사서 봤단다. 며칠 후, 전화가 왔을 때 "그래, 책 어땠어?" 하고 물으니 친구는 웬지 시큰둥한 목소리로 말한다."그냥, 읽지 않는 게 나을 뻔 했어."

 

그러면서도 한국에 나올 때 내게서 빌려갔던 책들과 함께 빼놓지 않고 챙겨가지고 나와 나에게 읽어 보라고 건넨다.

 

그래서 읽게 된 이 책은 내가 짐작했던 대로 전작만큼의 재미와 감동을 느낄 수가 없다. 뭐, 어차피 작가의 의도가 서두에 씌여 있듯이 에미와 레오의 만남이 어떻게 이어질지는 충분히 짐작이 가니까 말이다. 전편에서는 우연히 잘못 전해진 이메일로 시작된 에미와 레오의 관계가 결국엔 어떻게 될까, 하는 조마조마한 궁금함이 있었기에 보는 내내 가슴떨림, 조바심, 안타까움, 아쉬움등의 감정을 느낄 수 있었던 거다(왜냐하면 에미는 유부녀니까!). 게다가 로맨스 소설의 남자 주인공은 원래 약간의 과묵함과 신비로움이 있기에 매력적인게 아니겠는가. 남자가  미주알 고주알 너무 말이 많아지면 결국 속된말로 '깬다'라는 느낌이 들게 마련이고 그렇게 되면 그 남자는 환상 속의 근사한 남자가 아니라 바로 내가 매일 부대끼면서 투닥거리고 사는 남편과 똑같아지는 거다.ㅎㅎ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추억 속의 첫사랑이 아름다운 건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이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