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시절 '안네의 일기'를 읽으며 2차세계대전 중 나찌에 의해 학살당한 유태인의 고통과 끔찍함을 공감했던 기억이 난다. 힘들고 고통받을 때 글을 쓰면서 자신의 삶을 되돌이켜 보고 희망을 찾고 싶은 것은 인간의 자연 본능인 것 같다. 성인군자가 아닌 이상 죽음 앞에서 어찌 초연해질 수 있을까. 전쟁 중 죽음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두려움과 절망감을 이겨내고 내일이 있기를 희망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글을 남기는 것이리라.
이제 십대로 접어든 아들이 남자아이라서 그런지 어렸을 때는 자동차나 공룡에 관심을 가지더니 이젠 밀리터리나 전쟁에 부쩍 관심이 많아졌다. 전쟁다큐멘터리에 나오는 전투기, 무기 등을 열심히 보며 그 모델까지 훤히 꿰고 있을만큼 열성적이다. 그렇다보니 전쟁과 관련된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관심을 보인다. 전쟁을 흥미나 오락거리로 생각하며 전쟁의 겉모습에 열광하는 아이를 보니 전쟁의 실체가 어떠한 것인지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그러던 중 이 책을 소개하는 글을 보게 되었고 전쟁 중에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쓴 아이들의 일기를 읽으며 전쟁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길 바랬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전쟁이라고 하면 먼 과거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전쟁을 떠올리면 제1차 세계대전, 제2차 세계대전, 우리나라 분단의 역사가 시작된 6.25전쟁이 먼저 생각난다. 그 이후 베트남전쟁이나 이라크전쟁, 또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지역과 같이 아직도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진행중인 곳이 많지만 나와는 크게 관계없다는 생각에 무심히 지나쳐 버리곤 했다. 하지만 이 책에 소개된 8명의 일기를 읽어내려가다 보면 그들이 경험한 전쟁의 아픔과 고통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 했다.
독일, 싱가포르, 폴란드, 베트남, 보스니아, 이스라엘, 이라크 등 그들이 살았던 시대와 장소, 배경은 조금씩 달랐지만 전쟁으로 인해 받았던 상처와 고통, 절망감은 거의 동일했다. 전쟁의 아픔을 겪으면서도 포로들의 무덤에 꽃을 바친 소녀 피테 쿠르, 싱가포르가 일본에 함락되자 창이수용소에서 벌레까지 잡아먹는 비참한 생활을 기록한 실라 알란,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2년간 어둡고 눅눅한 지하실에서 히틀러의 유태인대학살을 피해 숨어 지내야 했던 클라라 슈왈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으로 인해 항상 폭탄 테러의 공포가 일상이 되어버린 이스라엘 소녀 시란 젤리코비치, 보스니아 전쟁의 참혹함을 겪은 열한살 즐라타 필리포빅, 베들레헴에서 팔레스타인 사람이라는 이유로 자유를 구속당한 메리 해즈보운 등 그들은 가족, 친구를 비롯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고 고통을 준 전쟁이 다시는 이땅에서 되풀이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을 가졌다. 베트남 전쟁에 지원에 직접 전투에 참가하면서 일기를 쓴 미국청년 에드 블랑코 , 명분없는 이라크전쟁의 피해자로 최근 전쟁의 두려움과 고통을 경험한 호다 타미르 제하드. 세속적이지 않은 아이들의 시각에서 전쟁을 바라보며 쓴 일기에는 이전의 평화로운 시절로 돌아가길 희망하고, 이유를 모르는 이 전쟁이 빨리 끝나기 만을 바라는 그들의 자유에 대한 갈망이 담겨져 있었다.
어릴때 부모님으로부터 들었던 6.25전쟁의 참혹함을 다시 기억하며 언젠가 우리 아이도 할머니,할아버지로부터 그때의 실상을 직접 들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아직은 이 일기들을 읽으며 깊게 공감하지는 못하는 것 같았지만 이 책을 통해 앞으로 전쟁에 대해 좀더 깊이있고 다양한 시각으로 접근하는 계기가 되었으리라 믿는다.
빼앗긴내일,
한겨레아이들,
전쟁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