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가 별로 없는 그림책입니다.

3살 꼬맹이랑 6살 깍쟁이가 함께 보려다가 책이 찢어지고 말았습니다.

서로 보려는 페이지가 다르고, 찾으려는 동물이 서로 다르다 보니, 결국은 책장이 여러장 너덜거리고 테이프로 붙이고 난리도 아닙니다.

숨은 그림찾기하듯 하는 책읽기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은 분도 있을 것 같아요.

헌데 이야기를 듣지 않아도 스스로 재미난 책은 그리 많지 않잖아요.

서로 같은 듯 다르고, 다른 듯 하면서도 비슷한 동물들을 보는 재미가 꽤 쏠쏠합니다.

"엄마는 찾았어?"

"아니 나는 못 찾았어. 너는 찾았니?"

"아니 나도 못 찾았어. 아마 없는가봐."

6살 깍쟁이 녀석은 그렇게 못 찾는 듯 하다가 심술궂게 웃으며 손가락을 짚어보입니다.

"이~야. 대단하구나. 이런 펭귄이 정말 있었네."하면 서로서로 감탄하기 바빠집니다.

3살난 꼬맹이가 끼어들면 이 시간은 쉬이 깨어지지만, 그래도 다음을 기약하면서 기다리는 재미가 또 있습니다. 가끔 혼자서 이 책을 들여다 보는 두 녀석을 제각각 보는 때도 있습니다.

책을 테이프로 붙인지 얼마 안됐는데 또 찢어지고 말았습니다.

책이 너무 쉬이 찢어져서 그게 좀 불만이긴 한데, 테이프로 붙이면서 엄마의 솜씨를 보여주는 것도 나름 괜찮습니다. 두 녀석이 번갈아 감탄을 하거든요.

헌데 책을 산지 꽤 되었는데 아직 다 보지는 못했습니다.

아이들은 관심있는 동물이 따로 있어서 그것만 보더라구요. 양이랑 물고기랑...어른이 생각하기에 아이들이 관심있어하지 않을까 하는 건 의외로 그렇지 않더라구요. 익숙하고 많이 들어본 동물만 주구장창 찾고 또 찾는데, 그것도 참 신기합니다.

콩이는 노란색을 제일 좋아하고 주머니가 많은 원피스를 엄마가 만들어줍니다. 콩이의 엄마는 재봉틀로 콩이의 원피스를 아주 멋지게 만들어주는데, 콩이 나이의 아이들은 주머니가 많은 원피스를 아주 좋아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멋진 엄마입니다.

 

콩이는 머리를 세갈래로 묶은 멋진 아이지요. 엄마의 재봉질이 끝날때까지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지요. 치수를 재고 있을 때도 아주 의젓하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 아이는 이게뭐고 저게 뭐고 머리를 왜 이렇게 묶었고 뭘하고 있는 건지 끊임없이 질문합니다.

 

주머니가 이렇게나 많다니. 모두 제각각의 모양과 크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모두 질문을 합니다. 이 주머니, 저 주머니 모두 몇개인지 묻지 않았는데도 세보고 또 세봅니다. 방안엔 또 그렇게 멋진 이불과 멋진 가방과 모자가 있네요. 이거 사줘 저거 사줘하고 합니다. 왜 이걸 갖고 있어? 이걸 왜 넣어? 이게 뭐야? 질문이 주머니만큼 많이 나옵니다. 이러다 끝까지 책을 읽을 수 있을 지 내심 걱정하며 대답을 하게 됩니다.

 

주머니에 다람쥐가 들어가는 것도 잘 이해가 안 되나 봅니다. 게다가 한 마리가 두 마리인데, 두마리가 주머니 두 개를 차지하고 들어가는 것도 잘 이해가 안 가는가 봅니다. 아직 대응관계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저로서도 난감합니다. 최대한 일상적인 어조로 대수롭지 않게 쉬운 말로 알려줘야겠는데 말입니다. 동물들이 왜 자꾸 끊임없이 주머니 속으로 들어가는 것일까요? 그리고 콩이는 결국 왜 울게 되었을까요? 엄마 얘는 왜 울어? 곰돌이는 왜 울어? 엄마의 주머니 속을 가득 채운 마직막 페이지는 아이가 도통 알 수가 없는지, 질문도 하지 않는데, 그 속내가 무언지 궁금한데, 물어볼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쉬임 없이 소설 하나를 읽어버린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습니다. 책을 덮는 순간까지도 결말을 결코 상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마지막 한 장을 읽는 순간에야, 그래 소설의 결말이란 자고로 이래야 하지 않을까 탄복해마지 않았습니다. 소설의 진행은 둘째치고라도요.

 

소설 초반부는 미국 사람들도 우리랑 같은 생각을 하며 직업을 갖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구나 하면서 읽었습니다. 어쩜 나랑 이리도 비슷하지? 여보 우리랑 너무 똑같아, 와서 봐봐. 내심 내 결혼생활에 어떤 탈출구를 보여줄지도 모른다는 기대도 있었습니다. 아직 여러개의 꿈을 가슴에 품고사는 제게 벤보다는 베스가 더 친근했습니다. 좀 더 큰 욕망은 벤이 보여주었지만요.

 

벤이 개리로 분하는 장면은 소름이 돋을 정도였습니다. 숨가쁜 진행과 스릴이 돋보이는 장면이었습니다. 어느 누가 그런 완벽한 음모를 꾸밀 수 있을까요. 그런 그가 며칠씩 잠도 못자면서 완벽한 탈출을 공모하고 주변사람들과 작별을 고하는 장면은 감동적이기까지 합니다.

 

사랑에 대해서는 별달리 생각해볼 것이 없었습니다. 좀 허무했지요. 사랑의 결실이 가정이고 아이라는 건, 사랑 자체에 대한 도전이지만 삶의 문제는 사랑 자체의 문제는 아니란 점을 분명히 반증하고 있습니다. 내 삶은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서라도 내가 이루고픈 무엇이지 않을까, 매번 고민하며 살고 있는데 말입니다.

 

이 인생이든 저 인생이든, 잃고 나면 그 소중함을 알 게 된다는 것을 개리의 입을  통해 벤이 들려줍니다. 저도 그래서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만큼의 수입을 유지하고, 이 만큼의 화목을 유지하고, 이 만큼의 인맥을 유지하면서...이러다 정작 중요한 나의 '천재적 삶'은 영영 사라지는 게 아니가 하면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