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관련 시험에서 보면 지문으로 가장 많이 출제되는 것이 바로 박완서의 작품들이지 않을까 싶다. 그만큼 단.중.장편 등 많은 작품을 남기고 가셨으니 우리 문학사의 큰 보배가 아닐 수가 없는데 그도 그럴 것이 일제 강점기에서 한국전쟁, 그리고 그 후유증과 산업화 도시화 속에서의 물질 만능과 인간 소외 문제 등. 우리 근현대사의 흔적들이 작품 안의 소재를 이루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생전의 박완서님을 보면 아무 세상물정을 모를, 항상 소녀같은 해맑은 웃음을 짓고 계신데 작품을 보면 참 반전이다 싶게 외유내강적이다. 강렬하면서 서슬퍼런 단어와 문장들,촌철살인의 표현들을 보면서 뜨악,할 때가 한두번이 아닌데..., 아마도 그것은 몸소 겪었던 기억들에서 나온 사건들이라 리얼하고 직접적으로 와닿지 않을까 싶다.

 

그런 분의 사생활은 어떨까, 가끔씩 궁금하기도 했다. 만면의 미소와 직접체험한 여러 아픔들,그것들을 겪고 품으며 견뎌냈을 며느리와 딸로서의 박완서님, 그리고 아내와 엄마로서의 작가님은 어떤 모습일까...., 그 궁금증을 박완서님의 장녀 호원숙님이 <엄마는 아직도 여전히>라는 산문집을 통하여 보여주고 있다.

 

박완서님의 등단 데뷰작이 <나목>인 것을 알지만 그 화가의 모델이 화가 박수근씨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등단 후 오로지 우리 엄마,였던 분이 작가로 세상에 알려지면서 오롯이 다 가질 수 있었던 엄마를, 작가라는 이름을 새로 가지면서 독자와 나누어 가져야했던 어린 딸의 어떤 상실감, 비슷한 것?도 공감이 되었다.

 

박완서님의 등단 전후의 가족과 가정이야기, 또 글쓴이가 성인이 되면서 나이들어가는 어머니를 살피는 따뜻한 이야기들, 함께한 추억들, 이 한 권을 쓰면서 참 많은 지난 날을 돌이키며 새삼 그리움이 절절했겠구나, 하는 것이 전해졌다.

 

엄마와 함께 한 추억뿐 아니라 글쓴이의 신변잡기적 산문에서 격하지 않으면서도 잔잔한 감동들이 묻어나 읽는내내 마음이 편안해졌다.

반쪽,이라는 반쪼가리,는 알겠는데 자작,을 붙여놓으니, 제목에서 궁금증이 일었다. 반쪼가리 자작? 알고보니 자작,은 사람의 이름이었다. 

 

어린 '나'의 외삼촌 메다르도 '자작'은 전쟁터에서 포탄을 맞아 정확하게 반으로 잘리게 된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딱 반절. 눈코입팔다리..., 반쪽은 흐물흐물 가루가 되어 사라지고 반쪽은 숨이 붙어 살아나게 되는데, 그것이 하필 악인이다. 각각의 반쪽이 완전한 선인과 또 완전한 악인으로 나뉘게 된 것이다.

 

반쪽 악인은 평범한 것에 대한 분노와 시기로 똘똘 뭉쳐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가리지 않고  반절로 딱 잘라 파괴하기 시작한다. 그런 폭력에 어떤 사람도 그를 만류하거나 그에게 저항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가 바로 이 마을 성의 귀족이기 때문이다. 귀족이라는 권위를 이용하여 온갖 횡포를 일삼는데, 마치 판타지 동화같은 장면들이 연출되기도 한다.

 

아버지를 모르쇠하거나 어머니같은 유모를 문둥이병으로 몰아 문둥이 마을로 쫒아 감금하는 패륜적인 행동. 어느 농부의 아름답고 순진한 딸을 강제를 써서 신부로 들이려 하고 하나뿐인 조카 '나'에게 독버섯을 건네주기도 한다. 온갖 만행으로 사람들이 그를 기피할 무렵, 포탄을 맞아 가루가되어 날아갔던 그 반쪽이 다시 나타난다. 완전한 선인,의 모습으로.

 

반쪽 선인과 반쪽 악인은 각각 왼쪽과 오른쪽을 써가면서 치열한 결투를 벌이다 쓰러지고 둘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가 엉겨붙으니, 드디어 한몸이 되어 깨어난다. 비현실적인 판타지 동화같은 단편과 중편사이의 소설. 1952년 출간된 소설인데도 환상적인 이야기 구성에 큰 어색함이 없는 것 같다.

 

사람이라는 존재가 어떻게 완전한 선인,이 될 수 있을까. 그것은 신의 영역이 아닐런지. 그렇다고 또 악,으로만 사는 것이 인간이라면 이 인간세상은 얼마나 무시무시할까. 사람은 선과 악이 그 안에 조화롭게 공존하면서 시시때때로 선을 드러내기도, 악을 표출하기도 하면서 사는 존재가 아닌가.

 

다만 요즘같이 살기 띤 사건들이 수도 없이 쏟아져 나오는 때에, 사람 안에는 제발 악,보다는 선,이 우세하게 자리했으면 하는 바람이 인다.

 

실천하지 않으면 허망하기 그지없는 자기계발서, 그러나 잊을만 할때 한번씩 읽어준다면 좋은 자극이 되어 삶의 터닝포인트가 될 수 있다. 오랜만에 읽어보는 가슴뛰는 삶의 이야기. 스스로 행복하기 위한 수단과 방법은 생각보다 거창하지 않다는 생각을 이 책을 통해 다시 한 번 해 본다.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누고 그 안에 소제목으로 된 여러 이야기가 실렸다. 글쓴이의 체험 뿐 아니라 주변인들의 경험까지. 그것을 통해 진정 행복하기 위해서 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한다. 가정을 이루고 사는 여자들이 행복할 수 있는 방법, 무조건 무한정적인 배려와 희생만이 모두를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에 의문을 던지며 아내와 엄마, 며느리로서의 관계와 거기에서 가져야 하는 현명함을 제시한다.

 

여자로서 의존적인 삶이 아니라 주체적인 삶을 살기위해서는 무엇보다 스스로 부지런해야 한다. 무엇인가 부단히 갈고 닦아야 함을, 그렇다고 수퍼우먼이 될 수는 없다. 모든 일을 완벽하게 수행하려 할때 오히려 피로에 지치고 행복은 멀어진다. 때로는 뻔뻔하고 당돌하게 요구할 수 있어야하고 때로는 적당한 거리두기,가 필요한 경우도 있다.

 

당연히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내가 되어야하는데 그것이 말처럼 쉽지가 않다. 특히 가정을 이루고 여러 역할로 사는 여자는 더욱 그렇다. 내 인생의 주인공은 지극히 여자,로서 행복한 삶이다. 나이 의식하지 말 것, 이 나이에 무엇을 하겠어! 이런 미리체념은 이제 그만이다. 자신을 꾸지 않는다면 그것은 여자의 직무유기,라고 강력히 주장한다. 가끔은 고독을 즐길 것, 독서를 놓지 말 것, 많이 걸을 것, 소망하는 것이 있거든 종이에 써내려 가며 실천 의지를 다져 볼 것,마음만큼은 소녀마인드로 가꿀 것(철없는,의 의미가 아니다) 등.

 

행복에 대해서라면 누구나 그렇듯, 글쓴이도 행복이란 저 멀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행복은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 그리고 내가 나를 조금만 더 챙기고 아끼고 사랑하면 즐거움이 배가 될 것이며 자연스럽게 타인도 나를 귀하게 대접할 것이라는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 누구를 희생시키거나  피해를 입게 해서도 안되겠지.

 

내가 나를 빛나게 하고 싶을 때는 유머,를 발휘하고 또 나눔을 통해서도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것. 글쓴이의 여러 체험들이 공감이 가는 이유는 그에 따른 통계자료나 여러 매체의 인용을 통한 신뢰때문이기도 하다. 어느 날 문득, 태만해진 자신을 발견하고 실의에 빠져있을 때, 그럴 때 큰 자극을 얻고 의지를 다지는 계기가 될만한 그런 글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