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추사 김정희의 글이 인상적이어서 어딘가에 써 놓은 기억이 난다.  단란한 가정의 모습을 소박하게 새긴 글이었는데 ‘온 가족이 오이, 된장에 옹기종기 앉아 밥 먹는 모습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며, 집 안에서 자식들의 글 읽는 소리가 가장 듣기 좋은 소리이며......,’ 전문은 기억나지 않는데 대충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주인공 노미 가족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자꾸만 김정희의 글이 머릿속에서 맴돈 것은 안타까움 때문이다.  최소한의 소박한 행복마저 누릴 수 없는 노미네 가족들.  그것이 가족들간의 갈등과 불화 때문이라면 그나마 이해가 가겠지만,  외적인 요소- 종교와의 갈등-때문이라면 억울하지 않겠는가!

  가정의 기본적인 행복을 지켜주지 못하는 종교는 참다울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400페이지에 달하는 한 권을 다 읽도록 간절히 바랬다.  행복한 결말이기를.  메노파라는 교회에서 파문당한 후 집을 떠나야했던 노미의 언니와 엄마가 돌아오기를, 아니면 아빠와 노미가 그들이 있는 곳으로 떠나 종교 없이도 단란하게 살 수 있기를.  그러나 대 여섯 장이 남을 때까지 그런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설상가상 오히려 노미마저 교회로부터 파문당한 후에 아빠는 몇 년후의 재회를 기약하는 메모 한 장만을 남겨두고 집을 떠난다.  교회집단과 대결할 수 없었던 힘없는 한 가정의 해체이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는 노미의 일상은 무미건조함 그 자체이다.  잿빛 하늘에 늘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질퍽한 길이 연상되는, 메노파 마을에서의 노미의 삶. 생글생글 상큼달콤하고 듬뿍 사랑받아야 할 십 대 소녀의 모습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교회로부터 파문당한 후 교회를 그만 둘 수 없는 남편의 불편한 입장을 생각해서 집을 떠나버린 엄마, 그 상황을 가장으로서 단호하게 항변하지 못하는 노미의 아빠는 참 무기력한 가장이라고 생각했다.  노미의 아빠를 비유하자면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나오는 ‘난쟁이’ 모습 같다고나 할까!  편협과 독단의 교회 장벽을 깨뜨릴 힘이 없는.  

  현실과 분리된 종교가 어디 있단 말인가!  사람의 삶이 어찌, 사후 세계만 바라고 현실은 안중에도 없을 수 있단 말인가! 현실과 종교를 아예 분리하는 ‘메노파’라는 교회집단은 한 가정을 그렇게 해체시키고 만다.

  수 년 전 ‘우리나라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울 웅장한 교회’에서 부설로 만든 학원의 강사채용 광고를 보고 응시한 적이 있다.  나는 종교인이 아니기 때문에 1차 자격에서 탈락해야 했지만, 경력이 인정되어 일하게 되었다. 부대시설이라든가, 강사대우는 파격적이고 화려하고 좋았다.  그런데 나를 전도할 의도였는지 점점 회유하고 압박을 주고 강요까지 한다.  방학 때는 전국에서 몇 천 명이 넘는 교회 교사들이 서울로 올라와 이 교회의 기도원에서 몇 박으로 교육을 받는다.  거기에 울며 겨자 먹기로 참석을 하게 되었는데 대형 콘서트장을 방불케 했다. 놀라움에 입이 딱 벌어진 나는, 1박을 하고 나서 오싹, 이건 아니다 싶었다.  결국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나는 사표를 내고 보따리를 싸고 말았다.

  몇 개월간 일하면서 그들 집단 안에서 성행하는 알력과 시기와 이기심과 위선을 알게 되었는데, 비종교인인 나는 훌훌 털고 나올 수 있었지만, 그들 안에 있는 사람들은 불만이 있어도 행하기는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똘똘 뭉치면 무서운 힘을 발하는 그들.  한 사람쯤은, 한 가족쯤은 순식간에 바보로 만들어 버릴 만큼의 거대한, 집단의 힘!

  그 때를 돌이켜 보면, 노미의 아빠를 ‘가정도 못 지키는 무기력한 가장’ 이라고 쉽게 단정할 수가 없겠다.  종교인들은 자신의 종교로부터 위안과 기쁨을 얻기를 바란다.  그래서 더욱 행복한 가정과 사회를 만드는데 다리 역할을 할 수 있기를. 종교로부터 희생당하여 자신이나 가정이 파괴되는 불행한 일이 없기를 바래본다.

야릇한친절

 

  26살,36살,46살 심지어 56살 이상의 사람들이 보아도 불끈 힘을 얻게 하는 글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재벌가 딸로 상류층의 경영수업을 밟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돈도 없고 백그라운드도 없이 맨주먹 맨발로 뛰며 시작하는 이의 이야기여서 더 공감이 간다.

  

  작가는 1981년생.  어떻게 보면 새파랗게 젊은 나이이다.  그런 사람이 ‘26살의 여성 CEO’가 되었다면 그 동안의 고생은 듣지 않아도 짐작할 만 하다.  이 독자가 보아도 작가의 지금까지의 삶은 끊임없는 첩첩산중이었고 앞으로의 길도 거저먹는 길은 아닐 것이다.

  

  어린시절에는 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이유없이 따돌림을 받는 아픔을 겪는다.  학년이 올라갈 수록 그 따돌림을 비행으로 표현하게 되고 안되겠다 싶어 정신 차려서는  유도부가 있는 고등학교에 들어간다. 최선을 다하지만 유도의 한계를 느끼고, 대학에 진학하려하지만 공업고등학교였기 때문에 진학의 벽에도 부딪힌다.  인문계와 공업계, 일본의 교육정책에 모순이 가득함을 알고 정치인이 되어 교육정책을 뜯어 고치고 싶다.

  

  정치인이 되려면 들어가야하는 명문 게이오대학. 자신과의 피나는 싸움 끝에 입학. 대학 4학년때는 국제기구에 관심을 갖고 온 몸으로 현장을 겪기 위해 개발도상국 방글라데시로 떠난다. 아시아 최빈국 방글라데시를 몸소 체험하고 국제기구의 원조가 그 나라의 빈민들에게는 아직도 허울뿐이라는 것을 깨닫고 가난한 이 나라를 위해 일해보자 해서 방글라데시의 대학원에 입학한다. 

  

  불안한 치안, 열악한 생활 환경 속에서 때로는 오기로 눈물로 버텨낸다.  그리고 이 빈민국 사람들을 더 적극적으로 살려내기 위해 ‘쥬트’ 라는 친환경소재로 메디인 방글라데시 제품의 가방을 만든다.  썪어빠진 정치로 가난과 불신만 가득한 이 곳에서 23살의 작가는 몇 번의 현지인들 배신에도 이를 악문다.  ‘마더 하우스’는 작가가 각고 끝에 창립한 회사.  바로 이것이 ‘도전의 증거’이다.  공장은 방글라데시에 있으며 만들어낸 상품은 일본에서 판매중이다.

  

  어찌보면 작가에게는 20대에 빠른 경험과 성과이며 그리고 현재 진행형이다.  보통 사람들, 20대의 청년들을 보면 아직 부모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들이 많다.  부모에게 용돈을 타서 쓰고 차려진 밥만 먹는, 꼭 닫힌 취업문만 탓하고 빈둥거리며 젊음을 소비하는 이들도 많으리라 본다. 

  

  놀랍게도 책 속의 작가는 개도국의 실상을 보러 떠날 때도, 현지에서 거래처를 뚫고 다닐때도, 일본에서 상품 판로를 개척하러 다닐때도 이미 독립적인 개체였다. 그때가 20대 초중반의 나이.  ’26살의 여성 CEO’라는 간판만 보고 그녀의 성공을 쉽게 판단해서는 안 된다.  일찍 독립을 했기에 몇 동이의 눈물을 혼자 흘려야 했고 그렇게 해서 이루어진 자리이다.

  

  끊임없는 도전이야기!  처음부터 평범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야기 흡수가 더 잘 되는 것 같다.  많은 개발서에서 들던 말이지만 특히 야마구치 에리코의 이 말은 더 강하게 와 닿는다.

 

  ‘지금 생각속에서만 세계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난 말하고 싶다.  그 생각을 빨리 실행하라고, 그리고 그 결과물을 얻기 위해 발로 뛰라고. 그러면 반드시 그에 맞는 대가는 주어진다.’

26살도전의증거

 

  책을 펴기도 전에 이미 알아 버렸다.  이 책의 작가는 따뜻한 가슴으로 사는 사람이라는 것을!

   

  지금은 집집마다 키우지 않아 귀하게 된 거위.  작가가 부화장에서 만난 암수 두 마리의 새끼 거위. ‘노란 깃털’을 하고 ‘참외만한 크기’ 의 거위 한 쌍은 이제 새로운 주인과 삶터를 만나 이동한다.  거위의 삶터이며 작가의 연구소가 있는 퇴골로 오면서 작가와 동행인은 새만금 사업에 대해 비판의 대화를 나누고 있다.  갯벌을 메우면서까지 농토를 만들어야하는지.

  

  그때 새끼 한 마리가 뒷 좌석에서 반응을 한다. 갯벌을 파괴하면서까지 간척을 해서는 안된다고 ‘괙괙’ 그래서 수컷은 ‘맞다’, 그 문제에 무심한 암컷은 ‘무답이’ 이렇게 재미있는 이름이 붙여진다.

  

  주위에 야생동물이 함께 하는 강원도 퇴골에서 거위 한 쌍은 무럭무럭 자란다.  작가의 사랑과 보살핌을 받으며 2년을 동거동락한 거위 한 쌍은 이제 성년이 되어 사랑을 나누고 알도 생산한다. 그러다 그만 작가가 집을 비운 사이 야생동물에게 습격을 받아 세상을 뜨게 된다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가슴 아픈 생태소설!

  

  이 이야기가 나의 마음을 끄는 것은 작가의 상황에 나의 어린시절이 오버랩 되었기 때문이다.  아주 많은 장면이 똑같다.  아니 내가 한 쌍의 거위를 키우고 있는 듯한 친근함!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나는 많은 동물과 가족처럼 지냈다.  방에서 돌보는 애완동물이 아니다.  동물 본연의 자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는 들판이나 언덕, 냇가, 마당......, 자기가 있고 싶은 곳에서 놀도록 방목을 했다.  물론 밤이 되면 각자 우리 속에서 안전하게 취침하도록 해 주었지만.

  

  어미개가 새끼를 낳으면 그 새끼가 또 어미가 될 때까지 몇 대를 이어간다.  아침저녁으로 밥을 만들어 주어야 하는 건 우리 남매들의 몫. 황소, 고양이, 닭, 오리, 염소, 토끼,돼지......, 호랑이나 사자를 빼놓고는 거의 다 동거를 했던 것 같다.

  

  토끼가 새끼를 낳으면 쳐다보는 것을 금기시 했기 때문에 몰래몰래 숨어서 실눈을 뜨고 살폈고 토끼풀을 우리속에 넣어 줄때도 얼굴은 가렸던 것 같다.  하루는 몇 년을 같이 산 흰둥이를 그만, 아버지와 오빠 친구들이 보신용으로 그만!  그 야만적인 행동을 목격하고는 동생들과 나는 뒷문으로 빠져나가 둑방길을 하염없이 걸으며 그 동안 잘 못해준 것만 하나씩 이야기하며 울었던 것 같다. 그 사건 이후 합심하여 아버지나 오빠에게 어찌나 심하게 반항을 했던지 한참 혼나기도 했다.

  

  우리와 몇 년을 함께 산 얌전했던 고양이. 새끼를 여러 번 낳았고 낳은 새끼 고양이들은 우리 집에서 대대로 살거나 분양을 해 주기도 했다.

 

  그런데 새하얀 눈이 무릎까지 내린 어느 겨울 아침, 어미 고양이가 새끼 일곱 마리를 낳아놓고 도둑 고양이와 줄행랑을 친 것이다.  어처구니 없는 배신감! 남자가 그렇게 좋았단 말이냐! 동생들과 나는 일곱 마리에게 이름을 붙여준다.  별님이,달님이,햇님이,꽃님이......,‘님’ 자 돌림이었는데 나머지는 기억이 희미해졌다.  눈도 뜨지 않은 새끼들은 어찌나 귀여운지 주머니에 넣어 다니고 싶을 정도다. 

  

  젖을 먹어야하는 새끼들에게 어미가 없으니, 한 겨울날 우리 남매는 동네를 돌아다니며 아기 있는 집에 가서 우유병을 얻었다.  그리고 두유를 한 박스씩 사서 우유통에 넣어 데운다음 한 마리씩 안고 먹였다.  잘 먹고 크는 것 같아 어찌나 고맙고 기뻤던지. 그런데 어느 날 아침. 한 마리가 얼어 죽어 있다.  아~슬픈 고통. 우리는 장독대 옆 보리수 나무 아래 무덤을 만들고 나뭇가지로 십자가를 만들어 꽂아 준 다음, 제문을 지어 읽어주고는 태워 명복을 빌었다.  어린 아이들이 어디서 그런 것을 보았는지.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  결국 서서히 한 마리씩 세상을 버리더니, 결국은 모두 다!  그 때문에 지금도 나는 두유를 마시지 못한다.

  

  이 책에서도 작가는 배나무 아래에 두 마리의 거위무덤을 만들고 돌로 비석을 세워준다. 

어릴 적 우리 남매 모습과 어찌나 닮았는지, 내내 20여년 전으로 돌아가 빠져나올 줄을 몰랐다.  동물 이야기 좋아하는 조카나 아이에게 한 번쯤 읽게 한다면 정서함양에도 좋을 어른 동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