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죽으면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얼굴이 된다.  마치 부처의 염화미소처럼 평화롭다.  이는 이제 희노애락오욕애를 다 놓고 자연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리라. 10여 년 전 아버지와 엄마께서 돌아가셨을 때 동네 어르신은 시골 우리 집에서 직접 염을 하셨다.  돌아가셔서 3일 동안 안방에 누워 계셨는데 틈나는대로 아버지의 얼굴을 지켜 보았다.  칠 십 평생을 거친 손에서 일을 놓지 않으시고 많은 자식 걱정에 애를 쓰시던 모습은 간 곳이 없고 잠든 아기 얼굴처럼 천진난만해 보일 정도였다.

  그 때 아버지를, 엄마를 지켜보면서 인생의 무상감을 뼈저리게 느꼈다. 이렇게 허무하게 가는 것을!  세월 참 금방이구나. 당신들이 태어나신 곳에서 평생을 그 곳이 세상에서 가장 넓은 곳인 양 큰 불만없이 열심히 사셨던 분들이다.  이 세상에 소풍을 나온 것 치고는 참 고단하게 사셨던 분들.  돌아가시고 나니 못해 준 것만 생각이 나서 심한 자책감에 마음이 아팠다.  책 속에 스님들의 다비식 풍경을 읽고 있노라니 자꾸 부모님 장례식 때가 겹쳐진다. 

  스님들의 다비식 풍경은 대동소이하여 그 스님이 어떻게 사셨는가에 따라 슬퍼하는 사람들의 수도 모습도 조금씩 차이가 나 보인다.  한 번쯤, 내가 떠난 후 나를 위해 얼마만큼의 사람들이 목 놓아 슬퍼해 줄 지 생각해 보고 현재의 내 삶의 모습을 정검 해 본다면 어떨까.  나만, 나의 가족만 아늑한 울타리 안에서 잘 살면 그만이지 하는 가족 이기주의에 빠져 사는 것은 아닌지, 나보다 못한 상황의 이웃은 없는 지, 내가 현재 과욕을 부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 번 돌아볼 일이다.

  지수화풍(地水火風)으로 되돌아가셨다.  살과 뼈는 흙으로 되돌아갔고 피와 눈물은 물이 되어 되돌아갔다.  콧구멍을 들락거리던 들숨날숨은 바람 속으로 되돌아갔고 체온으로 머물던 온기는 열기로 되돌아간다.  

 서문에 나오는 글 귀이다. 이 몇 줄이 이 책의 내용을 모두 함축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 나오는 큰스님들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은 결국 천수를 누린 후에는 흙으로 물로 바람으로 열기로 되돌아간다.  나고 죽음은 어찌 이리도 간단한지. 그런데 세상을 살고 있는 우리는 어떠한가!  마치 무한한 존재로 생이 끝이 없을 듯 착각하며 살고 있지는 않은지.  세상이 바뀌어 요즘은 천수를 누리지 못하고 인재로 요절하는 경우도 많다.  천수를 누린다는 보장이 없으니 엉키고 꼬인 갈등은 이해로 풀고 하루하루가 더욱 보람되고 서로 사랑하고 행복하여야 한다. 

  김만중의 소설 ‘구운몽’ 에 보면 금강경 한 구절이 나온다.  ‘모든 유위의 법은 꿈과 헛것과 물거품, 그림자와 같으며 이슬과 번개 같으니 마땅히 이와 같이 볼지어다.’  볼 때마다 두 어번씩 더 읽어보는 데 그 때마다 마음에 새롭게 와 닿는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일시적이고 덧 없으며 실체가 없다는 말씀.  불교 공 사상의 핵심이라 볼 수 있는 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가 행해야 할 일들은 무엇일까, 한 번 생각해 보자.

 

  이 사람은 대체 어떤 심장을 가졌을까!   아무래도 내 것과는 근본이 다를 것만 같다.  체 게바라!   그와 관련된 서적에 사람들이 열광할 때 나는 발 벗고 달려 들지 않았다.  기회가 되면 언젠가는 읽어보리!  그러다가 기회가 왔다. ‘체 게바라의 홀쭉한 배낭’!  그에 대한 ‘열정’은 아니더라도 은근한 관심은 있었기에  이 책을 받아보는 순간 가슴이 두근대기 시작한다.

   이사람에 대해 무지했던 나는 책을 읽기 전  배경지식이 필요했다.  세계사를 꽤고 있는 사회선생님한테 물어보는 것이 가장 신속하리라.   체 게바라가 활동하던 시기의 사회적 시대적인 배경은?  아르헨티나 사람인 그가 왜 쿠바 혁명을 일으켰으며?  왜 이 나라 저 나라 원정까지 가서 게릴라전을?

  사회선생님은 자신도 체 게바라에 빠져 산 적이 있단다.  묻지 않은 그의 가정사까지 열을 올린다.  음, 이제 어느 정도 맥이 잡힌다.  좋다!  그럼 이제 읽어 볼까나!

  총칼이 난무한 게릴라전 속에서 시라니, 하지만 그가 시도 연애도 모르는 오직 혁명을 위한 혁명가이기만 했다면 그의 매력이 덜 했을 것 같다.  1967년 총살 당시 그의 배낭 안에서 발견된 두 권의 비망록은 이미 책으로 출간되었고 나머지 한권 -녹색노트-의 사연이 최근 40여 년 만에 밝혀져 이렇게 내 손 안에 멋진 책으로 쥐어져 있다.  필사한 69편의 저자와 제목들, 체 게바라가 좋아했던 네 명의 시인. (네루다, 세사르 바예호, 니콜라스 기옌, 레온 펠리뻬) 그들의 시들을 한 권의 노트에 필사하여 넣고 다녔던 것인데, 이 책의 글쓴이는 아프리카 시절과 쿠바시절 그리고 볼리비아 시절로 나누어 설명해 주고 있다.  특히 아프리카 시절에 필사한 니콜라스 기옌의 시를 읽을 때는 이 독자도 두 주먹이 불끈 쥐어진다.

  훌륭한 교수에게서 중남미 시문학 강의를 듣고 그 시들에 흠뻑 빠져 든 느낌?!  한 편의 시속에 체 게바라의 심경과 상황이 환하게 드러나 있어서 그를 이해하는 데 훨씬 수월하다. 체 게바라의 전기와 시와의 조화!  짧은 한 덩이 속에 방대한 시대상황을 함축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시만의 매력이 아닐까.

  알고 지내는 동생이 말하기를 “언니, 저 이 사람 너무 좋아요. 영화 ‘모터싸이클 다이어리’ 보셨어요?” 한다. 아, 그게 또 무슨 영화란 말인가.  인터넷 뒤져 보니 2004년에 개봉작이다.  그 때 난 뭐 하고 있었을까.  왜 이 영화를 놓쳤을까.  무진장 바빴나보다.  꼭 보고 싶은 마음 간절하여 결국 DVD를 신청한다.  이 사람의 책을 읽은 후에 이 사람을 영화화한 DVD를 기다리면서 설렌다.  이 사람, 양파 속  같다.  더 알고 싶다.

  180분짜리 원작을 110분으로 편집해 놓으니 뚝뚝 끊기는 부분이 많다.  하지만 그 영화의 핵심만큼은 뚜렷하다.  젊은 날의 이 여행은 오늘 날 그를 있게 한 중요한 사건임에 틀림없다.  어떤 사람에게 있어 여행은, 이렇게 인생 전환의 계기가 되기도 한다.  여행하면서 사람들의 가난과 인종차별과 불평등을 눈 앞에서 보고 분노도 한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분노를 하다가 말겠지!  돌아와서 의대졸업을 하고 의사가 되어 안락한 가정을 꾸려 가겠지!  그러나 체의 가슴에는 그것으로 만족할 수 없는 활화산같은 것이 끓어 오르기 시작한다.  그의 자리는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보다는 불평등과  피눈물속에서 신음하는 민중을 위하여  실천하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영화를 보고 다시 이 책을 든다.  아무래도 한참 빠져 나오기가 어려울 것 같다.  이왕 내친 김에 그의 자서전도 주문한다.

  ‘지구상에 제국주의가 있고 그 아래 신음하는 민중들이 있는 한, 체 게바라는 살아 있다.  하지만 더 이상 체와 같은 혁명가를 요구하지 않는 사회가 진정 이상적인 사회가 아닐까 한다.’

 나도 두 손을 번쩍 들어 온 마음을 다해 이 말에 무게를 싣는다.  식민지 제국주의하에 인종차별하에 신음하는 민중이 없어지는 그 날을 위하여!  체 게바라는 우리의 가슴에 기리고 그를 원하는 핍박받는 민중은 더 이상 없는 그런 사회가 오기를!

체게바라의홀쭉한배낭

 

  고양이가 기품있고 우아하게 살기 위해서 꼭 필요하다는 ‘캣타워’!  캣타워가 뭘까, 짐작은 가지만 그래도 정확히 알기 위해 인터넷 검색을 해 본다.  고양이가 긁기도 하고 원통침대와 장난감이 구비된 종합 생활공간 겸 놀이터.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그러고보니 요즘 집고양이는 주인만 잘 만난다면 ‘개팔자 상팔자’ 버금가는 ‘고양이팔자 상팔자’ 가 되겠구나. 

  애완 고양이에게 필요한 장난감, 먹이, 화장실, 미용에 관한 모든 것, 두 마리를 키울 경우 주의사항, 위생에 관한 이야기, 고양이가 보내는 몸짓, 눈짓으로 의사소통 하기 등 애완고양이를 키우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입문서로 좋을 것 같다.  상담자 ‘우아한 고양이 태비’ 는 말하자면 고양이 주인에게 조곤조곤 상담해주는 수의사? 역할쯤 된다고 할까.

  어렸을 적 시골에서 키웠던 우리 집 고양이들은 사람이 먹는 밥, 생선, 고기를 함께 먹었고 들판에 들쥐들을 알아서 챙겨 먹었기 때문에 특별히 신경 쓰지 않고 함께 살았다.  잠은 지푸라기 위나 마루 끝, 지붕 위에서 햇볕을 쬐며 나른나른 졸았고 잠에서 깨면 개나 닭들과 어울려 놀았다.  사람도 고양이의 눈치를 살피지 않았고 고양이도 그리 우리 눈치를 보는 것 같지 않았다.

  

  다만 바구니에 생선을 말릴 때는 서로 신경이 곤두선다.  먹어야하고 막아야하는 고양이와 우리의 신경전.  가끔 우리가 한 눈을 팔 때 생선 한 마리를 물고 줄행랑을 칠 때도 있다.  그럴때는 아무리 사랑스럽고 마음 아파도 체벌을 감행해야 한다.  버릇을 고쳐놓겠다고 회초리를 든다.  그럴 때 어른들은 ‘고양이는 영물이어서 억하심정이 생기면 복수를 한다’ 고 했다.  방문을 열고 죽은 쥐를 이불속에 묻어 두거나 방안에 응아를 해 놓거나.  고양이 응아는 다른 동물에 비해 무진장 독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고양이를 혼내놓고는 만물의 영장으로서 자존심이 좀 상하지만 검사부터 한다.  아랫목 이불에 들어가기 전에는 살짝 들추어보거나 혹 응아가 없나 코를 킁킁 방 구석구석 살피기도 했다.  그냥 속설인지 우리 고양이가 착한 지 한 번도 발견한 적은 없다. 

  이렇듯 어린 날을 생각하며 이 책을 읽었는데 하늘과 땅 차이다. 요즘은 꽤 값이 나가는 애완 고양이를 많이 키우는 것을 보는데 내가 보기에는 사람의 상전이다.  황족이 따로 없다.  맘껏 마당과 들을 뛰어 다녀야 하는 본성을 억압하는 것 같아 애완 고양이를 보면 안타까웠다.  그런데 이 책의 상담자 태비 이야기를 들어보면 집고양이는 길고양이 되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 한단다.  수명도 집고양이가 훨씬 길단다.  곱게 자라서 그런가?

  사람과 동물이 어우러져 사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사람의 욕심을 채우고자 동물에게 가학적인 행동을 하거나 외롭게 방치하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  사랑스러운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눈 앞에 아른아른 거린다.  부드럽고 깜찍한 경어체이며 고양이 상담 형식으로 구성된 이 한 권의 책이 고양이에게 행복을 주는 역할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