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가 아름다운 미덕이라는 것은 알지만, 가끔 용서하기 힘든 대상들이 있다.  그 중 하나가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하는 폭력자다.  스스로 보호할 능력이 없는 그들을 폭력이라는 수단으로 정신적 세뇌와 육체적 린치를 가하는 것은 몹쓸 짓이며 용서받을 수 없는 행위다. 

  이야기는 비정상적인 복지센터에서부터 시작된다.  버려진 사람들을 수용하여 그들의 의식주를 해결해 주고 위험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역할이 복지시설의 정상개념이지만 이곳은 그렇지가 않다. 겉에서 볼 때는 그들의 쉼터이며 안식처로 보이지만 내부로 들어가면 그것이 아니다.  약물과 폭력으로써 사람들을 조종하고 길들이는 악덕 복지사들, 정신과 치료가 시급한 시설의 원장 아래에서 그들은 점점 목석인간이 되어간다.

  복지시설의 비인간적인 대우가 외부에 알려지고 원장과 주먹 복지사들 외 관계자 몇 명은 감옥에 수감된다.  시설을 나온 이들은 사회 부적응자가 되는데, ‘나’와 시봉이 밥벌이를 위해 시작한 사업(?)이 바로 사과를 대신해 주는 일이다.  죄를 지은 사람을 찾아가 ‘사과를 대신 해 줄테니 수수료를 내라’는 것이다. 그 이후부터 이웃 사람들을 관찰하며 크고 작은 사과거리를 지적해 주고 없는 죄는 만들어서 사과하게끔 하는데 나중에는 시연의 동거남이 나서서 광고까지 내고 찾아온 손님의 사과를 대신해 준다. 이는 시설 안에서 복지사들의 강제 억압으로 만들어진 행동인데 그들은 지금 그것을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부모의 얼굴도 모르고 시설로 들어와 몇 년을 함께 보낸 서술자 ‘나’와 시봉, 술과 웃음을 팔아 하루를 연명하는 시봉의 동생 시연, 열 여섯 살 차이 유부남이며 도박에 절어 한 탕을 꿈꾸는 전형적인 사기꾼인 시연의 기둥서방 등 작품속의 이런 인물들을 우리는 하류인생이라고 부른다.  왜 저렇게 살까, 질펀한 하류인생의 삶이 펼쳐지는데 이상한 것은 읽으면서도 그들을 향해 욕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들의 이상행동을 보는 이웃들 입으로 ‘미친놈들’을 시도때도 없이 듣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그것은 작가의 글솜씨에 있는 것 같다.

  작가의 능력이 십분 발휘된 소설, 말끔하고 빛이 난다.  아마츄어 독자의 눈으로 봐도 흠잡을 곳이 없는 문체의 흐름이다. 막힘없는 이야기 전개 속에 살아남은 이들 앞날에 야유가 아닌 동정과 연민을 갖게 한다.  욕을 먹어야 마땅한 인물들인데도 그들의 엉뚱한 언행에 싫지 않은 웃음이 나오다니 이것이 어찌된 일인지.  그것은 작가의 능력! 참 재미있다.

 

  11월에 내가 만난 가슴뭉클 가족사 소설 3탄 중 마지막 작품이다.  1탄 <허삼관 매혈기> 2탄 <인생> 그리고 3탄 <고향 사진관>  앞으로 당분간은 가족사소설 읽기는 좀 미루어야겠다.  이 세 권을 내리 읽는 동안 뭉클정서가 심하게 함양된 듯하다.  추운 초겨울 나를 따뜻하게 보듬어주고 메마른 나의 감성을 되살려 주고 또 가족의 인연을 한번 더 소중히 생각할 계기를 주니 참 흐뭇하다.

   작가 김정현, 이 분은 어쩌자고 이리 눈물쏟는 아버지의 ’내리사랑’ 이야기를 잘도 만들어 내는지. 몇 년 전 <아버지> 라는 작품으로 대한민국을 눈물 바다로 만들더니 이번에도 역시나.  남성 작가로서 이런 감성이 풍부한 것을 보면 역시 문학하는 사람은 다른가보다?

   경북 영주시의 작은 사진관을 배경으로 이루어진 이 이야기는 작가의 자전적인 소설이다.  작품 속 주인공은 작가의 친구.  군대 제대를 앞두고 서울 명문대 복학문제와 그의 미래를 계획하고 있을 때 한 통의 전보를 받는다.  ’부친 위독,급 귀향 요망’ 그의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쓰러진 것.  뇌사상태의 아버지에게 남은 시간은 삼사년이었다.  병원에서는 그렇게 말한다.   그런데 가족의 지극한 병 수발 덕분인지 아버지는 식물상태로 17년을 더 산다.  가족의 희생은 말할 것도 없지만 그저 아버지 자리에 숨쉬며 있어 주는 것 자체만으로도 눈물겹게 고맙다.

  안방 침대에 누워 꿈쩍도 할 수 없지만 아버지는 여전히 이 집안의 어른이고 그러한 대접을 받는다.  어머니의 헌신적인 병수발, 그와 그의 아내.  정성이 지극하면 감천이라고 했던가.  하늘이 감동했는지 그의 아내 역시 어른 모시기를  모든일의 기본으로 삼는 여성이다.  그렇게 17년이 흐른다.  그 사이 그는  대형화, 고속화 되는 시대흐름에 환승하지 않고 아버지가 평생을 지켜 온 ’고향 사진관’ 을 그대로 유지 해 간다.  크게 성공하지는 못하더라고 아버지의 체온을 느끼며 지키고 싶었다.  그는 장남으로서 사진관을 운영하며  형제들을 결혼시키고 아들 딸도 낳는다.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하면 평생 자식으로서 죄가 될 것 같기 때문에 어딜 가도 하룻밤 머물다 오는 법이 없다.  어느 날 아버지가 정신이 들어올 지도 모른다.  그 때 아버지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다면? 그래서 늘 깔끔한 모습을 유지하고 나이들어보이지 않으려고 애쓴다.  모든 노력은 아버지를 위한 것이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 이 소설에서만큼은 통하지 않는다.

  결국 아버지가 세상을 뜨고  그에게도 청천벽력이 일어난다.  그의 몸에 암세포가 퍼진 것.  남에게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은 그는 가족 친지와 친구에게까지 그 사실을 숨기며 숨을 다해 간다.  아직은 어린 자식들에게 할머니와 엄마를 부탁하고 그들의 미래를 끝까지 지켜주지 못하는 죄책감을 가지고 숨을 거둔다. 

 

   이 이야기 속 가족 구성원들은 제 자리에서 제 몫을 성실히 해 나가는 사람들이다.  아버지는 아버지답게, 어머니는 어머니답게, 아들답게, 며느리답게, 손자손녀답게.  말 한마디, 몸짓하나에 애정과 마음씀씀이가 가득하다.  책장을 덮으며 그런 생각이 든다.  세상의 가족들이 이 집만큼만 각각이 제 몫을 한다면 가정의 불미스러운 사건들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는.  제 몫을 한다는 것은 자신의 편리함보다는 상대의 불편함을 먼저 헤아리고 배려하는 데 있을 것이다.

   이 아름다운 가족 옆에서 좀 더 오래 천수를 누렸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사는 동안 오직 가족의 안위만을 생각하며 한 집안의 ’가장’이기에 ’아버지’이기에 자신을 잊고 살아야했던 그를 생각하니 큰 안타까움이 남는다.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워지면서 정작 진정한 의미의 가족관계는 갈수록 해체되어가는 현대인들에게 한번쯤 가족의 깊은의미를 되묻는 그런 이야기이다.

 

 

 

 

 

자유가 어울리는 여자,손미나!  그녀가 보고 느낀 도쿄 여행이야기다. 

여행지에 머물면서 그 곳의 사람을 만나고 사연을 나누고  또 사람을 만나고......,

두 발로 걸으며 체험한 이야기를 사진과 함께 풀어내고 있어 눈마저도 즐거운 여행 공감 에세이다.

 

 

 

 

 

 

 

극도로 개방적인 문화를 즐기면서 동시에 자신들의 전통도 놓지 않는 신주쿠의 젊은 사람들과 일본느낌 가득한 거리.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하는 일본인들의 저력을 보여주는 분쿄구 소년 검도 대회.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는 하라주쿠의 남녀노소 할 것 없는 코스프레어들과 고양이 거리에 즐비한 개성만점의 가게들.

아사쿠사에서 만난 리키샤 맨 (인력거꾼) 하치와 하치 소개로 만난 그의 친구 게이샤 소녀, 노리에.

영화나 텔레비전 속에서 보던 진한 게이샤 분장의 그녀 사진을 여러번 들여다 본다. 꼭 일본 인형이 움직이는것 같아 신기하다.

 

 

 

 

 100넘게 운영해오고 있는 스시집에서의 식사.  여자는 스시 만드는 주방에 들이지 않는다는 전통을 깨고 특별히 작가에게

스시만들 기회를 주었던 마에다 상 가족. 그리고 친절한 그들이 안내한 도쿄의 츠키지 새벽시장의 풍경과 생생한 분위기.

초대받은 집에서의 기모노 구색맞추어 제대로 입어보기.  작가의 늘씬한 외모덕에 기모노가 더욱 빛을 발한다.

도쿄 신주쿠에서 하코네를 잇는 '로망스 카' 열차 타며 낭만 즐기기 등

 

 

 

 

그녀의 발길을 따라 좇다보니 어느 새 나도 도쿄 구석구석을 한 바퀴 다 돌아 본 느낌이다.

여행 에세이가 보통 그렇듯이 한 권을 읽고 나면 항상 대리만족에 흡족한 여운이 남는다.

 

손미나 여행 에세이 중에서는 처음 만나는 책 '도쿄 에세이' 를 읽다 보니 그녀의 여행 스타일이 조금은 짐작이 간다.

열린 마음, 열린 발걸음!

조급증이 없다.  여유로운 마음으로 구석구석 들러보기,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그 곳을 지키는 사람들,

그 일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직접 만나서 언제까지라도 이야기를 나누기. 

마음을 활짝 열어두고 다가가므로 상대방이 마음의 휘장을 얼른 걷게 된다. 

그리고 이 여행자를 위해 더 많은 정보와  이야깃거리를 제공하고 선물하고 싶어한다.  마음이 통!한 것이다.

 

 

 

 

 

 

사실 나는 일본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일본이 우리나라에서 일으킨 임진왜란, 정유재란, 크고 작은 왜란들.

그리고 36년 간의 일제 강점기 동안 그들이 우리나라에서 일으킨 사건과 만행을 중심으로,책을 보아도 그와 관련된 서적만 읽었던 것 같다.  그들의 문화도 나의 흥미를 끌지 못했다. 애니메이션, 만화책, 소설책, 영화, 패션,기이한 대회 등.

왠지 나와는 궁합이 맞지 않는 듯, 가까이 하려해도 가까워지지 않는 공감형성이 쉽게 안 되는 그들의 문화였다.

 

몇 년 전에 큐슈 지방을 여행한 적이 있다.  자유여행은 아니었고 기회가 되어 여럿이 함께 갔다.  

내 마음을 확~잡아끄는 그 무엇을  발견하지 못한 채 전 김영삼 대통령이 통채로 이용했다는 어마어마한 온천장에서 머물렀다.

큐슈를 보고 일본을 다 보았다면, 코끼리 다리만 만져보고 코끼리를 다 보았다 하는 것과 같겠지.

하지만 여전히 일본에 대해 알아야겠다는 열망이나 여행에의 소망이 생기지 않았다. 그 나라를 떠나면서 아쉬움이 남지 않는다면?

 

그런데 손미나의 도쿄 에세이를 읽고 나니 일본이, 일본의 문화가 그 전보다는 훨씬 친근하게 느껴진다.

책이란 그런 것 같다. 책을 통해 누구를 어느 곳을 다시 보게 되는 계기가 되어 주는 것, 책의 또 다른 매력이 아닐지!

 

도쿄를 여행할 계획이 있는 사람이라면 '태양의 여행자'가 좋은 가이드북이 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