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에서 법정스님의 병세가 위독하다는 보도를 들었다.  작년에 폐암에 걸리셨다는 말을 들었는데 언론매체에서 그 이 후로 조용하니 나도 잠깐 잊고 있었다. 병세가 악화되었다가 입원 후에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았다하니 다행이지만 마음이 짠하다.  뉴스를 보면서 책장에 꽂혀있던 그의 책 '무소유'를 꺼내 먼지를 닦아본다.  앞 장에 쓰여진 메모를 보니 1989년이라 적혀있다.  문고판 한 권에 1.000원이던 시절 내가 구입해 읽고는 흠뻑 빠졌던 글이다.

 

  법정은 몰라도 '무소유' 라는 글은 대부분 사람들이 기억할 것이다.  학창시절 한 번쯤 교과서에서 만나봤을테니까!  20여년 전 나는 무소유를 읽고 공감하면서도 의문이 남았었다.  '스님이야 세속을 떠나 산(山)사람으로 살면서 부양 할 처자식이 없으니 무소유를 자신있게 강조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당신께서 세상으로 나와 부디끼고 살면서도 과연 무소유를 이야기 할 수 있을까' 하는.  '세속인에게는 왠지 탁상공론처럼 들릴지도 모를, 와 닿지 않는 허무한 말씀이 아닌가' 하는.

 

  그러나 또 알게 되었다.  그 뒤에 이어지는 무소유의 진정한 개념을.  법정이 말하는 무소유는 무조건 버리거나 혹은 무조건 갖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님을. 무소유란 필요이상의 것을 탐욕하지 않는 것. '부자란 집이나 물건을 남보다 많이 차지하고 사는 사람이 아니다.  불필요한 것들을 갖지 않고 마음이 물건에 얽매이지 않아 홀가분하게 사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부자라 할 수 있다.' 고 말씀하신다.

 

  나는 불교인도아닐 뿐더러 기억력도 좋지 않아 불교계에서 남긴 그 분의 업적을 줄줄이 말해주어도 금방 잊어버리고 만다.  내가 그에 대해 기억하는 것이라고는 해남 땅끝 어느 마을에서 책 세 권을 들고 출가 하셨다는 것, 불교계에서 큰 발자국을 남기고 어느 날 홀연 강원도 산골로 거처를 옮겨 '버리고 떠나기'를 실천하며 사셨다는 것. 전기도 수도도 없는 폐가에 기거하며 많은 작품을 남겼다는 것.  그 중 서너 권은 나도 읽었으며 읽는 내내 마음이 정화되고 교훈도 얻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무소유' 글에서 보면 스님도 난초 두 분(盆)에 대한 일화를 통해 '우리들이 필요에 의해서 물건을 갖게 되지만, 때로는 그 물건 때문에 적잖이 마음이 쓰이게 된다.  그러니까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인다는 것이다'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는 말이 있다.  물건으로 인해 마음을 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한 번쯤 생각해 볼 말이다.  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는 것은 무소유의 역리이니까.'

 

  한 번쯤 생각해 볼 말씀이다.  법정스님의 쾌유를 바라며 그 분의 글을 다시금 읽어보련다.  성북동 길상사에 한 번쯤 가보고 싶었는데 실천하지 못하고 말았다.  봄 햇살 좋은 어느 날, 길상사 나들이 한번 해 보고 싶다.

 

  사진작가 조선희, 가끔 잡지나 텔레비전 인터뷰에서 잠깐씩 본 적은  있었지만 그녀가 직접 책을 펴낸 것은 모르고 있었다.  몇 권의 책 중에 '니 멋대로 찍어라' 라는 제목에 시선이 콱 박힌다.  얼른 사 읽었다. 글을 읽고 그녀의 사진도 감상하고 일석이조. 나도 사진에는 관심이 많은 편이다. 사진 욕심도 많다. 우리 언니는 내가 일흔 살이 되어서도 디카를 지니고 다닐 것 같다며 장담한다.  꼭 담고 싶은 장면에서 카메라가 없을 때는 두고두고 눈에 밟혀 속이 상하다.  그렇다고 사진을 정식으로 배워봐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대신 좋은 카메라는 하나 꼭 가지고 싶다.  그러던 중에 만난 대한민국 최고의 사진작가 그녀의 포토 에세이는 흥미진진할 수 밖에!

 

 

 

 

   대한민국 스타들이 가장 찍히고 싶어하는 사진작가가 바로 조선희란다.  이 초보의 눈으로 봐도 인물사진이 대단하다.  평범한 사람도 그녀 렌즈를 통하면 날개를 달고 다시 태어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시인 서정주 부부에서부터 걸그룹 최고의 스타 소녀시대까지.  Cf, 영화, 드라마, 잡지 등에 실린 사진과  각계계층의 내로라 하는 대가들은 몽땅 그녀에게 '찍히고' 말았다.

 

 

 

 

 

 

   나는 배우 이정재의 열혈 팬이었다.  물론 지금도 그렇지만. 그의 매력을 처음 발견한 곳은 영화도 드라마도 아닌 바로 그의 사진이었다.

처음 봤을 때 아, 이사람 심상치 않다 싶었는데 이정재의 사진들이 바로 조선희의 렌즈 앞에서 완성된 작품이었다니, 이 책을 통해서야 처음 알았다.

 

 

 

 

  여행을 가거나 길을 가다가 혹은 버스를 타고 지나다가 독특한 광경을 볼 때가 있다. 얼른 카메라를 꺼내고 싶지만 어,어,어 하다가 지나쳐 가거나 얼른 꺼낸다고 했지만 이미 그 장면은 사라져 버릴 때가 있다.  그저 안타까움에 입맛만 다실 뿐.  '찰나' 놓치지 말라.  프레임안에 모든 것을 전부 담으려 하지 말라.  과감하게 버릴 건 버려라.  그래서 조선희는 '사진은 뺄셈이다. 사진 초보자라면 잘라내기 연습'을 하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녀의 말 중에 가장 와 닿던 말 '고정관념 따위는 쓰레기통에나 처 박아라, 네 멋대로 찍어라' 이런 당찬 마인드가 오늘의 그녀만의 스타일을 만들어내지 않았나 싶다.  사진은 예술이다.  예술에 있어서 고정관념은 무덤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오, 멋진 말. 담고 싶은 말.

 

 

   쇠똥집을 배경으로 한 마사이족의 사진.  조선희는 검은 천으로 쇠통집을 몽땅 가린다.  검정천 앞에서와 쇠똥집앞에서의 분위기는 사뭇 달라 보인다.  신선한 아이디어와 소품과의 결합이며 천 한장 씌우고 벗겼을 뿐인데 분위기는 판이하다.  흔하디 흔한 비주얼은 피하라.

 

 

 

  비가 오는 날이나 흐린 날에도 카메라만 젖지않게 한다면 드라마틱한 사진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한다.  흐린 날은 사진이 잘 안나올거야 하는 것 역시 고정관념?

 

 

 

 

  정말 그럴 때가 있다.  알록달록 이쁘게 진열된 상점의 물건들, 숍안의 모습들, 지나는 사람들. 사진에 담아보고 싶지만 상대가 불쾌해 할까봐 눈치를 볼 때가 있다.  소심하게도 나는 물건을 하나 산 다음에야 사진 한 장 찍어도 될까요. 넌즈시 묻고 찍는다.  예전에 서울대공원에서 장미축제를 할 때 캔버스를 가져와서 화려한 색감의 장미를 살려내고 있는 화가(?)들이 곳곳에 많았다.  저기사진 한 장 찍어도 될까요? 정중히 물어봤다가 "안돼욧!" 어찌나 단호하게 거절하는 지 참 무안했던 적이 있다.  그때는 그냥 뒤에서 몰래 찍었지만!  조선희는 말한다. '예의 차리지 말고 일단 눌러라'  눈을 부라린다면 죄송스러워죽겠다는 표정을 지어보자?  미안한 표정은 한 번이지만 사진은 영원하다!

 

 

 

 

  작가에게는 문체가 있고 가수에게는 창법과 음색이 있으며 사진작가에게는 톤이 있다.  그것이 예술가의 개인적인 독특한 개성이라 하겠다.

톤 - 색깔,초점이 맞는 정도, 밝기와 어두운 정도, 잡색이 낀 정도, 선예도 등-

전 세계 구석구석 오지까지 달려가 직접 찍은 조선희의 풍경사진은 사실 내 개인적으로 확 와닿는 느낌은 덜하다.  사람마다 감상 포인트가 다르니까 그럴 수 있으리라!  그러나 그녀의 인물 사진은 볼 때마다 기염을 토하게 한다.  대가는 뭐가 달라도 다르구나! 기발하구나! 감히 흉내도 낼 수 없을만큼 그 경지의 완성도가 느껴진다. 

 

 

 

 

 

 박완서는 팔순이 되어가는 지금도 '영원한 현역 작가'이고 싶다는, 창작에의 열정을 뿜어내는 진정한 현역 작가이다.  현재 7차 고등국어책에는 그녀의 단편 '그 여자네 집'이 실려있는데 그 작품이 첫사랑 여자에 대한 아름다운 기억이라면 이 작품은 첫사랑 남자에 대한 이야기? 그러나 그 '첫사랑 남자'가 중심이 되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한 여성의 일대기적 삶 속에 누구나 한 번 쯤 품고 있을 법한 그런 첫사랑은 물 흐르듯 잠시 설렘으로 합해졌다가  갈래 길에서 나누어 지는 물줄기처럼 자연스럽다.  그러면서도 '그 남자네 집'이 주는 설렘은 순수하기에 풋풋하다. 

 

  박완서의 작품이 대부분 그렇듯이 시대적 배경은 6.25전쟁에서부터다.  집안의 남자를 잃은 전쟁 통에서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생계를 책임져야했던 아내와 어린 딸들의 이야기, 동족상잔의 현대사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개인의 상처들, 전쟁의 후유증으로 정신적 육체적으로 병들어가는 비극은 그녀 작품의 주된 소재가 되었다. 이 작품에도 반 세기 전의 시대상이 오롯이 담겨있어 그 당시의 장면들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러면서 전쟁의 병폐를 직접적으로 다루지는 않아 편안하게 읽을 수 있었다.

 

 주인공 '나'는 서울대학교에 입학 후 부푼 대학생활을 펼치기도 전에 전쟁이 발발하고 만다.  아버지와 오빠가 사상적인 문제로 끌려가 생사를 알 수 없게 되자, 남은 가족은 하숙을 칠 수 있는 집을 사서 이사를 하고 '나'도 학업을 중단하고 미군부대에 취직을 하게 된다.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집안에서 곱게 자란 '나'는 가만 보면 서울 깍쟁이 이미지다.  당시의 대학물을 먹었으며 서울에서 자란 그녀는 무조건 순종적이며 소극적인 전통 여인상과는 거리가 멀다.  배우자 선택에 있어서도 덧셈과 뺄셈을 충분히 해 본 후에 스스로 선택한다. 

 

  전쟁 전에 은행원이었던 남자와 결혼을 하고 휴전이 되자 남편은 다시 은행에 근무하게 된다.  홀시어머니는 온 생을 바쳐 아들 뒷바라지를 했고 곧게 자란 아들도 어머니께 극진하다.  은행원이던 그녀의 남편은 꽁생원일정도로 가계를 꾸려나갔으며 남자 가장이 없는 처가도 정성껏 보살펴 준다. 항상 집안에 1년 먹을 쌀과 땔감을 쟁여놓는 것을 잊지않았으며 시어머니는 오직 먹는 음식에 집착한다.  '나'의 눈으로 볼 때는 오직 먹는 것에만 신경쓰는 단순한 사람들로 보여 반발심도 생기지만 전쟁 후 이리 넉넉한 집도 흔치 않다.  어쩌면 그녀의 불만은 행복에 겨운 비명일 수도 있다. 사람은 기본 의식주가 해결된 후에야 이상도 희망도 펼칠 수 있는 것이 아니던가!

 

 일상의 단순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첫사랑 남자(그들의 사랑은 '사랑'이라기 보다 '우정'에 가까운 그것이다)를 자투리 시간을 이용하여 만나면서 신선함을 느끼기도 한다. (산책이나 음식을 먹는 정도) 시간이 흐르면서 아들 딸 낳고 기르면서 집도 넓혀간다.  집안에 흉한 일없이 서로 화목하며 평범하게 발전해 간다. 그 사이 첫사랑 느낌을 가졌던 그 남자는 전쟁에서 얻은 병으로 실명을 하게 되지만 교사인 좋은 여자를 만나 자녀도 두고 불편없이 산다는 소식을 친정 어머니를 통해 듣는다. 

 

  이야기를 읽는 동안 인물들 삶에 불행의 기복이 심하지 않으니 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통으로 보면 아비규환의 역사적 비극들이 깔려있기는 하지만 좁게 들여다 본다면 인물들 중 어느 누가 통곡할 만큼 불행하거나 (아, 옆집 살던 여자가 미군부대에서 일하다가 양공주로 전락해서 결국 미국으로 떠나게 되는 이야기가 있긴 하지만) 긴장을 주는 사건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열심히 일한 만큼 점점 공간도 넓혀가고 경제적으로도 안정되어 잘 살고 자녀들도 교육을 잘 받은 덕에 좋은 직장도 얻게되고 모두 해피엔딩이다.  이는 가족 구성원에 속한 자신의 역할을 각자 충실히 해 냈기 때문에 얻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평범한 삶이 얼마나 큰 행복을 주는 지 읽는 내내 자꾸 부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