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겨 에세이다.  김연아의 옛 스승이었던 신혜숙 코치가 말하는 피겨에 대한 재미있는 앞뒤전후이야기.  이 책의 초판 발행일이 2010년 2월 12일이니까 벤쿠버 동계 올림픽이 개막되기 며칠 전이다.  이 책을 먼저 읽고 피겨 경기를 보았더라면 더 흥미로울 수 도 있었을텐데......생각하다가 꼭 그런것만도 아닌것 같다.  김연아의 연기를 이미 본 후에 그 때를 되짚어보며 이 책을 읽으니 더 이해가 잘 된다.  물론 이 책의 내용이 모두 김연아에 대한 것만은 아니다.  그렇지만 각 장마다 연아의 이야기를 인용하므로 마치 연아의 자서전을 읽는듯한 착각도 들면서 매우 흥미롭다.  그도 그럴것이 총 3부에서 1부는 연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7세부터 스케이트를 시작한 연아와 신혜숙 코치의 첫 만남은 연아가 초등학교 4학년 되던 해, 연아는 잘 웃지 않고 좀 무뚝뚝한 인상이었으며 의지가 강하고 승부욕이 강했다고 한다.  스케이트 외에는 다른 것에 별로 관심이 없었던 그녀는 지독한 연습벌레였단다.  활주하다가 점프하여 공중에서 3회전을 하는 트리플 기술 여섯 개 중 다섯 개를 연아는 1년 반만에 모조리 마스터 했으며 머리가 명석하고 이해력이 빨라서 한 번 가르쳐 주면 곧바로 흡수하여 자기 것으로 만들어 갔다.  연아의 평소 다부진 인상을 보면 그게 무슨 말인지 훤히 알 수 있다.

 

  연아는 6학년 때 처음으로 국제대회에 참가한다.  2002년 4월 슬로베니아에서 열린 ’트리글라브 트로피대회’인데 거기서 우승을 한다.  연아의 국제대회 첫 우승이자 한국 선수가 국제 피겨 대회에서 처음으로 금메달을 목에 건 사건이었다니, 피겨의 여왕으로 우뚝 서게 되는 첫 발걸음이었던 것이다.  이어 2003년 크로아티아 골든 베어대회에서 잇달아 우승, 노비스급으로는 마지막 대회였고 이후에는 주니어 대회에 나가게 된다.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처음에는 최대의 라이벌 아사다 마오에게 밀려 2위를 했지만 2006~2007 시즌에는 아사다 마오를 물리치고 우승하게된다.  그 때부터 연아는우리 국민에 큰 관심을 받기 시작한다.

 

  연아의 성공기속에는 항상 피겨맘 연아의 어머니가 있었다.  그 어머니의 물심양면의 뒷바라지 이야기, 동갑내기 아사다 마오와의 만남과 경쟁, 그리고 그녀들의 코치와 안무가에 대한 폭넓은 주변 이야기도 재미있다.  개인종목이기 때문에 선수 등록을 하고 나서 선수활동에 드는 어마어마한 경제적인 부담은 부모의 몫이며 그것이 어느 정도인지 스폰서의 지원을 받지 못하면 기량이 넘쳐도 선수를 그만 두어야하는 피겨의 냉혹한 현실도 담겨있다.  연아처럼 다 만들어진 스타를 모시기에 급급하지 말고 재능있는 신인 선수를 발굴하여 앞에서 끌어주는 매니지먼트와 뒤에서 밀어주는 스폰서가 많이 나타나기를 부탁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피겨의 기본 요소들을 알기 쉽게 설명하여 독자의 피겨에 대한 지적 호기심을 채워주며 궁금증도 해소해 준다. 피겨의 등급과 기술, 국제대회의 종류와 나이별로 출전할 수있는 대회를 구별해 준다.  국제대회는 만 12세까지는 노비스, 만13~19세는 주니어, 만 15세부터는 시니어로 나눈다. 이 중에 피겨의 여왕을 가리는 최고 수준의 시니어 대회는 올림픽, 세계선수권대회, 그랑프리대회,대륙별대회 등이며 7~8급 정도의 수준이 되어야 참가 자격이 주어진다.  피겨 기술 수준에 따라 8등급으로 나뉘는데 그 기준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피겨 유망주들에 대한 이야기도 따로 다루고 있어서 훗날 제2의 김연아를 꿈꾸게 한다.

 

  김연아 덕분에 피겨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피겨 관계자가 아니더라도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사람들도 많다.  이 책은 그럼에도 아직 피겨에 대해 모르거나 얼핏 알고 있는 사람에게 피겨 입문서나 피겨개론이 될 만한 유익한 책이다.  어느 자리에서든 피겨에 대해 ’좀’ 이야기 할 수 있을 만큼 좋은 안내서다.  김연아 뿐만 아니라 피겨 이외의 것은 모두 포기하고 연습에만 매진하고 있는 어린 선수들에게도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응원해야 할 것이며 이 높은 관심이 유행에 따라 일시적으로 나타났다 사라지지 않기를 바란다.

 

그림책 '비단치마' 얇은 책을 후루룩 한 번 읽는다.  마음이 조금 불편하다.  이 이야기는 전래 동화 '심청전'을 재구성했다고 하는데 어디를 봐도 우리가 알고 있던 착하디착한 효녀 심청을 닮은 아이는 찾을 수가 없다.  그림책 속 청이의 표정은 새침하고 탐욕스럽기까지 하다.  뭐야! 원전 심청전 맞아? 기존 심청전 속의 청이를 찾으려니 자꾸 불만스럽다.  이것은 나의 고정관념인가! 최대한 생각을 깨며 침착하게 다시 한 번 읽기로 한다. 

 

아버지 눈을 뜨게 하려면 공양미 삼백 석이 필요하다. 마침 남경장사가 제물로 쓸 처녀를 찾는다.  청이는 삼백 석이라는 말에 달려가는데, 남경장사가 옵션으로 주는 비단치마에 더 반하고 만다. '내가 입고 싶어!' 청이는 아버지 눈이 우선이었을까, 비단치마가 우선이었을까.

바다로 뛰어들기 직전 청이는 악을 쓴다. " 못해. 죽기 싫어,싫어!/ 엄마, 살려줘! /나, 죽기 싫어요."  청이의 이 말에 심청전을 염두한 어른이라면 대부분 의아해 할 것이다. 

 

물에 빠져 고깃배에 매달린 연꽃에 태워져 살아난 청이는 어느 양반댁에서 연꽃아씨로 대우 받으며 도련님 사랑도 기대하며 행복했으나 어느 날, 청이의 아버지가 거렁뱅이가 되어 하필 이 댁으로 밥구걸을 온다. 청이는 매몰차게 아버지를 거부한다. "난 싫어,난 연꽃아씨야." 하지만 결국 아버지도 눈을 뜨고 함께 시골로 돌아가면서 아버지를 잘 모시겠다고 다짐하며 이야기가 끝이 난다. 두 번째 읽을 때까지 불편했던 마음이 세 번째 읽으니 조금 누그러진다. 결국은 자신의 욕심을 버리고 불쌍한 아버지를 선택하여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면서 잘 모시고 살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작가가 이 이야기를 재구성한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생각해본다. 그것을 두 가지로 보는데 '자유로운 상상'과 '요즘 아이들의 반영' 이 그것이다. 어떤 선인과 악인이 치열한 갈등을 벌여도 열린 결말없이 착한 사람이 잘 살게 되어 있다. 이미 나와있는 결말을 알고 시작하는 이야기. '지금은 괴로워도 나중에는 잘 살게 될 텐데 뭐!' 이는 옛이야기의 교훈이며 동시에 한계라고 본다. 첨단사회를 사는 아이들에게 더 이상 흥미를 줄 수 없는 진부함! 그런 면에서 '비단 치마' 는 원전을 자유롭게 바꾸어보고 상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요즘 아이들의 트랜드, 솔직함의 표현. 부족함 없이 자라는 아이들은 자신이 가리키기만 하면 그것을 품에 안을 수 있는 풍족함 속에 오늘을 살고 있다. 견물생심에 충실한 아이들, 청이의 모습도 요즘아이의 반영이 아닐까 싶다. '갖고 싶어요, 하겠어요!' 아버지의 눈도 중요하지만 내가 원하는 것을 갖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는 청이. 눈 뜨는 대가로 삼백 석을 마련해 주었으니 아버지는 아버지대로의 삶을 살고 자신은 양반 댁에서 자신의 삶을 살겠다고 앙칼지게 다짐하는 청이의 모습도 그러하다.

 

  착한 사람은 복 받고 악한 사람은 벌 받는 권선징악과 행복한 결말, 오직 희생을 요구하는 뻔한 이야기 구조에 시들해진 아이들이 읽으면 속이 후련하고 공감으로 눈이 번쩍 뜨일 것도 같다.  그러나 '비단치마'는 '심청전'을 재구성한 이야기라는 말만 듣고 무조건 읽게 되면 원전'심청전'에 대한 오해가 생길 수 있다.  어릴 때부터 눈먼 아버지를 물심양면 봉양하면서도 더 잘 모시지  못하는 자신을 자책하는 심청이. 아버지를 위해 희생과 인고의 어린 시절을 보낸 심청전을 충분히 이해하고 감상한 후에 읽으면 신선한 읽기가 될 것이다.

 

  자리를 훌훌 털고 강건하게 일어나시기를 기원했는데 결국 스님께서 입적하시고 말았다.  마치 어버이가 돌아가신 것처럼 찡했던 울림은 쉽게 가시지 않는다.  만장도 뭐도 없이 입으신 채로 다비장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그 분의 무소유 철학을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정말로, 모두 다, 버리고 떠나셨다.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다시는 그 분의 새로운 글을 읽지 못한다는 것도 애달프다. 

 

  말의 빚을 다음 생에 가져가지 않겠다시며 자신의 책을 더 이상 출간하지 말것을 유언으로 남기셨다니 그것만큼은 안 될 말이다.  소탈한 일상에서의 경험과 생각을 서정적인 문체로 쉽게 풀어놓은 그 분의 책들은 길이길이 남아 후손들에게 끊임없이 읽혀야 한다.  그의 철학에서 교훈을 얻고 감화를 받아 좀 더 살기 좋은 세상이 만들어진다면 이것 또한 보람이고 기쁨이 아닐런지!  유언과 함께 책의 절판소식이 전해지면서 너도나도 서점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평소보다 50배 이상 늘었단다. 뉴스를 보면서 나도 슬슬 먼지 낀 책장으로 다가가 그 분의 책이 얼마나 있는 지 살핀다.

 

 꽤 여러 권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안타깝게도 딱 세 권 뿐이다. 어제 다비식이 있었고 오늘은 유골을 수습했다고 하는데 나는 '버리고 떠나기' 를 펼쳐서 다시 읽기로 한다.  오래 전에 출간된 책이지만 오늘 다시 읽어도 현재와 동떨어진 이야기는 하나도 찾을 수가 없다. 

 

  '버리고 떠나기' 의 서문에 보면 이 책이 나온 지 9년만에 개정판을 내며 일화 하나를 소개하고있다.  교도소에 3년 째 복역중인 젊은이로부터 온 편지.  감옥에 처음 들어와 절망적인 상황에서 자살을 시도하려던 중에 이 책을 읽게 되었고 감동하여 그 후 심경의 큰 변화로 사회적응 훈련을 잘 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 대목에서만 봐도 법정스님의 책에 대한 절판 이야기는 있을 수 없다.  남녀노소 그 분의 책이 필요한 사람이 부지기수다.  곳곳에 묻어있는 무소유 철학, 만연한 사치와 과소비 문제, 환경오염과 동물학대 심각성, 진정한 종교의 의미, 자연의 이치 등 우리가 정신없이 경쟁하며 살다보면 망각하게 될 것들, 그러나 절대 잊어서는 안 될 것들에 대한 이야기다.

 

 후박나무 그늘에게까지 고마움을 느끼며 소박하게 사시다 가신 스님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며 오늘 읽어 마음에 와 닿던 문장 몇 개를 적어 두려한다.

 

 '멀리 서해바다까지 가서 돈 주고 고기를 사서 놓아주는 그런 형식적인 방생보다는 추위에 헐벗고 굶주리는 가까운 이웃들을 보살피고 도와주는 일이 방생의 본 뜻임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한편 소유를 당하는 것이며, 그만큼 부자유해지는 것이다. 우리들의 정신은 그만큼 부담스러우며 이웃에게 시기심과 질투와 대립을 불러 일으킨다.'

 

 '우리들의 목표는 풍부하게 소유하는 데 있지 않고 풍성하게 존재하는 것이어야 한다.'

 

 '오늘 날의 절과 성당과 교회는 순수한 신앙보다는 세속적인 상업주의에 너무도 많이 오염되어 있다.  돈 없이는 절이나 교회에 나갈 수 없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마치 신심을 돈으로 재려는 경향마저 없지 않다. 이런 것이 종교이겠는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온화한 얼굴과 상냥한 말씨가 이웃을 구한다.'

 

 '바른 법을 만나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집안일부터 안정이 되어야 한다. 밖으로 겉돌 수가 없다. 지금까지 밖으로 팔았던 시선이나 관심을 돌이켜 자신의 삶을 개선하는 일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아름다워지려면 남을 닮을 것이 아니라 제 자신의 얼굴을 지나고 가꾸어야 한다.  아름답고 싶거든 외과수술에 의존할 게 아니라 일상생활을 통해 아름다운 업(생활습관)을 익힐 일이다.  또한 늙고 싶지 않으려면 탐구하는 노력을 기울여 늙을 여가가 없어야 한다.  하는 일 없이 삶이 무료하면 늙음이 찾아오게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