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게도 문학계의 거장인 파울로 코엘료를 알게 된 것은 불과 1,2년 전이다. 무지하게도 그가 쓴 불후의 명작 '연금술사' 가 개화기 이전의 고전인 줄 알았으니까.

 

추운 겨울 날 홍대거리 북까페에 앉았다. 휴일 점심, 젊은이들로 시끌벅적. 독서는 뒷전이고 우선 빵을 구워 샐러드와 곁들이며 따뜻한 허브차를 마신다. 이야기로 한참을 머물다 책장으로 가서 책을 고른다. 무슨 책들이 있을까.

 

앞에 앉은 이는 순간 집중력이 매우 뛰어나다.

무슨 책인데 그렇게 골똘해? 책을 덮어 보여 준다.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제목부터가 범상치 않으니 그 자리서 가슴으로 와 콕 박힌다. 제목 독특하고 좋다, 작가가 누구야?

파울로 코엘료란다. 파울로 코엘료? 이 전에 무슨 책 쓴 사람인데? 연금술사란다. 연금술사? 그 책, 옛날 책 아닌가? 현대소설이었어?

 

나는 제목 하나로 찰나, 그 작가에게 매료되었다.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스테디 셀러로 알고 있는 '연금술사'의 작가라니.

난 사서 볼 거야! 제목을 외워 왔으나 자꾸 '베로니카 죽기로 작정하다' 로 검색하는 바람에 나타나지 않아 파울로 코엘료로 찾아 주문했다.

그리고 읽었으며 그 다음부터 줄줄이 그의 책을 사고 또 샀다.

 

나중에 알았지만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도 '코엘료의 책을 잔뜩 쌓아두고 읽고 싶다' 고소망할 만큼 파울로 코엘료는 탁월한 이야기꾼이다.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그 다음에 읽었던 '피에트라 강가에서 나는 울었네' 마치 시 제목처럼 아름다운, 이 또한 제목만 보고도 어느 강이라도 찾아가 나도 얼른 울어야할 것만 같은 애잔함에 공감하고 말았다. 성의 이야기를 다룬 '11분' 엄청난 재물 앞에서 선과 악이 벌이는 인간 내면의 갈등 '악마와 미스프랭' 그리고...'연금술사'

 

모두 문체가 뛰어나다. 번역사의 능력만은 아니겠지? 작가의 평이하면서도 흥미로운 문장력과 탁월한 번역가의 만남이 이루어낸 명작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연금술사' 를 이제야 만나다니, 좀 더 일찍 만났더라면...하는 아쉬움. 아니지, 이제라도 만났으니 다행이지. 행운이야. 그리고 짐이 많지 않은 여행을 갈 때는 한 쪽 귀퉁이에 찔러넣는 애독가가 되었다.

 

그의 소설을 다섯 권쯤 읽고 나니 그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했다. 작가 자체에 대한 궁금증. 어떤 사람일까. 어떤 환경에서 어떤 영향들을 받으며 성장했고 그의 사상이나 인생관은 어떨까. 관심사는 무엇일까 등.

 

그리고 이제야 읽게 되었다. 그의 에세이집 '흐르는 강물처럼'

 

그의 책에는 (소설에서도 이따금 등장하지만) 종교적 색채가 강한 편이다. 그래서 비종교인이 그의 책을 접할 때는 감안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그것도 결국 독자에게 긍정적인 삶의 메시지를 주기 위한 장치라고 생각한다.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덕목들을 자신의 일화나 전해오는 예화를 통해 나타내고 있다. 변치 말아야할 초심자의 마음, 정직, 땀 흘리는 삶, 배려, 봉사, 모험, 도전, 실천 등.

 

에세이다보니 소설보다 좀 더 종교적인 가치관으로 인생을 풀어가려는 면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 긍정적으로 공감하게 된다.

 

흐르는 강물처럼, 인생은 흐르는 강물처럼 그렇게... 그렇게...

'떠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제목만 보고도 읽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여행에 대한 잠재된 욕망을 깨우는, 또는 대리만족을 아낌없이 주는 그런 책이다.

 

글과 풍성한 사진이 모두 박정호라는 여행 작가가 쓰고 찍었다니 더욱 호기심이 일었다. 어쩌면 이리도 글이 사색적일 수 있을까. 갑자기 책에는 나오지 않은 그의 나이가 궁금해진다. 사진과 더불어 그의 글은 유익한 정보도 그러하지만 특유의 감동과 자아성찰의 계기를 주기 때문이다. 자기 색깔을 낼 줄 아는 독특한 사람이 틀림없으리라.

 

독서 중에 잠시, 작가에 대한 정보를 찾는다. 그는 여행관련 텔레비전 프로그램 제작을 직업으로 가졌던 사람이었고 지금은 전업 여행 작가로 나섰으며 나이는 사십대 중반이란다. 불현듯 피천득의 '수필' 이라는 수필의 한 부분이 떠오른다. '수필은 청춘의 글이 아니요, 서른 여섯 살 중년의 고개를 넘어선 사람의 글이며...' 40대 중반의 작가. 역시 충분한 체험과 생각이 녹아들었다는 글에 대한 안도감. (물론 성숙도는 사람에 따라 개인차가 있지만 말이다)

 

작가의 여정을 따라가 본다. 내 미래의 보루 여행지인 터키! 내 발로 딛기 전까지는 터키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그 눈부심과 이국적 예스러움에 늘 설렐 것이다. 어쩌면 다녀와서도, 아니 평생을! ... 언제쯤 나도 갈 수 있을까.

 

시리아와 요르단, 스페인과 포르투칼,

그리고 세네갈, 150년 전 만 해도 백인들의 노예무역의 장이었던 고레섬 이야기 부분에서는 흑인들의 슬픈 운명과 그들을 짐승보다 못하게 취급했던 백인에 대한 분노에 잠시 흥분한다.

 

'한 번 들어가면 다시 나올 수 없는 곳'이라는 뜻의 타클라마칸 사막 횡단 이야기. 인간의 사막에 대한 로망, 그리고 그 극한에 대한 도전과 극복을 다루고 있는데 이 여정은 교육방송에서 동영상으로 본 적이 있어 더 친근했다.

 

그 어느 곳보다 가장 두근거렸던 여정은 산티아고 순례길. 한 달은 족히 걸어야 하는 길. 순례길의 시작이라는 생장피드포르에서 산티아고까지는 8백 킬로미터. 사람들은 자기 몸집보다 훨씬 큰 배낭을 짊어지고 이 곳으로 모여든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이 길은 여행자에게 안락한 숙식을 제공할 여건도 안 되며 8백 킬로미터를 모두 마쳤다고 해서 누가 상을 주는 것도 아닌 고난의 길이다. 그런데 그들은 무엇을 위해서 눈만 뜨면 걷는 것일까. 나름대로 여러 이유가 있겠지.

 

제주도 올레길을 개척했던 서명숙님은 회의와 절망의 기로에서 선택한 곳이 바로 이 산티아고 순례길이었다고 했다. 그리고 제주도 올레길의 묘안도 그 곳에서 얻었다고. 또한 도중에 만난 작가 파울로 코엘료에 대한 감동도 여실히 표현한 것을 듣고 그때부터 동경의 길이 되었던 산티아고 순례길. 그러고보면 그 길은 자아성찰의 길이며 다시 도전하는 생성의 길이 아닐까.

 

'언제 도착할지 또 얼마나 걸어야 할 지, 무엇을 위해 걷는지 묻지 않기로 한다. 걷는 것은 최대한 단순하고 미련해야 즐길 수 있다. 이 길을 걷는 동안 단 한 걸음도 누구도 대신할 수 없다는 것 하나만 마음에 새겨 두기로 한다. 시적거릴 길이라면 차라리 떠나지 않는 편이 낫다. 스스로 지옥을 만들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진정한 즐거움은 걷고 있는 바로 이순간이다.

 

 

언제쯤이면 그 길을 걸어볼 수 있을까. 나도 걷는 날이 오기는 오는걸까.

책 속 사진들을 보며 그 길 위에 서 본다. 상상만으로도 호연지기가 길러지는 듯하며 심장은 마냥 쿵쾅쿵쾅!

'혼자 떠나는 '배낭' '도보' '걷기' 여행,

 

이보다 더한 설렘을 주는 말이 있을까. 제주도의 천혜자연을 담은 사진작가 김영갑은 그의 책 '그 섬에 내가 있었네' 에서 말했다. 자연 속에서 오르가슴을 경험한다'고. 자연이 그에게 주는 모든 카타르시스를 한 마디로 집약한 표현이 아닐까 싶어서 이 말에 나는 단번에 공감했다.

 

느릿느릿 자연 속을 걷는다는 것, 그것은 최고의 절정을 맛보는 즐거움인 것을, 직접 두 다리로 걷지 않은 사람은 아마, 모르리라. 외롭지 않을까. 심심하지 않을까. 무섭지 않을까. 위험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먼저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것도 맞다. 하지만 그 곳 사람들을 믿는 것이다. 외로움을 즐기는 것이다. 그리고 길에서 만나는 사람에 대한 부푼 마음이 있는 것이다.

 

오마이뉴스 기자로 재직 중인 도보 여행가 유혜준의 '남도 섬길 여행' 을 발견했을 때의 유쾌함. 그리고 읽어가면서 나의 도보 여행과 자꾸 비교하게 된다. 혼자 떠나는 여성 '그녀' 이기 때문이다.

남도 섬길, 진도와 소록도, 거금도와 거문도 그리고 아직 가 본 적이 없어서 로망으로 남아있는 청산도, 제주도를 연상케했던 보길도 등

 

그녀가 배낭을 메고 걸었던 그 길을 따라 걸어본다. 배편을 이용해야 하기 때문에 항구의 연결이라든지 소요시간, 항구와 섬에 대한 좋은 정보는 밑줄을 긋는다. 바지락 캐는 사람들, 미역과 톳을 말리는 사람들, 양파와 대파를 가꾸는 사람들. 그리고 역사적 배경이 되는 장소와 축제에 대한 이야기도 읽기에 쏠쏠하다.

 

자연의 천혜를 그냥 눈으로만 감상해서는 먹고 살 수가 없는, 그것을 이용하여 몸을 움직여야하는 젊은 사람들이 빠져나간 섬에서 나이 많은 남도 사람들의 고됨과 부지런함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 자연은 어쩌자고 그렇게 병주고 약을 주는가. 참 고맙고도 얄굿다.

 

청산도와 보길도에서의 훈훈함.

 

'전라도 인심' 이라는 것이 있는데도 진도에서의 척박함(?)은 끼니를 거르고는 못견디는 글쓴이의 주관적인 생각이 많이 이입된 것 같다. 잠자리와 밥. 그것이 문제가 되는데 그로 인하여 훈훈한 인정이 느껴지기도 하고 불평이 나오기도 한다.

 

나 한 사람 언행으로 인해 내 고장의 이미지가 여행객으로 하여금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수도 있고 다시는 딛고 싶지 않은 곳으로 인식될 수도 있다. 사람들은 인심 좋은 열 사람보다 인색했던 한 사람이 더 또렷하기 때문이다. 우리 마을을 찾는 사람들에게 건내는 따뜻한 말 한 마디, 물 한 사발이 우리 마을을 살리는 지름길임을 깨달아야 하지 않겠는가.

 

언제부터인가 나도 섬이 좋아졌다. 그저 섬이 좋다. 섬의 외로움, 그 고즈넉함에 매료되는 것인가. 그래서 작년에는 네 다섯 개의 섬을 여행하기도 했는데, 언젠가는 꼭 가보고 싶은 봄의 청산도와 보길도 그리고 진도를 책을 통하여 미리 디뎌보니 한없이 뿌듯하다.